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44) 강풍에 날아간 온실…'빨리빨리'의 교훈
샌타애나 바람에 재배동 파손
시간비용 줄이려다 더 큰 피해
새로 짓자 결심하고 전면 보수
시멘트 보강·새 골조로 공사
튼튼한 온실 재탄생하는 계기
동네 농부 친구들 도움도 큰힘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한국과는 달리 온화한 날씨다.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도시에는 눈을 보기가 힘들어 이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잘 느끼지 못한다.
12월에는 샌타아나 바람(Santa Ana Wind)이라는 '사면하강풍(고원에 찬 공기가 두껍게 쌓여서 중력 때문에 사면을 따라 저지대로 흘러내리는 바람)'이 분다. 샌타아나 바람은 그레이트 베이슨 지역에 위치한 고기압으로부터 남가주 해안을 향해 부는 따뜻하고 건조한 바람이다. 이 바람은 따뜻하고 건조하기 때문에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바닷가에 위치한 옥스나드는 연중 기후가 따뜻하고 서늘한 바람도 불어 딸기 농사에 최적인 지역이다. 하지만 초겨울에는 시속 60마일 이상의 강풍이 불기도 한다. 그래서 이 동네 그린하우스들은 비닐이 파손되고 날아가지 않도록 로프로 지붕을 단단히 묶는 것이 필수이다. 지난주 학습효과(특정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숙달되는 현상)로 재배동 북측의 비닐을 모두 씌우고 뿌듯한 마음으로 한 주를 마쳤다.
필자는 원래 일기예보를 잘 보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농부가 되고는 매일 일기 예보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토요일 시속 40마일의 강풍이 예상된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한국 연수생 김건우군이랑 농장을 갔다.
육묘동을 짓고 난 후, 어떤 강풍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아무런 피해가 없었기에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다만 미국 방식을 접목했고, 기존 육묘동에 비해 자재도 적게 사용하고 구조도 단순하게 지은 재배동이 바람에 어떻게 견디는 지를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농장 입구에서 재배동을 바라보니, 하얀 비닐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태극기도 아니고 그린하우스의 비닐이 하늘 높이 펄럭이는 것이었다. 강풍에 비닐이 찢어졌을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린하우스로 들어가니 그야말로 난리였다.
9피트(약 1미터) 이상의 깊이로 파이프를 박고 가로대로 연결한 육묘동과 달리 40피트 간격의 메인 포스트(기둥) 중간에 6피트 깊이로 박은 기둥들이 땅에서 뽑혀 서로 부딪히고 있었고, 비닐은 마치 낙하산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다. 8동 중 6동의 비닐이 모두 파손됐다.
옥스나드 지역의 다른 농장들을 돌며 그린하우스들의 구조를 다시 살펴봤다. 그리고 옥스나드에 처음 정착한 농장에서 많은 것을 도와줬고, 16살 때부터 농사를 지은 베테랑 친구 미겔에게 전화했다. 주말이라 집에서 쉬던 미겔은 농장으로 왔고, 상태를 살펴보며 함께 보수 방안을 논의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이 시작됐다. 전면 재보수를 하기로 했다. 비닐과 파이프를 모두 걷어내고 기초부터 새로 시작했다.
미국 그린하우스는 기둥이 나사형태로 땅에 박혀 강풍에도 뽑히지 않지만, 새로 지은 재배동에 일자로 얕게 박힌 파이프는 그렇지 못했다. 또한 비닐의 측면을 완전히 고정하지 않으면 바람이 들어가 낙하산 같이 될 수밖에 없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게 된 것이다. 날림 공사와 '빨리 빨리'가 낳은 참사였다.
우리 재배동은 미국 그린하우스와 규격이 달라 나사형태의 파이프를 사용할 수 없기에 기둥마다 땅을 파서 시멘트를 부어 고정하기로 했다. 시멘트로 고정하니 파이프의 간격과 높이도 오차 없이 일직선으로 정렬됐다. 그리고 파손된 활대(아치)를 모두 버리고 새로 활대를 만들기로 하고 자재를 구입하러 갔다.
이 동네에는 자재상을 하는 이스라엘 친구 셜로미가 있다. 대부분의 자재를 이스라엘에서 수입해 오는데,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게 제공해 준다. 셜로미의 아들은 지금 이스라엘에서 군인으로 현재 하마스와의 전쟁에 참전을 하고 있다. 자재를 구입하고 있을 때 마침 전쟁터의 아들이 전화가 와서 통화를 했다.
아빠의 한국인 친구라고 하니, 자기도 친한 한국인 친구가 있다며 반가워했다. 셜로미는 급한 사정을 이해하고 즉시 자재를 트레일러에 싣고 왔다.
미국에서 이렇게 당일 그것도 한 시간 내로 자재를 배달해 주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농장에 도착해서 지게차를 운전하는 우리 직원이 답답했는지 본인이 직접 지게차로 하역을 하고 옮겨주기까지 했다.
보수 공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미겔이 농장으로 찾아왔다. 미겔은 직접 그린하우스를 만들고 보수한 오랜 경험이 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우리 직원들이 작업하는 것을 보고 미겔은 직접 시범을 보이며 직원들에게 요령을 가르쳐 줬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고수가 하는 것을 직접 보고 배우니 직원들의 스킬이 빨리 향상됐다.
보수작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시멘트로 보강하고 새로운 골조를 만든 2개 동에 비닐을 씌웠더니, 직원들은 비닐이 아주 팽팽하게 고정되어 마치 드럼 같다는 얘기를 했다.
다음주부터 시설팀은 나머지 그린하우스들을 한 동씩 순차적으로 완성하고, 육묘팀은 모종을 옮겨심기 시작한다. 예정보다 일주일 이상이 지연된 것이다. 한차례의 강풍으로 몇 달을 만든 그린하우스가 파손된 것은 큰 손실이다. 하지만, 18동을 모두 완성하기 전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이고, 그린하우스의 구조와 제작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기에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10년은 사용해야 할 재배동이 튼튼한 그린하우스로 재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농사를 지으면서 많은 수업료를 냈다. 뭔가를 배울 때는 수업료를 아까워하면 안 된다. 지금 지불하는 수업료는 앞으로 발생할 엄청난 위험 비용을 사전에 방지해 주기 때문이다. 대신 수업료를 낸 이상 제대로 배우고 발전이 있어야 한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직원들도 느낀 것이 많다. 그래서 이제는 나사 하나를 박아도 심혈을 기울이고 제대로 튼튼하게 박혔는지를 꼼꼼히 확인을 하게 된다.
직접 농사를 시작한 지 2년, 농부일기를 연재한 지 이제 1년이 됐다. 화분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하던 사람이 이제 진짜 농부가 되어 가는 것 같다.
40년간 학교만 다녔던 온실 속의 화초와 같았던 사람이 온실을 만들고 그 속에서 딸기를 키우게 됐다. 누군가가 물어왔다. '왜 농사를 짓느냐'고. 선택을 하고 시작을 했으니 계속 하는 것이고, 이제 이게 직업이 됐으니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작물은 자라는 것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열매를 맺고 결실을 보게 된다.
작물도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다. 지나간 시간은 돌릴 수가 없기에 오늘도 눈을 뜨면 농장으로 달려가고 해가 질 때까지 작물을 키우는 것이다. 훗날 오늘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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