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4) 프로 농부들의 현장 노하우를 베끼다
누가 어디서 키워도 똑같은 맛
최고의 딸기 재배 매뉴얼 개발
스마트 팜이 최고의 대안이나
대량생산 못해 아직 시기상조
8개월간 농부들 찾아 듣고 기록
시설·육묘·유통 매뉴얼 완성
'아미고'들도 읽을 수 있게 수정
그 중 표준 매뉴얼의 개발은 고품질 한국 딸기의 경쟁력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어디서 누가 키우더라도 동일한 품질의 딸기가 생산되어야 딸기의 브랜드화가 가능하고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농장의 수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면 바보라도 시키는 대로만 하면 맛있는 딸기를 재배할 수 있는 매뉴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 딸기는 맛이 좋고 인기가 높아서 동남아 미국 등 세계 전역으로 수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딸기 수출을 위해 전용기까지 띄울 정도다.
그런데 딸기를 수입하는 해외 유통업체들을 만나보면 한국 딸기 수입에 불확실성이 크다는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딸기 농장들이 규모가 작다 보니 어느 한 농장에서 필요한 물량을 다 공급하지 못하고 여러 농장의 딸기를 공동으로 포장하여 수출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같은 지역의 품종의 딸기를 하나의 수출조합이나 회사를 통해서 가져가도 맛이나 품질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의 농장은 기업이라기보다는 명품을 만드는 장인에 가깝기에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고 키우는 사람에 따라, 규모에 따라 재배 방식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를 만들던 도공들이 그 비법을 자신만이 알고 있던 것처럼 딸기 명인들 중에도 교육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는 이들도 있지만 자신의 농장에 이웃 농장 사람들이 들어와서 노하우가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 보니 고객의 입장에서는 특정 농장의 딸기를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 품종의 딸기를 사는 것이기에 살 때마다 품질에 차이가 나면 재구매를 꺼리게 된다.
어디서나 똑같은 딸기 가능할까?
공산품은 설계와 공정, 품질관리를 통해 어느 기계 어느 공장에서 나오더라도 동일한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농산물의 경우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여러 환경요인에 영향을 받으므로 완벽하게 동일한 품질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같은 해에 태어난 학생들을 같은 학교에서 같은 교육과정으로 교육해도 성적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딸기를 브랜드화하고 미국에서 대량으로 유통시키면서 우수한 한국 딸기의 경쟁력을 갖추려면 품질과 원가에서 경쟁우위를 갖추어야만 한다. 그래서 세계 어디에서 누가 길러도 동일한, 유사한 맛과 품질의 딸기를 생산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동일한 품질의 딸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환경과 재배방식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또 시스템은 확장이 가능하고 미래의 기술을 접목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러한 원칙하에
최고의 대안은 스마트 팜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지역별 작물의 풍속도가 바뀌고, 흉년이 들기도 하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요사이 뉴스를 보면 이십 년만의 한파, 십 년만의 폭설, 기상 관측이래 최고 등 기록을 깨는 이상 기후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뿐더러 이런 현상과 이상 기후로 인한 농업의 고민과 한계는 더 커질 것이다. 그렇기에 스마트 팜은 미래 농업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스마트 팜에 대한 검토
한국은 IT 강국일 뿐더러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서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이고 빠르다. 농업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스타트업들이 스마트 팜을 연구 개발하고 국가에서도 적극 지원을 해 주고 있다. 실제로 신문들에서는 스마트 팜으로 딸기를 성공적으로 재배하였다는 기사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그래 이거다. 스마트 팜!
한국에서 딸기 재배 전용 컨테이너 스마트 팜을 미국으로 싣고 온다면 미국 어느 지역에서도 동일한 품질의 딸기를 연중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여러 스마트 팜과 전문가들과의 미팅 끝에 내린 결론은 아직 스마트 팜을 이용한 딸기의 대량 생산은 시기 상조라는 판단을 내렸다. 광활한 토지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미국의 장점을 살릴 수가 없었고, 투자비용의 회수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수지분석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핸드폰의 경우 초기에는 국내에서 100만원을 호가하고 요금도 비싸 사용자가 극소수에 불과했다. 당시 핸드폰은 부의 상징이어서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면서 "어! 난데.."라고 폼을 잡는 '난데족'이라는 용어까지 있었다.
그러나 PCS폰이 나오면서 대중화가 되어 공짜폰들이 등장하고,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없고이제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스마트 팜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스마트 팜이 고비용이고 공급능력과 기술에서도 한계가 있지만 곧 스마트폰처럼 농업에 필수적인 생산 시설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스마트 팜에 대해서는 업체와 전문가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동향을 파악하고 준비하는 것으로 정했다.
딸기 재배 매뉴얼을 만든다고 하였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딸기 재배에 대해서는 교과서와 동영상 등 수많은 자료가 이미 나와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필자는 실제 농장에서 가장 딸기를 맛있게 잘 키우는 분들의 노하우를 담아 생산 매뉴얼처럼 재배 매뉴얼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스마트 팜과 딸기 재배의 전문가인 주종문 박사와 자문계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필자가 주박사에게 요청한 것은 금실 딸기를 개발한 윤혜숙 박사와 진주에서 딸기를 재배하고 있는 김진상, 정만영, 노대현 농가들을 직접 방문하여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재배하는 것을 실제로 지켜본 뒤 최고의 재배법을 찾아 간단하고 쉽게 정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학술적인 용어나 어려운 말, 그리고 '적절한', '최적의', '필요한 시기에', '일정량' 등 모호한 표현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확한 용어로 단계별, 시기별로 활용할 작업지시서가 필요했다.
당시에는 이러한 요청이 아주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이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이상적인 생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연애 매뉴얼'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나 똑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뭐든 기본적인 것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 수정을 하거나 보완을 하여 나가야 일이 한 단계씩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주박사는 진주에 방문하여 농가들과의 인터뷰를 하고 실제 농사 짓는 모습들을 보고 정리한 내용들을 이메일로 보내주고, 필자는 그것을 검토해 피드백을 답신하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해하고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했는데, 당시 필자는 딸기농사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매뉴얼 검토의 최고 적격자였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한 지 8개월 만에 드디어 금실딸기 미국 재배 매뉴얼이 완성되었다. 이 매뉴얼에는 시설에서부터 육묘, 재배, 수확 및 포장/유통에 걸친 전 과정의 표준 작업절차들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보니 이 매뉴얼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매뉴얼을 미국의 실정에 맞게 수정하고 우리의 '아미고(Amigo)'들이 읽을 수 있게 스패니시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ㆍ경영학박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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