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3) 병아리 10마리서 16조원 신화, 딸기로 도전
배양묘 딸기 인큐베이터서 양육
모종 자라는 동안 사업계획 수립
가장 먼저 종자보호권 등록 추진
표준 재배 매뉴얼ㆍ농장 선정도
자료 번역ㆍ공증ㆍ보완만 2년
논문쓰는 박사지만 농사엔 무지
품종 심사 통과…20년간 보호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온 조직배양묘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190마일 이상 떨이진 미국 육묘업체(Nursery)의 실험실 인큐베이터에 자리를 잡았다.
이 회사가 관리하는 딸기 품종의 수는 약 80종에 달하며, 매년 새로운 조직배양묘를 만들고 있었다.
딸기는 어미묘에서 러너(자묘)를 받아 키우는 육묘과정을 거치고 육묘해서 잘 키운 모종으로 딸기를 수확하고 또 거기서 자묘를 받아 그 다음해에 육묘를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래서 딸기 농사는 육묘기간과 재배기간을 합쳐서 15개월 농사라고 한다.
사람의 경우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라는 말이 있지만, 딸기의 경우는 육묘 과정에서 잘 자란 튼실한 녀석에서 크고 싱싱한 열매가 맺히게 된다. 육묘가 딸기 농사의 80~90%라고 하는 이유다.
한국에서 딸기를 재배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모두 자체 육묘를 하고 계시고 그 과정에서 애지중지 키우시는 열정은 육아 못지 않다.
딸기의 모종은 해를 거듭하면서 외부 환경에 노출되고 병충해도 입게 되어 세대가 내려갈수록 묘의 특성이 약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5세대(5th Generation) 정도만 키우고 새로운 묘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의 경우 농업기술원이나 종묘업체 등에서 새로운 무균 조직배양묘들을 만들어 농가에 공급을 하고 있다. 미국의 육묘업체도 마찬가지로 향후 사용할 조직배양묘들을 매년 만들고 있었다. 이런 묘들이 가득한 실험실 인큐베이터에 금실을 보러갈 때는 처음 미국에 이민와서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많은 다양한 학생들 속에서 내 아이를 찾는 마음과 같았다. 외국 아이들 틈에 끼어 있는 내 아이기 왠지 작고 약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저 속에서 잘 지내는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지에 대한 궁금함과 기대를 가지면서 말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어린이가 병아리 두 마리를 사서 집에 가면서 이 병아리들이 자라서 닭이 되고 닭이 다시 알을 낳고 알을 부화해서 더 많은 닭을 키우고, 그렇게 커지면 송아지를 사서 어미소로 키워 목장을 만든다는 상상을 하는 이야기는 다들 들어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하림의 김홍국 회장은 중학교 때 할머니께서 사주신 병아리 10마리를 잘 키워서 매출액 16조원의 그룹을 만들었다고 한다. 필자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미국으로 가지고 온 금실 배양묘 10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향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사업가는 해야 하는 이유가 99가지이고 하면 안 되는 이유가 1가지인데, 그 1가지 때문에 사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또 반대로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99가지이고 해야 하는 이유가 1가지인데 그 1가지 때문에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도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1가지가 이유가 있으면 나머지 99개는 해결하고 극복하여야 하는 것이다. 필자도 40년을 학교만 다닌 사람이지만 한국 딸기가 경쟁력이 있고, 시장이 존재하므로 어려움은 있어도 도전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미국 딸기 사업을 위한 사업 계획을 수립했다.
딸기 사업의 3가지 핵심 과제
조직배양묘는 무사히 미국으로 와서 육묘업체에 자리를 잡았고, 이 묘들이 자라서 번식을 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모종이 자라는 시간은 내게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미국에서 딸기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여야 하는 시간이었다. 마치 이제 막 아이가 태어나 분만실에 있는데, 옷도 사고, 아기방도 꾸미고, 인기가 많은 유치원을 미리 알아보고 예약하는 것처럼 할 일이 많았다.
모종은 이제 육묘업체에서 잘 키워줄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고, 미국에서 딸기 농사를 어떻게 실현하고 확장해 나갈 것인가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모든 일에서 다 뛰어날 수 없고, 모든 일을 스스로 다 잘해낼 수는 없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그 분야의 뛰어난 선수들과 협력하여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경쟁력이다. 그래서 필자는 기본도 없는 자신이 직접 스스로 시작하는 것보다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받고 협력을 하여 함께 성장하며 공유가치를 창출하는(Creating Shared Value) '씨앤지(C&G: Connection and Growth)'를 사업의 원칙으로 삼았다. 이를 위하여 당시 가장 중요한 3가지 핵심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첫째는 금실 딸기의 미국 종자보호권(PVP, Plant Variety Protection)을 등록하여 미국에서 권리를 보장받는다. 둘째는 한국 딸기 미국에서 가장 잘 키울 수 있는 시설(그린하우스, 고설베드, 관수시설 등)과 표준 재배 매뉴얼을 작성한다. 셋째는 한국 딸기가 자라기에 적합한 기후에 시장접근성이 좋은 지역을 선정하고 그 지역에서 파트너로 딸기를 키울 수 있는 농장을 찾는다.
종자보호권 등록
국내에서 실용신안 특허를 몇 번 출원해서 등록해봤지만, 종자보호권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상태였다. 종자특허와 종자보호권의 차이도 모르는 수준에서 라센의 리즈 부사장이 소개해 준 종자특허 전문 변리사 마크를 만났다. 몇 차례 전화 통화로 상담을 하고 팬데믹 중에 샌프란시스코의 호텔 로비에서 마스크를 한 채 마크와 미팅을 했다. 마크는 종자보호권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고 여러 조건들을 검토한 후 종자보호권 등록이 가능하겠다면서 본 건을 수임하기로 하였다.
종자보호권은 출원 자체가 많지 않고, 해외의 품종이 등록된 것은 일본 딸기 요츠보시(Yotsuboshi)가 유일했다. 당시는 팬데믹 중이라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에 대해서 전혀 예상을 할 수 없었기에 일반적인 미국의 변리사들의 시간당 수임료가 아닌 등록된 때까지 하자는 제안을 했다. 본 건을 수입한 다음날부터 엄청난 자료요청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금실을 개발하고 특허를 낸 경남농업기술원에서 필요한 서류와 자료들을 받아서 번역과 공증을 하여 미국으로 보내고, 추가 자료가 필요하면 다시 보완해서 보내는 과정이 1년 이상 지속됐다.
한국에서 발급되는 자료들과 기술적인 데이터들은 거의 한글로 되어 있어 모두 영어로 바꾸어야만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요구하는 서류와 양식을 만들기 위해서 국립종자원, 농림부, 농업기술원, 실용화재단 등에 수없이 문의하는 과정들은 끝이 나지 않았다. 관련용어들은 한글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여도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어떤 서류들을 공인된 번역사에게 번역을 하여 공증을 해서 보내야 하는데, 그 경우 정확하게 번역이 되었는지를 필자가 직접 감수하여야만 했다.
논문쓰고 연구하는 직업을 가졌었고 대학원 때는 부업으로 프리랜서 번역사도 좀 했었지만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니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이 없었다. 전혀 새로운 분야이고 경험이 없는 필자지만, 미국 변리사보다는 한국말을 잘했고, 한국분들보다는 미국의 사정을 잘 알았고, 전문 번역사들보다는 농사와 딸기를 조금 더 알았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수많은 서류들을 번역하고 이메일, 페덱스로 보내는 과정들을 반복한 지 2년여 만에 금실이 PVP심사에 통과하여 등록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20년간 미국에서 품종을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마무리된 것이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 농부ㆍ경영학박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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