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1) 키우기 힘든 금실, 너로 정했다
도의원ㆍIT 대표와 식사 자리
딸기맛 불평하던중 의기 투합
H마트도 "우리가 팔아주겠다"
달고 속 꽉찬 품종 '금실' 선택
모종 반입금지에 배양묘 선택
미최대 육묘업체 찾아가 설득
2019년 8월13년 라구나 비치에서 미국을 방문한 경상남도의회 강민국 의원(현 국민의힘 진주을 국회의원)과 필자가 재직중인 IT기업 와이즈와이어즈의 신성우 대표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자리였다.
'미국 딸기는 왜 맛이 없지?'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강민국 의원은 진주에서 좋은 품종을 개발하였다면서 미국에서 재배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신대표는 딸기 사업에 투자를 할 테니 한번 해 보자며 의지를 보였다. 그 자리에서 H마트의 권태형 전무(당시 상무)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딸기를 미국에서 키우면 어떻겠느냐고' 문의했다.
권전무는 한국 딸기를 항공으로 수입해서 판매하였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미국에서 한국 딸기를 재배하여 한국과 같은 품질이 나온다면 H 마트에서 판매를 해 주겠다고 했다.
평소에 농업이 미래 산업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에 우수한 품종이 있고 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는데 이 사업을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미국의 딸기 농장들을 방문하여 재배 현황을 살펴보니 미국 딸기 산업은 상상 이상의 엄청난 규모였다. 미국은 딸기 재배 면적이 세계 2위(1위는 스페인)이며 생산량은 세계 1위인 딸기 강국이다.
미국에서 농사를 짓는 한인들은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멕시코 등에서 얼마나 많은 딸기가 생산되고 있는데, 생뚱맞게 여기에서 딸기농사냐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필자는 그 반응이 오히려 시장이 크고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시장이 크게 존재하거나 시장을 만들 수 있는 곳에서 하여야 하고, 해당 산업이 활성화된 곳은 인프라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곧바로 한인 마트와 미국 마트에서 판매하는 거의 모든 딸기들을 사서 먹어보고 맛과 당도를 체크했다. 한국 딸기의 우수성이 더욱 확실해졌다. 한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이 서면 곧 바로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금실'과의 만남
강 의원이 추천한 금실 딸기는 당도와 경도 모든 면에서 우수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80% 이상 농가들이 재배하고 있는 설향에 비하여 재배가 까다롭고 어려운 품종이다. 실제 농사를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에게도 딸기 농사, 특히 금실은 가장 키우기 어려운 품종으로 꼽히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농사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1도 없는 사람이지만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일은 경쟁력이 없고, 어려워서 안 하는 일을 하였을 때 기회가 온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금실로 품종을 정하고 모종을 미국으로 가지고 오는 과정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반 제품을 수출하듯이 컨테이너에 넣어서 미국으로 보내고 그 모종을 미국 농장들에게 공급해 위탁 재배하고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포장해 팔면 되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다.
이 순진한 생각 뒤에는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금실을 개발한 경상남도 농업기술원을 방문하여 개발자 윤혜숙 박사 등과 금실 딸기의 미국 수입에 대한 미팅을 했다. 다들 미국 진출의 의미와 도전을 높게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큰 장벽을 만났다. 딸기 모종과 같이 뿌리가 있고, 흙이나 인공상토 등이 묻어 있는 식물은 미국으로 반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씨앗의 경우 수입은 가능하나 딸기의 경우 발아를 하여 모종으로 키우면 정상적인 품종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방법은 정식으로 수입허가를 받고, 조직 배양묘를 가지고 들어와 육묘를 하는 것뿐이었다. 윤박사는 일단 미국에서 금실 딸기 조직배양묘를 키워서 증식해 줄 육묘업체를 먼저 찾아보라고 하였다.
일은 잘하는 사람과 해야
경남농기원에 미국에서 금실딸기를 키워줄 육묘업체를 찾아서 바로 돌아오겠다고 큰소리를 치고는 다시 미국으로 왔지만 사실 막막했다. 육묘업체를 아는 곳도 없고 어느 업체가 좋은지를 판단할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여기저기 문의한 결과, 북가주 레딩에 있는 라센 캐년 너서리가 딸기 육묘로는 최고의 업체였다. 홈페이지에서 이메일 주소를 찾아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한국 딸기를 미국으로 가지고 올테니 파트너가 되어서 종자를 키워달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답이 오지 않았다. 수차례 회사로 전화를 걸었지만 경영진이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통화도 할 수 없었다. 딸기 육묘 연매출이 3억 달러에 달하는 회사에서 듣도 보도 못한 한국 사람의 허황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안 만나주면 찾아가면 된다. 그냥 있으면 확률은 0이고 찾아가서 부딪치면 가능성은 0.1%라도 생기게 마련이다. 비서에게 내일 아침 비행기로 올라가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얼마 안 있으니, 당시 라센 캐년 너서리의 부사장 리즈 폰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말 내일 올 거냐며 할 얘기가 있으면 전화로 하라고 했다. 이미 비행기표를 끊었으니 내일 만나서 얘기를 하자고 했다.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렌터카로 4시간 반을 달려 라센에 도착했다.
라센 캐년 너서리의 부사장인 리즈 폰세는 설립자의 딸로서 변호사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자개보석함을 선물하면서 너의 이름 리즈(엘리자베스의 애칭)는 영국 여왕의 이름이라 한국의 옛 왕실에서 쓰던 것과 같은 자개 보석함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왜 한국 딸기를 미국에서 키우려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너희가 왜 우리와 함께해야하는지 등 진심을 담아 설득했다. 리즈는 한번 해 보자면서 미국 대학과 연계하는 방안, 수입허가를 받는 절차, 육묘 프로세스 등을 장시간 알려줬다. 회사 구석구석을 안내해줬는데 그 규모를 보고 나서 왜 이 회사가 내 이메일과 연락을 무시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일은 편한 상대, 쉬운 상대,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과 해야한다는 나의 지론상 제대로 파트너를 찾은 것이다.
이제 육묘업체를 찾았으니, 앞으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 일만 남았다고 잔뜩 기대에 차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이 역시 착각이었다. 육묘업체를 만난 건 가장 쉬운 일 중의 하나였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테스트 업계 1위 기업인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 왔다가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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