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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27) 바람과 폭염, 7월 딸기밭은 고행

'축복의 땅' 가주도 이상 기후
올해 눈보라·폭우 등에 타격
최근 며칠 무더위에 작업 차질

한국서 온 제작팀 귀국 일정에
온실 마무리는 현지 인력의 몫
인재 가르치면 떠나는 악순환
변화 대응할 역량 축적이 살길

그린하우스 완공이 강풍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 지붕에 비닐을 씌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린하우스 완공이 강풍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 지붕에 비닐을 씌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국서 온 온실제작팀의 귀국으로 그린하우스 제작에 투입되는 앙헬(앞)이 동료들에게 모종 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서 온 온실제작팀의 귀국으로 그린하우스 제작에 투입되는 앙헬(앞)이 동료들에게 모종 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날씨가 복병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는 이제 어느 특정 국가의 일이 아니라 전세계가 예외없이 겪게 될 변화이자 위기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농사를 짓고 잇는 캘리포니아는 연중 온화한 날씨로 축복받은 지역으로 꼽히고 있었다. 그러나 올 초 30년 만에 눈보라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등 이상기후가 지속되고 있다. 노지의 딸기들이 이상기후로 타격을 입는 것을 보고 시설재배의 필요성을 더욱 실감했다.  
 
그린하우스 공사가 시작되던 6월 중순에서 7월 중순까지는 예년과는 다르게 시원한 날씨가 지속돼 작업에 도움을 주었으나, 지난주부터 폭염으로 작업하는 팀원들이 모두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린하우스의 프레임을 완성하고 비닐을 씌우는 작업은 3일이면 끝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바람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린하우스에 비닐을 씌우는 작업은 바람이 불면 작업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바람이 불지 않는 아침 일찍 작업을 시작하는데 최근 며칠 동안 아침에 강풍이 불어 작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한국에서 온 전문가들은 귀국 일정을 일주일 연기하면서까지 정해진 시간 내에 공사를 마무리하려 애썼지만, 수시로 부는 바람과 무더위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현지의 인력들은 한국식 그린하우스 제작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책임감이 강한 분들이어서 날이 갈수록 걱정과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단기간 컨설팅 차원에서 미국을 방문했고 한국에 본업이 있는 분들이라 더 이상 귀국을 미룰 수가 없는 상태다. 온실팀은 회의 끝에 남은 3일 동안 난이도가 높은 작업을 주로 수행하고, 후속 작업은 현지 인력이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초작업을 해 주고 떠나기로 했다.  
 
내부역량 강화의 기회
 
현재 닥터문 농장의 인력들은 육묘에 집중되어 있다. 그린하우스 공사 초기에는 직원들의 상당수가 그린하우스 공사에 동원되었으나, 모종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육묘팀은 육묘를 전담시켰다. 익숙하지 않은 그린하우스 공사보다는 자신들의 전문분야이고 앞으로 계속 해야 할 육묘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린하우스 공사는 멕시칸 파트타임 인력을 활용했는데, 일을 가르쳐 익숙해질 때쯤이면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성실하고 감각이 있는 친구들을 붙잡으려고 노력도 해 보았지만 모두가 내 맘 같지는 않았다. 수시로 인력이 교체되는 상황 속에서 한국인 전문가들은 힘들게 작업을 진행시켜왔다.
 
이제 한국 전문가들이 떠나면 그린하우스의 완공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자 과제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최고의 전문가인 박병욱 이사가 있고, 그동안 한국 전문가들이 중요한 작업들은 거의 완성해 놓은 상태다. 퇴근 전 농장의 멕시칸 직원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의 전문가들이 떠나고 이제 우리가 그린하우스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계속해서 그린하우스를 만들어야 한다.  
 
육묘를 하고 딸기를 생산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이 딸기를 키울 그린하우스가 없으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이 우리 회사를 함께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이 과정들을 모두 알고 직접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다음날부터 앙헬과 두 명의 직원은 그린하우스 제작에 투입되어 함께 일하며 배우고 호세와 다른 직원은 육묘를 차질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그린하우스의 완공은 지연되는 상황이나 이로 인하여 현지 직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그린하우스를 제작하고 노하우를 익힐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비즈니스는 모든 것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파트너와 연계하고 외부의 자원을 잘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핵심 업무들에 대한 역량은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
 
빠른 학습과 변화대응
 
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어느 국제 학술대회에서 21세기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이 있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말은 변화에 대응하고 빠르게 배우는 국가가 경쟁력을 가진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시대이다. 그렇기에 남들이 가지지 않은 정보로 인하여 추가적이거나 숨은 이익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보유하고 있는 자원과 역량은 차이가 나지만 모두가 비슷한 환경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사도 예외는 아니다. 지구 온난화와 첨단 기술의 발달로 인해 농사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스마트 팜 등 실내 농장이 확대되고 있고, 다양한 신품종과 새로운 재배 방식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 개에 100불짜리 명품 멜론이 나오고 시설재배를 통하여 계절에 상관없이 상품을 공급하는 시대가 됐다.
 
한국의 우수한 품종을 미국으로 들여왔지만, 좋은 품종만으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최적의 시설을 갖추고, 현지 환경에 적합한 생산 방식과 시스템을 개발하고, 효율적인 물류와 유통 채널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의 니즈와 시장 환경의 변화를 빨리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해야 한다.
 
일은 결국 사람의 몫
 
미국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힘들고 많이 고민한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것이다. 백지상태에서 농사를 시작하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귀인들의 도움이었다. 그리고 신기하리만큼 운이 좋게도 일이 진행되는 과정마다 필요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인재를 키우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지 인력의 업무 능력이나 태도가 한국과는 너무도 다르기에 한계를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는 필자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다른 민족이랑 일을 하는 분들이 모두 경험하고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농사를 짓고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가르쳐도 되지 않고 가르쳐 놓으면 떠나는 상황을 계속 겪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얻어나가고 있다.
 
단점만 보면 한없이 부족하지만 장점을 잘 활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모두가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다. 그 친구들도 필자도 똑같이 겪어 보지 않았던 사람과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변화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기회를 찾을 것이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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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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