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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25) 무모했던 딸기농사, 곧 1만배 성장 결실

옥스나드 옮긴 모종 240주
10월 10만주까지 증식 기대
그린하우스 완공도 2주남아

농부 3년, 최고 수확은 사람
중앙일보 읽고 한국서 방문
코스트코 입점업체 대표 만나
꽃피워 열매맺는 때 꼭 보답

2020년 7월28일 미국행 비행기에 실렸던 금실딸기 조직배양묘 10주(왼쪽)를 북가주 라센에서 240주로 증식했고 현재 옥스나드에서는 1만5000주로 폭풍 성장했다.

2020년 7월28일 미국행 비행기에 실렸던 금실딸기 조직배양묘 10주(왼쪽)를 북가주 라센에서 240주로 증식했고 현재 옥스나드에서는 1만5000주로 폭풍 성장했다.

금실딸기 조직배양묘

금실딸기 조직배양묘

미국에서 한국 딸기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지 4년째, 직접 딸기 농사를 시작한 지 2년째, 아직 수입은 없지만 소중한 자산들이 늘어나고 있다. 10주의 조직배양묘를 가지고 와서 증식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10주로 십만주, 백만주로 모종을 늘여 미국 시장에 한국 딸기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은 허무맹랑한 꿈과 같았다.
 
수입과정에서의 많은 난관들을 극복하고 사막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딸기의 본산인 옥스나드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은 불확실과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아직 딸기를 정식으로 출하를 하여 매출을 올리지도 못한 상태이지만, 막연했던 목표가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지고 있다.  
 
고맙게 잘 자라주는 모종들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는 옛말이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이 잘 먹고 잘 자라 주는 것만큼 고마운 것이 없었고, 농부의 입장에서 모종이 건강하게 자라 번식하는 것이 너무도 고마웠다. 240주를 가지고 옥스나드로 넘어온 지 1년여 만에 이제 모종의 수가 1만5000 주를 넘어서고, 이 모종들을 증식(모종의 수를 늘이는 번식과정)하기 위해 새로운 그린하우스를 짓고 있다.  
 


산술적으로 이 모종들이 2주에 하나씩 러너를 생산하면 재배를 시작하는 10월에는 10만 주에 가까운 모종이 생산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숫자상의 기대일 뿐이지만 새로 짓고 있는 모종동은 약 1만2000주의 어미료를 심어서 19만주까지 모종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렇지만 시간상으로나 경험상으로 이를 모두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큰 변수만 생기지 않는다면 올해 캘리포니아에서 판매할 딸기의 생산과 내년도 육묘에 필요한 모종을 확보하는 것은 가능한 단계까지 왔다.
 
올해 LA 인근의 날씨는 이상하리만큼 시원하여 육묘에 걱정을 했지만, 그린하우스 안의 온도는 화씨 100도 이상 올라가 러너가 쑥쑥 나와주고 있다.  
 
일찍 나온 러너들은 어미묘로 쓸 수 있을 만큼 자라 새로 어미묘 포트로 옮겨 자식을 생산할 준비를 하고 있다. 모종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육묘를 담당하는 앙헬과 호세의 손길도 바빠졌고, 이 친구들도 신이 났다. 직장에서 일이 없으면 편할 것 같지만, 일이 잘 되어 바빠지는 것이 더 신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 잠시지만 육묘를 배워 온 앙헬은 더욱 자신감이 붙어서 정식(딸기 모종을 재배를 위해 포트에 심는 것)할 때까지 10만 주를 만들 수 있다며 큰소리를 친다.
 
매일 시험 점수를 보는 마음으로 혼자 속으로 모종 개수를 세고 또 세어온 필자도 더없이 기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사람의 향기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지만 여기까지 온 데에는 수많은 귀인들의 도움이 있었다. 금실이라는 좋은 품종을 개발해서 라이선스를 제공해 준 경남농업기술원과 윤혜숙박사, 수입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라센의 리즈, 한국에서 육묘를 가르쳐 주고 딸기 농사를 지금까지도 자문해 주는 십만주 정만영 형님과 진주의 딸기 명인 노대현 사장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이 되어줬다.
 
그리고 240주를 달랑 들고 옥스나드로 넘어왔을 때 그린하우스를 제공해 주고 땀을 흘리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윤수한 형님은 아직도 아낌없는 도움을 주신다.  
 
이제 모종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위한 그린하우스의 공정률이 50%를 넘어섰다. 물받이와 천창을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며, 이달 말에는 완공을 하여 모종을 옮길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자재를 실어와 한 달 반 만에 12동의 그린하우스를 짓는 작업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는 것도 박병욱 이사와 한국에서 온 전문가 신해동과 이현수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기에 가능했다.  
 
여기서 모종을 키우면 이제 재배를 위한 그린하우스를 다시 지어야 하고, 그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시마의 켄 정 사장님께서는 자신의 사업에 필요한 공간을 기꺼이 내어 주시며 꼭 성공하라는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그린 하우스의 10%만 채운 상태에서 혼자 땀을 흘리며 외로운 시간을 보내다 이제는 많은 분들과 함께 신나게 일을 하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혜택이다.  
 
교수 시절 기업체 평가나 자문을 가 보면 회사의 재무제표보다 회사 사람들의 표정과 자세에서 그 기업이 잘 되는지 안 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AI와 로봇 등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는 같지만, 아직도 모든 일에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매일 현장을 가면 망치소리와 드릴 소리가 생기를 북돋운다. 힘들지만 함께 땀을 흘리며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사람의 향기가 농장 가득 퍼지고 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
 
중앙일보 연재를 보고 연락이 왔던 한국 프레쉬벨의 김근화 대표가 지난 7월8일 LA를 방문했다. 대학생 창업으로 시작한 프레쉬벨은 한국 농가에서 농산물을 공급받아 착즙쥬스를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다. 젊은 두 명의 대표는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 성과를 만들어 가고 있다. 미국의 코스트코에 1000:3의 경쟁률을 뚫고 입점해 수출이 급증하고 추가로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고 했다. 전직 벤처학과의 교수로서 너무 기특했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 한국 딸기 사업에 관심이 커서 지난 5월 필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진주까지 필자를 만나러 왔던 사람이다. 김 대표는 LA를 세 번째 왔다는데, 일과 마트 외에는 아무 데도 가 본적이 없다고 했다. 잠시 할리우드를 구경하고 마트를 돌면서 참 열심히 사는 청년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전하는 자세였다.  
 
세상에서 사람이 하는 일에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누군가는 도전을 하고 누군가는 아예 엄두도 못 내는 것이 성공을 가르는 차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도전을 하면 0.001%의 확률이라도 생기고, 포기하면 확률은 0이다. 김 대표와 우리가 어떤 사업을 함께하겠다는 얘기는 않았다. 서로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배우는 기회를 가진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늘도 딸기는 자란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고 때가 있는 것 같다. 딸기를 키우는 과정에도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얻었다. 딸기가 러너를 생산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도 다 때가 있다. 그 과정을 생략하고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 같다. 무모하게 도전했고 많은 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소중한 자산들을 축적해 왔다.
 
이제 미국에서 한국 딸기의 꿈은 한 사람의 꿈이 아니다. 많은 분들의 땀과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꼭 성공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백배가 되고 있다. 갈 길은 멀고 해는 지는 것 같지만, 해는 내일 아침에 다시 뜬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것이다. 오늘도 딸기는 자란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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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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