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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12) 농부라 쓰고 맥가이버라 읽는다

최고 시설 갖춘 온실 찾았지만 온도 유지 어려워 추위와 전쟁
가스 난로 세우니 습도가 문제
안개분무기·핫스팟 원격 통제, 스마트팜과 유사한 시설 완비
짓고나니 불법건축 철거 명령, 전기 시설 온실은 허가 받아야
철거후 새로 다시 2개동 제작, 허탈해도 쓸모없는 경험 없어

1. 기존의 마리화나 재배 온실 철거 장면 2. 트랙터를 이용한 땅 평탄화 작업 3. 온실 프레임 설치 4. 다 지어진 온실 위 비닐을 덮고 있다.

1. 기존의 마리화나 재배 온실 철거 장면 2. 트랙터를 이용한 땅 평탄화 작업 3. 온실 프레임 설치 4. 다 지어진 온실 위 비닐을 덮고 있다.

열악한 환경, 맥가이버 되다
 
샌버나디노에 자리를 잡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잘 지어진 그린하우스가 7동이 있어 그린하우스 제작에 소요되는 초기 투자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시설들은 예전에 중국인들이 마리화나를 키우던 곳이었기에 시설에 대한 의심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그린하우스를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마리화나 재배였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문도 달려있고 전면과 천정에 환기 팬(Fan)과 후면에 스왐프쿨러(Swamp Cooler.물을 이용한 냉방기구), 내부에 개폐식 차광도 설치된 훌륭한 그린하우스였다.
 
그런데 겨울이 되니 내부온도가 잡히지 않았다. 꼼꼼히 살펴보니 곳곳에 구멍이 나 찬바람이 들어오고,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사막 기후에서 한 겹의 비닐로는 내부 온도를 유지하지 못했다. 비닐을 덧대고 비닐하우스 전용 테이프로 수선을 했지만 온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내부온도를 육묘에 적합한 섭씨 25도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연중 포근하다 생각했던 남가주에서 추위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난방을 위해 전기 라디에이터(Radiator Heater)를 여러 개 구입했는데, 전력소모가 커서 전기가 자꾸 다운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봤던 가스 난로와 디젤 온풍기를 설치했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와인이나 차를 마실 때 곁에 있던 가스 난로를 설치하니 그 공간이 낯설지 않고 편안함을 주는 것 같았다.
 
육묘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온도와 습도 유지다. 그 지역은 평균 습도가 2%로 아주 건조한 사막이었다. 그러니 인위적으로 습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성실한 멕시칸 직원 오스카와 그의 아들 오스카 주니어에게 시간을 맞춰 수시로 물을 뿌리라고 했지만 대기 중의 습도는 그다지 높아지지 않았고 사람이 없는 야간의 습도와 온도 관리도 문제였다. 원격으로 조정할 수 있는 습도기와 야외 가든에 사용하는 안개 분무기(Mist Cooling System)도 설치했다.
 


인터넷이 필요했지만 사막 한가운데라 설치가 용이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모바일 핫스팟을 구입해서 비닐하우스 안에 가져다 놓았다. 핸드폰이 되는 곳이니 데이터로 통신은 가능했다. 통신이 되니 집에서도 온도와 습도를 확인할 수 있었고, 전기로 연결되는 모든 기구들은 원격으로 통제가 가능했다. 이 모든 것을 직접 구입하여 만들고 설치했으니, DIY(Do It Yourself)로 스마트팜과 비슷한 시설을 만든 것이었다. 농부는 뭐든 직접 만들 수 있는 맥가이버가 되어야 함을 실감했다. 이때부터 핸드폰으로 농장의 모습을 살피고 온도와 습도를 확인하고 히터와 스프링클러 등을 작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온도와 습도가 정상범위를 벗어나면 알람이 울리게 설정을 해 놓았는데, 밤마다 알람이 수도 없이 울려 대서 잠을 못 자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린하우스를 철거하다
 
하루는 농장에 가니 농장사장님께서 지역 경찰관과 그린하우스 시설을 살펴보고 있었다. 도둑이 들었나 하는 생각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그린하우스가 불법 건축물이라서 철거를 하라는 것이었다. 일반 터널식 그린하우스는 상관없지만 전기 시설이 되어 있는 그린하우스는 허가를 받아 지어야 하는데, 이 그린 하우스들은 쉽게 말해 불법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이곳에 오기 수년 전에 만들어서 잘 사용했던 그린하우스가 왜 한 달 이상을 꼬박 고생해 시설을 다 하고 나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당시는 그 농장에서 계속 딸기 농사를 지을 계획이었고, 그 농장에 추가로 그린 하우스도 만들고 주변의 땅도 매입해서 확장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농사에 경험이 없었고 환경과 인프라가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지 못했던 시절이라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광활한 땅들이 한국 딸기 타운으로 만들기에 적합하게 보였다. 실제로 그 주변의 토지 매물들도 알아보면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철거비용을 다 지불하고 철거에서 나오는 자재들은 새 그린하우스를 만드는데 사용하기로 했다. 그 동네 농장 시설을 하는 중국인들이 철거를 했는데, 말 그대로 그냥 부숴버리는 것이었다. 막상 철거를 하고 보니 자재들이 노후 되고 파손된 것들이어서 쓸 수 있는 게 없었다.  
 
"Greenhouse is falling down"
 
한국의 딸기 멘토이자 직접 그린하우스를 지은 진주의 노대현 사장에게 자문을 구했고, 노 사장은 그린하우스 설계 도면을 설계 사무소에 의뢰해서 작성해 보내 주었다. 밤새 고민하며 새로운 그린 하우스를 구상하던 새벽, 전화벨이 울렸다. 농장 직원 오스카였다. "Greenhouse is falling down."  
 
이게 무슨 소리인가? 런던 브릿지도 아니고 그린하우스가 왜 무너진다는 거지? 급히 옷을 입고 농장으로 향했다. 사막의 강풍에 그린하우스가 무너진 것이다. 농장 사장님도 새벽에 나오셔서 응급조치를 하고 계셨다. 새로 그린 하우스를 지을 때까지는 이 그린하우스가 버텨 줘야 했기에 2X4 우드(가로 2인치 세로 4인치의 건축용 목재)를 구해 땅에 박아 지지대를 만들었다. 오전 내내 작업을 하여 강풍에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그린하우스를 보수했다. 무한 긍정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에 이 사건 또한 새로운 그린하우스 제작에 인사이트를 주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비, 바람, 추위에 견디고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그린하우스 설치에 속도를 내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새로 그린하우스를 만들다
 
기존의 그린하우스는 이 지역의 환경에서 딸기를 키우기에 충분하지 않음을 경험으로 알았기에 농장의 빈 땅을 정리하고 허가를 받아 완벽한 그린하우스를 만들기로 했다. 한국의 그린하우스의 스펙을 가지고 이 지역 자재상들을 돌아다녔지만, 한국과 동일한 규격의 자재를 구할 수가 없었다. 농장 사장님과 상의하여 최대한 유사한 자재를 구입하여 기존 그린하우스를 만든 중국인에게 제작을 맡기기로 했다.
 
우선 그린하우스를 지을 땅을 평탄화하는 작업을 미국인 직원 캐리에게 시켰는데, 아무리 작업을 해도 땅이 평평해 지지 않았다. 급한 성격에 지켜보다 못해 내리라 하고는 직접 트랙터를 몰고 작업을 해 보았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며칠을 트랙터로 땅을 밀고 다져서 어느 정도 평평한 수준을 맞추고 파이프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바닥을 파서 콘크리트로 기둥을 고정시키고 파이프 연결하여 프레임을 만드는데, 이 또한 수평이 맞지 않았다. 레이저를 쏴서 보여주어도 그 정도면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나하나 일일이 지적하고 수정을 하면서 그린 하우스 프레임을 한 동을 완성할 즈음 중국인들이 나오지 않았다. 멀고 힘들어서 더 이상 일을 못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더 나은 다른 일자리가 생긴 것 같았다.
 
대안으로 그 동네에서 뭐든 잘 만든다는 미국인 '컨추리'에게 나머지 한 동을 맡기기로 했다. 컨추리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친구였지만, 고집도 셌다. 이 친구는 중국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린하우스를 제작하기에 두 동이 만든 방식이 달랐다.  
 
그런데 이 친구 또한 정확도는 떨어졌다. 프레임을 정확히 수평을 맞추라고 하니 중국인이 만든 것도 마찬가지라며 별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컨추리 너는 미국인이고 백인인데 중국인보다 나아야 하지 않느냐, 이미 만든 건 Made in China이고 네가 만드는 것은 Made in USA인데 같은 수준이어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하였다. 컨추리는 우쭐해 하며 재작업을 했고, 한국에서는 일주일이면 만든다는 그린하우스를 몇 달이 걸려서 두 동을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지금 보면 아주 엉성한 수준의 그린하우스이고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몇 달을 고생해 처음으로 직접 만든 그린하우스였다. 결국 그 그린하우스에서는 딸기를 한 주도 키우지 못하고 옥스나드로 장소를 옮기게 된다. 하지만 앞으로 수백, 수천 동의 그린하우스를 짓기 위한 연습을 제대로 한 것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으니까.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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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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