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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10) 눈물을 머금고 꽃대를 꺾다

2인 18만원 고가 딸기뷔페 성업
사과 제치고 판매량 1위 과일로

18세기 스파이가 발견한 딸기
식용 품종 개발까지 50년 소요
한국은 일본과 로열티 전쟁에
2000년대 초반 토종 품종 개발

잘라낸 딸기 꽃들

잘라낸 딸기 꽃들

딸기 꽃에 앉은 벌의 모습

딸기 꽃에 앉은 벌의 모습

딸기의 전성시대
 
지난 1월 한국 한 언론에 '웃돈 줘도 못 간다… 미친 딸기 값'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서울 시내 특급 호텔들의 딸기 뷔페에 고객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2인에 18만원이나 하는 이용권을 구하지 못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가 되고 있었다. 이렇게 딸기 뷔페가 인기를 끌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먼저 지난 겨울 이상 고온으로 한국의 딸기 가격이 30% 이상 급등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1월20일 기준 딸기 평균 소매가가 1kg당 2만930원으로 작년 대비 33% 상승했다. 공급량은 줄었지만 수요는 늘고 있다. 딸기는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과일로 부동의 1위였던 사과를 제칠 만큼 인기다. 딸기 뷔페 성공의 결정적 배경은 MZ세대의 문화와 정서다. MZ세대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성공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는 세대다. 그들은 호텔에서 딸기 뷔페라는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을 돈과 바꿀 수 없는 행복으로 여긴다. 그래서 고가의 딸기 뷔페를 즐기는 본인의 모습을 찍어 SNS에 인증샷을 올리며 자기 만족감을 높이는 것이다.
 
딸기 뷔페 사례는 바야흐로 딸기의 전성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프레지어 중령이 그린 야생 딸기 스케치.

프레지어 중령이 그린 야생 딸기 스케치.

스파이로 시작된 딸기 역사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딸기는 역사를 거슬러가면 흥미롭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딸기가 약용으로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1300년대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야생딸기를 정원에서 재배했고 1600년대에는 미국 버지니아산 딸기(Fragaria Virginiana)도 유럽으로 전해졌지만 지금과 같은 식용 딸기가 아니라 관상용이었다.
 
지금 우리가 먹는 딸기가 등장하는 중요한 사건은 1712년에 일어났다.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는 스페인이 점령하고 있던 남미 칠레에 스파이를 파견한다. 스페인의 왕 필리페 5세는 루이 14세의 친손자이기에 필리페 5세가 권력을 확실히 장악해야 스페인을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둘 수 있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칠레로 파견된 스파이가 프랑스 육군 정보국 소속 현역 중령인 아메데 프랑수와 프레지어였다.  
 
칠레로 간 프레지어는 위장을 위해 식물학자 행세를 하며 풀과 나무를 관찰하고 종자를 채집했다. 이 과정에서 딸기의 유래가 되는 종자를 채집하면서 새 품종 딸기의 역사가 시작됐다.  
 
임무를 완수하고 귀국한 프레지어 중령에게 루이 14세는 금화 1000냥을 상금으로 내렸다니 그의 임무가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1714년 이 종자를 가지고 프랑스로 돌아온 프레지어는 재배를 시도했지만 풍토가 달라서인지 성공하지는 못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딸기는 이로부터 50년 후 탄생했다. 1764년 영국의 식물학자 필립 밀러가 프레지어가 가져 온 칠레 품종과 북미의 버지니아 품종을 교배시킨 품종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재배된 것은 40년이 더 흐른 1800년대 초반이다. 딸기의 역사는 200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한국딸기 품종들
 
이렇게 개발된 현대 딸기는 유럽과 미국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재배되는 딸기의 90%가 육보 장희 등 일본 품종이었다. 2002년 한국이 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하면서 일본은 로열티를 요구하게 되었고 일본과의 '딸기 로열티 전쟁'이 벌어졌다.  
 
우리 농가들이 1년에 30억 이상의 로열티를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한국 정부는 딸기 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한국 농가의 80% 이상이 재배하는 설향을 비롯해 20여 종의 한국 품종이 보급되었고 지금도 새로운 품종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이처럼 우수 품종들이 많이 개발됨에 따라 이제 고객들도 딸기의 품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자신이 선호하는 품종의 딸기를 골라 찾게 됐다. 한국의 온라인 식품판매업체인 '마켓컬리'에서는 딸기 취향찾기 세트인 딸기 샘플러를 출시했다.  
 
그리고 한국 딸기 품종들을 단단함과 부드러움 달콤함과 새콤함을 주요 특성으로 하여 의 딸기 지도(Strawberry Map)를 개발하여 제시했다.
 
이 지도에 의하면 필자가 미국으로 가지고 온 금실은 단단함과 달콤함의 특징을 가진 품종으로 값을 주더라도 맛보고 싶은 특별한 단맛을 가진 품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H마트 시식회 성공 기뻤지만
공급량 절대부족에 판매 연기
내년 대량공급 위해 육묘 집중 
 
선택과 집중 판매 연기
 
지난 7일 H마트 부에나파크점에서 시식회를 연 뒤 고객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언제 어느 마트에서 딸기를 살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농장으로 직접 딸기를 사러 오겠다는 연락도 꽤 많이 받았다. 기대 이상의 반응에 마트 측도 필자도 한껏 고무됐지만 고민 또한 컸다.  
 
현재 1회 수확량은 한 지점에서 하루면 판매가 완료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소량이라도 고객에게 딸기를 맛보이고 싶었지만 조기 품절로 우리 딸기를 사러 온 고객을 헛걸음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현재 딸기 나무의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딸기를 많이 수확하면 육묘에서 확보할 수 있는 모종의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기적으로도 지금 육묘가 시작되어야 내년 초에 상용 판매를 할 모종의 수를 확보할 수가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고 더 중요한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꽃과 열매를 다 따내고 육묘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결정을 하면 주저 없이 실행을 하는 편이라 다음날 아침 바로 농장으로 향했다. 딸기가 잘 익어가고 4월달부터는 더 많은 딸기가 나올 거라 신나있는 직원들에게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그렇게 운 소쩍새'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꽃을 피웠다. 또 열매 크기를 키우기 위해 온도를 관리하고 비료를 주고 적화와 적과(과수에 꽃이나 과일이 너무 많이 달렸을 때 솎아주는 작업)를 하며 땀을 흘렸던 필자의 섭섭함은 누구보다 더 컸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선 과감히 미련을 버려야 했다. 꽃을 따내면서 꽃에 앉아 있는 벌을 보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추위와 폭우 등 갖은 악조건에서 처음 키우는 벌들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그리고 꽃이 없으면 저 녀석들은 어떻게 될까? 벌들의 생존에 대한 고민이 또 하나의 숙제가 됐다.
 
판매로 매출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딸기가 맛있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고 딸기 열매를 잘 만들어 수확을 하는 과정까지를 경험했기에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프레지어가 칠레에서 가지고 온 딸기가 풍토가 다른 유럽에서 새로운 품종으로 탄생하는 데 50년이 걸렸다. 필자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금실 품종을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보급하는 데 5년은 걸릴 것이라 각오했다. 그리고 내년이 바로 그 5년이 되는 해이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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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ㆍ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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