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7) 모종 담요 10장사니 "노숙자 아냐?" 수군
곧 '10만 육묘' 큰소리쳤지만
자재ㆍ물품 구입부터 난항
짐 싣고 농장 도착하니 한밤중
화분 크기 안맞아 일일이 잘라
250마일 출퇴근 별보기 시작
짧은 여행은 지옥도 재미 실감
단풍이 한창이던 북가주의 경치와 높고 푸른 하늘은 참 아름다웠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여 레딩의 육묘장으로 향해 가는 내내 앞으로 만들어 갈 성과와 장밋빛 미래만을 상상하며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다. 신나는 음악을 틀고 노래도 따라 부르고 가는 길에 좋은 풍광이 나오면 내려서 사진도 찍으면서 말이다. 아마 에베레스트 등정을 가는 등반가들도 인천공항에서 환송식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떠날 때 역시 앞으로 있을 대자연과의 목숨 건 사투에 대한 걱정보다는 정상정복의 짜릿하고 영광스러운 순간만을 생각할 것이다.
자재 구하기에 난항을 겪다
레딩의 육묘업체 라센에서 육묘에 필요한 삽수(삽목에 사용할 식물의 뿌리나 줄기)를 오버나이트 플라이트(익일 항공배송)로 받기로 하고 LA로 돌아왔다.
샌버나디노의 농장에 전화를 하여 내일 모종을 들고 갈 것이니 그린 하우스 주변 정리와 필요한 사전 준비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육묘에 필요한 장비와 자재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육묘에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다 작성해서 왔었고, 농사대국인 미국이었기에 자재 구입에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농자재상들도 소개받고 구글에서 검색도 하여 농자재상들을 찾아 다녔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LA 인근에 있는 농자재상들을 거의 다 돌아다녔지만, 웬걸 모종을 심을 적당한 크기의 화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육묘할 때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자묘포트(어린 모종을 여러 개 심을 수 있는 트레이)가 미국에는 없었고, 유사한 것들이 있어도 모양과 사이즈가 달랐다.
몇 군데를 방문한 끝에 밸리 지역의 어느 육묘상에서 유사한 자묘포트를 찾았지만, 새 제품이 아니라 중고 제품이었다. 달리 방도가 없었다. 소독을 하여 사용하기로 하고 그 화분(자묘포트)를 구입했다. 그리고 딸기 육묘에 좋다는 상토(모종을 키울 때 사용하는 흙)도 추천을 받아 구매했다.
이 두 가지를 하는데 꼬박 하루가 날아간 것이다. 한국의 농장들에 쌓여 있던 화분과 자재들을 생각하며, 한국에서 구매해 미리 비행기로 보내 놓지 않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에서 계속 농사를 지으려면 필요한 자재들은 미국에서 조달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으로 생각했다.
여행 떠나듯 농장으로
전날 밤 샌버나디노의 날씨와 농장의 준비상황을 확인하고 한국과 통화를 하면서 비닐 터널을 만들어야 하고, 이불을 덮어줘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가는 길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비닐(플라스틱) 터널을 만들 때 필요한 직경 3mm정도의 2~3미터짜리 철사를 구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어느 매장에 가면 어느 코너에 어떤 제품이 있는지를 훤히 알지만, 그때는 홈디포 등 농자재상을 가면 직원을 붙잡고 물어보기 바쁘던 시절이었다. 특히나 용어를 몰라서 설명이 오래 걸리고,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고 사진을 찾아 보여주는 것이 일이었다. 정확히 원하는 자재들을 찾지는 못했지만 아쉬운 대로 필요한 자재들은 다 구입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모종을 10주를 키우던 100만주를 키우던 기본적인 자재는 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온을 위해 모종을 덮어줄 담요도 샀다. 나름대로 패션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이불의 색깔까지 고민하며 10여장을 구입해 계산대에 서 있는데, 어린 여자아이가 "엄마 저 사람 밖에서 자는 노숙자인가 봐, 이불을 저렇게 많이 사네"라고 수군거린 기억이 난다.
깜깜한 사막에서 모종을 심다
SUV 차량의 의자를 다 접어 짐을 가득 싣고서 샌버나디노 농장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농장에는 사장님과 그날 이후 반년 이상을 동고동락한 농장 식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살바도르에서 카우보이를 하다 온 오스카와 아내 누비아, 오스카의 아들인 오스카 주니어, 주니어의 여자친구 조셀린, 그리고 착하지만 사고를 잘 치는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별명의 케리를 만났다. 이 친구들에게 앞으로 여기서 하려는 일들을 설명했다. 농사에 경험이 많은 오스카가 책임자가 되고 오스카 주니어가 풀타임으로 육묘를 보조하기로 하고 삽목작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그린하우스에는 조명시설이 되어있어서 해진 후에도 작업이 가능했다. 그린 하우스 내부와 포트를 한번 더 소독한 후, 위치를 정하여 포트를 깔고 상토를 채웠다.
그런데 상토를 채우고 보니, 화분의 크기가 생각보다 커서 뿌리가 감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판단이 들었다. 화분을 다시 살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화분 가운데 플라스틱을 꽂아서 절반 크기로 만들기로 했다.
가위로 얇은 플라스틱 화분을 일일이 잘라서 판을 만들고 그것을 화분 정중앙에 꽂은 후, 모종을 심었다. 삽목은 뿌리가 나올 부분을 땅에 깊이 묻어서 고정핀만 꽂으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지만, 처음 혼자 하기에 제대로 하고 있는지 불안한 마음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뿌리도 없는 이 모종들이 제대로 자랄까 하는 걱정이 시작됐다. 하나하나 조심스레 땅에 심어서 한국에서 가지고 온 유일한 장비인 고정핀을 꽂았다. 얼마 안 되는 모종이었지만, 초보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루 250마일 출퇴근 시작
육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습도 관리와 온도 관리다. 서툰 솜씨로 심은 모종에 물을 주고, 철사를 땅에 박아 터널을 만들고 온도와 습도 유지를 위해 비닐을 덮고 그 위에 다시 이불을 덮었다.
그러나 밤이 되니 사막의 기온이 떨어져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추웠다. 급히 흔히들 말하는 갑빠(Tarp)를 구해서 이불 위에 덮어 주었다. 그래도 이 추위를 뿌리도 없는 연약한 애들이 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떨칠 수는 없었다. 이런 작업을 마치고 나니 이미 자정(0시)이 되었다. 일주일을 있겠다는 각오로 갔었지만 근처에 가장 가까운 호텔도 20마일이나 떨어져 있어서 LA집으로 갔다가 아침 일찍 다시 오기로 하였다. 이때부터 하루 왕복 250마일의 출퇴근이 시작된 것이다.
사막은 깜깜하고 고요했다.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길고 길었던 하루였지만, 그래도 뭔가를 끝내고 간다는 마음에 뿌듯함이 들었다. 마치 학창 시절, 도서관 폐관 안내방송을 듣고도 끝까지 버티다 수위 아저씨가 오셔서 내 보낼 때서야 도서관 문을 나서며 밤 하늘을 바라보면서 오늘 정말 열심히 공부했구나 하며 뿌듯해 하던 기분과 같았다.
그때까지는 그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했다. 지옥도 짧게 여행으로 가면 재미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ㆍ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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