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13) 자라지 않는 모종, 이유는 '짠물 지하수'
매일 영상통화하며 원인 분석
알고보니 염분 높은 물이 원인
농가서 수돗물 퍼나르기 반복
고심끝에 샌버나디노 떠나기로
비즈니스에는 실패 있기 마련
미련 버리고 새 땅 옥스나드로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구경도 해 본 적이 없었던 딸기 농사를 그것도 이역만리 타국 땅 미국에서 겁없이 도전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세상에 사람이 하는 일은 노력하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모종을 한국에서 가지고 오는 일부터 직접 육묘를 하는 일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샌버나디노 농장에 모종을 심고 하루 5시간을 출퇴근하며 지극정성으로 모종을 키웠지만, 무슨 까닭인지 모종은 잘 자라지 않았다. 최대한 한국과 같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그린하우스를 보수하고 별의별 장비들을 동원했지만 별 차이가 없었다. 아침에 농장에 가서 비닐을 걷어 모종을 확인할 때는 마치 수험생이 합격자 발표를 보듯 조마조마했다.
온도와 습도를 철저히 관리하고 물과 비료도 한국의 전문가가 정리해 준 매뉴얼대로 주었지만, 모종은 시들고 썩어 죽었다. 초보 엄마가 갓난 아기를 키울 때 아기가 울면 이유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데, 식물은 그나마 울지도 않고 그냥 말없이 죽어 갈 뿐이다. 농사는 물 주는 것만 3년을 해야 제대로 물을 줄 수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자신감이 떨어지고 막막하기만 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카톡이 울렸다. 처음 딸기 농사를 배우러 진주를 갔을 때 잠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짧게 인사를 한 노대현 사장이었다. 노사장은 농협에 근무를 하다 오래전 부모님의 딸기 농사를 이어받아 성공적으로 딸기를 재배하고 있는 젊은 농부다. 딸기 농사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대단하고, 여러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연구도 많이 한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프로 농사꾼이다.
진주에서 잠시 본 노대현이라며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카톡 친구 추가를 하고 노사장과 통화했다. 그의 첫 질문은 딸기를 왜 키우느냐는 것이었다. 그냥 재미 삼아 부업으로 딸기를 키우는 것인지, 자본만 투자해서 다른 사람을 시켜 쉽게 사업을 하려는 것인지, 딸기에 애정을 가지고 열과 성을 다해 직접 키울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경험도 없는 사람이 미국에서 딸기를 키우겠다는 얘기를 듣고 어이없게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과연 잘하고 있을까 하는 걱정에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딸기를 제대로 키울 각오라면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얼마나 절실한 마음으로 농사를 지어왔는지 들은 노사장은 그날부터 개인지도를 시작했다.
노사장은 영상통화와 사진으로 그린하우스와 모종의 상태를 하나하나 진단하기 시작했다. 미국 시각으로 오후 2시, 한국 시각으로는 아침 6시에 우리의 수업은 시작됐다. 당시 자신의 농장 일도 바빴고, 나중에 안 이야기이지만 1화방(처음 나온 꽃대 무리)을 실패해서 1억 정도의 손실을 보고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노사장은 하루도 빠짐없이 영상통화로 농사를 지도해줬다. 아마 연애를 갓 시작하는 연인들도 그렇게 오래 통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움을 받으면 빨리 안다
노사장과 통화를 하면서 그동안 혼자 고민하고 많이 공부했지만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비료를 '엽면시비'하라고 했을 때 이를 옆면으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비료를 스프레이로 옆에서 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이 지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지 노사장은 "엽면시비의 엽자는 잎 엽(葉)자입니다"라고 했다. 잎에다 직접 비료를 뿌리라는 말을 옆에서 뿌리라는 것으로 알아들었으니, 얼마나 무식했던 시절이었던가!
아침에 농장에 가서 일을 하다 오후 2시면 어김없이 노사장과 영상통화가 시작됐다.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왜 모종이 시들고 죽어갈까, 늘 불안한 마음으로 고독한 사투를 벌이던 필자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이다. 2시간이 넘는 퇴근 길 역시 보이스톡으로 노사장의 가르침을 받는 시간이 됐다. 농사에서부터 딸기 시장 상황, 업계 이야기 등등 한국 딸기 산업에 대한 많은 것을 노사장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여 통화를 마무리할 때면 노사장은 항상 오늘도 수고 많았다며 앞으로 다 잘 될 거니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푹 쉬라고 한다. 그러고는 몇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연락이 온다. "좀 쉬셨으면 공부 좀 할까요?"
바쁜 사람이고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뺏는 것이 너무 미안한데, 먼저 그렇게 얘기해 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노트와 펜을 들고 필기를 해 가면서 농사의 기초를 배우기 시작했다. 노사장과 그런 시간을 보내며 딸기 농사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됐다. 혼자 알면 늦게 알고 도움을 받아서 알면 빨리 안다는 말이 실감났다.
늦었지만 빠른 결정, 옥스나드로
노사장과는 형동생이 됐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매일 연락을 하며 사실상 함께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샌버나디노에 와 본 적도 없고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니 한계가 있었다.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상업재배를 위한 충분한 수량의 우량한 모종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노사장은 마음 같으면 미국에 와서 모종을 제대로 키워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샌버나디노 지역의 문제는 온도와 습도뿐만이 아니었다. 처음 그 농장을 갔을 때, 지하수가 풍부하다는 말을 듣고 엄청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지하 50피트(15미터)만 파도 물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토(흙)에 하얀 가루가 생기는 것이 이상해 수질을 분석해 보니 염분이었다. 그 지역은 그랜드캐년이 신생대에 3000미터 이상 솟아오른 것처럼 과거 바다였던 곳이 융기(땅이 기준면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짐)한 지역이다. 그러니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지하수에 염분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정수시설을 갖추기에는 시간도 없고, 투자도 많이 이루어져야 해서 민가에서 수돗물을 길어오기 시작했다. 트럭에 물 탱크를 싣고 농장 사장님 댁에 가서 수돗물을 받아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 계속됐다.
팬데믹 기간 동안 한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총 10차례(20주) 자가 격리를 한 터라 한국행이 두려웠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 위해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진주에 가서 십만주 형님과 대현이(노사장)를 만나 현재 농장과 모종의 상태를 분석했다. 많은 대안과 방법들이 나왔지만, 근본적으로는 딸기 재배에 적합한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구글 지도를 검색하던 중 옥스나드 지역에 그린하우스가 수천 동 이상 있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블루베리와 라스베리 등을 키우는 온실이지만, 당시는 딸기 그린하우스로 생각했다. 그래, 모여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옥스나드로 가자!
많은 돈을 투자하고 몇 달을 고생해서 완성한 새 그린하우스에 모종을 채 옮기지도 못한 채 떠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는 것 같았다. 9개월 동안 하루 5시간을 왕복하여 피와 땀을 흘렸는데, 아무런 성과도 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민은 됐지만 결정을 한 이상 빨리 실행을 해야 했다.
어떤 비즈니스에서도 실패는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 실패를 얼마나 값싸게 하느냐다. 미련 때문에 시간을 끌면 돈은 돈대로 나가고 모종의 수도 줄어들 것이 자명했다. 금실 딸기의 디아스포라! 옥스나드에서 맨땅의 헤딩이 시작된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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