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18) 한국서 자재 50톤 공수작전 시작됐다
중앙일보 연재한 뒤 문의 쇄도
생산량 늘리기 위해 육묘 올인
최선책은 한국식 육묘장 짓기
인프라 갖춘 시마 난농장 계약
전 자재 3주내 한국서 수입키로
한ㆍ미 전문가들이 설계도 완성
컨테이너 3개분량 곧 미국 도착
중앙일보에 미국 농부 일기를 연재한 뒤로 독자들로부터 '언제 딸기를 먹을 수 있느냐'는 질문부터 '한국 딸기를 재배하고 싶다'는 동업제안까지 많은 연락을 받았다. 아직 아무 결실이 없는 작은 도전에 이처럼 관심을 가지고 응원을 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아직은 딸기를 충분히 생산할 수도, 한국 딸기를 재배하고 싶어하는 분들께 모종을 공급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하고도 죄송하기만 했다.
연초 눈물을 머금고 꽃대를 꺾은 것은 육묘에 올인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1개 주는 육묘를 거쳐 수십 개의 모종으로 번식시킬 소중한 모주다. 온도와 조건을 잘 맞추면 산술적으로 현재의 30배 이상 증식을 시키는 것이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무모한 수준의 목표다.
빠른 시일에 많은 모종을 생산하기 위해서 수경, 노지, 하이브리드(Hybrid) 등 다양한 방식의 육묘를 시도한 결과, 균일한 모종을 양산하기 위해서는 한국 방식의 전용 육묘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도 한국식 육묘 시설을 갖추었지만, 규모나 수준이 한국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업이나 업무에서 모범 사례를 실천할 때는 비슷하게 흉내 내어서는 안 되고 완벽하게 실현해야 한다. 미국에서 한국과 같은 그린 하우스와 시설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했기에 모든 자재를 한국에서 수입해 와서 제대로 육묘동을 만들기로 했다.
인프라 갖춘 공간을 찾다
샌버나디노 농장에서 모종을 키울 때 지하수에 염분이 많아 모종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 것을 경험했기에 수질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린 하우스를 자동으로 제어하고 체계적인 육묘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치와 기기들이 필요하기에 안정적인 전기의 공급과 인터넷, 보안 등 인프라를 잘 갖추어야 한다. 옥스나드 지역에서 이런 공간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토지를 확보해도 인프라를 갖추고 그린 하우스를 짓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특히 뭐든 초스피드로 해결되는 한국과 달리 모든 것이 느린 미국에서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조차도 쉽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들은 근처의 난 농장에서 연락이 왔다. 그 농장은 시설 원예를 하는 곳으로 식물 공장 수준으로 정수 시설을 비롯한 모든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 처음 옥스나드에 와서 무작정 찾아갔던 탐이 나던 시마 농장이다.
시마 농장의 정 사장님을 만나 딸기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사장님은 젊은(50대 이지만 미국 농장에서는 젊은 사람이다) 사람의 도전을 좋게 보시고 흔쾌히 그 공간을 정리해 육묘장을 만드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5년 계약으로 그 공간을 빌리고 시설을 하기로 했다.
인프라의 구축과 육묘장 건설 기간의 단축이 한번에 해결된 것이다. 그리고 시마 농장에는 농업 전문가인 박 이사가 있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 딸기 농사를 하면서 필요한 시기에 귀인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현재 육묘를 하고 있는 그린 하우스에서 생산한 모종을 모주로 하여 증식을 하기 위해서는 7월까지는 육묘장을 완성해야 한다. 박 이사와 그린하우스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연구하여 대략적인 설계를 마치고 필요한 자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박 이사는 옥스나드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의 농장을 함께 가 보자고 했다. 그 농장은 약 20년 전에 한국에서 투자하여 만든 10에이커(약 1만2000평) 규모의 그린 하우스 3동을 보유하고 있는 농장으로 조직 배양 시설과 기술도 보유한 곳이었다. 육묘를 위해서는 매년 새로운 원묘를 필요로 하고 조직 배양을 통해 무균묘인 원묘를 생산할 수 있다. 필요한 시기에 또 중요한 파트너를 만났다.
또한 이 농장의 장기생 사장님은 한국에서 그린하우스 제작업체를 운영하던 전문가로 그린하우스 제작에 많은 조언을 해줬다.
3주를 계획하고 한국에 나와 모든 자재를 구입하기로 했지만, 자재상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구입해서는 시간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았다. 한국을 나오기 며칠 전 장 사장님은 충남 서산의 온실 전문업체를 소개해줬다. 그 업체는 미국에 그린하우스 자재를 수출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자재구입에서부터 수출에 필요한 서류와 통관업무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업체였다. 한국에 나가 무작정 자재상들을 찾아다닐 생각을 하다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
한국에서 자재를 구입하다
자재의 구입에서 통관에 이르기까지의 업무를 맡아서 해 줄 믿을만한 업체를 찾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다음날 바로 대산온실이 있는 충남 서산으로 차를 몰았다. 서울에서 두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미국에서 늘 장거리 운전을 했기에 바로 옆 동네를 가는 기분이었다. 대산온실의 최사장님을 만나 미국에서 준비해 온 자료를 보여주며 필요한 자재의 구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비전문가인 필자가 미국에서 만들어온 자료는 도화지에 크레용으로 집을 그린 수준이었다. 대화를 하는데 그린하우스를 지어본 적이 없는 필자와 최사장은 서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LA는 밤 11시였다.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장 사장님과 박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스피커 폰으로 장시간 통화한 후, 육묘 전용 그린하우스의 제작 방향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확한 자재의 규격과 수량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설계도가 필요했다.
대산의 최사장님을 졸라 이틀 만에 도면을 완성했다. 그리고 자재 리스트도 하나씩 정리가 되기 시작했고, 선적과 통관을 담당해 줄 업체와도 준비를 시작했다.
3주 안에 모든 자재를 구입해 컨테이너를 띄우고 미국으로 가겠다는 계획은 애초에 무리한 계획이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파이프와 부자재 등은 어렵지 않게 조달을 할 수 있었지만, 그린하우스의 천창과 측창(환기를 위한 개폐 창) 등을 날씨와 기온, 그리고 시간에 맞춰 개폐시키는 컨트롤러(Controller)와 비료와 물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양액기 등은 한국과 미국이 전압(Voltage)이 다르기에 제작에 시간이 요구됐다.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짜를 일주일 연기했다.
서산과 진주를 오가며 자재를 구입하고 그린하우스 시설들을 견학하고 양액기 사용법을 배우다 보니 3주가 후딱 지나갔다.
이제 다음 주면 50톤(ton)이 넘는 자재의 구입이 마무리된다. 이 녀석들을 40피트 컨테이너 3개에 잘 넣어 미국으로 보내면 정신없던 한국 출장이 끝날 것 같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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