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14) 옥스나드 상륙작전, 카운트 다운 시작
땅 한 평 없이 옥스나드행 결정
지인 난농장 찾아가 사정 설명
농사 짓던 그린하우스 빌리기로
1주일내 이사 '벼락치기' 준비
차광막ㆍ팬ㆍ물탱크ㆍ전기에
수백개 파이프 고정작업까지
100도 찜통더위에 밤낮 고생
옥스나드로 딸기 재배지를 옮기기로 결정은 했지만, 그곳에 손바닥 만한 땅 조차 확보해 놓지 못한 상태였다. 사람이라면 호텔에서라도 며칠 머물면서 집을 구하면 되지만 딸기 모종은 제대로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옮길 수가 없다. 여름이 되어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환풍 팬과 스왐프 쿨러(물을 이용한 냉방장치)로는 온도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치 엄동설한에 자식을 들판에 두고 온 부모의 마음과 같았다.
땅을 구하고 그린하우스를 제작하여 재배용 베드를 설치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미 지어져 있는 그린 하우스를 찾아야 했다. 딸기 사업을 준비할 때 조언을 해주던 옥스나드의 윤수한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 간의 사정을 들은 윤 사장님은 어이없어 했다. 농사를 지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가장 키우기 힘들다는 딸기 농사를 직접 시작한 것도 어이없었고, 도저히 딸기가 자랄 수 없는 지역에서 농사를 시작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더군다나 갑자기 연락을 하고 나타나서 그린 하우스가 필요하다며 도와 달라니 너무 황당해 하셨다.
하지만 달리 기댈 데가 없었다. 염치불구하고 윤 사장님께 부탁하여 함께 차를 타고 옥스나드 농장들을 찾아 다녔다. 그린 하우스가 있는 농장을 찾아가 한 동만 빌려달라고 사정을 할 작정이었다. 몇 군데 농장들에 다녔지만 비어있는 그린 하우스도 없었고, 주인을 만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다니다 시설이 꽤 좋은 난 농장을 발견했다. 하지만 직원은 외부인 출입을 허용할 수 없고, 지금 농장 책임자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책임자를 미스터 박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주인이 한국 분이냐고 하니 그렇다고 해서 전화번호를 물어봤지만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해서 편지를 썼다. 간단히 사정을 설명하고 꼭 연락을 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큰 성과 없이 하루를 보내고 윤 사장님의 농장을 방문했는데 그린 하우스가 8동이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반짝이며 윤 사장님을 쳐다봤다. 필자의 꿍꿍이를 눈치채셨는지 난감해 하는 눈치였다. 땅을 구해서 그린 하우스를 만들 때까지 한 동만 쓰자고 졸라댔다. 그 그린 하우스들은 윤 사장님 농장에서 오래 일하던 멕시칸 직원 미겔이 맡아 운영하고 있었다. 윤 사장님께 계속 조르니 미겔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데, 그 친구가 절대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직접 미겔을 만나 합의를 보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미겔을 찾아갔다.
미겔은 농장을 잘 운영하여 수입도 좋아 굳이 그린 하우스를 렌트 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농장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누가 달가워하겠는가? 농장 주인은 윤 사장님이었지만, 실제 운영은 미겔이 하므로 그의 의사가 중요했다. 미겔에게 계획을 얘기하고 몇 달만 사용하고 충분한 보상을 하겠다고 설득했다. 얘기하다 보니 필자와 나이가 한 살 차이라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허락을 받았다. 결국 그 그린하우스를 지금까지 일 년여 사용하고 있다. 미겔은 날 만날 때마다 "몇 달만 쓴다더니 왜 아직도 있느냐"고 농담을 한다.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다
하루라도 빨리 시설을 갖추고 모종을 옮겨야 했기에 일주일 후로 이사 날짜를 정하고 계획을 세웠다. 윤 사장님의 그린 하우스는 상태는 좋으나 딸기 모종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측창(그린하우스 옆면을 개폐하여 통풍을 시키는 창)을 만들고, 차광막을 설치하고, 천정에 팬을 달고, 물과 비료를 주기 위한 물탱크와 모터, 점적호스 등도 설치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시설을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했다. 이런 것들을 해 주는 업체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농장의 경우는 거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자재를 사서 직접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모종을 재배할 벤치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수백 개의 파이프를 땅에 박고 고정하는 엄청난 작업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이 모든 준비를 일주일 만에 끝내고 이사를 하겠다고 하니 윤사장님뿐만 아니라 미국 농장 사람들도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벼락치기가 주특기인지라 자신은 있었다.
미겔에게 그날 당장 트랙터로 로타리(땅을 갈고 파종할 수 있게 모양을 만드는 것)를 치고 땅을 평평하게 다진 후,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물을 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린 하우스 시설에 필요한 자재들을 구입하러 다녔다. 자재상들은 윤사장님이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알려주었는데, 필요한 자재를 찾는 것도 원하는 시간에 배송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쯤 편지를 남기고 온 난농장의 박병욱 이사가 전화를 했다. 박 이사를 만나 얘기를 나누는데 정말 보석 같은 사람이었다. 농업 전문가이면서 미국에서 농업에 종사한 지 20년이 되어 영어와 스패니시도 구사하고, 농장에 필요한 모든 이론과 기술을 보유한 사람이었다. 박이사는 자재상을 소개해주고 어떤 자재를 사는 것이 좋은 지를 자상하게 알려주었다. 윤 사장님과 박 이사님의 도움으로 필요한 자재들은 찾았지만, 배송이 며칠에서 몇 주까지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는 수없이 직접 창고로 찾아가 자재를 실어오는 방법으로 당일 조달이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윤 사장님은 며칠을 직접 트레일러를 운전하며 고생을 해 주셨다.
귀인들의 도움을 받다
공기(공사기간)를 당기는데 필요한 것은 장비와 인력이다. 장비는 윤 사장님께서 적극 지원해 주셨으나, 사람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때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박 이사이다. 박 이사는 인력도 구해 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와서 작업을 지시하고 하나하나 설치 과정을 체크해 주었다. 샌버나디노 농장에서 그린 하우스도 지어보고 벤치도 설치해 보았지만,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예정된 날짜까지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휴일도 쉴 수가 없었지만, 아무리 일당을 많이 준다고 해도 휴일에 나와서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일요일에 혼자 농장에서 끙끙대며 일을 하고 있는데, 미겔이 아들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역시"하며 함께 일을 시작했다. 미겔은 자녀가 7명이고 아들들이 모두 훌륭한 일꾼들이다.
미겔 부자들의 도움으로 해야 할 일들을 일찍 마치고 사례비를 건네니, 미겔은 친구를 도와 준건데 돈을 받을 수는 없다며 강경하게 사양했다. 그래서 미겔 아들들에 "너희는 내 친구 아니지?"하고는 용돈을 주었다. 아빠 친구가 주는 거니까 받으라고 하니, 미겔도 아들들도 모두 미소를 지었다. 혼자 무인도에 떨어진 것 같았던 상황에서 많은 위로를 받은 날이었다.
또한, 박 이사는 일과를 마친 후 필자의 그린 하우스에 일꾼들을 데리고 와 직접 함께 일을 해 주었다. 화씨 100도가 넘는 그린 하우스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박 이사를 보면서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나 같은 사람을 만났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윤 사장님, 박 이사, 미겔 이 세분은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필자를 도와 주고 있다. 이 분들이 아니었으면 한국 딸기가 옥스나드에 정착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를 아는가, 그 사람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그 능력을 나를 위해 얼마나 써 줄 것인가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필자가 알게 된 이 세분은 능력도 뛰어나고 그 능력을 필자를 돕는데 아낌없이 써 준 고마운 분들이다. 이런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라나는 한국 딸기의 품질은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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