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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19) 미국서 K농업 첫발…고품질 한국산 설비 LA로

한국 자재값 미국의 절반 이하
10불 짜리 '스위치'가 단 200원
품질도 더 우수해 가성비 최고
미국 보낼 50톤 자재 구입마쳐

미국으로 보낼 50톤의 그린하우스 자재들.

미국으로 보낼 50톤의 그린하우스 자재들.

시설과 인재의 중요성
 
맛있는 한국 딸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수한 품종의 확보와 함께 이를 생산할 최적의 시설과 인력을 갖추어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재배 방식과 기술로 딸기를 재배하느냐에 따라 맛과 품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애초에 미국에서 한국 딸기를 키운다는 결심을 했을 때, 모든 것을 한국과 동일하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더군다나 금실 딸기는 한국에서도 재배하기가 까다로운 품종이었기에 직접 재배를 하며 표준 생산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한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딸기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고 기후 조건도 훌륭한 곳이지만, 한국 딸기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유지할 시설과 한국 딸기 재배에 특화된 경험과 지식이 필요했다. 이곳에서 그린하우스를 직접 만들고 한국을 오가며 딸기 재배 기술을 배웠지만, 안정적인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확대해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어설픈 흉내가 아닌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시설과 인력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으러 한국행을 결심했다.  
 

롯데월드에서 필자와 앙헬.

롯데월드에서 필자와 앙헬.

한국 농자재의 위대함
 
한국은 국토가 좁은 나라이기에 농지도 좁고, 사계절이 뚜렷해서 계절별로 기후차이도 심하다. 그러한 환경에서 수확량을 높이고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을 많이 하여 시설과 기술에서 많은 진보가 이루어져 있다. 과거 네덜란드와 일본 등에서 농업 기술을 배워 오던 한국이 이제는 외국에 기술을 지도하고 보급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특히 그린하우스를 만드는데 있어서 한국의 자재들은 말 그대로 위대하다. 한국과 동일한 그린하우스를 만드는데 필요한 미국산 자재는 2배 더 비싸다. 한국산은 저렴하면서도 품질과 성능은 더 우수하다.
 
단적으로 그린하우스와 육묘/재배 베드를 만드는데 필요한 쇠파이프만 해도 미국이 한국보다 2~4배 정도 고가다. 그리고 길이도 한국은 10미터 20미터 단위로 판매를 하는데, 미국의 기성품은 10피트(3미터)짜리가 대부분이고 길어야 20피트(6미터) 정도다. 그린하우스의 길이는 보통 75~100미터이고 베드의 길이도 마찬가지이기에 짧은 파이프로 시공할 경우 연결을 위한 부자재와 노동력이 추가로 소요된다.
 
쇠파이프를 연결하기 편리하게 끝 부분을 서로 끼울 수 있게 만든 것을 스위치라고 부르는데, 미국의 경우 스위치가 연결된 파이프가 그렇지 않은 것보다 10달러 정도 비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200원이면 만들어준다.
 
한국의 호미가 미국에서 대박이 난 것만 보더라도 한국의 농자재가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미국에 최적화 진화형 온실
 
지금까지 필자가 한 이야기만 들으면 미국의 농업이 열악하고 후진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방식으로 딸기를 키우는데 국한된 이야기다. 미국과 한국은 농사의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 대규모 농사에 있어서는 미국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뛰어난 시스템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현재 금실 딸기의 육묘와 재배를 하는 옥스나드는 햇볕이 좋고, 비가 많이 오지 않을뿐더러 산과 바다를 접하고 있어 온도와 습도에서도 딸기 재배에 최적의 환경이다. 겨울에는 온도가 낮아 딸기의 당도를 높이기에 좋으나 영하로는 잘 내려가지 않으니, 냉해를 입을 위험도 적은 곳이다. 이러한 장점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한국의 그린 하우스보다 간단하고 적은 비용으로 동일한 환경을 구현할 수 있는 그린 하우스를 설계했다. 미국의 환경에 최적화된 가성비 높은 그린 하우스인 셈이다.
 
옥스나드가 딸기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난 겨울에 경험한 것과 같은 이상 기후의 위험은 항시 도사리고 있다. 35년 만에 블리자드 경보가 내리고 몇 달 동안 지난 삼년 강우량에 해당하는 폭우가 내리는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이상 기후에서 어느 곳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기에 안정적으로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스마트팜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농사도 비즈니스이고 비용대비 수익을 생각하고, 경험과 실행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기에 농사에 대한 기본을 쌓으면서 새로운 기술과 장비들을 도입하고 적용하며 경쟁력을 키우는 우회축적(기다림의 창조)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이번에 짓는 그린 하우스는 검증되고 상용화된 장비들로 많은 부분을 자동화한다. 그리고 새로운 장비와 기술들을 지속적으로 적용하며 진화시켜 나갈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
 
지난주, 진주의 농장에서 일주일째 연구를 받고 있는 앙헬을 만나러 갔다. 가뜩이나 입이 짧은 데다 소심한 성격의 친구인지라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지 항상 걱정이 되었는데, 역시나 아주 수척한 얼굴이었다.  
 
앙헬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필자를 힐끗 보더니 한동안 말도 하지 않았다. 농장 식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맥주도 한잔 마시고 나니 앙헬은 핸드폰에 찍어 놓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한국 농장에서 딸기 키우는 방식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앙헬은 한국 사람들은 정말 일을 많이 한다며 놀라워하며, 지난 일주일 동안 적응하느라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고 했다.  
 
사실 미국 농장에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속에서 불이 난다. 한번에 한 가지 일만 시켜야 하고 힘 쓰는 일은 잘하지만 작업의 속도는 엄청나게 느리다. 그리고 일하는 시간보다 떠들고 쉬는 시간이 더 많다.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한국이 미국보다 하루 작업량이 3배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런 환경에 익숙하다가 이곳에서 아침 6시부터 쉬지 않고 일을 하니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다독이며 칭찬을 해주고는 서울 구경을 시켜주기로 했다.
 
남산 타워도 올라가고, 롯데 월드에서 놀이기구도 타고, 코엑스도 구경했다. 앙헬은 연신 사진을 찍어 미국에 있는 아내와 친구들에게 보내기 바빴다. 주차권을 뽑지 않고도 주차장에 들어가고, 핸드폰에서 티켓을 받아 입장을 하고, 길에서 핸드폰 배터리를 앱으로 빌리는 장면까지 모든 것에 놀라워했다.  
 
서울을 구경하며 앙헬은 세울 그란데(서울 크다), 꼬레아 따 비엥(한국은 다 좋다)을 계속 외쳐댔다. 회사 직원들도 만나고 치맥도 한 앙헬은 마치 한국을 자기 나라인 양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같은 호텔에서 하루를 지내고 다시 진주로 내려가면서 앙헬은 미국에 돌아가면 새로 짓는 그린하우스 12동을 올해 안에 딸기 모종으로 가득 채우고 그린하우스를 더 짓자며 의지를 보였다.  
 
그 친구가 앞으로 어떤 기여를 할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의 진심은 알 것이며, 미국에서의 K-Agritech(한국 농업기술)는 이렇게 첫발을 내디디는 것이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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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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