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26) 북가주서 옥스나드까지…한국 딸기의 '이민'
북가주서 금실 딸기 검역
샌버나디노서 시행착오도
옥스나드가 최종 정착지
새 그린하우스 이달말 완공
모종 옮기기는 고달픈 작업
미국 이민의 시작은 농업이었다.
올해는 1903년 1월 3일 하와이에 이민선이 도착하면서 시작된 한인 이민의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물론 그 이전인 1883년부터 미국 땅에는 한국의 왕족, 망명 정치인, 유학생, 외교관, 상인 등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인 이민 선조들이 갤릭선(노젓기를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던 범선)을 타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도착한 것을 이민의 시작이라 하면 미국 이민의 역사는 농장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와이로 이민을 간 121명의 초기 이민자들은 힘들게 일하면서도 나라 읽은 설움을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목표로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자녀들을 잘 교육시켜 미국 사회에서 인재로 성장시켰다.
필자가 잠시 재직했던 인하대학교도 1902년 인천항에서 출발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우리동포들이 모국의 독립을 위해 모은 돈이 기반이 됐다. 그래서 그들이 이민선을 타고 출발한 항구가 있던 인천의 ‘인’자와 하와이의 ‘하’자로 교명을 만든 것이다.
한국 딸기 이민의 역사
이제는 미국 주류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는 한인들이 본토로 넘어온 과정을 보면, 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LA에 종착했고 그 이후 미국 전역으로 뻗어나갔다고 본다. 이 위대한 역사에 한국 딸기의 미국 이민을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건방진 것이지만, 한국 딸기의 이민 과정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2020년 7월 한국을 떠나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들어온 금실 딸기 모종은 북가주의 육묘업체에서 검역과 육묘과정을 거쳐서 샌버나디노의 농장에서 첫 자가 육묘가 시작됐다. 그 곳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시련을 겪은 후, LA인근 옥스나드에 정착하여 본격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시작하여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인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 땅에 우수한 한국 딸기 품종이 들어온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린하우스 공사 막바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자가 육묘를 시작한 샌버나드 농장에서 기존의 그린하우스를 사용하면서 시설의 한계를 느끼고 많은 돈을 들여 그린하우스를 자체 제작했다. 하지만, 기후 등의 한계로 인해 새로 지은 그린하우스를 그대로 둔 채 옥스나드로 농장을 옮겼다. 옥스나드에서도 다른 농장의 그린하우스를 빌려 시설을 보강해 가며 육묘를 했기에 제대로 된 자체 그린하우스에 대한 갈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옥스나드에서는 모종이 기대한 대로 자랐고 시험재배를 통해 딸기의 맛도 확인이 되었다. 이에 본격적인 확장을 위해 한국에서 컨테이너로 자재를 실어와 그린하우스를 제작한지 이제 1달이 지났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하여 연일 강행군을 이어가면서 함께 작업하는 분들도 모두 지쳐가지만 땀은 배신을 하지 않았다. 이제 골격이 완성되고 지붕에 비닐을 씌우고 천창(온도조절과 환기를 위해 열리고 닫히는 지붕의 창)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할 때는 바람이 불면 안되기에 아침 6시에 작업을 하여 비닐을 씌우고 마감을 한다. 다행히 지난 주까지는 날씨가 덥지 않았지만 지난 주부터 무더위가 시작되어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른다.
한국에서 온 전문가들은 부족한 장비와 낯선 환경 속에서도 작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방법들을 고안하며 일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우리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는 이 동네 친구들은 이런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방법들을 처음 보는지 마냥 신기해 한다. 예를 들어, 지붕에 파이프를 고정할 때도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골프카트에 작업대를 여러 대 연결하여 동시에 4명이서 작업을 하고 순식간에 이동을 한다.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작업하는 것보다 속도가 3-4배는 빠른 것 같다.
한 달을 쉬지 않고 이렇게 일을 하다 보니 다들 아프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친구들은 매일 일을 하면 근육도 생기고 건강해지겠다며 농담을 하지만, 노동과 운동은 엄연히 다르다. 필자가 늘 말 하기를 노동과 운동과 이동은 다른 것이다. 우리가 헬스 클럽에 운동을 하러 갈 때, 러닝머신을 열심히 뛰면서도 주차는 가까운 곳에 하려고 주차장을 몇 바퀴 도는 경우가 있다. 러닝머신을 뛰는 것은 운동이고 주차장에서 걸어가는 것은 이동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역기나 아령을 드는 것은 운동이고 짐을 옮기는 것은 노동이다.
이사를 준비 중인 모종들
이렇게 다들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준 덕에 이달 말이면 예정대로 그린하우스가 완공이 되어 모종을 이사하게 된다. 지금 그린하우스에 있는 모종들은 어미묘에서 나온 러너를 자묘 포트에 심어 자라고 있는 상태이다. 즉 어미묘와 자묘들이 줄기로 연결이 되어 있다. 하나의 어미묘에서 많게는 20개의 자묘들이 연결되어 있다. 말하자면 아직 탯줄을 자르지 않은 상태이다.
이 상태로 모종들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의 어미묘 포트와 4개의 자묘포트를 동시에 들어서 옮기고 이를 또 새로운 그린하우스의 베드에 안착시켜야 하는데, 모든 포트들을 그렇게 옮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온실팀이 그린하우스를 제작하는 동안 육묘팀은 충분히 성장한 자묘들을 어미묘에서 분리시켜 어미묘 포트로 옮겨 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새로 지을 온실에 필요한 어미묘의 수는 약 1만2000주이므로 하루에 1000주씩 심어도 2주가 걸린다. 물론 새로 지을 그린 하우스에 포트를 설치하고 상토(흙)을 채워둔 상태에서 자묘들을 뽑아가서 심어도 되지만, 시기 등 여러 요건을 고려했을 때 미리 심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28피트 트럭에 어미묘 포트를 실을 경우, 한번에 많아야 6-700주 정도가 실린다. 1만2000주를 포트에 심은 채로 옮기기 위해서는 트럭으로 약 20번을 왕복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게다가 모종의 이동은 가급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에 해야 하기에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이 또한 행복한 고민이다. 한 주의 모종이 아쉬웠던 생각을 하면, 모종만 많아진다면 밤 몇 대의 트럭을 동원하고 밤잠을 안 자고도 기쁜 마음으로 옮길 수 있다.
딸기는 계속된다
이달 말이면 내 집 마련의 꿈과 같았던 그린하우스의 공사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그리고 새 그린하우스에서 건강한 모종들을 많이 생산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최종목표는 모종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맛있는 딸기를 재배해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생산된 모종으로 딸기를 재배할 그린하우스가 또 필요하다.
재배를 하기 위해서는 같은 수의 모종을 키우는 공간보다 5배 이상의 공간이 필요하다. 현재 옥스나드 지역은 땅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거의 모든 땅들이 농사를 짓고 있고, 다들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딸기를 재배할 땅을 구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중, 시마 농장 사장님의 배려로 올해 재배에 필요한 부지를 제공받게 되었다.
그 공간에 다시 그린하우스를 만들어서 10월부터 딸기 생산에 들어가야 한다. 재배를 할 그린하우스는 육묘동보다는 간단한 형태로 제작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시작을 하고 나면 더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겨 자꾸 일이 커지게 된다. 완공되는 그린하우스에 모종을 옮기고 나면 육묘와 동시에 재배동을 짓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주변에서는 안 하던 일을 하며 고생하는 필자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인지 언제 끝이 나냐고 묻지만, 아직 시작이고 끝이 나면 안 되는 것이다. 끝없이 짓고 계속 키워야 한다. 121분의 한인 선조들이 미국 땅에서 자리를 잡아온 과정은 이보다 더 험난한 일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미국 땅에서 한국 딸기가 주로 품종으로 자리를 잡는 그 날까지 짓고 키우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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