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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39) 비료는 보약, 처방전대로 지어준다

비료의 발달, 식량 해결 기여
화학비료 개발이 바꾼 풍경은
시골의 향기 거름 냄새 사라져

미국 농장선 대부분 노지재배
복합비료 20-20-20 주로 사용
자동배율 양액기 이해 못하는
멕시칸 직원들 교육하기 난감

처방전에 맞춰 배합한 비료를 딸기에게 자동으로 공급하는 양액기 컨트롤 모니터.

처방전에 맞춰 배합한 비료를 딸기에게 자동으로 공급하는 양액기 컨트롤 모니터.

비료의 역사
 
어릴 적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농촌 특유의 냄새가 들어왔다. 어떤 이는 구수하고 정겹다고 했고, 어떤 이는 역겹다고 급히 창을 닫게 하는 농촌의 향기는 바로 거름 냄새였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농촌에서는 값비싼 화학비료보다 풀과 볏짚, 보릿짚을 썩혀 만든 퇴비와 인분과 나뭇재, 왕겨, 가축분뇨 등을 섞어 만든 두엄, 그리고 액체 상태의 인분과 오줌을 주로 사용했다. 시골 친척집을 방문해서 무엇인지도 모르고 똥장군(인분을 담아 옮길 때 쓰는 단지 모양의 통)을 올려놓은 지게를 지고 마당을 돌아다닌 기억도 난다.  
 
그러나 이제는 시골을 가도 그런 냄새를 맡기가 어렵다. 그런 자연비료보다는 화학비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농업을 시작한 이래, 비료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자연의 선물로 토지가 비옥한 지역에서는 문명이 발생했다. 세계 4대 문명인 수메르, 이집트, 인더스 계곡, 그리고 중국은 강에서 내려오는 토사와 미네랄로 비료를 대체할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땅이 검게 변하며 자연적인 비료의 효과를 누렸고, 중국의 황하강은 황토와 함께 유기물이 적절히 섞여 있어 강물 자체가 비료의 역할을 했다. 다른 지역들에서는 깻묵을 비료로 활용하기도 하고 생선 내장을 비료로 가공하기도 하는 등 지력을 회복하고 농업 생산량을 증대시키기 위해 다양한 자연비료들을 사용했다.
 


그리고 19세기가 되면서 비로소 현대식 비료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합성 비료는 1840년 독일의 화학자이자 농화학의 창시자인 리비히(Justus vo Liebig)가 식물은 3대 영양소인 NPL(질소, 인산, 칼륨)를 흡수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시작됐다고 본다. 그리고 1913년 독일의 화학자인 프리츠 하버가 공중질소합성법을 발표하면서 암모니아 합성법의 상업화가 이어지고 화학비료의 새 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는 이 연구로 191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가스 개발과 살포를 주도해 '독가스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화학비료의 등장으로 농업생산량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인구의 증가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세기에는 지구의 인구가 약 1.5배 증가했지만, 20세기에는 15억 명에서 60억 명으로 무려 4배가 증가했다. 화학비료가 식량문제를 해결한 덕에 이런 인구 증가가 가능했다는 해석이다. 한국에서는 1910년부터 부산에서 유안(황산암모늄)을 제조했고, 1927년 흥남 질소비료공장이 건설되면서 질소의 공급이 일부 가능했지만, 인산과 칼륨의 복합비료는 수입에 의존했다고 한다. 더욱이 황산암모늄은 폭발물로 사용될 수 있어 일본의 통제가 엄격했다.
 
한국의 경제개발이 시작된 1960년대 비료의 국내자급을 위한 비료공장의 본격적인 증설이 시작됐다. 충주비료공장, 호남비료공장, 삼척의 석회질소공장, 장항의 용성인비 공장이 설립됐고, 1977년 여수에 제7비료 공장이 준공되면서 국내비료의 생산능력은 300만 톤에 도달했고 완전자급과 아울러 연간 50만 톤의 수출까지 가능하게 됐다. 제7비료는 학창시절 교과서에도 나왔다.
 
만병통치약 20-20-20
 
미국의 딸기재배에서도 비료를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은 작물의 성장단계와 수질, 재배 목적과 방법에 맞춰 발급된 처방전에 따라 원료를 배합해 양액기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으로 비료를 공급한다. 하지만 노지재배가 대부분인 미국에서는 복합비료를 주로 사용하는데, 20-20-20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20-20-20은 식물의 3대 영양소인 질소(N), 인산(P), 칼륨(K)이 각 20%씩 고르게 함유된 복합비료이다.
 
양액기 없이 물탱크에 비료를 타서 점적호스로 비료를 줄 때는 이 20-20-20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새로 그린하우스를 짓고, 한국에서 양액기를 수입해서 설치하고, 경상남도농업기술원에서 양액처방을 받은 후에는 각 양액통에 처방전에 맞게 원료를 배합해 자동으로 비료를 공급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20-20-20 비료를 별도의 물탱크에 넣어서 공급하던 멕시칸 직원들이 왜 비료를 주지 않느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미국 딸기 농장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있는 직원들은 아주 강력하게 20-20-20 비료를 주어야 한다며 소리를 높였다.  
 
양액기가 자동으로 농도를 조정해 비료를 주고 있다고 해도 믿지를 않고 20-20-20(스패니시로 베인떼-베인떼-베인떼)만을 외쳤다. 그 친구들에게 20-20-20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질문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NPK가 무엇의 약자인지, 20-20-20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무턱대고 20-20-20을 줘야 딸기가 잘 자란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집집마다 '안티푸라민'이라는 연고가 있었다. 안티푸라민은 간호사 그림이 붙어 있는 유한양행의 소염진통제이다. 안티푸라민은 유한양행에서 최초로 자체 개발한 약품으로, 2023년 90주년을 맞았다.
 
이 소염진통제를 다리가 아프면 다리에 바르고 배가 아프면 배에 바르고 코가 막히면 코에 바르던 시절이 있었다. 만병통치약이었던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중국에서 한창 수입이 되어 인기를 누렸던 '호랑이연고'라 불린 만금유도 있었다.
 
이 친구들에게 20-20-20은 이러한 만병통치약과 같은 것이었다. 가르쳐야 할 게 또 생겼다. 비료를 배합하고 양액기를 관리하는 것은 한국 사람이 하면 되지만, 자신들이 키우는 딸기에 비료가 제대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확신을 가져야 그들도 일을 안정적으로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도착한 화분들이 컨테이너에서 하역 후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 도착한 화분들이 컨테이너에서 하역 후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딸기를 재배할 화분 도착
 
이렇게 하나하나 가르치고 체계를 잡아가는 가운데, 딸기재배를 시작할 데드라인이 눈 앞에 다가왔다. 한국에서는 이미 재배를 위한 정식(아주심기)을 시작해 조만간 딸기를 수확하지만, 아직 계획한 모종의 수가 채워지지 않았고, 이곳 날씨를 고려해 정식시기를 다소 늦춘 상태이다.  
 
본포(딸기 재배를 위한 심을 화분이나 포트)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한참을 고민했었다. 딸기 농사도 비즈니스이기에 프로세스와 비용을 고려해야 했다. 한국에서는 쇠파이프에 타프(Tarp: 방수 코팅된 나일론 방수포)를 감아 베드를 만들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할 경우 인건비가 더 소요되고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한국에서 재배용 포트(화분)를 수입해서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40피트 컨테이너로 한대 분량의 화분을 주문했다. 그리고 화분을 놓고 딸기를 키울 추가 그린하우스와 재배 베드 설치를 위해 하루하루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11월 7일 컨테이너가 도착했다.  
 
내려놓고 보니 꽤 많은 수량이지만 본격적인 생산을 하려면 이보다 수십, 수백 배의 규모가 되어야 한다. 이 화분에 상토를 녹여 넣는 일도 거기에 딸기를 심는 일도 태산이지만, 이제 수확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 같다. 좋은 화분에서 보약과 같은 비료를 먹고 자란 딸기는 맛도 좋을 것이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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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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