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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29) 지붕이 생겼다, 완공 고지가 보인다

빈땅에 파이프 박던 때엔 막연
어느새 온실 12개동 골격 갖춰
콘크리트 타설ㆍ바닥천 깔기 등
세부작업 아직 많이 남은 상태

육묘장ㆍ온실공사 이원화 작업
1년 같이 일한 앙헬 자신감 충만
"내년 100만주ㆍ직원 30명 목표"
팀보다 위대한 선수 없다 실감

(1) 그린하우스 12개동의 골격을 갖추고 지붕을 올리니 이제 곧 완공이라는 실감이 난다. 바닥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2) 장비를 배치할 공간에 시멘트를 타설하고 있다. (3) 잘 자란 모종들이 어미묘 포트에 심기기 직전의 모습.

(1) 그린하우스 12개동의 골격을 갖추고 지붕을 올리니 이제 곧 완공이라는 실감이 난다. 바닥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2) 장비를 배치할 공간에 시멘트를 타설하고 있다. (3) 잘 자란 모종들이 어미묘 포트에 심기기 직전의 모습.

고지가 눈앞
 
등산을 하시는 분들은 많이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나무 숲 속과 계곡을 지나 한없이 걷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눈 앞에 정상이 펼쳐진다. 그 순간 너무도 반갑고 이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상이 눈앞에 나타났다고 해서 금방 정상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더 가파른 길을 한참을 더 올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린하우스를 짓는 것도 마찬가지다. 빈 땅에 도면을 들고 파이프를 박을 때만 해도 과연 제대로 지어질 것인가, 언제 완공될 것인가 그저 막연할 뿐이었다. 특히 경험과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필자는 조급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땀을 흘리다 보니 어느새 골격이 완성되고 지붕에 비닐이 씌워지고 그린하우스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 앞에 정상이 펼쳐지는 것과 같았다.
 
공사 현장을 방문한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그린하우스를 지어본 사람은 "야아~, 이제 다 지었네요"라고 말하고, 그린하우스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네요"라고 말한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그린하우스를 짓다 보니 완성되어 가는 모습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뿌듯한 마음이 가득했다. 지붕 위에 올라서서 길게 뻗은 그린하우스를 쳐다보면 흐뭇한 마음이 들어 한참을 바라만 보기도 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맞았다. 창을 만들고, 차광막을 덮고, 장비를 올려놓을 장소에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바닥에 천을 까는 작업들이 예상 이상으로 시간이 걸렸다.  
 
한국팀들이 귀국하고 난 뒤 박 이사와 함께 예상 완공시간을 계산하는데 박 이사와 필자의 계산이 거의 두 배가 차이가 났다. 마음만 급한 필자는 몰아치기를 해서 하루에 하나씩 끝낼 수 있다는 의욕에서 나온 계산이고, 박 이사는 인력들의 숙련도와 작업량을 꼼꼼히 따져서 산출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진행상황으로는 박 이사의 계산이 맞았지만, 작업하는 인력들의 숙련도가 높아짐에 따라 점점 속도가 붙고 있다.
 
그린하우스 공사는 인내력과 지구력을 요한다. 같은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광막을 씌워도 12동을 씌워야 하기에 스프링으로 고정하는 작업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단순한 작업은 숙련도는 빨리 높아지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지루함이 극대화된다. 양액기(자동으로 비료를 주는 기계) 등 기기들을 비치할 공간은 콘크리트로 바닥을 평평하게 해야 하는데, 3~4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3톤의 시멘트가 필요했다. 배합기에 시멘트를 한 포씩 넣어 돌리고 타설하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롤러로 단단하게 다진 바닥에 그라운드 커버를 고정하는 것도 수천 개의 핀을 망치로 일일이 박는 단순 작업의 반복이었다.
 
정상이 눈에 보이면 힘이 나고 거기서 멈출 수가 없는 것처럼 지금 우리는 한 순간도 멈출 수가 없다. 고지가 바로 저기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비전은 사람을 바꾼다
 
현재 닥터문 농장은 규모와 모종의 수는 작지만 일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혼자 달랑 240주의 금실딸기 모종을 가지고 옥스나드로 넘어왔을 때는 사람도 없었고 주변의 관심도 없었다. 그저 낯선 사람의 엉뚱한 시도로만 보일 뿐이었다. 이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지만, 일 년 가까이 함께 일한 친구는 앙헬이다.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시작했던 앙헬은 올해 초부터 정식 계약을 한 직원이 되었고,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예상한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왔지만, 한국의 농사 현장을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한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한국에서 고생을 했다지만, 앙헬은 한국의 재배방식과 한국을 높게 평가한다.그래서 다른 직원들에게 일을 가르칠 때도 "한국에서는" 이란 말을 꼭 붙이고 한국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내년에 목표한 딸기 수확량을 채우고 가족들을 데리고 한국 여행을 가겠다고 꿈에 부풀어 있다.
 
앙헬은 필자보다 24살이 어리고 서로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에 함께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다. 하지만 필자의 비전과 진심을 이해하고 난 후 앙헬은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사람마다 장단점은 다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장점을 어떻게 살리고 단점을 어떻게 보완해 주느냐는 것이다.
 
이 친구의 장점은 식물에 대한 애정과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는 것이다. 경영의 미래(The Future of Management) 저자 게리 하멜(Gary Hamel)은 '성공의 체계(The Hierarchy of Success)'에서 성실성과 창의성 등 여러 성공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Passion)'이라고 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열정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성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국팀이 귀국하고 난 후, 모종의 관리를 호세와 새로 채용한 15년 경력의 마리아에게 맡기고 앙헬과 다른 직원들은 모두 그린하우스 제작에 투입됐다. 모종관리에만 열정이 있던 앙헬에게 모종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그린하우스를 빨리 완공해서 더 나은 환경에서 키워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켰다. 그 이후 앙헬은 공사 현장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원화된 작업으로 필자는 육묘장과 공사현장을 오가면서 일을 챙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모종은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자식들을 많이 생산해서 숫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8월 초 새로 지은 그린하우스로 이사를 계획하고 화분과 상토들을 모두 새로운 그린하우스에 조달해 놓았기에 거의 매일 화분과 상토를 육묘장으로 옮기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호세와 마리아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나 시들고 죽어 가는 모종들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모종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직접 모종을 관리하고 있는데, 앙헬이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모종이 걱정이 되어 안 되겠으니 자기가 두 군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번 주 필자와 앙헬은 육묘장에서 모종들을 재정비했다. 앙헬은 일 년 동안 필자와 일을 했기에 필자의 일 하는 방식과 요구사항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호세와 마리아도 우리의 작업 표준에 익숙해져야 하기에 며칠 간 오전은 육묘장 오후는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육묘장과 공사현장을 이동하면서 앙헬은 내년에는 100만주를 만들고 직원 30명을 더 채용해서 회사를 키우고, 옥스나드를 한국 딸기로 가득 채우자며 호기를 부렸다.
 
처음 필자가 앙헬에게 그런 얘기를 했을 때 피식 웃었던 것이 생각이 난다. 그린하우스 한 동의 10분의 1 정도를 채워 놓은 상태에서 그런 얘기를 했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일한 1년 동안 모종의 수가 거의 100배 가까이 늘어나고 새로운 그린하우스가 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도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비전은 사람을 바꾸지만 그 비전이 눈에 보여야 실감을 하는 것이다. 비전은 하나하나 가시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공유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막연한 비전은 그저 희망고문일 뿐이다.
 
다행히 앙헬만큼 열정이 있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그린하우스 공사 현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채용한 까바요(Caballo, 본명은 페르난도인데, 이 친구들은 별명을 많이 부른다. 까바요는 스패니시로 말이라는 뜻이다)도 열정이 있는 친구이다. 공사가 지연됨을 걱정하는 필자에게 까바요는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빨리 완공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이제 고지가 눈 앞이고 함께하는 팀이 있으니, 남은 것은 지치지 않고 전진하는 것밖에 없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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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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