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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28) 한여름에 가을 준비…땀과 땅은 정직하다

한 달 반 고생 한국팀 귀국전
그랜드캐년 여행으로 보답
텅빈 작업장 허전…다시 시작

모종들 빠른 증식에 계획 수정
온실 12개동중 절반 완공한 뒤
모종 절반 옮기는 속도전 각오
내일 입추…시간과의 싸움될 듯

더위속에서 빠르게 자란 모종들이 바닥에서 이사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더위속에서 빠르게 자란 모종들이 바닥에서 이사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랜드캐년 여행중 들른 후버댐에서 기념촬영. 왼쪽부터 한국팀 신해동, 이현수와 박병욱 이사.

그랜드캐년 여행중 들른 후버댐에서 기념촬영. 왼쪽부터 한국팀 신해동, 이현수와 박병욱 이사.

한국팀 돌아가다
 
옥스나드에 한국식 육묘 전용동을 짓기로 결심할 당시에는 의욕이 넘쳐 모든 일을 쉽게만 여겼다.  
 
서툰 솜씨로 도면을 그리고 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한국으로 나갔지만, 필자가 그려온 스케치 수준의 도면으로는 필요한 자재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했다.
 
그때 미국의 박병욱 이사에게서 한국의 전문가 두 명이 와서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그 두 명은 한 달 정도 일정으로 자재가 도착하기 직전 미국으로 날아왔다. 지난 6월12일 LAX에 도착한 그들을 픽업해 옥스나드로 가면서부터 우리는 친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박병욱 이사와 죽마고우이고 마침 나이도 필자보다 한 살 어려서 만난 첫날 형동생 하기로 했다.
 
그들은 도착한 다음날부터 쉬지 않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며칠 후 한국에서 자재가 도착했고 컨테이너에서 쇠파이프를 꺼내는 순간부터 전문가를 실감했다.
 
만일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이 일을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과 기술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현지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노하우가 다르기에 이들은 말 그대로 일당백이었다.
 
작업 초기 함께 땀을 흘리며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강행군을 이어갔다. 쇠파이프가 땅에 박히고 그린하우스의 형태가 만들어지고 하루하루 눈에 보이게 작업이 척척 이루어져 갔다. 일이 잘 진척이 될 때는 일 하는 사람들도 힘들지만 즐거웠던 것 같다. 하늘이 도왔는지 예년보다 시원한 날씨는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린하우스 공사 초기에 함께 일을 한 후안과 마틴도 작업을 빨리 이해하고 팀워크를 잘 맞춰져서 드림팀을 이루었다.
 
하지만 우리도 사람이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 가기 시작했다. 초기에 함께 호흡을 맞추었던 후안과 마틴 등 멕시칸 인력들이 하나 둘씩 빠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가르치고 다시 호흡을 맞추는 일이 반복되면서 작업은 더디게 진행됐다. 게다가 무더위가 시작되고 설상가상으로 바람도 불기 시작하여 그린하우스 지붕에 비닐을 씌우는 작업에 며칠이 소요됐다.
 
어쩔 수 없이 귀국을 한 주 늦추면서 작업을 이어갔지만, 예정된 시간에 그린하우스는 완공이 되지 않았고 그들은 다시 일주일 체류를 연장했다. 한국에 계약된 공사가 있어서 더 이상 체류를 연장하지 못하는 그들은 중요한 작업만 마치고 마무리는 현지 인력들에게 남겨둔 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은 모두의 몫이었다. 그들은 일을 마무리하지 않고 떠나는 것에 마음이 무거웠고, 필자와 박이사는 그들 없이 나머지 작업을 마무리할 걱정이 태산이었다.
 
귀국 전 추억여행
 
옥스나드에는 두 개의 한국식당과 한 개의 아시안 마켓이 있지만, 매끼 식사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필자는 매일 LA에서 옥스나드를 오가며 마켓에서 장을 봐서 공급했고, 그들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카톡으로 장 바구니 리스트를 보내오면 아침에 한인 마켓에 가서 장을 봐서 가는 일이 귀찮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황금마차(부식을 나르는 차량을 일컫는 군대 용어)’를 기다리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가능한 빼먹지 않고 필요한 음식들을 공급하려 애썼다.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 카톡에 있는 온실팀 단톡방에서 고추참지, 다진마늘, 삼겹살, 소면 등의 단어들을 보면서 불과 며칠 전을 추억한다.
 
그들은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 함께 다저스 야구 경기를 관람한 것 외에는 계속 옥스나드에 머물면서 일만 했다. 이현수의 경우는 처음 미국을 왔는데, 옥스나드에서 땀만 흘리며 지낸 것이 너무 미안했다. 지난 토요일인 7월29일 오후 아쉬운 마지막 작업을 마치고 우리는 그랜드캐년으로 여행을 떠났다.
 
옥스나드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가는 5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고, 힘들었던 시간은 잊고 좋은 추억만 기억하기로 했다.
 
LA로 돌아와 저녁에 이별 파티를 하고 다음날 아침 그들을 보내고 나니 허전함이 몰려왔다. 그들이 없는 현장은 텅 빈 것 같고 앞으로 할 일이 막막하기만 했다. 이제 믿을 사람은 박 이사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를 도와줄 멕시칸 직원들이 잘 따라 주기를 기대하며, 마치 중단된 공사현장을 새로 인수받아 일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늘어나는 모종들
 
날씨가 더워지면서 늘어나기 시작한 모종의 숫자가 이제는 상당한 수준이 되었다. 욕심에는 아직도 부족하지만 해야 할 일들이 태산처럼 쌓여 간다. 지금쯤 그린하우스가 완공되어 모종들을 옮기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앙헬과 4명의 직원은 시마 농장에 있는 화분들을 옮겨와 현재의 그린하우스에서 모종들을 심기 시작했다. 새로운 그린하우스에 필요한 어미묘는 약 1만 주가 넘는데, 하루에 1000주씩 심어도 10일 이상 걸린다. 게다기 지금 그린하우스에는 그 화분들을 놓을 베드(화분을 올려 놓는 90cm정도 높이의 거치대)가 부족하다.
 
어쩔 수 없이 베드의 아래쪽에 화분들을 놓기 시작했는데, 채광이 잘 되지 않고 물을 주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채광이 되지 않는 쪽은 베드 위의 화분들을 들어내고 바닥에 6열로 화분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늘어난 모종들을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다. 하지만 제 집을 찾아 가지 못하고 길 위를 방황하는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은 더욱 급해진다.
 
계획을 수정했다. 원래는 12동의 그린하우스를 모두 완공하고 한번에 모종들을 옮길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고, 옮기고 난 후의 돌발변수들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북쪽의 6동을 먼저 완공하여 베드와 양액기(물과 비료를 자동으로 공급하는 장치)와 호스를 설치하고 모종의 절반을 옮기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육묘와 그린하우스의 공사를 병행해 왔지만, 작업의 양이 많아지고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상태이다. 공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자금이 많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 순간 조금 아끼려다가 크게 잃을 수 있기에 모든 자원을 투입해서 속도전을 치를 각오를 하고 있다.
 
농사는 시기를 놓치면 안 되고 한 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다. 단 하루의 실수가 일 년 농사를 망치는 일들이 허다하다. 이 정도까지 그린하우스를 만들어 준 한국의 전문가 신해동과 이현수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한 채 우리는 다시 땀을 흘려야 한다. 땀과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할지 모르지만, 흘릴 땀이 있고 그 땀이 성과를 낸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으랴. 내일(8일)은 입추다. 지금은 무덥지만 이제 곧 날씨는 서늘해 지기 시작할 것이다. 공사를 하기는 좋으나 모종이 자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가을이 오면 딸기를 내어다 심고 겨울이 지나면 딸기를 수확한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이 힘들지만, 이제 곧 결실을 볼 것이라 위로하며 오늘도 땀을 흘린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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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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