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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31) 혼자 물주고 비료주는 똑똑한 기계 아세요

농사에 가장 중요한 건 물관리
금실 딸기 품종은 더 까다로워
스마트팜 첫 단추 양액기 도입
완공된 새 온실에 드디어 설치

프로그램 해놓자 스스로 작동
정해진 시간·구역·비율 맞춰
온도 센서 따라 자동으로 공급
18개 베드에 양액 들어가 뿌듯

설치를 마친 양액기에 비료를 넣고 있다.

설치를 마친 양액기에 비료를 넣고 있다.

물 주기만 3년
 
우리에게 있어서 3이라는 숫자는 참 특별한 숫자인 것 같다. 어떤 각오를 하거나 일을 할 때 3년이 많이 언급된다. 서당개 3년에 풍월을 읊고 식당개 3년에 라면을 끓인다. 시집살이는 장님 3년,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이다. 큰 뜻을 품고 조용히 앞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3년 불비불명(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는다)이라는 말을 한다.  
 
농사에 있어서도 농사는 물 주기만 3년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것도 제대로 열심히 해야 3년 만에 물을 잘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농사에서 물관리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화분에 물도 제대로 주지 못 했던 필자가 미국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바로 물관리였다. 금실 딸기는 맛과 향, 당도 등에서 아주 우수한 품종이지만, 키우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오죽하면 경상남도농업기술원에서 발간한 금실 딸기 재배 가이드의 제목이 '까칠한 금실'일까.  
 


물관리에 대해 금실 딸기를 오래 키우신 분들에게 물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횟수와 양을 물어보면 누구도 딱 부러지게 말을 해 주지 않았다. 그때 들었던 가장 어려운 말은 금실은 물을 좋아하지만 물이 너무 많으면 안 되는 품종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얘기인지 더 혼돈이 왔다. 아직 3년 물 주기를 다 채우지는 못했지만, 이제야 그 말이 이해된다.
 
처음 샌버나디노 농장에서 모종을 키울 때부터 물관리로 많은 고생을 했었다. 한국에다 물어보고 시키는 대로 물을 줬는데, 어떤 전문가는 물이 많다고 하고 어떤 전문가는 물이 부족하다고 했다. 원인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았다. 모종들이 계속 상태가 나빠지고 죽어 가는 것들이 나왔다. 게다가 거기서 사용하던 지하수가 염분이 높다는 것을 알고는 민가에서 수돗물을 트럭으로 실어오는 일들을 반복했다.  
 
그런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새로 지은 그린하우스는 정수시설이 잘 되어 있어 순도가 높아 오히려 지하수를 10% 정도 섞어야 하는데, 초기의 그린하우스는 지하수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곳 옥스나드의 모든 딸기 농장들이 같은 지하수를 사용한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딸기들이 잘 자란다.
 
옥스나드로 옮긴 후, 첫 직원이었던 이 동네 백만주(딸기 100만주 키웠다고 본인이 강조해서 붙인 별명) 앙헬과 일을 하면서도 물로 인한 의견 충돌이 많았다. 미국 딸기는 튼튼하고 대규모로 재배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물관리를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앙헬은 육묘 단계에서 늘 물이 많으면 뿌리가 썩는다면서 물을 많이 주면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앙헬의 말이 일리는 있다. 하지만 한국의 딸기 농장을 가보면 이끼가 자랄 정도로 물을 흠뻑 주는 곳이 대부분이다. 앙헬에게 죽은 식물은 물을 섭취하지 못하니 화분에 물이 그대로 있는 것이고 건강한 식물들은 물을 다 섭취를 해서 물이 부족하다고 얘기해도 잘 수긍을 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초단기 유학을 다녀와서는 한국의 재배방식을 따르려 하고, 한국에서 유학한 농장의 노대현 사장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질문도 하면서 한국 방식을 배워가는 것 같다.
 
완성된 베드에 배관과 호스를 연결하는 작업 중.

완성된 베드에 배관과 호스를 연결하는 작업 중.

물관리사, 양액기 설치
 
그린하우스 자재를 수입할 때 함께 들어온 양액기의 설치를 드디어 마쳤다. 양액기를 설치하고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시멘트 포장, 전기, 배관, 인터넷 공사가 필요했다. 그린하우스 북측이 완성되어 베드에 모종들을 올리고 나니 앙헬은 하루에도 몇 번씩 왜 저기 있는 양액기를 설치하지 않느냐며 재촉했다. 세탁기나 냉장고처럼 전원만 꽂으면 되는 줄 아는 것 같았다.  
 
소프트웨어 테스팅 업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객을 만나 자동화 테스트에 대해 협의할 때가 있다. 기술을 잘 모르는 경영진들의 경우, 자동화 테스트를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화 테스트는 프로그램만 작동시키면 모든 테스트가 다 된다고 생각한다. 자동화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테스트 대상의 특성에 따라 수동 테스트보다 자동화가 경제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양액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프로그램을 해 놓으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구역에, 정해진 비율로, 정해진 양의 비료와 물을 공급한다. 여기에 온도 센서가 있어 기온이 상승해서 수분이 부족하면 자동으로 물을 주는 기능 등도 있는 아주 편리한 기계이다.  
 
한국에서 동일한 양액기를 본 앙헬은 양액기를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전원과 호스만 공급하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상당 부분 맞는 얘기이지만, 제한적인 기능에 한해서이다.  
 
농사는 노가다(막노동)가 전부 같다고 하니, 박이사는 "물과 비료는 양액기가 알아서 주고, 창을 여닫고 온도를 관리하는 것은 콘트롤러가 다 해주니, 사람이 할 일은 그 시설을 만들고 장비를 설치하는 노가다"라고 했다.
 
양액기는 전압 등을 미국에 맞게 조정해 왔지만, 새로 지은 그린하우스라 배관, 전기, 인터넷을 연결하는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필자는 일단 뜯어서 연결부터 하는 스타일이고, 박이사는 매뉴얼을 꼼꼼히 읽어보고 모든 것을 이해한 후에 작업을 시작하는 스타일이다.  
 
한국에서 온 비료 처방서의 단어 정의에서부터 양액기의 원리를 이해하느라 머리에 과부하가 걸렸다지만, 박이사 덕분에 양액기를 잘 설치해 프로그램까지 마칠 수 있었다. 처음 연결을 해서 테스트를 할 때, 필자가 이것 저것 마구 만져서 작동을 시키니 박이사는 '청계천 김박사님"이라고 했다. 이번 양액기 설치로 필자는 청계천 김박사가 되고 박이사는 옥스나드에서 드문 한국 양액기 전문가가 된 것 같다.
 
사람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3대 영양소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다. 식물에게 있어서 3대 영양소는 질소, 인산, 칼륨으로 각각 역할이 있다. 그래서 딸기의 경우 단계별로 그리고 식물의 상태에 따라 그 비율을 다르게 조절한다. 그 외에도 마스네슘, 철분, 칼슘 등 필요한 영양소가 많지만, 이곳에서는 이 3대 영양소의 비율로 나온 복합비료들을 많이 쓴다.
 
비료에도 박식한 전문가 박병욱 이사 덕에 미국 비료상에서 비료를 구입해 한국에서 보내준 처방대로 비율을 맞춰서 양액을 만들었다. 양액기가 작동하고 18개 베드에 비료가 잘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니 마음이 좀 놓였다.  
 
모종을 옮겨 놓고 호스로 물을 주다가 양액기를 설치하니, 막 이사를 와서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자장면을 시켜먹다가 식탁에서 제대로 밥을 차려 먹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첨단 스마트 팜들이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상황에서 원시적인 수준 같지만, 먼저 출발했다고 빨리 도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출발이 늦은 대신 앞서 간 분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빨리 배울 수 있고, 늦은 만큼 더 열심히 가면 된다. 우리의 농장 식구들은 양액기 하나 설치에도 뿌듯해 하며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친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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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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