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30) 온실 인테리어, 모종 6천주로 완성
기존 온실 모종 늘어 공간 부족
새 온실 공사·모종 이송 동시에
조선소 건설하면서 배 만드는 격
파이프 2천개·나사 1만개 박기
직원 시행착오 교육…작업 더뎌
트럭 10여차례 운송해서야 완료
아직 새 그린하우스가 완전히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기존 그린하우스에 더 이상 모종을 둘 공간이 없을 정도로 모종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육묘 베드 아래에 새로 심은 모종들을 세 줄씩 배치를 했는데, 햇볕이 잘 들지 않아 모종들의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비어있는 그린하우스들이 있지만, 그쪽으로 옮기면 결국 두 번 이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비어 있는 그린하우스에 모종을 옮기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시설공사가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은 새로운 그린하우스에 베드를 만들면서 동시에 모종을 옮기는 것이다.
마치 정주영 회장이 현대 조선소를 만들 때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동시에 배를 건조한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그린하우스에 설치해야 하는 베드의 수는 천 개가 넘는다. 베드 하나당 최소 두 개의 파이프를 땅에 박아야 하니 총 2000개가 넘는 파이프를 박아야 한다. 그리고 베드를 조립하고 침하방지 발굽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1만개 이상의 피스(쇠파이프에 박는 나사)를 드릴로 박아야 하고 8000개가 넘는 조리개로 파이프를 고정시켜야 한다.
박 이사의 진두지휘 하에 6명의 직원이 이 작업을 하지만, 처음 해 보는 작업이라 정교함이 떨어진다. 수평과 간격을 정확히 맞추는 수정작업을 추가로 하다 보니, 하루에 한 동을 완성하기도 빠듯하다. 베드의 수평이 맞지 않은 상태에서 관수(일정 간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 점적 호스로 화분에 물을 공급하는 것)를 하면 낮은 쪽으로 물이 모이게 되어 물관리도 힘들고 식물도 고르게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베드를 만들 때 수평을 맞추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파이프를 박기 전 수평과 간격을 맞추는 실을 가로 세로로 묶는 작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그렇게 정확히 실을 씌우고 사각 쇠막대로 파이프를 박을 위치를 정확히 표시를 해 주어도 작업이 끝난 후 레벨기(수평을 확인하는 기기)로 체크를 하면 맞지 않는 것이 상당수 발견된다. 박 이사는 계속 교육을 해도 개선이 되지 않고, 수정 작업에 오히려 시간이 더 소요된다고 한숨을 쉬지만 어쩔 수가 없다. 시간이 걸리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이 친구들을 계속 가르치며 함께 일을 해서 역량을 키워야 한다. 닥터문 농장은 이 그린하우스 하나로 끝나지 않고 매년 이 규모의 몇 배 되는 그린하우스를 계속 만들고 확장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그린하우스를 짓고 내부 시설을 하고 모종을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장비의 위대함을 알게 됐다. 그리고 작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린하우스 지붕에 파이프를 설치하는 작업을 할 때도 한 명씩 각자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코끼리 열차와 같은 작업대를 만들어 이동을 하면서 작업을 하니 속도가 몇 배로 빨라졌다. 미국에서 20년 농장 운영 경험이 있는 박 이사는 동선을 줄이고 작업의 정확도와 속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키타큐슈의 닛산 자동차 공장을 방문했을 때, 카이젠(Kaizen)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생각난다. 카이젠은 개선(改善)이라는 한자의 일본식 표현으로 나쁜 상황을 고쳐서 나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제조업에서 이용되는 용어인데, 생산설비의 개조, 공구의 개량 등 업무 효율의 향상과 작업 안전의 확보, 품질 불량의 방지 등 생산 전반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닛산 자동차 직원에게 카이젠은 '열 발자국 움직여야 하는 작업을 어떻게 하면 한 발자국을 줄일 것인 것?'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고 인건비의 비중이 큰 농사에서 카이젠은 경쟁력을 높이는 필수적인 과제이다.
지금은 일일이 손으로 파이프를 박고 있지만, 앞으로 규모가 열 배, 백 배로 커지면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할 수가 없다. 매일 작업 방식의 개선과 대안들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의 딸기 스승 노대현 사장은 베드를 만드는 작업 프레임을 자체적으로 제작한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전자 수평계와 측정자(ruler)가 달린 프레임은 정확한 위치에서 소리가 나고 작업자는 그 틀에 파이프를 넣고 해머드릴로 편리하게 파이프를 박으면 된다. 작업의 속도와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향상한 것이다. 미리 그런 프레임을 제작해서 가져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만, 직접 작업을 하면서 필요를 느끼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필요들이 계속해서 경쟁력을 만드는 발명을 만들어낼 것이다.
세상의 많은 발명은 대부분 '발견'이다. 그리고 최초라는 것도 사실상 드물다고 생각한다. 교수 시절 학생들을 지도할 때, 논문의 주제에 대한 선행연구와 유사연구들을 먼저 찾아보라고 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연구 주제가 지금까지는 없던 최초의 연구라 선행연구를 찾을 수가 없다는 답을 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이 세상에는 수십억의 인구가 있고,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고 행하고 있다. 지금 자신이 최초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구상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먼저 생각했을 확률은 거의 100%이다. 그래서 늘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고 다른 농장을 가서 둘러보고 인터넷을 검색해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모종 이송 대작전
이렇게 베드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새로 짓는 그린하우스 절반에 놓을 모종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모종은 해가 뜨고 더운 시간에 이동을 하면 안 되기에 아침 6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 모종들이 있는 그린하우스는 대규모 미국 딸기 단지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미국 딸기 농장들은 6월 말에 수확을 마치고 땅을 갈아 엎어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린다. 그래서 진입로는 물에 젖어 있고 농로는 사라져 그린하우스 앞까지 트럭이 들어갈 수가 없다. 후진으로 트럭을 운전해 가장 가까운 입구에 주차를 한 후 손으로 하나씩 화분들을 옮겨야 하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처음에는 트럭의 바닥에만 화분들을 실어서 옮겼는데, 한번에 500주의 모종을 실을 수 있었다. 8명이 바쁘게 움직여도 한번 이동하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10번을 왕복했지만, 아직 바닥에는 모종들이 상당히 남아 있었다.
트럭을 빌려 화분을 하나씩 들고 옮기는 것을 본 박 이사는 자신이 직접 더 큰 트럭과 다단 카트를 가지고 와서 작업을 도왔다. 5단의 카트에 화분을 싣고 옮기니 작업의 효율이 5배는 향상되는 것 같았다. 박 이사와 장비의 도움으로 마지막 작업은 수월하게 끝이 났다. 이날 옮긴 모종은 6000주에 달했다.
북측 그린하우스 두 동에 완성된 베드에 모종을 배치하고, 나머지 화분들은 남측 그린하우스 바닥에서 베드가 완공되길 기다리고 있다. 건축물 인테리어의 완성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웅장한 경기장이 텅 비었을 때와 관중이 꽉 찼을 때의 느낌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린하우스 인테리어의 완성은 식물이다. 전체 그린하우스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2동의 베드에 모종을 올리고 보니 비로소 그린하우스가 제대로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 같고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나머지 10동에 베드를 만들고 호스를 연결하는 작업과 전기 공사 등 마무리 작업들이 남아 있다. 평생 본 적 없는 양액기에 대해서 공부도 해야 한다. 정말 농사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도전할만한 일이고 가능성이 큰 분야라고 생각한다. 정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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