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34) 한국 딸기의 옥스나드 신화 이제 시작
작년 지은 육묘동 눈물의 철거
애플이 창업한 차고 같은 1호동
표준화ㆍ효율 제고 전략적 선택
추석에 새 그린하우스로 이사
240개 모종 1년새 12개동 채워
재배·판매 시설 마련에 분주
사무실 마련…딸기 사업 가시화
2022년 6월 18일 240주의 모종을 실은 트럭이 샌버나디노에서 출발해 옥스나드에 도착했다. 이 240주를 맞이하기 위해 3주 동안 그린 하우스에 측창을 만들고, 차광막과 환풍팬을 설치하고, 쇠파이프를 직접 잘라 벤치(수경재배를 위해 화분을 올려놓는 거치대, 고설베드)를 만들었다. 빈 땅에 문도 없는 비닐하우스를 빌려 육묘에 적합한 환경을 겨우겨우 만든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엉성한 육묘동이지만, 경험도 자재도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 번갯불에 콩을 볶는 속도로 지었다.
그렇게 3주간 일요일도 없이 일해 겨우 모종들을 옮겨 놓고 보니 그린하우스의 10%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 지난 1년 동안 이곳에서 말 그대로 피와 땀을 흘리며 모종을 키웠다. 그린 하우스에 벤치가 모두 만들어지고 그 위에 한국에서 들여온 화분들을 올리고, 그 화분들에 모종들이 꽉 찼을 때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난 겨울에는 여기서 딸기를 시험 재배해 H마트에서 시식회를 가져 좋은 평가도 받았다.
딸기의 수정이 잘 되게 하려고 가져다 놓은 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 아파했고, 판매하기에는 수확량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눈물을 머금고 꽃대를 꺾으며 육묘에만 전념했다.
좁은 그린하우스 안에서 화분을 공중에 매달아 키워보고, 한구석에 이랑을 만들어 노지재배 실험도 해보고, 바닥에 가로세로 1미터의 화분을 만들어 키워보고, 옆의 그린하우스 한 동에다 노지 육묘도 시도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많은 모종을 만들어 낼 것인가만 고민하며 지내온 1년이었다. 많은 자금이 소요됐지만, 이 그린하우스는 마이크로 소프트나 애플 같은 기업들이 창업을 시작한 차고(Garage)와 같은 존재였다.
새로 그린하우스를 만들 때 이곳에서의 경험과 깨달음이 많이 반영됐다. 1년 동안 약 50배로 늘어난 모종들은 벤치를 모두 채우고도 자리가 부족해 바닥에 3열 4열로 배치되어 새 그린하우스의 완공을 기다려왔다. 2차례에 걸쳐 모종들을 새 그린하우스로 이송을 하고도 어미묘 포트에 있는 모종들을 계속 이곳에서 키우겠다 생각했었다. 이 그린 하우스의 모든 시설들은 긁히고 찢어지며 피를 흘리고 땀으로 흠뻑 젖어가며 직접 하나하나 만든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비용과 관리 측면에서 부담이 크고, 두 군데를 오가며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수질과 환경이 다르기에 표준화된 작업 매뉴얼을 적용할 수가 없었다. 많이 아쉽지만 이 그린하우스의 모종들을 모두 새 그린하우스로 옮기고 이 육묘동을 폐쇄하겠다고 결정했다.
마지막 모종 이송 작전
기존의 그린하우스에는 약 2000주 정도의 어미묘가 있고 그 어미묘들은 한두 개의 러너를 달고 있다. 지난 두 차례의 이송 과정에서 약 20%의 모종을 손실을 보아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새 그린하우스에는 이 모종들을 수용할 공간이 확보되어 있었다.새 그린 하우스에 관수 설비를 완료하고 이송날짜를 지난달 29일 오전 7시로 정했다. 모종의 이송은 햇볕이 강하지 않고 덥지 않을 때 해야 한다. 다행히 이날은 구름이 끼고 기온이 서늘하지만 비는 오지 않는 날이었다. 음력으로는 추석이어서 길일이라고 생각했다.
새 농장에서 이송에 필요한 다단 카트를 트럭에 실으며 준비하는 동안, 기존 농장에서는 육묘 포트의 상토(인공 흙)들을 비우고 포트를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트럭이 도착한 후, 카트에 모종들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어미묘에 러너(번식하는 줄기)들이 붙어 있어 부주의하게 다루면 러너가 손상을 입기에 하나하나 싣는 과정을 옆에서 챙기면서 모종들을 실었다.
두 번의 이송작업을 해봤고, 함께 일한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직원들은 예전에 비해 아주 빠른 속도로 일을 진행했다. 아직까지 한국의 작업 현장과 비교하면 답답한 수준이고 남들은 잘 파악하지 못하겠지만, 2년 가까이 함께 일한 필자는 개선되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미국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힘든 것이 사람이었다. 좀처럼 바뀌지 않고 개선되지 않는 모습에 많이 답답해 하고, 실망스러운 태도에 속앓이를 많이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서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이들과 함께해야 하고, 이들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하나씩 보완해 가며 경쟁력 있는 조직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 과정은 무척이나 힘이 들고 엄청난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만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아직도 싸우고 있는 장기판에서 가장 고수는 졸(卒)을 잘 사용하는 졸 장기의 달인이다. 앞과 옆으로 한 칸씩밖에 못 움직이는 졸을 전략적으로 잘 사용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기술인 것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모든 사람들의 역량이 같지 않음을 제대로 실감했다. 가르쳐서 되는 사람도 있고,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의 역량과 가능성을 잘 파악해 그에 맞는 일을 시키고, 누구라도 실수 없이 작업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 바로 경쟁력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노력을 하고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모종을 싣고 떠날 때 그린하우스 이전 운영자인 미겔은 마치 영영 이별을 하는 것처럼 아쉬워했다. 그는 종종 내게 그린하우스를 몇 달만 쓰겠다더니 왜 안 비워주느냐며 농담을 하곤 했다.
이렇게 떠난 모종들은 무사히 새 그린하우스에 도착해 베드에 하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제 육묘동 12동이 모두 모종으로 채워졌다.
육묘의 조건은 고온단일이다.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러너가 나오는 속도가 떨어진다. 이곳 옥스나드가 기후 조건이 좋다지만, 여기도 겨울은 있고 강렬한 캘리포니아의 해도 짧아진다. 그린하우스에서 온도를 유지하며 1년 내내 육묘를 계획하고 있지만, 러너가 나오는 절정의 시기는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 한달 이내에 재배에 필요한 모종들을 최대한 생산해야 한다.
기업 형태를 갖추다
앞으로 농장은 기업이 되어야 하고, 농부는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하면 모종을 죽이지 않고 잘 키우느냐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모종의 수가 어느 정도 확보되고 안정적으로 육묘가 되는 시점에서는 재배와 판매, 그리고 성장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당장 다음달 중순부터 재배를 시작해야 하기에 재배용 그린하우스를 지어야 한다. 현재 14동의 재배 그린하우스를 지을 부지를 정리하고 필요한 자재들을 구입하여 다음주부터 공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재배한 딸기를 포장할 패킹 하우스와 모종을 보관할 냉장창고도 확보해야 한다. 포장용기, 박스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본격적인 생산과 판매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달 27일 농장에서 약 15분 떨어진 곳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지금은 이곳 책상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은 필자 혼자이지만, 곧 인사, 재무, 영업을 담당할 직원들이 하나씩 자리를 차지해 업무를 해나갈 것이다. 사무실 정리작업을 도와 주러 온 농장 친구들은 얼마 되지 않는 모종으로 시작한 딸기 사업이 가시화되는 것을 느끼는지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칸 월세방에서 시작해 전세로 옮기고, 내 집을 장만하는 과정들을 하나씩 이루어 가고 있다. 이제 겨우 전세로 옮긴 수준이지만 이제 닥터문 딸기의 본격적인 옥스나드 시대가 열리고 한국 딸기의 신화는 이제 시작된다고 허풍을 떨어 본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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