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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33) 모종 1500주 잃다…대책 마련 비상

새 온실에서 모종 20% 손실
식물도 생명…환경 바뀐 탓
물 공급량 조절 피해 최소화
실망해도 '이또한 배움' 위로

'아주심기' 재배동 더 짓기로
비용 더 들지만 품질이 최우선
20년된 육묘동 정리 부지마련
선난후이 효과 직원들 자신감

딸기 재배동을 지을 부지인 난 육묘동을 정리하기 전 상황.

딸기 재배동을 지을 부지인 난 육묘동을 정리하기 전 상황.

 
죽은 난과 흙을 정리한 뒤 말끔해진 공간.

죽은 난과 흙을 정리한 뒤 말끔해진 공간.



피 같은 모종 20% 손실
 
새로 지은 육묘(옮겨 심기에 가장 적합한 양질의 묘를 키우는 과정) 전용 그린하우스의 북측 6개 동이 약 6000주의 모종으로 가득 찬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미국 농장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일반 딸기 농가들과 비교해도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단 10주 모종으로 시작한 무모한 모험이었기에 이제 성공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한국에서 들여온 양액기를 설치하여 자동으로 물과 비료를 주니 이제는 정말 농장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을 가득 채운 어미묘들이 자손을 번식시켜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을 기대하니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모종을 옮기고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모종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기 시작했다. 처음 육묘를 시작할 때 이유 없이 죽어가는 모종들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악몽이 살아났다.  
 


필자뿐만 아니라 박 이사도 앙헬도 다른 직원들도 모두 긴장하기 시작했다. 시들어 가는 모종들에 흰 깃발을 꽂아 표시를 하면서 매일 상태를 살피고, 한국에 연락해 자문하며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정확한 원인은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모종이 죽어가는 이유가 몇 가지로 정리가 되었다. 첫째는 모종을 옮기는 과정에서 흔들림으로 손상을 입은 것이다. 특히 러너에서 자라 막 어미묘 포트로 옮겨 심어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못한 모종들이 손상을 많이 입은 것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신속히 화분을 나르다 보니 양손에 하나씩 들고 마치 학교 갈 때 신발 주머니를 흔들며 가듯 모종을 옮겼으니 당연히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이제 문제를 알았으니 화분을 옮길 때 손으로 들고 걸어서 이동하지 말고 카트에 실어서 최대한 충격이 가지 않게 옮기고, 어미묘 포트로 옮겨 심은 지 최소 일주일 이상 지나 뿌리가 자리를 잡은 모종들부터 단계적으로 옮기는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 모종을 채워야 하는 남측 그린하우스는 가능한 모종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어미묘 포트에 심기로 했다.
 
둘째는 물과 환경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도 타지에 가면 물갈이를 하고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식물도 생명체이기에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 지은 그린하우스는 모든 면에서 육묘에 적합하게 설계를 됐고 최적의 환경을 구현했기에 모종들이 잘 적응하도록 관리하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셋째는 물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새 육묘동에 있는 모종들은 나이와 생육상태가 제각기 다르다. 쉽게 말해 옛날 시골의 분교처럼 한 반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학생들이 다 있는 것이다. 적은 수의 모종으로 육묘를 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심은 시기가 비슷한 모종들을 같은 베드에 배치했지만 그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전 그린하우스의 관수 시스템과 수압과 수량이 달라 공급되는 물의 양이 많았다. 그래서 식물의 상태를 관찰하면서 물의 양을 조절했다. 2주가 지난 지금은 더 이상 죽어가는 모종들이 없지만, 전체의 20%가 넘는 1500주 정도의 넘는 피 같은 모종들을 잃었다. 가슴은 찢어지지만 이 또한 소중한 배움이었고, 1년 전 240주로 이곳에 와서 약 50배를 증식시켰기에 이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또 그린하우스 짓기

 
육묘를 해서 최대한 모종을 많이 늘려나가는 게 목표이지만, 우리의 비즈니스는 모종을 판매하는 육묘업체가 아니라 맛있는 딸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한국 딸기는 겨울딸기 품종이다. 한국의 경우 벌써 재배를 위한 정식(아주심기, 제대로 심는 것)을 시작했지만, 이곳 옥스나드의 기후를 고려했을 때 10월 중순에 정식을 하기로 계획하고 있다.  
 
그러려면 딸기를 재배할 그린하우스를 또 만들어야 한다. 딸기 농사를 잘 모르는 지인들은 그린하우스를 이제 완성했는데, 왜 또 그린하우스를 짓느냐고 물어본다. 심지어 너는 딸기는 안 팔고 그린하우스만 짓느냐  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육묘와 재배를 함께할 수 있는 겸용 동도 가능하지만, 모종의 수가 부족한 필자는 1년 내내 육묘를 해야 하기에 별도의 재배동이 필요하다.
 
미국 딸기의 경우는 노지에서 재배하기에 그린하우스를 짓는 수고와 큰 비용투자가 필요 없지만 한국 딸기는 그렇지 않다. 작년 노지에서 시험재배를 해 본 결과, 노지재배로는 한국과 같은 고품질의 딸기를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미국에서 한국 딸기를 키우기로 결심한 이유가 미국 딸기는 왜 맛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맛있는 한국 딸기를 만들겠다고 몇 년을 고생하며 한국 종자를 이곳 미국까지 가지고 온 이상, 비용과 노력이 들더라고 고품질의 딸기를 생산해야만 한다.
 
240주의 모종을 들고 옥스나드로 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딸기를 재배할 공간을 확보하려고 애썼다. 다들 아직 모종도 얼마 없으면서 왜 그리 땅을 구하러 다니느냐고 했지만, 도서관을 갈 때도 공부할 시간이 남는데 책이 모자랄까 가방 한 가득 책을 넣어가고 뭐든 다 잘 될 거라 생각하는 성격 때문이다. 그러나 모종 수가 그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았다. 물론 일 년 동안 이 정도로 늘어난 것이 기적 같기도 하지만, 기대는 더 컸었다.
 
이제 정확하지는 않지만, 10월 중순에 재배를 할 최대 주수가 예측이 된다. 육묘와 재배를 모두 자체적으로 하기로 한 이상, 재배동도 이곳 시마 농장에 짓는 것이 모든 면에서 최고의 선택이었다. 필자의 딸기 농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응원해 주시는 시마 농장의 정 사장님과 박 이사의 배려 덕에 난을 키우던 공간을 정리해서 재배동을 짓기로 했다.
 
20년된 시설을 정리하라
 
지금 지은 육묘동도 20년 동안 난을 키우던 곳을 정리해서 지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 시설들을 치우고 땅을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됐다. 20년 동안 흙이 쌓인 그라운드 커버는 사람의 힘으로 걷어낼 수가 없었다.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다시는 못 할 짓이라 생각한 그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이번에는 기존의 시설들을 활용하기에 육묘동을 지을 때보다는 쉽지만 이 또한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세계적인 산악인 친구에게 너는 지리산은 쉽게 올라가느냐고 물어보니, 동네 뒷산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라고 하던 게 생각이 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또 힘든 일이 시작된 것이다.
 
경영 사례에서 선난후이(先難後易, 어려운 것을 먼저하고 쉬운 것을 뒤에 한다)라는 말이 있다. 앙헬과 현지 직원들은 육묘동을 지을 때 처음 하는 일이고 워낙 고생을 했기에 또 그린 하우스를 짓는다면 다들 도망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재배동을 지을 구상을 얘기하고 3박4일 동안 짧게 한국을 다녀왔더니 재배동을 지을 공간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려운 일을 한번 해 봤기에 자신감이 생긴 것인지, 아무런 불평 없이 알아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육묘동을 지을 때에 비하면 작업의 난이도가 낮다고 하더라고 초기에 비해 작업의 속도가 많이 빨라졌다. 처음 등산을 가서 정상을 오르면 힘이 들어 다시는 등산을 가지 않을 것 같지만, 또다시 산을 찾게 되고 자주 가다 보면 힘든 것보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일까.
 
앙헬은 재배동을 지을 공간을 한 동씩 정리할 때마다 사진을 보내고 현장을 보여주며 의기양양해 한다. 앞으로 더 힘든 일이 반드시 생길 것이다. 하지만 시작단계에서 많은 힘든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을 해냈기에 우리는 어떤 힘든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해나갈 것이고 믿는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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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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