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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32) 과일 값 폭락은 밴드왜건 효과 탓

농사는 욕심ㆍ유혹 버려야 성공
반짝 유행 '테마주 작물'은 위험

가격 폭등 때 뛰어들면 과잉공급
출하 시기엔 값 폭락 현상 반복

샤인머스캣 가격 하락도 유사
경쟁력ㆍ실력ㆍ시장성 따져야

중앙일보 연재로 딸기 관심 높아
제안 많지만 기본 충실 또 다짐

올해 초 폭우로 피해를 입은 노지 딸기들. 이로 인해 공급이 부족해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올해 초 폭우로 피해를 입은 노지 딸기들. 이로 인해 공급이 부족해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농사는 기본에 충실해야
 
사람의 인생이나 다른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농사는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거나 잔재주를 부려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도 중요한 것이 기본을 지키는 일이다. 사람도 공부해야 할 시기에 공부를 해야 하고, 일을 해야 할 시기에 일을 해야 한다. 해야 할 것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과 기본을 지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은 욕심이 있고 세상에는 유혹이 많기 때문이다.
 
농사의 경우, 언뜻 보면 큰 변화 없이 기존에 하던 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농사는 근본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빨리 성과를 내기 어렵고, 불확실성이 높은 분야다. 그렇기에 당연히 유혹 또한 많다. 같은 면적에서 많은 작물을 수확하고 싶고, 획기적으로 당도나 맛을 높이고 싶은 것이 모든 농부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요사이 유튜브나 인터넷에서는 특수한 비료나 한약재를 사용하여 놀라운 성과를 낸다는 내용들을 수도 없이 소개된다. 누구나 귀가 솔깃하고 사용해 보고 싶은 것이 충동이 물결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과장되거나 그것 하나로만 그런 성과를 낸 것이 아니다.
 


농사를 짓는 것은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다. 남의 집 애가 전교 일등을 했는데, 들어보니 어느 학원에 다녔다고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내 아이도 그 학원에 보내면 전교 일등을 할까? 모든 부모는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고 싶어하고, 한국의 경우는 그 정도가 아주 심하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식을 하늘을 훨훨 나는 독수리 같이, 초원을 달리는 늠름한 사자 같이, 바다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 같이 키우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 학원 저 학원을 보내 많은 것을 배우게 했더니 결국 오리가 됐다고 한다. 날개 짓을 하며 조금 날 수도 있고, 뒤뚱대지만 뛰어다니기도 하고, 빠르지는 않지만 헤엄도 칠 수 있는 오리가 된 것이다.  
 
작물도 마찬가지다. 욕심을 내서 이것 저것 한다고 해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투자대비 성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유혹을 이기려면 작물의 속성과 원리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자신의 소신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농사, 불확실성이 높은 산업
 
농산물은 수요와 공급의 불확실성과 가격의 변동성이 아주 높다. 그래서 한국에는 '밭떼기' 거래(그 해 해당 밭에서 생산될 수확량을 사전에 정한 가격에 전량 매매하기로 계약하는 것)라는 것이 있고, 파생금융 상품인 포워드(Forward.선도거래)도 농사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작물을 재배해서 대박이 터졌다는 사례는 밴드왜건(Band Wagon.평승효과.서부 개척시대에 금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나면 역마차 밴드왜건이 곡을 연주하며 사람을 이끌고 갔다는 것에서 유래)현상을 일으킨다.
 
어떤 과일이나 작물의 가격이 폭등하면 다음해는 공급이 넘쳐 가격이 폭락하는 일이 반복된다. 대학원 시절 사과 농장에 대해 조사할 일이 있어 해당 업계 분을 만나 얘기한 적이 있다. 확인은 않았지만, 농사 짓는 사람 입장에서 사과의 가격은 윤년(역법을 실제 태양력에 맞추기 위해 2월29일을 둬서 일년이 366일인 해로 4년에 한번 온다)에 가장 좋다고 했다.  
 
사과의 가격이 좋으면 다들 사과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자라 수확할 때에는 공급이 많아져 가격이 폭락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해에는 사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줄어 공급이 부족해져 다시 가격이 오르는 일이 반복되는데, 가격이 좋은 해가 공교롭게 윤년이라고 했다. 아마도 사과나무를 새로 심어서 수확하기까지 2~3년이 걸리니 그 사이클이 윤년과 일치하나 보다.
 
그리고 기술이 발달하고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과일이나 작물의 개발도 많아지고, 소비자의 요구도 다양해 진다. 옛날 한국에서는 바나나가 값비싼 귀한 과일이었지만, 지금은 망고, 용과, 패션푸르츠 등등 예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과일들이 우리의 식탁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며 고가로 팔리던 샤인머스캣은 공급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며 고가로 팔리던 샤인머스캣은 공급이 늘어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포도만 해도 샤인머스캣(Shine Muscat), 블랙사파이어(Black Sapphire)와 같은 새로운 품종들이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농사를 짓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같은 노력으로 더 큰 수익을 올리는 쪽에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또한 주식시장의 테마주와 같다고 본다. 폭등 뉴스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할 때 그 주식을 매수하면 막차를 타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품종이나 작물을 시작할 때는 3가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들 한다. 첫째는 그 작물과 품종 자체의 특성과 경쟁력에 대한 평가, 둘째는 그 작물을 과연 자신이 남들보다 잘 재배할 수 있는가에 대한 평가, 셋째는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이 상품을 어느 정도로 얼마나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평가이다. 물론 여기에는 비용과 경쟁자에 대한 기본적인 분석들이 들어간다.
 
순간의 실수, 십 년 망친다
 
어찌 보면 농사는 가사노동과 같다. 열심히 하면 티가 안 나고, 안 하면 바로 티가 나는 것이 그렇다. 일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물을 주고 온도 관리를 하고 병충해도 잘 대응하다 단 하루를 방심하거나 실수를 하면 일년 농사를 다 망칠 수 있다.
 
며칠 전 캘리포니아에서 큰 농장을 운영하시는 한인께서 연락이 왔다. 한국 딸기를 재배하려는데 모종을 공급해 줄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그 농장은 다른 품종의 딸기를 재배했는데, 모종을 냉장보관하고 한 달 반 동안 한국을 다녀왔더니 모종이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딸기는 휴면타파라고 분화를 위해 냉장처리를 하기도 하고 다음해 정식을 할 때까지 냉장보관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 품종을 다시 구하려 해도 구할 수가 없던 차에 필자가 한국 품종을 들여야 미국에서 증식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연락을 한 것이다. 이처럼 농사는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 일년 농사를 어떤 경우는 그 비즈니스 자체를 망칠 수가 있다.
 
이제 새로운 그린하우스도 부분적으로 완공이 되고 모종의 수도 늘어나니 필자도 직원들도 욕심이 생기고 유혹이 많아진다. 가능성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하면 이 모종들을 잘 살려서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만 걱정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모종을 생산하고 더 빨리 확장을 할까를 고민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도 좋은 비료나 재배 방법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직원들도 다른 농장이나 인터넷에서 듣고 본 것들을 우리도 하자며 연일 제안을 한다. 또한 중앙일보 글을 읽고 연락을 주시는 분들도 많다.
 
조직배양묘 10주를 달랑 들고 미국을 오던 때에 비하면 이제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이 생겼다. 하지만 아직도 농사에 있어서는 걸음마 수준이다. 걸음마 단계에서 가장 많이 넘어지고 또 넘어져야 제대로 걸을 수 있다.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어려운 농사일이지만 기본에 충실하자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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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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