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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35) 규모 커진 딸기농장, 시스템을 갖추다

모종 2000주 잃고 초심 회복
대량생산 위한 분업화 시스템
직원 각자 능력따라 업무 배정

육묘·시설팀 짜니 능률 향상
미국서 농사는 사람 키우는 일
최고 인력이 최고 딸기 만들어

육묘팀의 마리아가 모종을 관리하고 있다.

육묘팀의 마리아가 모종을 관리하고 있다.

 
시설팀이 그린하우스의 비닐을 마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시설팀이 그린하우스의 비닐을 마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Back to Basic: 초심으로
 
아직도 한국의 도로에서는 자동차에 초보운전, 병아리 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운전이 가장 서툰 시기이지만, 오히려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다닐 때는 큰 사고가 나지 않는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가장 사고가 많이 나는 시기는 운전에 자신이 붙어 초보운전 스티커를 떼고 난 이후이라고 한다. 즉, 방심을 하기 때문이다.
 
딸기 농사를 지으면서도 마찬가지를 경험한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이 불안하고 확신이 없어 경험자에게 물어보고 재차 삼차 확인을 하고 무엇인가를 실행했다. 그러나 이제 딸기가 잘 자라고 모종이 늘어나니 자신감이 생기면서 안이해졌다. 특히나 그린하우스를 급하게 지어야 하는 상황이라 딸기의 재배보다는 공사에 더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작물을 잘 키우는 것이다.
 
새 그린하우스로 모종을 이송하고 난 이후 2000주가 넘는 모종들을 잃었고, 재배가 눈 앞인데 아직 모종의 수는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곧 인디언서머(Indian Summer)가 오면 기온이 올라가 당분간 러너가 잘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기존의 그린하우스를 철거했기에 새 그린하우스에서 육묘에 차질이 생기면 큰 문제다.  
 
다시 긴장하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종을 빨리 늘이기 위해 욕심을 내거나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요령을 피우다가는 더 큰 손실을 보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종 하나하나를 목숨 같이 여기고 하나라도 시들면 잠이 안 오던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분업과 전문화
 
현재 닥터문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은 제각기 경험도 전문성도 다르다. 딸기 재배에 경험이 많은 직원들도 있지만, 딸기 농장 경험이 없거나 전혀 다른 업무를 했던 직원들도 있다. 딸기 농장에서 일을 해 보았더라도 단순한 허드렛일이나 지게차와 트럭을 운전하는 업무만 했던 직원들도 있다. 초기에는 규모도 작고 직원의 수도 적어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던 상황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일의 체계도 없었고, 계획은 세웠지만 그날 그날 필자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 왔다.
 
하지만 이제 모종과 직원의 수가 늘어났기에 직무설계와 업무분장을 명확히 하고 체계적으로 일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생산방식에 많은 혁명이 일어나고 다양한 생산방식이 개발되어 적용되었지만,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본적인 방식은 분업과 전문화이다. 인류 역사에서 분업과정은 오래전에 시작되었지만, 이론적으로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6.16~1790.7.17)가 10년에 걸쳐 1776년에 완성한 저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분업이 생산성의 증대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미스는 핀(Pin)의 제작과정을 예로 들어 한 사람이 핀을 만들 경우 하루 1000개의 핀을 만들 수 있지만, 10명이 18개의 공정으로 세분화하여 작업을 진행한다면 수천 개의 핀을 더 생산하는 생산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필자의 부친은 핀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했었다. 자동화 기계가 도입되기 전의 공장에서 철사를 펴는 직선공정, 철사의 끝을 갈아 뾰족하게 만드는 연마공정, 철사를 구부리는 과정과 철판으로 머리 부분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이를 조립하고 도금을 하는 과정까지 많은 공정들이 세분화되어 진행되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다.  
 
농장에서는 이 정도의 분업을 할 수는 없지만, 정식과정에서는 상토를 만들고 화분에 넣는 과정과 화분에 모종을 심는 과정을 분리하여 진행하고, 육묘를 전담하는 직원과 시설을 만드는 직원들을 분리했다.  
 
초기에는 심어야 하는 모종의 수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필요할 때마다 상토를 물에 불려서 그때 그때 작업을 했지만, 이제는 한번에 1톤 트럭 분량 이상의 상토를 만들어 화분에 넣고 옮겨야 한다. 예전에는 삽으로 물에 불린 상토를 배합했지만, 이제는 별도의 작업장에서 소형 불도저로 상토를 배합하고 카트에 화분을 500개 이상씩 적재해 이동시키고 있다.  
 
작업의 능률 또한 많이 향상되었다. 대량 생산의 메커니즘이 도입된 것이다.
 
직원들 중 15년 이상 딸기를 재배한 경험이 있는 마리아와 1년 이상 함께 모종을 키우는 일을 하고 있으며 물 관리를 잘하는 호세가 육묘를 전담하게 했다. 그린하우스를 A구역과 B구역으로 나누어 A구역은 마리아가 B구역은 호세가 담당하게 하고 하루의 일과를 정해 관리가 소홀해 지지 않도록 했다.
 
시설부분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그린하우스를 짓는 일에 참여한 페르난도와 윌프리모, 그리고 건축일에 경험이 많은 알프레도 등으로 팀을 구성했다. 나름대로 전문성을 고려해서 팀을 만들고 각자의 경력과 능력에 맡게 업무들을 배정한 것이다.  
 
작물만 키우던 친구에게 공사를 시켰을 때 힘들어 하고, 작물을 모르는 친구에게 작물 관리를 시켰을 때 버벅대던 일이 많이 줄어들었고, 일의 속도나 능률도 많이 향상되고 있다.
 
철저한 관리가 생명
 
모든 일이 그렇지만 농사의 경우는 모든 상황이 통제되고 관리하에 있어야 한다. 영어로 Under Control(통제되는 상태)이어야지 Out of Control(통제되지 않는 상태)이 되면 문제가 생긴다. 일을 할 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직원들의 역량을 높이고 자율성을 부여하고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것이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다. 그렇기에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우리 농장은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고, 구축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모든 직원을 믿고 함께 일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교육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지금까지 정규직보다는 일용직 형태로 일을 해 왔기에 조직으로 일을 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에 익숙하지가 않다. 한 사람이 해야 할 일에 서너 명이 붙어 있기도 하고, 카트로 한번에 500개씩 옮기면 될 화분을 하나씩 손에 들고 100미터를 걸어다니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시킨 일이 끝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거나 빗자루 하나 들고 몇 명이 청소만 하고 있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속이 터지지만, 이를 개선해 나가는 것 또한 딸기 사업에서 중요한 과제이다.
 
우선은 이 친구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고, 자기 일에 긍지까지는 몰라도 책임감을 가지게 하고, 성과를 내어 사업이 잘 되면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수입도 늘어난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한국사람들과는 근무태도나 사고방식이 너무나도 다르기에 이를 고려해서 조직을 만들고 관리해 나가야 한다. 일을 가르쳐 놓으면 그만두고 나가는 경우도 있고, 마음을 쓰고 잘 대해줬는데도 실망을 끼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미국에서의 농사는 작물을 키우는 것보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실감한다.
 
모든 일은 사람에 달려있다.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일을 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 아직은 체계가 잡혀있지 않고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나 초심을 잃지 않고 사람과 작물을 키우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닥터문 딸기를 최고의 사람들이 키우는 최고의 딸기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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