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38) 한국딸기, 나파 밸리서 길을 찾다
나파 와인의 세계적인 명성
1976년 파리의 심판서 입증
최적의 토양·기후 만난 곳
숨은 비결은 오픈 이노베이션
음식·문화 함께한 공간 진화
한국 딸기도 현지화 혁신 필요
와인은 9000년 전부터 애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품질의 고급화를 추구한 와인이 등장한 것은 1960년경 프랑스 보르도 의회 의장이었던 아르노 드 퐁탁(Arnaud de Pontac) 덕분이다. '사토 오브리옹(Haut-Brion)'의 소유주였던 그는 높은 품질의 고가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레드와 화이트로 포도 품종을 분리했다. 그리고 최상품의 포도를 선별해 양조 숙성의 정확도를 추구했다.
상용화된 오브리옹의 가격은 다른 고급 와인의 세 배에 달했고, 1세기 동안 라투르(Latour), 라피트(Lafite), 마고(Margaux)를 필두로 보르도의 여러 와이너리들이 뒤를 이었다.프랑스는 와인 생산량으로는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2위지만, 국토 전체에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보르도와 부르고뉴 등 누구나 들어본 명산지가 있는 와인왕국이다. 프랑스 와인은 원산지명칭통제(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llee)에 따라 포도의 품종, 제조법 등이 정해져 있고 시장에 나와 있는 프랑스 와인은 모두 이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킨 것이다. AOC가 보호한 프랑스 와인은 높은 품질을 자랑하며 로마네콩티, 패트뤼스, 몽라셰 등 고급와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기에 와인 애호가들은 프랑스 와인을 고가의 고급와인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1976년 와인의 역사를 바꾸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와인 애호가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건으로 영화 '와인 미라클'의 소재인 '파리의 심판'이다.
1970년대 파리에서 와인 사업을 하던 영국인 시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가 자신이 운영하던 와인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미국 와인을 프랑스에 소개하려 기획한 시음행사였다.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를 방문했던 스퍼리어의 친구가 미국 와인의 맛과 품질에 놀라 미국 독립전쟁 200주년을 기념해 미국 와인 시음회를 개최할 것을 제안했고, 나파의 조앤 드푸이(Joanne DePuy)의 도움을 받아 아내와 함께 와인투어를 하며 와인을 선정했다.
당시 세관은 1인당 한병의 와인만을 허용했기에 여행객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36병의 와인을 한 명씩 나누어 들고 입국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깨고 미국 와인 사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의 샤도네이가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이 와인의 가격은 단돈 6.5달러였다니 더욱 충격이었을 것이다.
오전 화이트 와인의 충격적인 결과에 이어 오후에 열린 레드와인 테이스팅에서도 미국의 스택스 립 와인 셀러스(Stag's Leap Wine Cellars)의 카베르네 쇼비뇽이 1위를 차지했다.
이 역사적인 현장에 있던 타임지의 파리 특파원 조지 테이버가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기사화하면서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파리의 심판' 30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재대결에서 1위에서 5위까지를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이 차지하며 위상이 높아졌다.
나파 성공축, 개방형 혁신
파리의 심판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나파 와인은 프리미엄 와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기업인 LVMH(Louis Vuitton, Moet & Chandon, Hennessy)그룹이 Joseph Phelps 와이너리를 인수하고 한국의 신세계가 Shafer 와이너리를 인수하는 등 나파 와인의 인기와 성장은 계속되고 있다.
전세계 와인 생산량의 0.4%,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량의 4%에 불과한 나파 와인이 이처럼 성공한 원인으로 많은 이들이 나파의 지형과 기후를 꼽는다.
나파 밸리의 떼루아(Terroir: 와인의 원료인 포도의 경작에 적합한 토양과 환경)는 포도재배에 완벽한 지중해성 기후로 재배 기간 동안 화창하고 따뜻하며 건조한 날씨가 이어져 포도가 천천히 고르게 익을 수 있다. 저녁 기온이 낮아 큰 일교차로 인한 포도의 산도 유지에도 적합하다. 질병 및 곰팡이의 위험도 낮다.
그런데 나파 밸리의 성공 주원인은 천혜의 자연 이외에 또 있다. 개방형 혁신 즉,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파리의 심판 챔피언인 사토 몬텔레나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다. 프랑스 와인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정해진 방식으로 동일하게 제조되는 반면 나파 와인은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며 혁신을 추구하고 제조 방법을 공유하며 와인의 품질을 높여간다고 했다. 즉 혁신적이고 협력적인 와인 메이커 커뮤니티가 나파 밸리의 명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파 와인의 오늘을 있게 한 중요한 인물이 몇 명 있으나, 필자는 워렌 위니아스키(Warren Winiarski)와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의 역할을 높게 평가한다. 위니아스키는 기후와 토양의 최상조합을 찾아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실험을 실행했다.
로버트 몬다비는 와이너리를 단순히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와인과 조화되는 음식, 미술 등 문화가 함께하는 공간으로 진화시켰다.
그는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알래스카 한류의 영향으로 추운 나파 밸리 남쪽에서는 '피노누아'와 '샤도네이'를, 따뜻한 북쪽에서는 '카베르네 쇼비뇽'을 재배했다. 그리도 많은 연구를 통해 프랑스 보르도 와인에 버금가는 질 좋은 와인을 만들고 중요 연구결과를 주변 다른 와이너리와 공유했다.
일종의 오픈 이노베이션인 것이다. 나파 밸리의 좋은 기후와 환경에 인간의 역할이 더해지면서 나파 밸리가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한국 딸기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옥스나드는 딸기 재배에 최적의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다. 옥스나드 뿐만 아니라 샌타마리아, 왓슨빌, 시애틀도 한국 딸기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다.
기후만 보았을 때 한국의 딸기 산지들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그린하우스와 같은 시설이 더해지고 우수한 한국 품종이라면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소비자에게 사랑을 받는 명품 딸기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한국 딸기를 키우며, 한국식 재배 기법을 도입하고 한국과 동일하게 재배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환경과 시장은 한국과는 다르다. 농장을 넘어 기업으로 딸기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현지화와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미국의 딸기 재배 방식, 새로운 기술과 기기, 그리고 유사 분야의 노하우를 접목해 많은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목표와 방향은 동일하나 방법에서는 혁신을 기해야 한다. 좋은 음질의 음악을 편리하고 저비용으로 즐길 수 있게 한다는 동일한 목적에서 LP, CD, MP3 등 기술은 혁신을 지속하고 있다. 미국에서 한국 딸기를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에 대한 오랜 고민을 하던 중 나파 와인에서 한국 딸기가 나갈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본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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