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36) "여러분은 소중하다" 한마디가 낳은 변화
농사 하드웨어는 그린하우스
한국서 공수해온 온실 자재
옥스나드 현지서 조달 성공
재배동 짓는데 경쟁력 확보
소프트웨어의 핵심은 직원들
인간적 신뢰·비전 공유해야
워크숍 열어 '함께하자' 강조
그후 인사·격려말 부쩍 늘어
모든 사업은 하드웨어(Hardware)와 소프트웨어(Software)가 잘 갖춰줘야 하고, 프론트 오피스(Front Office)와 백오피스(Back Office)의 연계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고객에게 최종 생산물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생산하기 위한 조직과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딸기농사도 비즈니스이기에 이러한 요건들을 잘 갖추어야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
맛있는 딸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딸기의 생육에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고 이를 통제하는 시설과 딸기를 재배하는 기술과 인력이 필요하다. 전자를 하드웨어라고 하면 후자를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딸기뿐만 아니라 모든 농사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최근 놀라운 수준으로 향상되고 있다. 하드웨어의 경우 570년 전 조선에서 최초의 온실이 만들어진 이후, 비닐하우스가 보편화하고 이제는 첨단 스마트팜의 개발이 가속화되며 시설재배는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됐다.
특히 한국의 스마트팜은 해외로 수출되고 대기업들도 연구개발과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한국이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 기후변화의 위험이 높아지고 경지 면적이 좁은 한국에서 단위당 수확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스마트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스마트팜 분야의 선진국인 네덜란드는 스마트팜 보급률이 99%인데 한국은 아직 보급률이 미미하다고 하지만, IT 강국이며 모든 분야에서 후발주자로 시작해 선두주자가 되어 온 한국의 저력으로 보아 멀지 않은 시기에 한국은 스마트팜 분야에서도 세계 1등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북미의 스마트팜 보급률이 한국보다 높다는 통계자료가 있지만, 딸기 재배의 경우 미국은 아직 노지재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미국의 딸기 농장들을 방문해 보면 육묘와 연구를 위한 시설들을 제외하고는 스마트팜은 물론 비닐하우스 재배도 찾아 보기 힘들다. 이는 미국의 기술과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의 차이라고 본다.
미국 딸기는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이를 통해 지금까지 딸기의 강국으로 자리 잡았기에 진화가 느릴 수밖에 없다. 기존의 시스템에 한계를 느끼면 혁신을 생각하지만, 기존 시스템으로 사업에 문제가 없으면 혁신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딸기 농사를 시작하면서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은 한국 딸기의 품종이 우수한 것이 첫 번째 이유지만, 마치 공룡 같은 미국 딸기 농사와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스마트팜까지 가지 않더라고 한국의 딸기 재배 시설은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높은 수준이다. 그런 한국과 동일한 시설을 갖추기 위해 컨테이너로 자재를 실어오고 한국의 기술자들을 초빙해서 육묘전용 그린하우스를 완성했다.
현지 인력들이 이러한 그린하우스를 지어본 경험이 없고 자재와 작업방식이 익숙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직원들의 역량도 조금씩 향상되고 비용절감과 공기단축의 노하우도 생겼다.
육묘동이 완성됨과 동시에 이제 딸기의 재배를 위한 재배동을 짓기 시작했다. 욕심 같아서는 이번에도 한국에서 자재를 모두 들여와 제작하고 싶었지만, 앞으로 미국에서 시설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표준화와 현지화를 해야 한다.
다행히 박 이사가 그동안 거래를 하면서 업체들을 파악해 놓아 시장조사의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재배동 제작에 필요한 파이프의 규격과 수량을 파악한 후 업체를 찾았다.
박 이사가 미리 조사한 가격의 범위를 알려주며 이 가격 이상으로 견적을 받아 오면 호구이고, 이 가격 이하로 가격을 받아오면 베스트라고 했다.
약속한 시간에 업체를 방문해 담당자와 대화를 시작했다. 한국 딸기의 우수성과 미국에서 한국 딸기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지난번 한국에서 파이프를 수입해서 들여온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미국에서 그린하우스를 계속 제작할 예정인데, 미국의 파이프 가격이 한국의 두 배에 달해 고민이 크다고 했다. 한국에서 파이프를 구입해서 오는 것이 비용상 저렴하나 물류비용과 운송 시간의 문제가 있기에 좋은 가격에 안정적인 공급을 해줄 수 있는 업체를 찾으러 왔다고 했다.
그러니 담당자는 자기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가격을 제시한다며 견적을 주었다. 박 이사가 베스트라고 적어준 가격보다 훨씬 더 좋은 가격으로 물류비와 관세 등을 고려하면 한국보다 크게 비싸지 않은 가격이었다.
이렇게 구입한 파이프가 농장으로 배달이 되어왔다. 한국에서 수입한 파이프를 하역할 때에는 컨테이너 안에 빼곡히 쌓여 있어 두 대의 지게차로 끌어내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다. 그야말로 파이프와 사투를 했는데, 이번에는 묶음을 지게차로 내리기 쉽게 적재해 한 시간 만에 파이프를 모두 내릴 수 있었다.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이제 이 파이프들로 14동의 재배육묘 겸용 그린하우스를 한 달 안에 완성해야 한다. 무리한 일정을 잡은 것은 진행 과정의 불확실성도 있었지만, 향후 사업의 확장에서 이 정도의 속도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딸기 농사에서 그린하우스가 하드웨어의 전부는 아니나 이곳에서 차별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하드웨어는 그린하우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린하우스 자체의 수준과 제작의 효율성에서 경쟁력을 갖추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핵심은 사람
미국에서 딸기 농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람관리이다.초기에는 딸기 재배기술이 없고 제대로 자라지 않아 늘 노심초사하며 배우고 익히기에 전념했다. 그렇게 하여 딸기가 제대로 자라고 모종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함께 일하는 사람의 수도 늘어났다. 이곳 옥스나드의 딸기 농장은 그야말로 멕시칸 커뮤니티다. 영어를 못하면 문제가 없지만 스패니시를 못하면 농사짓기 힘들다.
그들은 문화도 다르고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도 다르다. 그러기에 한국식 재배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조직을 관리하는데도 문제의 연속이었다. 일을 가르치면 말없이 그만두기도 하고, 사소한 일들로 불만을 드러내고, 직원들간에 알력과 갈등도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엄격한 노동법으로 한국과 같은 업무태도와 작업량을 기대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을 자동화해야 하나, 한국에서 인재를 데려와야 하나, 수 없이 고민을 했다. 자동화를 해도 기본적인 인력은 필요하고, 한국에서 인재를 데려오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그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인사 조직관리의 이론과 시스템의 구축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신뢰와 비전의 공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침에 업무를 시작하기 전 일종의 조회를 하며 그날 할 일을 정리해 주고, 수시로 대화를 하며 친분을 쌓아 나가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점심을 먹으며 워크숍을 했다. 교수직을 떠난 이후 정말 오랜만에 PPT를 만들어 지금까지 한국 딸기를 키워온 과정과 앞으로의 비전, 사업방향을 설명했다.
우리가 사업을 성장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여러분이니, 우리의 목표를 함께 달성해 가자고 했다. 그날 이후 작지만 변화는 생겼다. 농장을 가면 반갑게 인사하고 먼저 말을 건네고 의견을 얘기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어떨 때는 자기들이 열심히 할 테니 걱정 말라며 필자를 응원해 준다.
하드웨어는 누구나 모방할 수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쉽게 모방할 수가 없다. 힘들지만 딸기 사업의 핵심 소프트웨어인 사람을 잘 키워 우리의 경쟁력을 만들어 가야 한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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