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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되다 (37) 금실 딸기의 어머니, 미국 오다

한국 윤혜숙 박사팀 농장 방문
모종 상태 점검하고 현장 지도
병 감염된 모종 가려 전부 뽑아

윤 박사 '저자 직강' 열정 감동
칼퇴하던 직원들 남아서 경청
일주일간 관광일정 없이 농사만
한국서 온 24살 연수생도 합류

농장 직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윤혜숙박사(좌측에서 두번째)와 안재욱 연구사(좌측에서 5번째).

농장 직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윤혜숙박사(좌측에서 두번째)와 안재욱 연구사(좌측에서 5번째).

 
금실딸기 개발자 미국 방문
 
금실딸기는 2016년 한국의 경상남도농업기술원에서 육성한 품종으로 수확시기가 빠른 촉성재배용으로 당도가 높고 신맛이 덜한 장점이 있다. 또한 완숙됐을 때 복숭아 향이 나서 풍미가 깊고 과형(과일의 모양)이 예뻐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품종이다. 특히 수출에 적합하여 한국 딸기 수출의 70%를 차지하는 우수한 품종이다.
 
이 금실 딸기의 개발자인 경상남도농업기술원의 윤혜숙 박사가 자식과도 같은 금실을 보기 위해 최근 미국에 왔다. 2020년 7월 8일 진주에서 금실 품종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할 때 윤 박사는 눈시울을 붉히며 감격했다.  
 
당시 윤 박사는 노지 재배에 적합한 미국 품종과 달리 온실에서 세심하게 관리하여야 하는 까칠한 금실이 미국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딸기 농사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미국에서 육묘부터 시작해 금실 딸기를 키우겠다고 하니 귀한 자기 자식들을 물가에 내놓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지속적으로 금실 딸기의 상태와 근황을 사진과 글로 공유했지만, 이곳의 환경과 상황을 모르기에 답답한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간다.  
 
윤 박사는 미국에서 가져간 농장 물의 수질을 검사해 육묘와 재배에 필요한 양액 처방(비료의 양을 최적으로 조합한 처방전)을 해주고, 병충해 방제 방법도 자세히 설명해 주는 등 그동안 많은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종묘 수출 계약 당시 미국에 기술 지도를 하러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코로나 19와 미국 현지 육묘의 더딘 진행으로 인해 방문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종묘 수출 계약을 한 지 3년, 직접 미국에서 딸기 육묘를 시작한 지 2년째 드디어 윤혜숙 박사는 공동연구자 안재욱 연구사와 함께 미국을 방문했다.  
 
윤 박사의 방문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아직 보여줄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에서 윤 박사를 맞이하는 데 다소 거리낌이 있었다. 제대로 잘 자리를 잡은 후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무원들이 미국을 방문하면 형식적으로 현장을 돌아보고 간다는 선입견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윤 박사팀은 달랐다. 도착해서 가는 날까지 배움과 감동의 연속이었다.  
 
옥스나드를 방문하자마자 윤 박사팀은 장갑을 끼고 금실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그린하우스로 옮긴 후 시들고 죽어 가는 모종들이 많아 걱정을 하던 차에 의사 선생님이 왕진온 것 같았다.  
 
윤 박사는 시들은 모종의 관부(모종의 뿌리와 줄기가 만나는 지점)를 잘라 물이 공급되는 관이 손상을 입은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겉으로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감염이 되고 병이 시작되는 단계의 모종들이 많다는 것을 파악했다.
 
결국은 위생관리와 물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유튜브와 책에서 익힌 지식으로 너무 과도한 관리를 한 것이다. 하엽 정리과정에서 잎을 꺾다 보니 상처가 생기고 관부가 흙에 묻혀서 감염이 된 것 같다.  
 
나름대로 열심히 관리한다고 매일 같이 진행한 작업들이 식물에 스트레스와 상처를 주었고 물관리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윤 박사는 지금은 멀쩡해 보이나 앞으로 병이 발생해 다른 작물에도 영향을 미칠 모종들과 자라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모종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아깝겠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며 모종을 뽑아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다.
 
윤 박사(오른쪽)의 지도를 받으며 어미묘를 심고 있는 마리아와 알프레도.

윤 박사(오른쪽)의 지도를 받으며 어미묘를 심고 있는 마리아와 알프레도.

진정한 현장 교육
 
다행히 옥스나드의 기후 조건이 좋아 앞으로 한 달 정도 더 육묘를 할 수 있고, 정식을 11월 말에 해도 수확에 지장이 없다는 판단을 했다. 건강한 어미묘의 수를 늘려 모종을 증식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하고 윤 박사팀은 뿌리가 자란 자묘들을 어미묘 포트에 이식하기 시작했다. 자식을 생산할 어미묘를 더 만들고 이 어미묘에서 모종을 최대한으로 만들어 재배를 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이미 시들고 죽은 모종이 있던 화분은 상토(흙)가 오염됐을 수 있으니 새 흙으로 교체했다. 급하게 배달되어 온 코코피트 블록(코코넛 껍질의 섬유질을 제거하고 분쇄해서 가공한 흙으로 압축이 되어 있어 물로 불리는 과정이 필요하다)을 물에 불리어 흙을 만들고 화분을 채워 나갔다.이 과정에서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어 직원들의 퇴근 시간이 됐다. 농장의 직원들은 아침 7시30분에 일을 시작해 3시면 퇴근을 한다. 3시가 되면 칼 같이 일을 멈추고 퇴근을 하는 게 이곳 직원들이다.  
 
하지만 윤 박사팀이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육묘를 배워야 할 두 명의 직원을 불러 한국에서 온 전문가에게 이렇게 일을 배울 기회가 다시 없을 수도 있다며 시간외 수당을 지불할 테니 남아서 일을 배우겠냐며 의사를 물었다.
 
두 명의 직원은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며, 금실 딸기의 개발자인 윤 박사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윤 박사와 사진을 찍은 후, 마리아와 알프레도는 윤 박사에게 배우며 작업을 이어갔다.  
 
나름 이 동네에서 딸기를 오래 키운 경력자라고 자부하던 그들이지만, 금실의 개발자이자 박사라고 하니 배우려는 자세가 달라졌다. 윤 박사는 왜 이렇게 해야 하는 지와 작업하는 방식들을 일일이 설명하고 직접 보여주면서 그들을 지도했다. 금실딸기 개발자가 금실딸기 재배 방법을 가르치니 '저자직강'인 셈이었다.
 
그들이 퇴근하고 난 후에도 윤 박사는 해가 질 때까지 모종을 심고 앞으로의 관리 방식을 직접 정리해 주었다. 현지 직원들이 헷갈리지 않게 격일로 잠그기로 한 밸브들에 노란 테이프를 일일이 감아 표시해 주고, 박 이사에게도 물관리 가이드 라인도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함께 온 안재욱 연구사는 금실딸기 관리에 필요한 농약들을 조사하고 현지에서 구입해 직접 방제를 했다. 해가 져서 어둑어둑한 그린하우스 안에서 직접 한 포기 한 포기 정성껏 관주를 했다. 미국에 왔으면 관광도 하고 맛집도 가야 하는데 항상 그린하우스에서 일만 하는 것이 미안해 관광을 제안해도 미국을 방문한 목적은 금실딸기를 미국에서 잘 키울 수 있도록 지도하고 도와주는 것이라며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들이 미국에서 유일하게 간 곳은 채소와 과일을 판매하는 미국 마트와 한국 농산물을 수입하는 유통업체들이었다. 진정으로 작물을 사랑하고 농업에 열정을 가진 공무원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한국에서 연수생이 오다
 
윤 박사팀이 떠나기 하루 전 한국에서 연수생이 미국으로 왔다. 99년생인 젊은 인재 김건우군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예정이었으나, 미국에서 딸기농사를 배우고 경험해 한국 딸기사업을 성장시키는데 기여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온 것이다.  
 
건우는 공항에서 바로 농장으로 와 윤 박사팀으로부터 딸기 키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젊고 의욕이 있어도 장시간 비행에 지치고 시차적응으로 힘들 법도 한데, 건우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열심히 배워나갔다.  
 
채 일주일이 되지 않은 짧은 방문이었지만, 윤 박사팀은 2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겨우겨우 이어 온 딸기농사를 안정되게 지속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 준 것 같다. 이 한 번의 지도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도 아니고 딸기 농사에 필요한 기술을 충분히 배운 것도 아닐 것이다. 윤 박사가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딸기 농사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이다. 무엇이든 알고 나면 쉬운 법이고 알아 가는 과정이 힘든 것이다. 아직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고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지만 칠흑 같은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만나 방향을 다시 잡은 것 같다.
 
미국에서 처음 시작한 한국 딸기 농사는 머나먼 항해와 같았다. 그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항로와 멤버이다. 가야 할 길이 명확하고 함께 갈 사람이 있으면, 아무리 멀고 험난한 길이라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무작정 노를 젓고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항로도 바뀌었지만, 이제 어렴풋이 육지가 보이는 것 같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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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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