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42) 4년만에 꽃 피다…이제 열매 맺을 때
새 재배동 가성비 고려해 설계
9개 동 골격 완성 마무리 단계
내주부터 본격 모종 옮겨심기
육묘동 모종마다 꽃 활짝 피어
빠르면 1월 중순부터 수확 예상
포장·보관·배송 등 출하 준비
'미국딸기 왜 맛없나' 고민 결실
지난여름 무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육묘동을 완성하자마자 딸기를 재배할 그린하우스의 공사를 시작했다. 미국식 터널 하우스를 응용한 방식이라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이 또한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육묘동을 만들 때는 처음 짓는 그린하우스라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예산을 훨씬 초과한 비용이 소모됐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이 경험을 살려 가성비를 고려해 재배동을 설계했다. 농사도 사업이다 보니 수익성을 따질 수밖에 없었다.
기업경영에서 사용하는 TCO(총소유비용: Total Cost of Ownership)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장비나 설비를 구입할 때, 그 자체의 가격에 보유기간 동안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고려해 최적의 선택을 하는 기법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자동차 가격만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구매 비용에 더하여 연비와 세금 등의 유지비용과 중고차 가격 등을 모두 고려해 결정을 한다.
그린하우스뿐만 아니라 농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구입할 때도 이러한 TCO 개념을 활용해야 한다. 그린하우스의 내구 연한을 생각해서 과연 이렇게 지으면 몇 년 동안 사용이 가능할 것인지,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비닐은 얼마나 자주 교체해야 하고 그 비용은 얼마가 될지, 강풍 등으로 인해 파손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 지와 그 경우의 수리비용 등을 모두 고려해서 설계를 한다.
자재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제품의 수명과 작업의 효율 등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자재는 가격은 싼데 조립하기가 불편해 오히려 인건비가 몇 배가 드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구입 가격은 낮을지라도 TCO는 높아진다.
미국에서 그린하우스를 지으면서 한국 농자재의 우수성을 일찍이 실감했지만, 이번에 재배동을 지으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육묘동을 지을 때는 한국에서 쇠파이프를 모두 수입해 컨테이너로 싣고 왔지만, 이번에는 미국 현지에서 조달을 했다. 다행히 가격 협상을 잘해서 좋은 가격에 구입을 했지만, 사용을 하면서 품질의 차이가 나타났다.
쇠파이프는 철판을 둥글게 말아서 이를 접합해서 만든다. 그렇다 보니 안 쪽을 보면 접합 부위가 보인다. 한국산 파이프는 접합을 잘해서 어떤 각도에서 파이프를 구부려도 문제가 없으나, 미국에서 조달한(중국산이다) 쇠파이프는 각도가 안 맞으면 쇠파이프가 터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작업을 할 때 쇠파이프를 구부리는 방향과 고정을 위한 피스(결합나사)를 박을 위치를 고려해야 하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그리고 현지 인력의 숙련도가 많이 향상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 사람과 같은 능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지구력과 근력은 한국 사람보다 뛰어나도 계산하고 머리 쓰는 일, 특히나 세세한 마무리는 한국 사람을 따라올 수가 없다.
국토가 좁고 자원이 한정된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좀더 빨리 좀더 쉽게 작업을 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이곳의 작업자들은 시간당 임금을 받고 주어진 시간 동안 일을 하는 습관 때문인지 효율에 대한 개념이 떨어진다. 그래서 처음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떻게 작업하는 것이 빠르고 정확할지를 고민해서 작업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11월30일 목요일 드디어 지붕의 골격이 완성됐다. 이제 여기에 비닐을 씌우고 다음주면 딸기를 생산할 모종을 옮겨 심는다. 11월 말까지 끝내려던 계획이 조금 지연되었지만, 예정보다 크게 늦지는 않았다.
만만치 않은 출하준비
육묘동에서 정식을 기다리고 있는 모종들은 이미 꽃이 나오기 시작했다. 12월 첫째 월요일부터 정식을 시작해서 빠르면 1월 중순부터 딸기를 수확할 수 있을 것 같다. 2019년 8월 라구나비치에서 '미국 딸기는 왜 맛이 없을까'라는 얘기로 시작된 지 4년 반 만에 딸기가 정식으로 출하되는 것이다.
하지만 딸기 출시에 대한 기대와 설렘보다는 걱정이 태산이다. 수확과 출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험이 없기에 하나하나 과정에 모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오래 걸리고 직접 농사를 짓고 생산을 할 것이었으면, 한국에서 1년이라도 딸기 농사를 짓다 올 걸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재배동이 완성된다고 해서 딸기만 심으면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물과 비료를 공급할 관수시설이 마무리되어야 하고, 온도와 빛을 조절하기 위해 차광막과 난방시설 등 추가적인 설비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리고 딸기를 재배할 인력의 교육도 필요하고 수정벌도 투입해야 한다. 작년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벌들을 죽인 기억이 있기에 벌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고민이다.
이런 재배과정들은 크게 걱정이 없지만, 출하를 위해 준비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딸기를 수확하면 포장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숙달된 장인이 한 땀 한 땀 예쁘게 딸기를 포장하지만, 여기 인력들은 그렇게 해 본적이 없다. 그래서 난좌가 있는 클램쉘(한국 농부들은 도시락이라고도 부른다)을 사용할 예정이다. 이 용기도 기성품을 구입하거나 원하는 형태로 주문제작을 할 수 있는데, 업체도 미국, 한국, 중국의 다양한 업체들이 있다.
해외에서 구입을 할 경우 품질과 가격 외에 물류비용과 배송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이제 며칠 내에 주문한 샘플이 도착하면 포장용기를 결정하고 발주를 해야 한다. 그리고 포장용기의 라벨이나 띠지, 그리고 박스도 디자인을 해야 한다.
어떤 분야에 처음 진출하는 사람들이 항상 고민하는 것은 혁신과 차별화이다.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 또한 관례(Conventional)라는 무시 못할 벽에 부딪힌다. 어떤 분야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는 관례는 다 이유가 있다. 그래서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디자인을 세련되게 하고자 하는데 이 또한 쉽지가 않다. 그래서 기존의 산업 표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디자인에 차별화를 두고자 노력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딸기의 맛이다. 아무리 멋지게 포장을 해도 딸기가 맛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핵심은 예쁜 포장이 아니라 모두가 예상하던 한국 딸기의 달고 부드러운 맛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고객들이 우리 딸기의 맛을 인정하고 생산규모가 커졌을 때 혁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외에도 수확과정, 포장과 보관, 물류 등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뭐든지 시작이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듯이 시작을 잘못하면 바꾸기도 힘들고 훗날 더 큰 비용이 노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딸기는 겨울과 봄이 수확의 계절이다. 지난 4년 반의 시간이 헛되지 않게 마지막 준비에 만전을 기하며 수확의 계절을 맞이한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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