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40) 농부가 매일 주유소에서 줄 서는 까닭
혹한 없는 곳이나 겨울은 겨울
육묘 위해 섭씨 20도 유지 필요
열풍기 가격 저렴해 구입했지만
연료 비싸고 매일 기름통 날라야
한국서 온 아들뻘 연수생 든든
멕시칸 직원 작업량 1.5배 소화
'나 없인 망해'하던 직원들 변화
실력 익듯 딸기도 달콤해질것
남가주는 산간지역이 아니면 겨울에 눈이 오거나 얼음이 얼 정도로 춥지가 않다. 그래서 이곳에 살면 세월의 흐름을 잘 느끼지 못한다. 겨울이라고 해도 겨울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옥스나드 지역은 겨울이라고 해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농사에 최적의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미국에서는 육묘 전문업체나 대형 딸기 회사에서 공급해 주는 모종을 심어 딸기를 재배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자가 육묘를 하는 농장들이 많다. 한국에서도 육묘 전문업체가 있으나, 육묘가 딸기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딸기를 잘 키우는 농장들은 자가 육묘를 한다. 필자의 경우도 미국의 대형 육묘전문 업체에 금실 딸기의 육묘를 맡겼지만, 속도가 나지 않아 자가 육묘의 길을 병행하고 있다.
어릴 적 생물시간에서 배웠지만 아직도 헷갈리는 것이 영양생장과 생식생장이다. 영양생장은 잎이나 줄기 등 식물의 뿌리, 줄기, 잎 등이 자라는 것이고, 생식생장은 꽃이나 열매가 자라는 것이다.
즉, 모종을 만드는 육묘기에는 영양생장을 시켜야 하고, 딸기의 열매를 수확해야 하는 재배기에는 생식생장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생장 시기에는 적합한 기후조건이 있다.
육묘기에는 해가 길고 온도가 높은 '고온장일', 재배기에는 해가 짧고 기온이 낮은 '저온단일'의 환경이 유지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한국 딸기 사업이 힘든 것은 바로 모종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서다. 뿌리가 난 모종을 한국에서 가지고 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유리병에 든 10개의 조직배양묘를 가지고 와서 개체 수를 무한정으로 늘려가야 하기에 아직은 일 년 내내 육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작물은 24시간 평균온도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개화 및 수확을 위해서는 섭씨 14도 전후, 육묘를 하기 위해서는 섭씨 20도 전후가 좋다고 한다. 몰론 빛의 양에 따라서 1~1.5도 정도 높거나 낮게 관리할 수도 있다.
현재 옥스나드 지역은 낮의 최고 기온이 22~24도 정도이며, 밤 최저기온이 11~15도 정도이다. 낮의 경우, 그린하우스 안의 온도가 35도까지 올라가지만, 해가 지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외부와 1~2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한국은 겨울이 워낙 춥기에 비닐하우스를 2중, 3중으로 만들고 보온 시설도 잘 만들어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기에 한 겹의 비닐로만 만들어 야간에는 온도가 외부보다 많이 높지가 않다. 재배를 할 때는 기온 차가 많이 나야 당도가 높아지기에 오히려 좋지만, 육묘를 할 때는 이런 온도에서 러너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최대한 밤 온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시키려 한다.
야간 온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장비로 한국에서 대포라 부르기도 하는 디젤 열풍기가 있다. 디젤 열풍기는 비싸지 않다. 그리고 온도를 설정해 놓으면 설정온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온풍기가 작동하고 설정 온도 위로 온도가 올라오면 자동으로 꺼진다.
처음 이 열풍기를 사용할 때는 화재가 발생할까 걱정돼 새벽에도 자지 않고 수시로 CCTV 화면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새로 지은 육묘동은 6개의 작은 그린하우스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연동 형태라 6개를 1개동으로 봐야 하는데, 이 한 개의 육묘동의 야간 온도를 높이기 위해 2개의 열풍기를 양쪽에 배치했다. 디젤 열풍기 한대의 연료 통은 10갤론(약 37.6리터)으로 그다지 크지가 않다.
처음에는 열풍기의 가격이 그렇게 비싼 것이 아니라 여러 대 갖다 놓으면 되겠다고 쉽게 생각을 했고, 실제로 한 대를 작동해서는 전체의 온도를 유지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열풍기가 아니라 열풍기를 작동시키는데 필요한 연료였다.
야간 온도가 떨어지면 하루 저녁에 열풍기의 연료가 바닥났다. 매일 작은 기름통을 들고 주유소를 가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름통은 하나가 5갤런(한국의 '말통'보다 조금 작다)짜리인데, 열풍기 한 대에 필요한 디젤은 이런 통으로 거의 매일 2개가 필요했다.
더 큰 기름통이 있겠지만 이보다 크면 들고 옮기기가 힘들고 깔때기로 연료를 열풍기에 넣기도 힘들어 5갤런짜리 기름통들을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농사를 짓는 지인들이 유가의 변동에 신경을 써는 것이 의아해 물어보니 연료비 때문에 그렇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처음에야 농사짓는데 난방비가 뭐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겠느냐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사용해 보니 연료비의 부담이 상당했다.
현재 옥스나드 지역의 디젤 가격은 갤런 당 6달러 정도로 열풍기 한대에 들어가는 연료비는 매일 60달러 정도이다. 육묘동 2개에 4대의 열풍기를 작동시킬 경우, 하루에 240달러(한화로 30만원)정도로 한 달이면 연료비가 한 달에 1000만원 정도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육묘동의 크기가 그리 큰 것도 아니고 모종의 수도 많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비용이다. 한국에서는 농업용 연료는 면세라 가격이 싸다고 하는데, 여기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매일 주유소에 가서 기름통을 바닥에 줄을 세워 놓고 하나씩 채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대형 온풍기를 설치하면 연료 공급업체에서 연료 탱크를 제공하고 연료도 공급해 주지만, 아직 그럴 규모도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매일 디젤을 사다 나르는데 한 시간 이상을 쓰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 차에서 거름 냄새가 난다는데, 지금 필자의 차는 기름 냄새가 가득하다.
위대한 한국인
다행히 이런 수고스러운 일을 함께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 한국에서 온 연수생 김건우군이다. 건우군은 필자보다 28살이 어린 아들뻘 되는 친구이다. 미국에 처음 왔고 농사 경험이 없는 건우군이지만 성실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훌륭한 친구다. 건우군이 오고 난 이후,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자기들이 아주 전문가이고 일을 잘한다고 자부하던 멕시칸 직원들의 태도다.
어느 나라의 어떤 회사에서던 자기가 없으면 이 회사가 굴러가지 않고 망할 거라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특히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자기가 없으면 농장 운영이 안 될 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건우는 평범한 한국인이다. 천하 장사도 아니고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도착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아 이곳 직원들을 앞서 나갔다. 한 가지 단순한 사례로 이곳 시마 농장에서 사용하던 난을 키우던 베드를 딸기 재배용으로 바꾸기 위해 쇠파이프를 전기톱으로 잘라 규격을 맞추는 작업을 했다.
전기톱으로 쇠파이프를 자르면 베드가 흔들려 자르기가 쉽지 않기에 2인이 1조가 되어 한 명이 전기톱으로 파이프를 자르는 동안 나머지 한 명은 쇠파이프를 잡아 준다. 한두 시간 정도 그렇게 하고 난 후, 건우는 잡아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전기톱으로 쇠파이프를 자르기 시작했는데, 멕시칸 직원 2인 1조가 자르는 양의 1.5배를 잘랐다. 힘이 세지 않은 필자도 멕시칸 직원 두 명이 자르는 양 정도는 혼자서 자른다. 힘이 아닌 요령이다.
한국 사람들은 흔히들 JQ라고 하는 잔머리 지수가 발달하여 있다. 그리고 학습 능력이 뛰어나서 어떤 일이든 빨리 배우고 성실하기까지 하다. 거기에 도전정신까지 있으니, 세계 어디에서든 한국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잘 사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건우가 오고 난 후 직원들은 그동안 필자가 답답해 하던 이유도 알고, 한국에서 자신들을 대체할 우수한 인재들이 올 수 있다는 것도 깨달은 것 같다. 한국 딸기를 먹어 보고 한국 딸기의 우수성은 인정한 그들이 한국인이 일하는 것을 보고 한국인을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이지만 한국 농장에서 일하는 그들 또한 우수하게 성장할 것이고, 이곳에서는 맛있는 딸기가 계속 재배될 것이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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