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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박사, 미국농부 되다(43) 벌들이 윙윙…크리스마스 선물은 수확

240주 모종 1년새 100배 성장
생산위한 재배동 마무리 한창
성탄 즈음 딸기 딸 수 있을 듯

작업중 머리다쳐…다행히 경상
더디던 비닐 덮기 속도 빨라져
수정벌, 항공으로 배송돼 도착

육묘동에서 자란 이 모종을 옮겨 심을 재배동 내부. 총 16개동을 짓는데 마무리 단계다.

육묘동에서 자란 이 모종을 옮겨 심을 재배동 내부. 총 16개동을 짓는데 마무리 단계다.

인고의 세월
 
샌버나디노에서 딸기가 자라지 않아 밤잠을 못 자며 고민하다 원인은 환경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어떤 산업이던 모여 있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위성 사진으로 미국 딸기의 집산지인 옥스나드 지역을 살펴 보았을 때, 끝없이 연결된 그린하우스가 눈에 들어오며 심장이 뛰었다. 바로 여기다. 이곳으로 가서 딸기를 키우자는 결심을 했다. 그런데 막상 옥스나드를 와서 보니, 그린하우스들은 대부분 딸기를 키우는 그린하우스들이 아니라 블루베리 등 다른 작물을 키우는 그린하우스였다.
 
그렇게 더부살이로 시작했지만 옥스나드의 딸기 농사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한국에서 자재까지 실어와 한국식 육묘동을 직접 만들게 됐다. 50톤의 쇠파이프와 자재들, 그리고 컨테이너 2개에 운반된 화분들로 육묘동을 완성했다.
 
달랑 모종 240주를 들고 옥스나드에 온 지 1년여 만에 모종의 수는 10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이제 그 모종들을 심어 딸기를 생산하기 위한 재배동을 짓고 있다.
 


옥스나드 지역의 주요 인력은 멕시칸들이다. 영어가 아닌 스패니시가 공용어인 지역에서 그들과 일하면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 도와주는 사람도 멕시칸이었던 반면, 속을 썩이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도 멕시칸이었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투자라고 믿었었기에 큰 비용을 들여 한국까지 보내 연수도 시켰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왔었다. 그래도 작물을 키우는데 열정이 있기에 매니저 역할을 맡겨 보았지만, 결국 문제만 일으키다 그만 두게 됐다.
 
육묘동을 지을 때는 시일이 촉박하고 공사의 난이도도 높아 인력이 많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많은 멕시칸들을 고용했다. 8명이 필요하면 10명을 구했다. 며칠 일하다 힘들다고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연락도 없이 다음날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서 여유 인력을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게 일을 가르쳐 놓으면 그만둬서 또 새로운 사람을 구해 가르쳐야 하는 일들이 반복됐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기대했던 수준의 그린하우스를 완성할 수 있었던 건 한국에서 온 전문가 신해동, 이현수와 시마 농장의 박병욱이사 덕이었다. 7월의 무더위 속에서 그들과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땀을 흘렸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기에 툭하면 다쳐서 피를 흘리는 일들이 일상이었다. 이 그린하우스들은 말 그대로 피와 땀으로 만든 것이다.
 
육묘동이 완성되고 대부분의 일들이 자동으로 제어가 됐기에 고용했던 인력들이 모두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일용직이라도 3개월 이상을 고용하면 해고가 쉽지 않다. 규모도 커지니 노동법 등 HR 이슈들이 중요하게 등장했다.
 
직원들의 요구사항은 많아지고 사람으로 인한 문제들이 작물을 키우는 것보다 더 큰 과제가 됐다. 항상 사람을 믿고 정을 주고 함께 즐기며 일하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모든 것이 마음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계속 사업을 하려면 이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육을 하고, 작업 매뉴얼을 만들고, 성과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시스템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새로 매니저를 임명하고, 시설팀과 운영팀, 지원팀으로 조직을 구성했다. 그리고 주간, 일간 작업 계획을 세웠다.  
 
직원 개개인의 성격과 능력, 기술을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프로세스 개발에 몰두했다. 아직 만족할 수준도 아니고 여전히 속은 터지지만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능률이 향상되고 있다.
육묘동 딸기 꽃에 앉은 수정벌.

육묘동 딸기 꽃에 앉은 수정벌.

 
재배동이 완성되다

 
이제 모종은 정식(아주심기)을 할 수 있을 만큼 자랐고, 꽃도 피기 시작했다. 이 속도면 크리스마스에 딸기를 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마음은 더 급해졌다. 이제 재배동에 비닐만 씌우고 물과 비료를 공급할 파이프와 호스의 연결만을 앞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비닐 씌우기 작업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한국에서는 혼자서 비닐을 씌우기도 하던데 6명이 붙어도 하루에 한 동만 씌우니 속이 터졌다. 퇴근 시간을 한 시간 정도 남겨 둔 시점에서 직원들은 두 번째 동의 비닐을 씌울 생각을 않고 있었다. 하나 더 씌우려 조급하게 덤비다가 비닐하우스 사각 쇠파이프에 머리를 부딪쳤다.  
 
피가 주르르 흐르며 얼굴은 피로 덮였다. 그 상황에서도 지혈해가며 건우군과 해가 질 때까지 마무리 작업을 했다. 다음날 아침 병원을 가서 이제 피가 안 나니 꿰매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했다가 선생님께 혼이 났다. 머리를 꿰매고 농장으로 가니, 오전 내내 한 동도 작업을 마치지 못하고 있었다. 퇴근 전에 모두 불러서 작업지시를 했다.  
 
이번 주 안에는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각자의 역할과 임무를 재확인했다.
 
그리고 다음날,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이틀 동안 불과 3개 동밖에 비닐을 씌우지 못했는데, 일과가 끝나기 전에 5개 동의 비닐 씌우기 작업이 완료된 것이다. 잘했을 때는 칭찬해 줘야 한다. 한 명 한 명 등을 두드려주고 치킨을 시켜 함께 먹으면서 "더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워 줬다.
 
농사를 지으면서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여러 번 결심했다. 상황이 좋다가 금방 나빠지기도 하고, 나쁘다가도 좋아지는 경우가 늘 발생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주문을 하고 일주일이 넘게 걸려 수정벌이 배달되어 왔기에 이번에는 미리 주문을 했는데, 하루 만에 항공으로 배송이 왔다. 아직 재배동이 채 완성되지 않아 다 풀어놓진 못하고 잘 살아들 있는지 조심스럽게 벌통속을 살펴보고 있다. 이제 다음주면 재배동에 모종이 가득 차게 된다. 그 속을 벌들도 필자도 직원들도 바쁘게 다니며 맛있는 딸기를 키우게 될 것이다. 
 
문종범
 
보스턴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1년간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의 IT 업체 '와이즈와이어즈' 글로벌사업본부장으로 미국에와서 딸기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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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범 농부·경영학박사 jmoon7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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