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점프 업 - 샌프란시스코] 뒷마당 텃밭을 600에이커 농장·마켓으로 일궈 내
근면·성실 하나로 맨땅서 우뚝 아들은 의사 꿈 접고 농학 전공 자부심 갖고 농가명문 이룰 것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열심히 농사를 짓다가 싱싱한 야채를 지역 한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마켓까지 냈다. 농사일은 물론이고 마켓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내친 김에 또 하나의 마켓을 세웠다. ‘김스 농장’‘산타클라라 교포 마켓’‘산타클라라 슈퍼교포 플라자’를 일군 김창대(71)·스티브 김(한국명 성욱·43) 부자의 이야기다. 교포마켓과 슈퍼교포 플라자는 김스 농장에서 직접 경작한 상추·깻잎·미나리·파 등 신선한 한국 채소 판매해 꾸준한 명성과 인기를 이어오고 있다. 1세대인 김창대씨는 1980년부터 30년째 농사를 짓고 있으며 아들 스티브 김씨는 1994년 교포마켓을 연 이후 2대째 ‘농업과 마켓 경영’을 대물림해오고 있다. <편집자 주> ‘너무도 하기 싫던 농사일 돕기’ 스티브 김씨의 가족들은 김씨가 7살이던 1975년, 경남 진주시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다. 당시 김씨의 아버지는 6·25 전쟁 후 한국의 어려운 경제, 불안한 정세, 자녀의 미래와 교육 등에 관해 고심하다 이민을 결정했다. 처음 도착한 알라바마주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해 그 후 1년 만에 버지니아로 이주를 거치며 힘든 정착 시기를 보내던 중 1977년, 지인의 권유로 김씨 가족은 캘리포니아주에 첫 발을 내딛었다. 김씨는 당시 부모와 5남매가 작은 이사트럭 하나로 일주일이 넘는 미 동서부 횡단 ‘대장정’에 올랐던 기억에 대해 “지겹도록 가도 끝이 안보이던 것과 트럭 타이어가 빠져 온 가족이 고생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캘리포니아주로 이사온 후 김씨의 아버지는 샌호아킨 밸리 농장에서 토마토, 포도밭 등의 고된 노동 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 당시 고된 노동 중에도 김씨의 아버지는 한국과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가족들을 위해 뒷마당에 작은 텃밭을 일궈 깻잎, 상추 등을 길렀다고 한다. 텃밭의 규모와 채소 재배량이 식구들이 먹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 늘어나자 김씨 아버지는 장을 보러 다니던 몬트레이지역 한인 마켓에 채소를 갖다 놓기 시작했다. 채소를 주고 식료품을 가져오는 일종의 물물교환 방식이었다. 하지만 신선한 한국 채소는 지역 한인들의 입 소문을 타고 금새 인기를 끌었고, 주문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김씨 아버지는 내친 김에 본격적으로 채소를 경작하기로 결정했다. 김씨 아버지는 1980년 중가주 털락 지역에 19에이커(2만3000평) 규모의 토지를 구입해 농기구 하나없이 삽 하나와 손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김스 농장’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에는 물을 댈 변변한 호스조차 없어 온 가족이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나르며 농사를 도왔다고 했다. 그 시절에 대해 김씨는 “철없던 나이에 농사일을 돕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귀찮았는지 모른다”며“다른 친구들은 방과 후 어울려 놀고 스포츠도 즐기는데, 나만 농사일을 도우려 집에 가야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끔 감기 몸살 등으로 몸이 아파 학교를 못 갈 지경이었는데도 집에서 일을 돕는 것 보다 나을 것 같아 끙끙거리면서도 학교엘 갔다”면서 “덕분에 우리 5형제 모두 매년 개근상을 받았다”며 껄껄 웃었다. ‘교포 마켓 문을 열다’ 김씨 가족의 채소는 몬트레이에 있는 6개의 한국 마켓에 조달됐고, 주문량은 점점 늘어 샌프란시스코, 산호세는 물론 LA까지 확장됐다. 당시 배달을 담당했던 김씨는 수금이 제대로 안되거나 물건값을 터무니없이 깎는 등 골머리를 앓는 일들이 잦았다고 했다. 김씨는 가족들과 함께 오랜 상의 끝에 직접 소매점을 열기로 결정을 내렸다. 마침내 1994년 6월, 직접 재배한 신선한 채소를 중심으로 한국 식품을 공급하는 ‘교포마켓(구 교포시장)’이 문을 열었다. 2008년에는 교포마켓으로부터 약 1.5마일 떨어진 곳에 2호점인 ‘슈퍼교포 플라자’를 세웠다. 두 마켓은 모두 한인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대만 등 타커뮤니티 소비자들에게까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한류 열풍과 함께 한국 음식의 인지도가 높아진 덕분에 현재 두 마켓을 찾는 타커뮤니티 주민은 전체 소비자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농자는 천하지대본’ 김씨는“현대인들의 생활이 바뀌고 인터넷, IT사업 등이 발전한다 해도 농업이 모든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세월이 가도 변함없는 사실”이라며 “지금의 교포 마켓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조금씩 다른 형태와 컨셉을 띠게 된다해도 그 중추가 되는 농장 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내 한인들의 입맛이 점차 변해가고 세계화됨에 따라 한국 채소, 한국 식품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는 것이 김씨의 의견이다. 김씨는 변해가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앞으로 다양한 종류의 미국 채소도 경작할 예정이며, 특히 건강 식품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많이 쏠리고 있는 요즘 트렌드에 맞춰 유기농 야채 재배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업 잇는 대물림은 계속된다’ 김씨는 학창시절 생물학에 관심이 많아 생물학자나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김씨는 그러나 “일단 하고자 마음먹은 일에 대해 평생 묵묵히 이뤄 나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며 “점차 마음을 바꿔 아버지를 도와 사업을 키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가주 주립대(세인트루이스 오비스포)에 진학, 농업공학(agricultural engineering)을 전공했다. 농업 경영, 회계 등을 배우며 농업과 마케팅에 관한 전반적인 기반을 다졌다. 김씨는 “처음 마켓을 열었을 당시 지금보다 한국 말도 서툴렀고, 매장에 바코드 스캔 시스템도 없어 모든 데이터를 ‘어려운’ 한국 말로 정리해가며 매일 저녁 12시까지 수작업 하는 등 고충이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신선한 채소를 찾는 손님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도 커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끊임없는 도움과 격려가 있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올해로 교포 마켓은 개점 16년을 맞았고, 김스농장도 확장을 거듭해 이제는 길로이·센트럴 밸리·베이커스 필드에 걸쳐 총 600여 에이커 규모의 농장에서 배추, 무, 깻잎, 쑥갓, 미나리, 풋고추, 오이, 호박, 가지 등 신선한 채소와 갖가지 과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재 김씨의 형과 남동생도 아버지의 농장 일을 꾸준히 돕고 있다. 김씨는 “그저 열심히 일한다는 생각으로 마켓을 꾸려왔지만 요즘 들어 가업을 이어간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는 자부심이 든다”며 “내 자녀, 내 손주들이 계속 가업을 이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1세대가 열심히 일궈놓으면 2세대는 흥청망청 즐기고 3세대쯤 가면 쫄딱 망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우리 집안에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을 것”이라면서 “아버지께서 일궈 놓으신 터전을 내가 더 열심히 가꾸고, 내 후손들이 더 발전시켜 관련업계의‘명문 집안’이 되도록 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양정연 기자 jyang@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