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점프 업 - 뉴욕] "대대손손 한국 대표음식 손맛 알리고 싶어요"
뉴저지 '아리랑 김치' 母 오경순 - 子女 현석·민경
어릴 때부터 김치 자부심 대단…젊은 감각 더해 새 도약 준비중
뉴저지 잉글우드에 있는 ‘아리랑 김치’ 사무실 겸 조리공장. 진입로에 서 있는 큰 간판에는 ‘GABOH inc’라는 업체 이름이 눈에 띄게 새겨져 있다. ‘아리랑 김치’를 만드는 김치 업체 이름이 ‘가보(家寶)’라니, 초행길에 알게 된 회사 이름이어서 약간 의아했다.
남편 오시정(64)씨와 함께 30여 년 동안 ‘김치’라는 한 우물만 파온 창업자 오경순(60)씨가 궁금증을 풀어줬다. “대대손손 ‘참 김치’를 미국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의미에서 회사 이름을 ‘가보’라고 지었다”는 설명이다. “다행히 아이들도 내 뜻을 이해해줘 함께 일하고 있어 뿌듯하다”는 자식자랑(?)이 뒤이었다.
아들 현석(33)씨는 이미 2006년부터 업체의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2년 전부터는 딸 민경(28)씨도 합류, 마케팅과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특히 현석씨는 아리랑만이 간직하고 있는 어머니 오씨의 ‘손맛’을 전수받고 있어 이채롭다.
“아리랑 김치의 비밀인 어머니의 소스(김칫소) 버무리는 비법을 전수받기로 했죠. 지금은 대표 상품인 맛김치와 포기김치 만드는 방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셨지만 사업적인 측면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에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싶었어요.”
◇어머니의 손맛을 계승한다= 현석씨는 매일 어머니 오씨와 함께 김칫소 버무리는 작업을 함께 한다. 직접 배추 등을 살피고 신선하지 않은 재료를 걸러내는 어머니의 노하우도 함께 배우고 있다. 현석씨가 오씨의 계승자가 된 건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 그는 고교 졸업 뒤 다니던 대학까지 포기하고 친척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업체 운영과 요리 등을 익혔다고 한다. 특히 요리를 배우고 싶어 수년 동안 이태리와 프랑스 등지를 배낭여행 하며 음식 문화를 살펴보는 열정을 보였다.
현석씨는 “음식 관련 사업을 하는 부모님 영향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요리’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며 “결국 아리랑 김치에 공헌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연한 귀결인 셈”이라고 말했다.
유럽 여행을 통해서 그가 찾고자 했던 ‘맛’도 김치와 서양음식의 합일점. 최근 그는 어머니의 김칫소에 샐러드용 식초 등을 사용해 서양인 입맛에 맞는 배합을 찾고 있다. 그는 “전통방식보다 조금 변형된 ‘하이브리드(Hybrid) 김치’를 타민족 친구들에게 맛보게 하면 좋아한다. 언젠가 타민족 공략에 활용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건강식’ 개념으로 타민족 공략=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민경씨는 졸업 뒤 마케팅 관련 일을 했다. 예술과 마케팅이라는 독특한 배경을 살려 그는 지난해부터 타민족에게 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아리랑김치는 대형 한인마켓에 납품하기보다 단골과 식당 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 개척은 지상과제이기도 했다.
다행히 브루클린과 맨해튼 등지의 식당과 마켓에서 아리랑김치를 주문하는 고객들이 늘기 시작했다. 올해 브루클린의 유명식당인 전통 레스토랑 ‘맨해튼 인’은 에피타이저 메뉴에 아리랑김치에서 내놓은 총각김치와 포기김치를 내놓기 시작했다. 또 8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유기농 전문 마켓 ‘킴스 밀레니엄’도 아리랑김치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김치 수요층의 변화에 대한 민경씨의 예리한 분석이 뒤따른다.
“최근 ‘김치’는 최고 건강식으로 손꼽히고 있어요. 자연 유산균 때문이죠. 특히 우리 김치 맛을 본 요리사들이나 마켓 주인들은 대부분 거래를 하고 싶다고 해요. 한인들에게는 주식이지만 타민족들에게는 건강을 위한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마케팅을 펼치고 있어요.”
민경씨는 각종 기관과 요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김치를 기부하는 아이디어도 냈다. 특히 올 봄 유명 요리학교 CIA 한인학생회의 ‘김치 요리 이벤트’에 김치를 제공해 학생들이 김치볶음밥과 잡채 등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김치사랑= 현석·민경 남매는 한인 2세다. 대부분의 2세들과는 다르게 이들은 어릴 때부터 김치를 좋아했다는 게 어머니 오씨의 설명. 학교가 끝나면 으레 아리랑김치를 찾아왔다고. 남매 둘 다 “단 한 번도 부모님이 김치 사업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오죽했으면 민경씨의 어릴 적 별명이 ‘김치걸’이었을까. ‘김치공장’을 운영하는 집안의 딸이라는 걸 친구들도 알았기 때문이다. 민경씨는 “한인 아이들도 특별히 놀리지 않아서 김치걸이라는 별명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며 “오히려 학교 끝나면 친구들 서너 명과 어울려 우리 공장에 놀러왔다. 김치를 함께 먹기 위해서”라며 웃었다.
현석씨의 김치 사랑을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아시안 페스티벌이 열려 학부모들이 갈비·잡채 등을 준비했다는 것. 하지만 김치는 냄새가 난다며 아예 소개조차 하지 않았다고. 어머니 오씨는 “현석이가 어느 날 ‘왜 김치를 내놓지 못하느냐’고 묻는 바람에 말문이 막혔다. 다음부터 백김치를 만들어 페스티벌에 보냈더니 참가자들이 다들 좋아했다”고 말했다.
물론 김치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을 때도 있었다. 현석씨는 “흑인 친구들이랑 집에 왔는데 한 친구가 우리집 냉장고 문을 열더니 처음 맡는 김치 냄새에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부모님이 만드는 한국 음식이라며 먹어보라고 했더니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한시름 놨다”고 말했다.
자녀들이 미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이처럼 김치를 터부시하지 않는 것은 오씨가 김치사랑을 몸소 보여줬던 덕분이다. 남매는 모두 “어릴 때부터 새벽에 나가 밤 11시까지 공장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민경씨는 “1994년 어머니께서 유방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까지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서 단순히 사업이 아니라 김치에 대한 사명감 없이는 못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어머니 오씨에게 이런 자녀들은 그저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계속되는 불경기와 배추 등 재료값이 올라가 매출이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인데 자녀들의 지원은 든든하기만 하다고.
“전 하던 대로 일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울타리 역할만 해주고 싶어요. 아직 아이들이 완전하지 않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김치 사랑이 더해가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웃음)
남매는 “김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는 것을 아리랑을 통해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특히 민경씨는 “선도가 떨어지는 배추가 왔을 때 어머니가 배추를 돌려보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 때 고객이 오면 이유를 설명하고 며칠 뒤에 오라고 하셨던 장면이 ‘아리랑 김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면서 “부모님의 고집스러운 전통에 젊은 감각을 입혀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이종행 기자 kyjh69@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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