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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방송인 이성미 집사 초청간증집회가 지난 15일 열린문장로교회(담임목사 김용훈)에서 ‘당신은 주님의 VIP입니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 집사는 1959년 부유한 가정에서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으나 부친의 사업 실패와 어머니를 일찍 여읜 후 더부살이를 해야했던 어린날의 아픔을 담담하게 간증했다.     이 집사는 개그우먼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나 젊은 시절 숱한 루머속에 극단 선택을 했던 과거와 캐나다 이민생활을 하며 새벽기도를 통해 받은 은혜를 체험했던 이야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사랑하라’는 말씀 실천으로 아들이 변화되었던 과정 등을 웃음과 감동으로 풀어냈다.     이 집사는 “팬데믹 이후 온라인 예배자 들이 많지만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라면서 현장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개인적으로 얻는 선물이지만, 공동체가 함께 하는 예배는 주님의 몸 된 지체가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팬데믹을 지나며 현장예배가 더욱 절실한 시기, 관객들에게 강한 도전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예배 가운데 좌절속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통로가 되었던 새벽기도를 강력 추천했다.     이성미 집사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람을 의지 하던 시절, 억울함을 밝히려 죽음까지 결심했던 때에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고 간증했다.  이 집사의 간증은 많은 오해와 아픔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는 신자들과 이민자들에게 큰 감동을 심어주었다. 이어서 “물질의 십일조 뿐만 아니라 시간의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권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간증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세인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명예와 인정이 가져다 줄 수 없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평화와 만족을 깨닫고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하나님 신음 이성미 집사 방송인 이성미 캐나다 이민생활

2023-12-21

[이 아침에] 고향이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세월을 살면서 사람들은 착각에 빠져 살 때가 있다. 나도 그랬다. 내가 착각에 빠져 산 것은 고향에 대한 착각이었다.   나는 평북 신의주에서 출생했고 여섯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일곱 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따라 심야에 안내자의 도움을 받으며 38선을 넘어 이남으로 월남한 실향민이다. 서울에서 6·25전쟁을 겪은 후, 우리 가족은 영등포구 신길동과 대방동 지역에서 살았고 나는 그 지역에서 성장하며 중·고·대학 등 모든 교육 과정을 마쳤다. 결혼한 후에도 그 동네에서 살다 50년 전 우리 가족은 미국에 이민을 왔다.    인간에게 고향이란 원초적인 본능을 일깨우는 그리움의 원천이 아닌가. 나는 내가 출생한 신의주를 향해서는 전혀 그리움이 없었기에 고향이란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고단하고 힘든 이민생활, 타향살이에 이골이 나면서도 가끔 향수병에 걸릴 때는 가슴 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동네, 나와 내 가족들의 과거와 추억이 있는 곳, 신길동,대방동 그 동네를 회상하며 돌아가고 싶었던 그리움을 품은 마음의 고향이었다.   문학 행사가 있어 한국을 방문했다. 행사가 끝난 후, 건강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 한국으로 이주한 딸네 집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치료를 받게 되었다.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잊을 수 없는 옛날을 찾아 고향 같은 동네를 찾아갔으나 내 딸들이 놀던 정든 그 동네는 그곳에 없었다. 내 옛집이나 내 이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옛 이웃들은 수소문을 해봐도 찾을 길이 없었다. 하늘 높이 솟은 고층 아파트와 새로운 상점들, 거리에는 온통 낯선 사람들로 붐볐다. 사라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고 사라진 것에 대한 향수가 밀려왔다. 고향이라 여기며 그리움을 품고 살았던 마음의 고향은 나의 착각의 고향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해바라기 습성을 버렸다.   1년 7개월 만에 내 집으로 돌아오니 익숙한 것에 편안함, 행복감을 느꼈다. 내가 토런스 지역에 산 지도 어언 40년 세월이 넘었으니 모든 면에 익숙하고 정겨운 것이다. 타인종 이웃들도  나를 보자 놀라며 “오 마이 갓”을 연발하면서 네가 보고 싶었다며 두 팔로 나를 포옹해 주었고 너를 많이 걱정했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해 주었다.   단골로 다니던 한인 업소들을 찾았더니 그들은 마치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온 듯 나를 반겼다. 그동안 통 뵐 수가 없어 혹시나 병원에 입원해 계신 것이 아닌가 걱정이 돼서 우리 집으로 여러 번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는 이가 없었다는 따뜻한 말들도 했다. 음식도 주고 선물도 챙겨 손에 쥐여주시는 것이 아닌가. 가슴에 뜨겁게 전해지는 뭉클한 고마움이 내 전신을 감싸며 감동이 아침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간다. 서로 인정을 나누며 외로운 이민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그들이 내 이웃이다. 내 이웃들이 사는 토런스가 나의 정신적인 고향이 아니겠는가. 누군가 고향이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갈매기가 춤추는 레돈도의 푸른 바다가 보이는 토런스가 내 고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김영중 / 수필가이 아침에 고향 토런스 지역 이민생활 타향살이 타인종 이웃들

2023-08-24

[시카고 사람들] 일리노이 한인세탁협회 김동철 회장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교 1학년, 외가 친척들이 살고 있던 미국으로 가족 이민을 온 일리노이 한인세탁협회 김동철(54⋅사진)회장이 시카고에 도착한 것은 지난 1985년 8월이다.    집안 식구들을 위해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던 그는 언어문제, 인종차별, 학교생활 등 초창기 이민생활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고 기억했다.   세탁소에서 일을 배웠던 그는 21살 젊은 나이에 세탁소를 오픈, 첫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너무 젊은 고용주로서 나이가 어리니까 나이 드신 직원들과의 관계가 무척 힘들었다”며 “홀세일을 하는데도 어리다는 이유로 소매 상인들에게 신용과 믿음을 주기가 쉽지 않았다. 비즈니스에 대한 경험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결국 첫 사업을 실패한 그는 세탁공장의 운영과 세탁기술을 다시 배우며 다른 비즈니스와 비교해 좀 더 비전이 있다고 판단한 세탁업에 재도전을 준비했다.   그는 당시 세탁업계는 나쁘지 않은 사업 환경으로 리테일 분야의 유행과 스타일이 없고, 재고 문제가 없고, 노동과 투자의 댓가가 따라 오며, 비즈니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안정적으로 운영해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힘든 시간을 이겨 내고 그는 지난 1995년 세탁공장을 올랜드파크에 다시 오픈했다.   일리노이 한인세탁협회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그는 “선배들이 끌어 주고 후배들이 도와 주고 친구들이 함께 하는 자랑스런 단체”라며 “특별히 임원⋅이사진이 오랜 시간 끈끈한 정과 의리로 뭉쳐 서로 의지하는 가족 같은, 형제 같은 협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민 생활이 힘들 때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형님 같은 선배들이 조언을 주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줬다며 동고동락해 온 세탁협회 선후배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한인 세탁인들을 위해 앞으로 협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 세탁업계는 향후 가격 인상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세탁 기술의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하는지 환경법에 끌려 다니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처해 퍽 사용보다 케미컬이 아닌 웻 클리닝(물빨래)으로 처리하면 건강을 해치지 않고 경비면에서도 이점이 있다고 제안했다.   지난 2020년 세탁협회장을 맡은 그는 뱅큇을 예약하고 광고를 내보내며 취임식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 팬데믹으로 행사를 치르지 못했다.   협회를 위해 회장직을 연임하고 있는 그는 한 다리 건너면 서로가 다 아는 시카고 동포사회의 대표적 특징에 대해 다른 지역보다 확실히 정이 넘치고 골프를 즐기는 동호회가 많은 건강한 커뮤니티라고 말한다.   뚜렷한 4계절이 있어 시카고가 좋다는 그는 서울 출생으로 올랜드파크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다. 아내(최윤희)와 슬하에 1남2녀(에릭, 에밀리, 엘라)를 두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한인세탁협회 일리노이 일리노이 한인세탁협회 세탁협회 선후배들 초창기 이민생활

2023-01-13

“글로 소소한 이민생활 이야기 소통” 2022년 한미문단 여름호 출간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회장 강정실)가 2022년 한미문단 여름호(지식공감)를 출간했다.     한미문단 여름호에는 신작 시, 시조, 수필, 역사수필, 기행수필, 동시, 동화, 소설 등 모든 문학 장르를 아우르는 총 88편 작품이 수록됐다.     이번 여름호에는 ‘시가 있는 마을’을 신설하고 사진과 시 작품 4편을 소개했다. 또 특별 초대석, 평론 초대석 외 특집 대담 프로 등 콘텐츠를 다양화했다.     강정실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은 “2012년부터 한미문단 연간지 발행을 시작해  2017년부터 여름호와 겨울호 연 2회 계간지로 발행하고 있다”며 “참여 작가가 늘면서 450페이지가 넘어 연 4회 계간지 발행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은 1만7000여명으로 250개 지부가 있다. 미주지회 회원은 280여명으로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40~50여명에 이른다.     회원들은 협회 웹사이트와 한미문단을 통해 이민속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서로 소통하고 있다.     협회에 따르면 서울문학, 문예창작, 한글문학, 에세이 포레 등 한국 문단지에 미주지회 회원들 작품을 게재하고 해마다 해외문학상을 받아 대리 수여하고 있다. 또 미주지회 자체 신인상 및 문학상을 신설해 해마다 공모전을 통해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강회장은 “이곳 미주지회에서 발간하는 한미문단은 한국 국립 및 시립도서관에 소장된다”며 “미주지역 한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한미문단에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밝혔다.     ▶문의: (310)382-6649, www.kwaus.org 이은영 기자이민생활 한미문단 한미문단 여름호 이민생활 이야기 미주지회 회원들

2022-08-14

[알림] 업소록 광고·리스팅 접수합니다

중앙일보가 한인 비즈니스들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하는 ‘중앙일보 업소록’ 2023년판의 광고 및 리스팅을 접수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업소록’은 최다 발행 부수, 최다 업소 리스팅을 자랑하는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및 생활 정보지입니다.   2023년판은 더욱 세련된 편집을 통해 누구나 쉽고 편하게 원하는 업소를 찾을 수 있도록 제작됩니다. 또한 운전면허 시험, 시민권 인터뷰 예상 문제 등 미국 생활에 유용한 정보가 가득 수록됩니다. 지역적 특성도 감안해 LA판과 별도로 샌버나디노·리버사이드 지역 등을 포함하는 오렌지카운티판 업소록도 별도로 제작합니다.   ‘중앙일보 업소록’은 누적 다운로드 35만 건이 넘는 ‘중앙일보 업소록 앱’과도 연동돼 디지털 접근성 면에서도 최고의 효과를 자랑합니다.   또한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디지털 이북(e-Book) 전자업소록을 동시에 제작, 코리아데일리닷컴 회원들에게 뉴스레터 전자업소록을 발송하며 ‘푸쉬얼랏’ 메시지도 함께 보냅니다.   ‘중앙일보 업소록’ 2023년판은 광고주 여러분께는 새로운 매출 창출 도구로, 독자 여러분께는 유용한 이민생활 가이드북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광고·리스팅 문의   ▶LA: (213)368-2521, (213)368-2647, 팩스 (213)389-7091   ▶OC: (714)590-2500, 팩스 (714)464-8359   ▶LA동부: (626)964-3430, 팩스 (626)964-4239알림 리스팅 광고 리스팅 문의 광고주 여러분 이민생활 가이드북

2022-06-12

[이 아침에] 우정도 사랑도 세월 따라 익어간다

숨통이 트이는가 보다. 한국으로부터 잡지가 우송되어 왔다. 코로나로 받아보지 못했던 정기 간행물이 들어올 수 있게 된 모양이다.     월간 ‘좋은생각’ 10월호다. 반갑다. 갖가지 이야기를 한 가득 싣고 매달 찾아오는 책을 기다리던 재미가 쏠쏠했다. 책이 끊어진 지 1년 반이 넘었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뭔가 밋밋하고 허전했는데 녀석을 만나지 못해 그랬던 모양이다.     책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통권 356호, Since 1992’라는 숫자가 보인다. 손꼽아 보니 책을 받아보기 시작한 지 30년이 다된다. 30년? 놀랍다. 처음 책을 받아본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이 책이 내 이민생활을 안내하는 등대가 되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 끊긴 기간이 없었다면 그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터이다. 외갓집에 가신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던 그 밤, 어머니 없는 집이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한지를 처음 느꼈던 그 어린 시절처럼,      ‘좋은생각’은 ‘샘터’와 같은 작고 얇은 월간 잡지다. 그 안에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색다른 풍경과 정보,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우뚝 선 생생한 체험담 등이 들어있다. 책을 받으면 처음부터 끝 페이지까지 빼지 않고 읽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이민생활 굽이굽이에서 책에서 만난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주었다. 책 속에 들어있던 감동적인 글을 보면서 ‘나도 글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글을 골라 두세 번 되풀이 읽고 필사를 하기도 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책에 있던 좋은 글들이 오랜 세월 알게 모르게 나의 글쓰기 선생이 되어주었다.     책을 받아볼 때마다 보내주는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실은 한두 해, 혹은 서너 해 지나면 책이 끊길 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강산이 세 번 변할 만큼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책을 보내주고 있다. 무던한 사람이다. 아내의 고등학교 1년 선배다. 두 여인의 우정에 ‘한결같다’는 단어를 사용해도 될 성싶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내 덕에 30년 동안 좋은 책을 덤으로 받아보는 복을 누리는 입장이 되었다.     좋은 선배를 둔 아내가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내게는 그런 친구가 없을까. 새삼스레 살아온 날을 되돌아본다. 내가 걸어온 길에서 만났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어디선가 나를 걱정하고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난다.     가을이 익어간다. 뒤뜰 석류나무에 석류가 발갛다. 봄날 가지 끝에 15촉 꽃등을 켜더니, 간당간당 매달려 소리 없이 몸집을 불려가더니, 폭우와 태풍을 이겨내고 만삭의 몸을 낭창 휘어진 가지 따라 잔디 위에 부려놓았다. 석류 몇 개를 따서 소쿠리에 담아두었다. 소쿠리 안에 가을이 담겼다. 햇볕 따스한 가을 아침, ‘좋은생각’ 잡지를 받아 읽으면서 생각한다.     우정도 사랑도 세월 따라 익어간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우정 사랑 이민생활 굽이굽이 뒤뜰 석류나무 가을 아침

2021-10-21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7> 출장재판 덕에 추방 모면한 청년

법원이 출장해서 재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경찰에 체포된 피의자가 사고에 따른 부상이나 질병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관계로 법원에 출정할 수 없을 경우 해당 피의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재판부가 출장을 나가 재판을 한다. 이럴 경우 재판에 필요한 모든 인원이 당연히 입회해야 하므로 판사를 비롯해 검사ㆍ변호사ㆍ속기사 그리고 필요한 경우 통역관까지 동반하는 큰 집단이 병원의 입원실로 찾아가 법원에서 하는 것과 같은 절차로 재판을 진행한다. 지난 2009년의 일이다. 절도 혐의로 체포된 한인 청년이 범행 중 발생한 사고 때문에 중상을 입어 입원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됐다. 이 청년은 절도할 목적으로 한인이 거주하는 아파트 4층에 침입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불법체류자였던 이 청년은 그러나 법원의 출장재판 덕분에 추방을 모면한 사례다. 청년이 체포된 뒤 변호사에게 털어 놓은 범행 당시의 상황에 따르면 청년이 돈을 찾느라 뒤지고 있는 와중에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꼼짝없이 들키게 된 청년은 도망갈 길이 없어 베란다를 통해 아래로 뛰어 내렸는데, 2층 높이의 주차장 건물 지붕 위에 떨어져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양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게 됐고, 경찰의 감독 아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청년은 병실로 찾아 온 재판부에 "아파트의 주인이 많은 현금을 집 안에 쌓아두고 있을 것으로 알고 이를 훔치려고 침입했고, 미국의 거주 신분은 불법체류자"라고 자백했다. 판사는 이 청년이 절도 현행범이므로 많은 금액의 보석금을 책정했고, 보석금을 지불하지 못한 피의자는 부상 덕분으로 형무소가 아닌 병원에서 다음 재판을 기다리게 됐다. 만약 이 청년이 부상을 입지 않아 교도소에 수감됐다면, 이민국의 신원조회를 통해 불법 체류 신분이 들통나고, 재판이 끝나면 이민국으로 신병이 넘어가게 돼 있었다. 이 청년의 부상이 워낙 심해서 병원에 입원한지 무려 6개월이 지나서야 휠체어에 앉아 처음으로 법원에 출정하게 됐다. 처음 출정한 재판에서 검찰은 변호사도 깜짝 놀라는 구형을 했다. 피의자의 심한 부상을 참작한 것인지 검찰은 변호사가 형량협상 과정에서 요구했던 경범죄 처벌보다 더 낮은 ACD라는 6개월 기한부 기소유예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 청년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부상 때문에 추방을 모면함은 물론 엄격한 형사법적 처벌까지도 피하게 된 것이다. 아주 이례적인 경우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3-02-08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6> 검찰의 형량 협상

형사사건 가운데 그리 심각하지 않은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에게 검찰은 관례적으로 형량 협상(Plea Bargain)을 시도한다. 이 협상에 동의하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재판을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피의자 입장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해 협상을 거부하고 정식 재판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무조건 검찰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는 낮은 수위의 처벌을 받는 대신 기소는 피할 수도 있다. 일부 한인들의 사례를 보며 어떤 결정이 현명한 선택인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한 40대 초반의 남성이 남의 아파트 창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가택침입 절도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다. 그는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불법체류 신분이 이민국에 알려져 신병인수 통보가 첨부됐다. 피의자의 설명으로는 친구의 집으로 잘못 알고 들어갔다는 것이었지만, 친구의 집에 굳이 왜 창문을 통해 들어가려고 했느냐는 질문에는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검찰은 이 남성에게 3급 중절도 혐의를 시인하면 2년 징역형을 구형 할 것이고,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배심으로 사건을 보내 2급 중절도 혐의로 기소하겠다고 통보했다. 2급 중절도는 유죄로 판결나면 최소 3년 6개월에서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죄목이다. 그러나 이 남성은 검찰의 형량 협상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배심을 거쳐 정식 재판을 받겠다고 요구했다. 이에 검찰은 2년 징역형 대신 1년으로 구형하겠다고 더 좋은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이 남성은 끝까지 재판을 요구했다. 결국 이 남성은 대배심에서 2급 중절도 혐의가 인정돼 기소됐고, 형을 마친 후 강제추방 조치까지 받게 됐다. 또 다른 사례는 술집에서 폭행을 한 혐의로 체포돼 온 2명의 조선족 동포 청년 이야기다. 폭행 사건은 검찰이 피해자의 진술서를 제시하지 못하면 증거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검찰은 폭행 사건의 경우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협상으로 재판을 끝내기를 시도한다. 이 두 청년의 사건도 처음엔 피해자의 진술서가 없어 검찰이 폭행죄 대신 형사범죄가 되지 않는 규정 위반급 혐의로 처리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조건에 유죄를 시인하면 15일간의 봉사활동을 해야 했다. 그러나 청년들은 봉사활동 기간이 너무 길다며 이를 거부했다. 그런데 이들로부터 맞았다고 고발한 피해자가 병원의 치료 기록과 피해자 진술서를 검찰에 제출하고 말았다. 증거를 손에 쥔 검찰은 15일간의 봉사활동 조건을 철회하고 경찰이 입건할때 적용한 중폭행 혐의로 대배심에 보내 기소하겠다고 법원에 통고하고 말았다. 불법체류자였던 두 청년은 결국 15일 봉사보다 엄한 처벌을 받았고, 추방재판에 회부되고 말았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3-01-26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5>오해받는 우리말 표현

몇 년 전 한인 인터넷 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하소연이 실렸다. "…메릴랜드에 살고 있는 30살의 남자입니다. …작년에 8살짜리 아들을 혼내는 과정에서 '또 거짓말하면 너 죽고 나죽어'라고 말했는데,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가정상담에서 그 말을 직역해 말했습니다. …그 날 이후 경찰이 찾아와 저를 집에서 쫓아 냈습니다." 아마 그 지역 가정법원이 '죽인다'는 말을 한 이 남자를 위험 인물로 간주하고 가족과의 접촉을 금지 조치하는 명령을 내린 모양이었다. 우리가 너무나 흔히 쓰고 있는 표현인 '죽인다'는 말이 영어로 옮겨지면서 'kill'이라는 뜻으로 전달돼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몇 해 전 내가 통역을 맡은 한 형사 재판과정에서 한 증인이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어서 이를 'kill' 이라고 한다면 분명 오해를 불러 올 소지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 말을 피의자가 표현하려고 하는 진의에 가장 가깝게 통역할 수 있을까 하는 난감한 문제로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통역관의 역할은 표현하는 그대로를 통역해야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전혀 다른 표현으로 통역할 수는 없다. 또 한국인의 언어 풍습 상으로 '혼내준다' 또는 '그냥 두지 않겠다' 정도의 표현이라고 설명을 붙이는 것도 원칙상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엄청난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통역관은 판사에게 양해를 얻어 이런 설명을 더 부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이해를 얻어낸 일이 있었다. 또 한가지 다른 예로는 우리의 젊은층 부부 사이에 부인이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한 당사자가 이런 식으로 남편을 오빠라고 불렀다면 이를 직역해서 'brother'로 번역해서는 말이 안된다. 단어로서의 번역은 'brother'이지만 이 사람은 분명히 영어의 'honey' 정도의 의미로 남편을 불렀다고 통역해야 당연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일단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를 번역하되 그 단어가 표현 하고자 하는 뜻은 '이런 이런 것'이라고 설명을 붙이지 않으면 오해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런 표현이 피고 측의 진술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는 당연히 이 말을 한 사람의 변호인이 그 분명한 의사표시가 무엇이었는지 재판부를 설득해야 한다. 한 번은 남부 지역에 살던 어느 한인 여인이 집에 혼자 있던 아이가 쓰러지는 장농에 깔려 죽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 때 슬픔에 쌓인 엄마가 넋두리로 '내가 너를 죽였다'하며 몸부림치며 울었다. 이 여인의 말을 그대로 믿은 경찰이 이 여인을 살인 혐의로 체포한 사건도 있었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3-01-1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4> 단기 방문자의 형사 사건

한미 양국 간 비자면제 협정이 시행된 뒤로 무비자 방문자들이 관련된 형사 사건에 새로운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단 형사 사건에 입건되면 초기에 바로 종결되지 않는 이상 재판은 적어도 몇 개월 이상의 시일이 소요된다. 때문에 무비자 또는 단기 체류 허가로 있는 사람은 체류기간 안에 재판을 종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재판 때문에 체류 기한을 넘기면 이민법을 어기는 불법체류가 되고, 재판을 끝내지 않고 미국을 떠나면 법정 기일에 법원에 출석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돼 체포영장이 발부된다.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사건이 아무리 미미한 혐의라도 이민국을 포함한 미국의 전 사법기관에 통보되기 때문에 후일 미국 비자를 신청할 경우 거부될 수도 있고, 입국하더라도 공항에서 체포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교통법규 위반 혐의로 티켓을 받은 경우라도 그것이 벌금형이 아닐 경우 법원에 나와야 하고,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이 발부된다. 최근 한 단기 연수 유학생이 출입금지 시간이 지난 뒤 공원에 앉아 있다가 경찰로부터 법원에 출두해야 하는 티켓을 받았다. 그러나 이 학생에게 주어진 티켓상의 법원 출두 날짜가 체류 기간이 지난 뒤여서 문제가 됐다. 법원에 미리 출두해서 조기 재판을 받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것도 예정 심리일 보다 일주일 정도 전이라야 가능했다. 한가지 해결 방법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 변호사가 해당 날짜에 대리 출석해 유죄시인을 하고 재판을 끝내는 방법 밖에 없었다. 또 한 번은 무비자로 미국에 온 여러 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체류기간이 거의 임박할 무렵에 체포됐다. 이들 역시 변호사 선임 등의 방법으로 사건을 끝낼 수는 있었으나 체류기간 때문에 5번이나 받아야 하는 교육 이수가 문제였다. 결국 풍기문란 혐의에 유죄를 시인하는 조건으로 합의가 돼 벌금형으로 재판을 끝내는 차선의 방법으로 마무리됐다. 덕분에 후일 이들 여성들이 비자를 신청하거나 무비자 입국 절차를 위한 조회 과정에서 형사 범죄로 유죄 선고를 받은 기록은 나타나지 않지만, 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다는 정도의 기록은 남게 된다. 결국은 문제가 될 소지는 남아 있는 셈이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3-01-06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3>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처벌

형사 사건에서 많은 경우에 운에 따라 결과가 엇갈리는 사례를 볼 수 있다. 검찰의 참작에 따라 때로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큰 처벌 없이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고, 또 그리 큰 죄도 아닌데 여러 정황상 엄한 처벌을 받는 사례도 있다. 변명의 여지없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던 한 청년이 검찰의 호의로 처벌을 면한 사건이 있었다. 플러싱에 살았던 이 젊은 청년은 이웃에 사는 다른 한인 사업가가 집안에 많은 액수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이 집을 털기로 결심하고 어느 날 그의 아파트에 침입했다. 청년이 현금을 찾느라 온 집안을 뒤지고 있는 와중에 때마침 집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청년은 급한 마음에 4층 아파트의 창문을 열고 뛰어 내렸다. 다행히 아파트 밑 2층 높이의 주차장 건물 지붕에 떨어져 목숨은 건졌지만 양쪽 다리가 모두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경찰에 체포돼 병원에 실려갔다. 직업도 없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불법체류 신분의 이 청년은 조사 과정에서 신분 문제가 발각되면 추방까지 당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병원으로 바로 실려 가는 통에 이민국의 신원조회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따라서 불법체류 신분도 들통나지 않았다. 부상이 심해 몇 차례의 수술을 받는 등 무려 4개월이나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한참 뒤 건강을 회복한 뒤에야 법원에 출두하게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검찰은 이 청년의 부상을 고려한 듯 첫 재판에서 전례 없이 ACD라는 6개월 기한부 기소유예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청년은 추방도 면했고, 심지어 그동안의 병원 치료비도 모두 국가가 지불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 청년처럼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냥 풀려나다시피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어떤 이는 반대로 아무것도 아닌 터무니없는 일로 처벌을 받는 사람도 있다. 부동산 에이전트를 하고 있던 40대의 이혼남 M씨는 아는 술집 웨이트리스에게 방을 임대해 주었다가 밀린 렌트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게 됐다. 그러자 술이 취해 있던 여인은 오히려 무슨 말이냐며 소리를 지르고 남자의 국부를 발길로 차는 등 폭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히고 화가 치민 남자도 여인의 뺨을 한 대 때렸다. 겁이 난 여인은 2층인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생각으로 창문에 매달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결국 경찰에 의해 안전하게 내려 온 여인은 그러나 영어가 짧아 경찰관에게 자세한 정황 설명을 할 수 없었고, 그냥 "그 남자가 죽인다고 하면서 폭행을 하기에 도망가려고 뛰어내리는 중이었다"고 말해 버렸다. 이 말을 들은 경찰은 여인의 말만 듣고 이 남자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해버렸다. 혐의가 큰 만큼 그는 구치소에서 6개월이라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검찰이 결국 사건 내막을 알게 되긴 했지만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검찰은 살인 미수 대신 경범 혐의의 폭행으로 낮춰 재판은 끝이 났다. 그렇지만 M씨는 이미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형무소 신세를 진 것이다. 말 한마디 때문에 엄청난 고초를 겪게 된 안타까운 사연이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30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2> 가족들도 버린 정신장애 범죄 한인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가 한인들 가운데도 꽤 있다는 것이다. 몇 해 전의 일이다. 50대 한인 주부가 이웃과 말다툼을 하다가 쇠꼬챙이로 위협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적이 있었다. 지문조회 결과 이 여인은 같은 혐의로 플로리다주에서도 입건된 적이 있었지만 재판에 나가지 않아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법원에서는 500달러의 보석금을 책정했으나 여인은 돈을 낼 형편도 안 됐고, 남편이나 다른 이웃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했다. 검찰은 여인의 사정을 감안해 소추를 포기하고 기소유예로 풀어주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이듬해 또 같은 혐의로 체포됐다. 이번에는 이 여인을 담당한 변호사가 정신감정을 의뢰했고, 검사 결과 여인은 심각한 정신장애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남편과 아들은 여인이 형무소에 갇혀 있는 상황을 오히려 안도하고 있었고,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중절도로 잡혀 온 20대 후반의 한 여인도 정신질환 환자였다. 중범으로 기소되기 직전, 이 여성의 변호사가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검사 결과 병원 측은 이 여인이 정상적으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여인 역시 형무소와 병원에서 지내는 8개월동안 가족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 여성은 정신장애 상황이 감안돼 풀려났으나, 이듬해 다른 혐의로 또 체포돼 법원에 서게 됐다. 변호사는 이 여인이 예전에 정신장애 판정으로 풀려난 일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결국 이 여인은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고 말았다. 이 두 여인은 가족들에게서조차 내버려진 상태였다. 가족들의 버림과 무관심 때문에 두 여인은 형사 사건에 연루됐고,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움 속에서 형무소와 정신병원을 오가는 안타까운 사연이 돼 버렸다. 가족 한 사람의 정신 질환은 가족 모두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는 의식이 한인사회에 뿌리내리길 기원해 본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23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0> 운이 엇갈린 한인들

미국의 사법 체계에서는 법원의 명령을 위반하거나 재범의 경우 아주 엄격하게 처벌한다. 경범의 경우 벌금형이나 봉사활동 명령 같은 것으로 간단히 끝나게 마련이지만, 일정 기간 안에 다시 범법행위로 입건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또한 법원의 명령이다. 음주운전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고 벌금형과 음주운전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도록 선고 받은 청년이 있었다. 3개월 뒤 정해진 법정 기일에 벌금과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했다는 증명을 갖고 출두해야 했다. 그러나 청년은 다음 재판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고, 그 뒤로 여러 차례 기회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빈손으로 법정에 나왔다. 판사는 이유를 물었으나 청년은 답을 하지 못했고, 결국 판사는 실형으로 선고를 바꾸고 현장에서 수감시켜버렸다. 플러싱에 사는 50대의 김모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은 좀도둑 혐의로 1년에 서너 번 정도는 빠짐없이 잡혀 들어오는 도벽이 있었다. 이 여성이 어느날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돼 체포됐다. 이 여성에겐 7일간의 봉사활동 사역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사역 임무를 마치지 않았고, 6개월 뒤 또 다시 같은 혐의로 체포돼 들어왔다. 지문 조회 결과 그 동안 롱아일랜드 서폭카운티에서도 역시 절도혐의로 체포돼 이미 3개월의 징역살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는 봉사활동을 끝내지 않은 명령위반이 추가돼 30일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이 여성은 교도소에서 풀려난 뒤에도 도벽때문에 또 체포됐고, 법원에 서게 됐다. 불과 2년 사이에 4번이나 좀도둑 혐의로 체포된 경력 때문에 담당 변호사도 정신감정 신청을 심각히 고려했다. 정신감정이 신청되면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정신과 병동에서 감정을 받는데 한번 들어갔다 하면 1년을 넘기기가 일쑤여서 검사의 60일 징역형 구형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판단에 이를 받아들이고 끝을 냈다. 1년 이내에 재범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즉 법원의 명령을 위반한 이유로 이번에는 60일의 징역형이 선고된 것이었다. 후일 알게 되었지만 형무소에서 이 여인이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이 발각돼 복역 후 추방재판에 회부돼 결국 한국으로 추방됐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2012-12-09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24> 고모부를 무고한 조기 유학생

백모씨는 3년 전 9학년생의 딸이 있는 여인과 재혼했다. 이 여인은 조카도 데리고 있었다. 그녀의 딸은 착실해서 공부도 잘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한국에서 조기유학으로 와 있는 조카딸이 문제가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 외출이 잦아지고 학교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카딸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반항의 강도만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생각다 못한 백씨는 부인과 의논 끝에 한국에 있는 처남에게 이를 알렸고, 처남은 곧 아이를 한국으로 귀국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 일이 있은 이후 아이가 아마 부모로부터 꽤나 심한 꾸중을 들은 모양이었다. 토라져서 고모부와는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하루는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어 볼 작정으로 일을 마치고 오는 시간에 집에서 기다려달라고 일러두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올 때 조카가 막 집을 나서려고 하길래 붙들었다. 아이는 강하게 저항하면서 집을 나서겠다는 것이었다. 강제로 팔을 끌어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좋은 말로 타일렀다. 백씨뿐만이 아니라 부인과 사촌인 딸아이까지 온 가족이 아이를 타일렀다. 그러나 다음날 아이는 아무런 연락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도록 찾을 수가 없었고, 결국 나흘째 되는 날 백씨는 경찰에 미아신고를 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조카딸 문제로 물어볼 일이 있으니 경찰서로 와달라는 요청이었다. 경찰서에 들어서자마자 백씨는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경찰은 조카딸이 자신을 성추행 혐의로 고발했고, 자신을 체포한다는 것이었다. 집을 나가기 전날 팔을 끌고 집으로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아이의 몸에 여기저기 손을 대고 더듬었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히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경찰 유치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자신에게 꾸중만 하는 고모부에게 몹시 감정이 상한 조카가 보복을 할 참으로 경찰에 가서 엉뚱한 고발을 해놓고는 행방을 감추어버린 것이었다. 더구나 팔과 몸에 몇 군데 약간의 멍 자국이 있었는데 모두 고모부가 강제로 자신을 범하려다가 생긴 멍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검사도 결국은 고발인의 증언을 받기위해 아이를 찾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재판이 무려 3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 없이 연기되고 있는 와중에 한국에서 처남이 왔다. 그때서야 말인 즉 아이는 지금 한국에 와 자신이 보호하고 있으며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은 딸의 잘못을 매제에게 사죄하고 검찰에 가서 사건을 취하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변호사를 대동하고 검사를 만났다. 아이의 보복성 무고라는 아버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본인의 진술이 아니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백씨는 사건이 기각될 때까지 무려 10개월 가까이 시달려야 했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23> 타협의 조화를 모르는 한국인

뉴욕주에는 경미한 분쟁사건 등을 법원의 소송절차를 거치지 않고 중재인의 입회 하에 분쟁 당사자 간의 양보를 얻어내고 합의를 시켜서 사건을 해결하게 하는 중재제도가 있다. 맨해튼에 있는 중재재판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40대 한인 여성이 사건 당사자로 나왔다. 이 사람은 한국의 모 대학 음악 조교수로 있다가 이곳 컬럼비아 대학원에 유학 와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사건이란 대학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흑인 학생과 생긴 언쟁이 확대된 사건이었다. 꽤 심한 다툼 후, 양쪽 모두 서로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학교 당국과 경찰에 서로 상대방을 고발한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한국인 학생이 부엌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는데 룸메이트인 흑인 학생이 그 음식 냄새를 견딜 수 없다고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우는 데서 시작됐다. 한국 학생의 주장은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은 생 감자를 삶은 것인데 무슨 이상한 한국음식을 하는 걸로 지레짐작하고서는 견딜 수 없는 냄새가 난다고 소동을 피우며 인종차별적인 모함을 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한국인 학생의 불만은 이 흑인 학생이 거의 매일같이 밤 12시가 넘도록 전화에 매달려 있어 공부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수면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몇 번에 걸친 말다툼 끝에 서로가 학교 당국에 불만을 토로해 결국 각자 다른 방으로 갈라지도록 조치됐던 터였다. 그런데도 가끔 엘리베이터 속에서 마주치면 인사는커녕 각자 싫은 소리로 중얼거린 모양인데 흑인 학생이야 영어로 지껄이는 것이니까 이 쪽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한국인 학생은 영어에다 한국말로 중얼거리니까 흑인 학생이 알아들을 수는 없고 그 인상으로 보아 무언가 나쁜 소리를 하는 것으로 짐작, 괴롭히고 성가시게 한다고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학교 당국이나 경찰로서도 이 정도 일을 가지고 입건할 수도 없어 이 사건을 중재소로 보낸 것이다. 양쪽의 불만을 들은 중재인은 합의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앞으로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기로 하며, 둘째 엘리베이터 등 기타 공공장소에서 만나게 돼 부득이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반드시 영어로만 할 것 등 간단한 것이었다. 첫째 조건은 서로가 원하는 것이어서 즉각 받아들였다. 그런데 둘째 조건에서도 흑인 학생은 당연히 오케이 했으나 한국인 학생은 이를 거절했다. 자신은 그 전에도 한국말로 흑인 학생에게 말한 적이 없는데도 한국말로 괴롭혔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은 언제나 흑인 학생에게는 영어로만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앞으로 영어로만 말하겠다는 합의서에 서명하면 과거에는 한국말로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명분상 서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중재인은 합의서에는 과거에 한국어를 했다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만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본인 마음이지 아무 곳에도 그것을 인정하는 부분은 없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한국인 학생은 전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서명을 받는 데는 실패했고 첫째 조건만 써 있는 합의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중재는 끝나고 말았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22> 음주운전으로 낭패 본 한인 2제

사고장소, 체포 기억도 없이 만취 고급 캐딜락 승용차로 플러싱에서 카서비스 기사를 하고 있는 박씨. 크리스마스날 추운 겨울 밤을 꼬박 세운 박씨가 일을 마친 새벽녘에 친구와 어울려 가까운 식당에서 피로도 풀 겸 한잔 걸치게 됐다. 새벽 빈속에 마시는 소주는 첫 잔에 취기가 돌았다. 이런 저런 인생이야기 끝에 박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만취하게 됐다. 운전대에 앉았던 기억 다음으로는 경찰서의 유치장에 잡혀있는 신세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경찰의 혈중 알코올 농도검사 결과는 0.20%로 뉴욕주 음주운전 법정 허용치인 0.08%의 두 배에 달했다. 그러니 소주 한 병을 마셨다는 것은 자신의 어렴풋한 기억일 뿐 실제로는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이 없다. 법원에 넘어온 경찰조서에 의하면, 신호대기 중에 있는 차를 술이 취한 박씨가 보지 못하고 뒤에서 들이박아 추돌사고를 낸 것이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박씨는 너무 술에 취한 나머지 운전대에 앉은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손님을 태우고 고속도로로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동네 길에서 이 정도의 접촉사고로 경찰에 잡힌 것은 하늘에 감사해야 일이다. 얼마나 술이 취했던지 박씨는 법원까지 와서도 자신이 어디서 잡혀 왔는지, 그리고 어느 경찰서를 통해 이송돼 왔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차는 당연히 압류될 것이고 운전면허증도 취소될 터이므로 이제는 도리 없이 직업을 바꿀 수 밖에 없게 됐다. 사람 다치는 사고를 저지르지 않고 경찰에 잡힌 것은 오히려 이 사람을 살려준 천운인 셈이다. 중앙 분리대를 차선으로 착각 질주 또 한 청년은 술에 취한 채로 큰 도로의 중앙분리대를 달리다 잡혀왔다. 이 청년은 야채가게의 트럭 운전사였다. 새벽에 출근하는 청년은 사고 전날 저녁 한 친구의 귀국 송별파티에 참석했다. 초저녁에 적당한 양의 술을 마시고 잠시 눈을 부치면 출근에 문제가 없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술자리가 벌어지고 나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얼마나 늦게까지 마셨는지도 기억할 수 없었다. 청년은 만취한 상태에서 친구들과 헤어진 뒤 출근을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야채 도매상이 있는 브롱스로 가는 길에는 그렌드콩코스라는 대로가 있는데 중간 분리대에 2m 정도 넓이의 화단이 꾸며져 있는 넓은 길이다. 술에 취한 청년이 이 도로를 달리다 넓은 중간 분리대를 또 하나의 차선으로 착각했다. 한동안 중앙분리대를 신나게 달린 모양이었다. 결국 경찰의 추격 끝에 큰 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체포됐다. 그동안 어디를 운전하고 돌아다녔는지 트럭의 지붕이 모두 날아가고 없었다. 아마 트럭 통행이 금지된 파크웨이를 달린 모양이었다. 법원에 면회 와 있던 야채가게 주인이 청년의 보석금을 지불해 그나마 유치장 생활은 면할 수 있었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21> 내 이름이 뭐지요?

형사법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벌금을 내려고 줄을 서 있던 아가씨가 지나가는 나를 잡고 "아저씨! 오늘 내 이름이 뭐지요"하고 묻는다. 자신의 이름을 내게 묻다니…. 마사지 팔러에서 일하는 아가씨인데 매춘 혐의로 잡혀서 벌금형을 받은 것이다. 여러 사건이 겹쳐 재판을 받고 있는데 잡힐 때마다 다른 가명을 썼기 때문에 오늘 벌금형으로 끝난 사건이 그 중 어느 것인지 헷갈린 모양이었다. 가짜 이름을 쓴다고 해도 지문조회 때문에 본인의 신분이 감추어질 수는 없다. 오히려 불편만 더 보태게 되고 때로는 아주 심한 불이익을 당할 때도 있다. 보석금이 높게 책정된다든지 혹은 후일 서류상으로 증명을 하는 경우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몇 해 전 폭행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는 한 청년은 영주권 신청 중에 이민국의 요청으로 그 때 사건의 재판 결과에 관한 증명을 발급받으러 왔는데 당시 가짜 이름을 썼기 때문에 본명으로 증명을 발급받을 방법이 없어 쩔쩔맨 일도 있었다. 이렇듯 법원에서는 이름과 관련해 웃지 못할 문제들이 종종 생긴다. 그 중 한국 이름의 영문표기 때문에 문제가 자주 생긴다. 우리 이름을 영문 알파벳으로 쓸 때 딱히 정확한 공식이나 규칙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이름이라도 여러 가지로 쓸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정종진'이라는 이름을 써보자. 'Chong Chin Chung' 또는 'Jong J. Jung' 등 여러 가지로 쓸 수 있는데 어느 쪽을 쓰던지 서양 사람들이 정확하게 우리 이름을 그대로는 발음할 수 없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뉴욕의 법원에서는 히스패닉계 사람들의 사건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법원 직원들은 거의 모든 외국 이름을 히스패닉식으로 읽는 습관이 돼 있다. 따라서 위의 'Jong J. Jung'은 필경 '용 제이 융'이라고 부를 가능성이 많다. 이렇다 보니 많은 한국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이름을 불러도 알아듣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번은 '노대식'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유독 자신의 이름을 'Dai Sick No'라고 썼다. 법원 직원이 이 사람의 차례가 돼 이름을 부르다 말고 폭소를 터트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Dai는 '다이'라 읽기 때문에 영어로 죽는다(die)는 소리로 돼버렸고, '식'하면 아프다(sick)는 뜻이니 이런 악명이 어디 있겠는가. 죽지도 아프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이렇게 작명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요상한 이름이 되고 말았다. 특히 '식'자를 왜 sick으로 썼는지 알 수 없으나 영어의 이런 뜻을 알지 못하고 썼을 것 같다. 그리고 '석'씨 성이나 '석'자 이름을 가진 사람이 suck이라고 쓰는 것도 피해야 할 이름 중의 하나다. 당신의 이름은 이곳 사람들이 무어라고 부르는지 관심을 가지고 되새겨볼 일이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통역관

2012-12-02

[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20>표독한 외국인 며느리

올해 마흔한 살인 정씨는 10대인 아들과 역시 10대인 그의 아들과 동거하는 여자친구인 히스패닉 여인, 그리고 이제 한 살이 가까워오는 그들 사이에서 난 손자와 모두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손자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해 늘 주의를 기울이고 지켜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날은 며느리가 새로 사 온 신발을 신겨놓아서 걸음마 연습이 더욱 위태로워 보였다. 정씨가 보기에는 아이가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걸음이 더 어렵고 또 아이가 혹시 넘어져 다칠세라 아이의 신발을 벗겨버렸다. 아이 어미인 히스패닉 여자는 제 딴에는 아이를 예쁘게 하느라고 신발을 신긴 것이고, 또 신발을 신은 채로 걸음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여 신발을 신겨놓은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음대로 신발을 벗겨버렸다고 무척 화를 내면서 신발을 다시 신겨놓았다. 영어도 스패니시도 알아듣지 못하는 정씨는 그 여인이 무슨 일로 잔소리를 늘어놓는지 알지 못하고 아이가 신발을 벗고 걷는 것이 훨씬 잘 걷는다는 것만 생각하고 다시 신발을 벗겨놓았다.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 아이의 신발이 다시 벗겨진 것을 본 여인은 이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다. 손찌검을 할 것 같이 너무 악을 쓰고 덤비는지라 놀란 정씨는 여인을 달랠 생각으로 길길이 뛰는 여인의 팔을 잡고 앉히려고 했다. 그러자 이 여인은 더 큰 악을 쓰면서 긴 손톱으로 정씨의 목덜미와 얼굴을 마구 할퀴면서 계속 악을 쓰는 것이었다. 젊은 여인이 얼마나 악을 쓰고 야단을 쳤는지 이웃들이 모여들었고 큰 싸움이 벌어진 것으로 안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하게 되었다. 금방 경찰이 달려왔다. 여인이 경찰에게 사건경위를 설명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앞서 보다 악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간단히 설명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설명을 다 듣고 난 경찰이 정씨에게 동행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정씨는 경찰이 요구하는 대로 경찰서까지 연행되었고 알지도 못하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도무지 왜 자신이 구속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중앙구치소에서 밤을 새우고 이튿날 아침에야 법원으로 보내졌다. 이때 처음으로 통역을 동반한 변호사와의 접견을 통하여 정씨는 비로소 어떤 혐의로 구속되었는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여인을 주먹으로 때리는 등 폭행을 했고, 또 아기에게 위험스러운 행동을 하여 아동학대 및 위해 행위를 저질러 입건되었다는 것이다. 정씨는 당연히 재판정에서 자신의 폭행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할 수밖에 없었다. 법원이 며느리인 그 여인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으니 재판이 끝날 때까지 정씨는 집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단지 정씨가 기대하는 것은 설사 그 여인이 순간적인 감정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더라도 아들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사건을 취하해주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었다. 미국의 형사사건 절차가 고발인이 고발을 취하한다 해서 사건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씨는 몰랐고, 오히려 그 여인은 접근금지 명령 때문에 꼴 보기 싫은 시아버지를 안보게 되어서 여간 신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경찰에 가서 취하할 수도 없지만 또 그렇게 할 리도 만무했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통역관

201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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