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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우정도 사랑도 세월 따라 익어간다

숨통이 트이는가 보다. 한국으로부터 잡지가 우송되어 왔다. 코로나로 받아보지 못했던 정기 간행물이 들어올 수 있게 된 모양이다.  
 
월간 ‘좋은생각’ 10월호다. 반갑다. 갖가지 이야기를 한 가득 싣고 매달 찾아오는 책을 기다리던 재미가 쏠쏠했다. 책이 끊어진 지 1년 반이 넘었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뭔가 밋밋하고 허전했는데 녀석을 만나지 못해 그랬던 모양이다.  
 
책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통권 356호, Since 1992’라는 숫자가 보인다. 손꼽아 보니 책을 받아보기 시작한 지 30년이 다된다. 30년? 놀랍다. 처음 책을 받아본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이 책이 내 이민생활을 안내하는 등대가 되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 끊긴 기간이 없었다면 그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터이다. 외갓집에 가신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던 그 밤, 어머니 없는 집이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한지를 처음 느꼈던 그 어린 시절처럼,  
 


 ‘좋은생각’은 ‘샘터’와 같은 작고 얇은 월간 잡지다. 그 안에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색다른 풍경과 정보,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고 우뚝 선 생생한 체험담 등이 들어있다. 책을 받으면 처음부터 끝 페이지까지 빼지 않고 읽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이민생활 굽이굽이에서 책에서 만난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주었다. 책 속에 들어있던 감동적인 글을 보면서 ‘나도 글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글을 골라 두세 번 되풀이 읽고 필사를 하기도 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책에 있던 좋은 글들이 오랜 세월 알게 모르게 나의 글쓰기 선생이 되어주었다.  
 
책을 받아볼 때마다 보내주는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실은 한두 해, 혹은 서너 해 지나면 책이 끊길 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강산이 세 번 변할 만큼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책을 보내주고 있다. 무던한 사람이다. 아내의 고등학교 1년 선배다. 두 여인의 우정에 ‘한결같다’는 단어를 사용해도 될 성싶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내 덕에 30년 동안 좋은 책을 덤으로 받아보는 복을 누리는 입장이 되었다.  
 
좋은 선배를 둔 아내가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내게는 그런 친구가 없을까. 새삼스레 살아온 날을 되돌아본다. 내가 걸어온 길에서 만났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어디선가 나를 걱정하고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난다.  
 
가을이 익어간다. 뒤뜰 석류나무에 석류가 발갛다. 봄날 가지 끝에 15촉 꽃등을 켜더니, 간당간당 매달려 소리 없이 몸집을 불려가더니, 폭우와 태풍을 이겨내고 만삭의 몸을 낭창 휘어진 가지 따라 잔디 위에 부려놓았다. 석류 몇 개를 따서 소쿠리에 담아두었다. 소쿠리 안에 가을이 담겼다. 햇볕 따스한 가을 아침, ‘좋은생각’ 잡지를 받아 읽으면서 생각한다.  
 
우정도 사랑도 세월 따라 익어간다.    

정찬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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