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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의 '사건으로 본 이민생활 24시'] <35>오해받는 우리말 표현

"너 죽고, 나 죽어" 말했다가 …

몇 년 전 한인 인터넷 사이트에 다음과 같은 하소연이 실렸다.

"…메릴랜드에 살고 있는 30살의 남자입니다. …작년에 8살짜리 아들을 혼내는 과정에서 '또 거짓말하면 너 죽고 나죽어'라고 말했는데,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가정상담에서 그 말을 직역해 말했습니다. …그 날 이후 경찰이 찾아와 저를 집에서 쫓아 냈습니다."

아마 그 지역 가정법원이 '죽인다'는 말을 한 이 남자를 위험 인물로 간주하고 가족과의 접촉을 금지 조치하는 명령을 내린 모양이었다.

우리가 너무나 흔히 쓰고 있는 표현인 '죽인다'는 말이 영어로 옮겨지면서 'kill'이라는 뜻으로 전달돼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몇 해 전 내가 통역을 맡은 한 형사 재판과정에서 한 증인이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어서 이를 'kill' 이라고 한다면 분명 오해를 불러 올 소지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 말을 피의자가 표현하려고 하는 진의에 가장 가깝게 통역할 수 있을까 하는 난감한 문제로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통역관의 역할은 표현하는 그대로를 통역해야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전혀 다른 표현으로 통역할 수는 없다. 또 한국인의 언어 풍습 상으로 '혼내준다' 또는 '그냥 두지 않겠다' 정도의 표현이라고 설명을 붙이는 것도 원칙상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엄청난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통역관은 판사에게 양해를 얻어 이런 설명을 더 부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이해를 얻어낸 일이 있었다.

또 한가지 다른 예로는 우리의 젊은층 부부 사이에 부인이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한 당사자가 이런 식으로 남편을 오빠라고 불렀다면 이를 직역해서 'brother'로 번역해서는 말이 안된다. 단어로서의 번역은 'brother'이지만 이 사람은 분명히 영어의 'honey' 정도의 의미로 남편을 불렀다고 통역해야 당연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일단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를 번역하되 그 단어가 표현 하고자 하는 뜻은 '이런 이런 것'이라고 설명을 붙이지 않으면 오해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런 표현이 피고 측의 진술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는 당연히 이 말을 한 사람의 변호인이 그 분명한 의사표시가 무엇이었는지 재판부를 설득해야 한다.

한 번은 남부 지역에 살던 어느 한인 여인이 집에 혼자 있던 아이가 쓰러지는 장농에 깔려 죽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 때 슬픔에 쌓인 엄마가 넋두리로 '내가 너를 죽였다'하며 몸부림치며 울었다. 이 여인의 말을 그대로 믿은 경찰이 이 여인을 살인 혐의로 체포한 사건도 있었다.


퀸즈형사법원 한국어 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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