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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55년차, 글에 삶의 울림 담았다

"마지막 거처를 어디로 할까?", "박수칠 때 떠난다", "얼마나 오래 살아야 하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본보 샌디에이고 지사가 발행하는 잡지 '월간 샌디에이고'에 게재되는 시니어 칼럼의 제목들이다.     10년 넘게 고정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작가는 바로 김장식 공인회계사(사진). 시기성 있는 주제나 책, 영화, 음악, 여행에서 느낀 점을 독백처럼 풀어낸 그의 글은 한 페이지 분량으로 짧지만 단숨에 읽혀지는 글솜씨와 내용에 울림이 있어 꽤 인기가 높다.   본격적인 장수시대, 이민 커뮤니티에도 다양한 시니어 라이프의 선례가 절실하다. 김장식 씨의 글을 화두로 이민 55년차를 바라보는 80대 한인의 생각과 삶을 엿본다.     ▶"삶의 가치는 하루를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달려있다."     고문회계사로 일하는 김씨는 아직도 일주일에 이틀은 사무실에 출근해 주어진 일처리를 담당한다. 또 다른 이틀은 정기적으로 만나는 골프 멤버들과 걸으면서 운동하고 나머지 날엔 미뤄둔 약속이나 가족, 친구를 만나고 교회와 커뮤니티 행사에 참여한다. 여전히 적당히 일도 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노력하면서 자기관리에도 힘쓴다. 80대, 삶의 질풍노도를 벗어난 시기를 보내는 그의 '삶의 가치'는 일상에 충실하며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고 매사 소소한 감사거리로 채우는 것이다.     ▶"70대 후반으로 향하는 나훈아의 은퇴는 '노래영웅' 이미지를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함으로 해석된다."   김씨는 1942년생으로 1969년 도미해 회계학을 전공한 후 CPA가 됐다. 시카고에서 10년 일한 후 마흔셋에 샌디에이고로 이주했다. 당시 한인 기업들의 미주, 멕시코 진출을 도맡아 지원하던 때라 정신없이 바쁜 시절을 보냈다. 커리어의 절정기인 50대를 지나 65세가 되자 약속했던 대로 후배에게 일을 물려주고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그는 내려놓는 것도 '타이밍'과 '결단력'이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박수칠 때 떠날 줄 아는 나훈아의 은퇴를 아쉽다 하지 않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의 상징적 인물이 된 젠슨 황. 엔비디아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가운데, 젠슨 황의 검은색 가죽 재킷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김장식씨는 간혹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에 대해서도 통찰력 있는 소회를 남기곤 한다. 그는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말한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두 가지 덕목에 대해 언급했는데 바로 이력서에 쓸 덕목(resume virtues)과 장례식 추도사에 쓸 덕목(eulogy virtues)이다. 시니어로서 이제 이력서보다는 "친절했던 우리의 00, 누구보다도 관대했던 00" 등 추도사 덕목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살고 있다는 김장식씨, 여전히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은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이해하고 그것을 나누기를 즐겼던 김장식"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동안 살아온 동네에서 계속 살면서 친한 친구들과 모여 외식도 함께하고 놀아도 같이하며 Aging in place를 해야지."   아무리 건강에 자신이 있어도 몸과 마음이 예전만 못한 80대 시니어들은 '마지막 거처'에 대한 고민이 크다. 특히 샌디에이고에는 한인 전용 요양시설도 없어서 꼭 필요한 경우에는 LA나 OC로 가야 한다. 김장식씨도 의료시설, 여가시설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버타운에 대해 연구해 보았지만 이런저런 간접경험을 통해 결론적으로 '살던 집에서 늙어가기'를 택했다. 우아하게 나이들 수 있는 마지막 거처에 대한 고민, 과연  80대 시니어들만의 고민일까. 서정원 기자이민 월간샌디에이고 이민 커뮤니티 김장식 공인회계사 본보 샌디에이고

2024-08-15

본보 창간 50주년…가족사진 찍어드려요

  “가족사진은 가족을 하나로 잇고 가족 간 사랑을 한층 더 두텁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중앙일보가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진행하는 가족사진 무료 촬영 이벤트를 함께하는 캘코보험의 진철희(사진) 대표가 밝힌 후원 이유다.     진 대표는 “올해로 31주년을 맞이한 캘코보험은 한인사회와 동반 성장했다”며 “가족은 사회의 근간이다. 가족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게 바로 가족사진이라는 점에서 흔쾌히 동참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인 비즈니스와 한인 고객들이 있었기에 캘코보험이 31년 동안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커뮤니티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 환원할까 그가 항상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본지와 다양한 정보가 담긴 책자를 만들어 무료 배포하는 등의 사업을 통해 꾸준하게 사회환원에 앞장서고 있다.     처음 이벤트를 시작하던 2016년에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커뮤니티에 도움을 줄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많은 협회와 기업에서 하는 장학사업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연령대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문화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가족사진 촬영 이벤트 이야기를 들었고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후원을 결정한 후 4년 연속 지원했다. 코로나19팬데믹 이후 잠시 멈췄던 가족사진 촬영 행사를 올해 재개하게 됐다.       후원을 결심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가족과 함께했던 기억 때문. 이민 온 지 20년이 지나서 온 가족을 미국으로 초청했던 때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못 보던 가족 모두와 같이 지내니 전에 없던 행복을 느꼈다. 당연히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도 찍었다. 이때를 상기하니 반드시 가족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가족사진 촬영 이벤트에 동참해야겠다 싶었다.   진 대표는 “가족사진을 찍는 건 단순하게 촬영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온 가족이 깔끔한 복장을 하고 모인 뒤에 촬영하고 나면 당연히 같이 식사도 하는 커다란 가족 행사”라고 말했다. 이번 이벤트가 단순하게 무료 촬영만이 아니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족사진 촬영 이벤트는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성장한다’는 진 대표의 경영철학과도 일치한다. 직원의 행복은 가족에서 오기 때문에 진 대표는 가족 사랑을 항상 강조해왔다.     향후 계획을 묻자 진 대표는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커뮤니티의 사랑 덕에 성장해왔기에 한인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 그는 앞으로 보험이라는 본업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커뮤니티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덧붙였다.     가족사진 무료 촬영 이벤트는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캘코보험이 후원하며 남가주사진작가협회가 촬영과 보정을 맡았다. 가족사진은 후에 액자에 넣어서 독자에게 전달된다.     ▶신청 기간: 6월 17일(월)까지   ▶촬영 일시: 6월 29일(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촬영 장소: LA 중앙일보 지하 갤러리 (690 Wilshire Place, Los Angeles, CA 90005)   ▶문의 및 예약: 213-368-2622, 2617, 3704 조원희 기자가족사진 본보 가족사진 촬영 가족사진 무료 가족 사랑

2024-06-17

[본보 한인 대상 설문조사] 한인들 선호 한국 여행지는?

한인들이 한국 방문시 가장 가고 싶어하는 여행지는 울릉도·독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미주중앙일보 웹사이트(koreadaily.com) 방문 독자들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한국 방문시 꼭 가고 싶은 관광 도시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울릉도·독도가 전체 투표의 14.9%인 330표를 획득해 1위에 올랐다. 〈그래프 참조〉   2위는 13.7%(303표)를 얻은 제주도가, 3위는 12.9%(286표)의 강릉·속초가 차지했으며 부산과 서울이 각각 12.6%, 11.8%를 획득해 4, 5위를 기록했다.   이어 경주, 여수, 전주, 춘천, 포항 순으로 톱10 순위권에 들었다.   이 밖에 보령과 울산이 각각 20표씩을 획득해 뒤를 이었으며 기타 여행지로는 통영, 제천, 인천, 대구, 순천, 홍도, 광주, 안동, 창녕, 거제도, 창녕, 설악산, 광주, 진해, 창원, 삼척, 대전, 청주, 평창, 가평, 변산반도, 청산도, 매물도 등도 있었다.   1인당 3곳까지 선택할 수 있었던 이번 설문조사에는 총 738명이 참여해 2214표를 행사했다.   울릉도·독도, 제주도가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로 선정된 데 대해 여행관계자들은 독도가 주는 시사성 및 상징성, 제주도는 세계자연유산으로 해외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관광 명소라는 점에서 미주 한인들의 관광 버킷리스트가 된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실제 모국을 방문한 한인들이 울릉도·독도, 제주도 관광에 나서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LA지역 한인여행사들 가운데 지면으로 모국관광 상품 홍보를 하고 있는 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울릉도·독도는 기상 변수와 긴 항해 시간에 따른 멀미 우려, 제주도는 비싼 요금 등으로 단독 상품 여행으로는 잘 안 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울릉군에 따르면 울릉도까지 여객선 운항 시간은 4곳 출발항에 따라 2시간 40분에서 4시간 30분까지 소요되며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편도 1시간 30~35분이 걸린다.   부산, 서울, 강릉 등 설문조사에서 언급된 타지역들은 각 여행사의 모국관광 투어 일정에 포함된 관광지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삼호관광의 신영임 부사장은 “가장 인기 있는 모국관광 상품은 9박 10일 팔도투어로 익산-전주-목포-순천-여수-남해-통영-거제-부산-경주-울진-강릉-속초-설악산 등 내륙관광과 제주도가 포함된다. 울릉도·독도는 기상에 따라 배가 뜨지 않는 경우가 있어 예매가 많지는 않은 편”이라고 밝혔다.   모국 방문시 제주도 관광에 나서는 비율은 업체에 따라 15~35% 수준으로 여행사 관계자 대부분이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아주투어 스티브 조 전무는 “제주도는 요금이 높고 한번 여행한 경우 다시 안 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신상품 개발과 요금 인하가 필요하다”며 “선호 여행지는 서울, 부산, 거제, 통영, 설악산, 경주 등이며 최근에는 평창, 삼척, 여수, 울산, 정선도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푸른투어 이문식 이사도 “제주도 투어를 진행하는 일부 업체들이 과도한 쇼핑을 진행해 여행객들이 피로감을 호소한다고 들어 본사는 노쇼핑 노옵션으로 투어하고 있다. 인기 여행지는 전주, 여수, 통영, 속초 등”이라고 강조했다.   춘추여행사 그레이스 이 팀장은 “제주도는 추가 항공 비용 등이 발생해 4~7일 정도의 내륙여행이 더 인기가 좋다. 울릉도·독도는 아무래도 배를 타다 보니 멀미 걱정들을 많이 해 지난해 90여명이 다녀왔을 정도다. 최근엔 부산, 여수, 거제 등 남해지방 관광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모국방문 수요가 크게 늘면서 업체에 따라 상반기에만 지난해보다 20~60%까지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올가을 투어가 절정에 달하면서 하반기에는 80~90%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낙희 기자본보 한인 대상 설문조사 여행지 울릉도 la지역 한인여행사들 모국관광 상품 독도 제주도 선호 여행지

2024-02-27

한인 10대 교회, 연간 식비 100만달러 ‘훌쩍’

남가주 10대 한인 대형교회의 식사 예산이 연 100만 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나성영락교회 등 10대 대형 교회를 대상으로 ‘주일 식사 배식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들 교회의 연 식비 총액은 106만3750달러였으며 연 117만7800그릇의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 그릇당 0.90달러 꼴이다. 식사 준비에는 매주 365명, 연인원 1만8980명의 자원봉사자가 투입됐다. 이들의 임금을 최저임금 8달러 기준으로 환산하면 1주 3만2760달러, 연 170만3520달러에 해당된다. 식사 예산에 숨어있는 인건비를 합하면 대형교회 식사 가치는 연 270만달러를 넘어선다. <관계기사 Religion& 섹션> 교회 식사에 대해 처음으로 이루어진 이번 조사는 식비 예산을 비롯해 음식량, 쌀 소비량, 대표음식, 주방인력까지 포괄적으로 포함됐다. 이번 조사는 그간 어림잡아 ‘많을 것’이라고 알려졌던 교회 식비의 구체적인 금액이 산출된 데 의미가 있다. <도표 참조> 이들 교회의 쌀 소비량은 20파운드 포대 기준으로 연간 1만1050개(총 22만1000파운드)로 조사돼 한인 교회들의 높은 쌀 구매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미국쌀연합(USA Rice Federation)에 따르면 미국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4파운드. 이를 기준으로 하면 한인 10대 교회 1년 쌀 소비량은 ‘빅 베어’시 주민(6142명)을 약 2년간 먹일 수 있는 양이다. 쌀 소비량이 가장 많은 LA 인근 음식점 중 하나인 북창동 순두부 본점이 1주에 2250파운드의 쌀을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10대 교회의 연 쌀 소비량은 이 음식점의 1년 10개월치 소비량과 맞먹는다. 식비를 가장 많이 쓰는 교회는 나성영락교회로 연간 40만 달러를 지출했다. 그 뒤를 ANC온누리교회(13만 달러), 남가주사랑의 교회(12만4800달러)가 이었다. 나성영락교회는 매주 4700인분을 만들어 조리량도 가장 많았다. 쌀 소비량으로는 남가주사랑의교회가 매주 20파운드 짜리 40포대로 최다였다. 정구현ㆍ이상배 기자

2010-12-07

['밥공동체' 사랑] 불교 "인연으로 밥 지어요"

어느 종교나 함께하는 식사는 중요하다. 불교에서는 밥 먹는 것도 공양(예배)이라고 한다. 식사 전 암송하는 '공양계'는 밥을 '한 방울의 물에도 부처님의 은혜가 스며있고 많은 사람의 노고가 담겨있다'고 정의한다. 성당에서는 대개 미사 후 밥을 주진 않지만 특별한 날에는 함께 식사한다. 이슬람은 독특하다. 먹지 않음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나눔의 의미를 되새긴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중 단식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조사대상으로 삼은 LA한인타운내 사찰 성당 모스크 모두 1회용 그릇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불교=LA한인타운 사찰중 하나인 달마사에서는 매일 절밥을 공양한다. 하루 3차례 기도시간이 끝나면 누구에게나 음식을 대접한다. '절밥 인심'이라는 말은 LA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반드시 식사 시간은 지켜야 한다. 모두 함께 먹고 함께 수저를 내려놓아야 한다. 매주 일요일 점심때 가장 많이 공양한다. 평균 60명 정도다. 달마사 주지 성채 스님은 "인연으로 밥을 짓는다"고 사찰 음식을 정의했다. 연간 밥 값으로 4만 달러를 쓰고 모자라는 몫은 신도들의 보시로 채우고 있다. 절밥 메뉴는 온통 자연식이다. 달마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금치와 숙주 도라지 고사리 가지 오이가 재료다. 양념은 냄새가 강한 마늘 양파 부추 파 등 오신채를 쓰지 않는다. 국도 육수를 내지 않고 만든다. 양념 없는 음식이 무슨 맛이 있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불자들의 설명이다. 이 절에서 명복보살로 불리는 한 여성 신도는 "처음에는 마늘과 파 없이 무슨 맛으로 조리를 하나 싶었지만 강한 맛이 없으면 오히려 재료 그 자체의 맛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몸에 좋은 웰빙 음식이지만 성채 스님식 표현에 따르면 금방 배가 꺼진단다. 그래서 많이 먹어야 한다. 적당량만 만들고 적량만 먹기 때문에 쓰레기도 적다. 남는 음식은 이 절에 날아드는 비둘기 몫이다. ▶가톨릭=LA의 성 바실 한인성당 신자들은 미사 후 밥을 팔아 그 수익금으로 성당 건축이나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고 있다. 성당에서 매주 200달러를 보조해주고 나머지는 신자들이 각출해 음식을 만든다. 1인분에 2달러씩 받는다. 보통 반찬 3~4가지에 국과 밥을 접시에 담아준다. 3개 조가 돌아가면서 매주 250명분을 만든다. 이 성당에서는 매년 4차례는 성당에서 전 신자에게 무료로 밥을 대접한다. 새해 첫날과 부활절 추석 등은 특별한 날이다. 신자의 절반인 600명이 함께 먹는다. 주메뉴는 떡국 비빔밥이다. ▶이슬람=LA한인타운 4가와 버몬트 인근에 있는 남가주이슬람센터에서는 매주 토요일 예배 후 신도들이 함께 점심을 먹고 커뮤니티 주민들에게 곳간도 연다. 이 모스크에서는 호프넷에서 지원받은 캔 음식을 200명에게 나눠준다. 최대 축제이자 신성한 절기인 '라마단'은 무슬림 식사 나눔의 핵심이다. 코란 2장 185절에 명시된 '라마단 달을 맞아 단식하라'는 구절을 지켜 30일간 해뜰 때부터 해질 녘까지 금식한다. 그 시간 중에는 물도 마실 수 없고 입으로 섭취하는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남가주이슬람센터 지도자 지하드 터크씨는 "라마단은 신도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금식을 통해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두번째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 모스크에서는 30일간 매일 밤 금식이 끝나는 네번째 예배시간에 500~600명의 신도들이 함께 허기를 달랜다. 이 음식을 '이프타르'라고 한다. 일반 예배 후에 주는 식사는 국제적이다. 다양한 인종이 모이기 때문에 각 나라별 고유 음식이 모두 식탁 위에 오른다. 터크씨는 "샐러드 케밥 아프간 전통음식 팔라오 이란식 카레 등 이슬람 문화권 음식은 물론이고 샌드위치나 덮밥 종류도 있다"고 말했다. 밥 값은 1인당 10달러선으로 모스크가 부담한다. 정구현 기자

2010-12-07

['밥공동체' 사랑] 미국 교회서도 점심 식사 줄까?

미국 교회에서도 밥을 줄까. '아니다'와 '그렇다'는 대답 모두 가능하다. 먼저 '아니다'의 경우. 교인수 1만명을 넘어서는 메가 처치들은 밥을 줄 형편이 못된다. 지난 9월 기독교 월간지 '아웃리치'가 발표한 미국 100대 대형교회에서 1위에 오른 레이크우드 교회는 그 이유를 '물리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했다. 이 교회 교인 수는 4만3500명이다.이 교회 사무국 로라 존스씨는 "4만 명이 넘는 식사를 교회에서 한꺼번에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각 교구나 그룹별로 음식을 가져와 나눠 먹는 형태로 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는 1000명 단위의 중형교회들에 해당된다. 이들 교회는 식사를 만든다. 하지만 한인 교회와는 그 대접 범위가 다르다. 한인 교회가 '우리끼리'라면 미국 교회는 '다 함께'다. 샌버나디노에 있는 교인수 7000여 명의 '더 락 처치 & 월드 아웃리치' 교회는 커뮤니티를 위해 밥을 만든다. 이 교회 행정담당 프레드 애덤스 목사는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오전 8시부터 3시간 동안 음식을 커뮤니티에 나눠주고 있다"며 "2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각 배포처에서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회에서는 주일에도 식사를 만들지만 늘어선 대열에서 정작 교인들은 찾기 어렵다. 애덤스 목사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교인들이 양보한다"며 "교인 중 식사를 먹는 이들은 나중에 형편이 나아지면 기부자나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그는 "배고픈 자를 먹이고 목마른 자를 축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이라고 덧붙였다. 너와 나를 구별하지 않는 나눔과 그 나눔의 덕으로 일어선 후에는 베푸는 자로 나눔에 동참하는 이 교회 식사 사역의 선순환 구조는 한인 교회 밥의 다음 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상배 기자

2010-12-07

['밥공동체' 사랑] 2500인분 국밥, 25명이 뚝딱 "일당백이죠"

"타다탁탁 타타닥." 경쾌한 도마위 칼질 소리가 리듬을 타나 싶더니 뿌연 육수 연기 너머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장로님 여기 좀 도와주세요." 오가는 목소리들이 숨 돌릴 틈 없이 주인을 찾고 있는 사이 주방 한 켠에 선 고소한 밥 익는 냄새가 꿀꺽 침을 삼키게 한다. 세월이 만든 흠집에 다소 윤을 잃었지만 50인분짜리 밥솥 8개 모두 묵직하게 수증기를 뿜어냈다. 지난 5일 오전 9시 점심 준비에 한창인 ANC 온누리교회(담임목사 유진소)의 주방 모습이다. 식사 메뉴는 소고기무국. 부흥회와 임직예배를 겸한 날이라 평소보다 많은 2500인분을 준비 중이다. 한 켠에서는 전날 미리 삶아놓은 고기 덩어리를 보기 좋게 썰고 한 켠에서는 대형 국통 앞에서 맛을 내느라 다시마 무우와 한바탕 전쟁을 벌이고 있다. 주방팀은 모두 25명. 한 명당 100명분을 준비하는 셈이다. 말 그대로 일당백이다. 9시 30분 1부 예배를 끝낸 교인들이 식당으로 속속 들어오자 식사팀은 그간 쌓아놓은 국밥그릇에 육수를 담아냈다. 이 교회 주일 식사 메뉴는 대부분 국밥 종류다. 반찬은 국밥에 맞는 김치가 전부다. 얼핏 허술해 보이지만 그릇 넘치도록 가득 올린 고기 고명과 진한 육수가 담긴 국밥은 입맛을 돌게 하기 충분하다. 국밥을 주 메뉴로 정한 이유는 그릇과 숟가락 때문이다. 올해부터 1회용품 사용을 줄이려고 스테인리스 그릇과 숟가락 5000여개를 구입했다. 그릇의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메뉴가 국밥이었다. 김동욱 식사담당 장로는 "처음 그릇을 살 때 비용과 설거지에 대한 부담이 컸다. 하지만 그릇을 쓰면서부터 1회용 그릇 사용 때보다 쓰레기량이 3분의 1까지 확 줄었다"고 말했다. 또 김 장로는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바꾸고 나서 1회용 용기 때보다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덧붙였다. 쓰레기량이 줄어드니 예산도 절감됐다. 그리고 그 혜택은 교인들에게 돌아갔다. 종전 2달러였던 밥 값을 1달러로 내렸다. 물론 메뉴의 질은 종전과 동일하니 시너지 효과가 크다. 이 교회에서는 급행으로 배식 받는 창구가 따로 있다. 연로한 어르신들의 모임인 '모세공동체'를 위한 특별창구다. 때문에 어르신들은 줄을 기다리는 수고 없이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 식사준비는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공동체 별로 분담한다. 이날은 터키와 과테말라를 위한 공동체 식구들이 준비했다. 토요일에 대부분의 음식 재료 준비를 마치고 주일에는 식사배급과 뒷정리를 한다. 이틀간 노동 시간만 10시간을 넘기는 강행군이다. 하지만 주방에서 찡그리는 얼굴은 찾아볼 수 없다. 한재성 장로는 "교회의 본질은 섬김이다. 섬김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준비하는 사람들도 기꺼이 참여한다"고 말했다. 주방내 남녀의 비율은 반반이다. 대부분 부부가 함께 일을 하기 때문이다. 무겁고 힘든 일은 대부분 남성이 세심하고 꼼꼼함이 요구되는 작업은 여성들이 맡는다. 이들에게 '밥'은 어떤 의미일까. 한재석 집사는 "하나님과 개개인이 기도를 통해 만나는 것이 수직적 종교생활이라면 밥은 성도들과 함께하는 수평적 종교생활"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늘과의 긴 수직선 중간에 좀 더 가까운 신도간의 수평선을 그으니 십자가였다. 교회 주방에서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찾았다. 이상배 기자 kongfriend@koreadaily.com

2010-12-07

['밥공동체' 사랑] 봉사자들 토요일부터 준비…대표메뉴는 설렁탕

밥 한 그릇에는 10개 대형 한인교회 각각의 속내가 담겨있다. 교회 살림살이부터 열성 교인 수까지 읽을 수 있다. 밥값도 교회별로 차이가 났다. 무료배식을 하는 교회는 4개 교회에 그쳤고 나머지는 1~2달러씩 실비를 받고 있다. 공통점은 메뉴의 다양화와 체계적인 인력 운영이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교회별 특징= 연간 예산 지출 규모 1위는 나성영락교회로 40만 달러를 쓴다. 10개 교회 전체 예산 총액의 37.6%를 차지했다. 조사 교회 중 유일하게 인건비를 주고 전문 주방장을 고용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예산 대비 가장 비싼 밥(1인분당 1.63달러)을 만든다. 밥값도 1인분에 2달러로 최고액이다. 나성영락교회에 이어 조리량 2위(주간 4500그릇)인 남가주 사랑의 교회는 밥값을 받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 쌀 소비량도 매주 20파운드 40포대로 1위를 차지 밥 인심이 가장 후했다. 가장 경제적으로 밥을 만드는 곳은 에브리데이교회로 그릇당 0.42달러였다. 메뉴는 타 교회와 큰 차이가 없지만 음식재료를 도매로 받아 예산을 줄였다. 베델한인교회는 유일하게 케이터링 주문과 주방 조리를 병행한다. 평일에도 밥을 주는 교회는 모두 4곳으로 나성영락교회와 베델한인교회 주님의영광교회 ANC온누리교회다. ▶메뉴 특색= 10대 교회의 공통 메뉴는 비빔밥과 국수 된장찌개 국밥 갈비탕 설렁탕 등이다.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고 먹기 간편한 음식들이다. 공통메뉴 외에 각 교회는 다양한 별식을 자랑한다. 나성영락교회는 식단 가짓수 면에서 전문요리사를 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 곳의 차림표는 팔보채에 갈비찜 초밥 등 20여 가지에 달한다. ANC온누리교회도 만만치 않다. 한방 갈비탕과 알밥 등 전문점 메뉴는 물론 수요예배 때에는 직접 피자를 만든다. 남가주사랑의교회는 아이들을 위한 별식으로 파스타와 떡볶이 자장면 카레 등 분식류를 내놓는다. 은혜한인교회에서는 대표 메뉴인 쇠고기국밥을 '은혜국밥'이라고 부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에브리데이교회는 감칠맛 나는 육수가 자랑이다. 일체 조미료를 쓰지 않고 양파껍질 파뿌리를 넣어 끓인다. 인랜드교회는 무짠지가 유명하다. 이 교회는 봄철이 되면 무우 50박스 분량을 풀어 대표음식인 무짠지를 담그느라 바쁘다. 단일 메뉴만 고집하는 교회도 있다. 주님의영광교회는 일요일에는 우동만 만든다. ▶주방 운영= 조리는 토요일부터 시작된다. 대부분 교회 주방에서는 토요일 음식재료를 준비하고 조리는 일요일에 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평균 조리시간은 이틀에 걸쳐 12시간 안팎이다. 10개 교회 주방 인력 1명이 담당하는 평균 조리량은 83명분이다. 일이 많고 힘들다 보니 고충도 많다. 베델한인교회 윤성로 장로는 "식당 사역은 군대 훈련만큼 체력적 소모가 크다"며 "보람과 사명이 없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고생스러운 일임에도 나성영락교회를 제외한 9개 교회 주방은 자원봉사자들이 움직인다. 주방인력은 남가주사랑의교회가 80~100명으로 가장 많다. 인력대비 조리량이 가장 많은 교회는 에브리데이교회로 1명당 100명분을 만든다. 각 교회들은 주방 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력과 작업을 체계적으로 배치하고 분류해 운영하고 있다. 소수의 전문 주방담당자들을 주축으로 각 교구별로 조를 짜 돌아가면서 봉사한다. 조리시에는 재료 다듬기와 국 끓이기 밥 짓기 등 업무를 분담해 인원을 배치한다. 정구현 기자

2010-12-07

'애찬'은 예배의 한 부분, 역사와 의미…'밥 공동체' 사랑, 100년 전부터 나눴다

밥은 한국인에게 생명이다. 더운 김 모락모락 나는 쌀밥 한 공기에는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절대가치가 담겨있다. '끼니를 나누는 사이가 식구'라는 선조의 가르침부터 이른 새벽 더운 밥을 짓는 어머니의 정성까지 모락모락 피어난다. 그 독특한 우리 DNA속 밥 한 공기는 교회라는 종교공동체를 만나면 한층 더 살가워진다. 주일이면 각 교회들은 형편대로 한 그릇씩 점심을 대접한다. '꼭 줘야 하나'라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대다수는 '신도간의 교제를 위한 배려'라는 데에 공감한다. 교회 특별히 한인 교회의 밥 한 공기에는 우리가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던 이민 역사와 신학적 의미가 숨 쉬고 있다. 또 땀 흘려 밥을 짓는 공동체적 희생과 정성 아끼고 덜 버리는 경제적 환경적 측면도 들어있다. 교회 밥을 '뜸을 들여' 취재했다. 한국 교회의 무서운 성장에는 '밥심'도 한 몫 했다. 밥을 나누면서 생성된 공동체 의식은 교회 발전의 한 축으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그 시초는 언제부터일까. 최초의 기록을 찾기 위해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터베이스를 교차 검색했다. 1896년 4월 7일부터 1950년 9월 14일까지 오래된 신문을 뒤졌다. 정확한 효시를 찾진 못했지만 한국 교회와 밥은 2세기 전부터 함께 해왔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 113년 전인 1897년 5월 11일자 독립신문은 "지나간 일요일(9일)에 조선 서울 미미 교회(현 정동제일교회)에서 주일 전도를 하였는데…오후에는 애찬을 배설하야 형제 자매들이 서로 사랑하는 연회를 하고…"라고 보도했다. 애찬은 성찬식 후 함께 모여 음식을 먹는 잔치를 뜻한다. 남녀가 유별한 당시 시대상에 비춰볼 때 교회의 점심 식사는 관습마저도 뛰어넘은 파격적인 나눔이었다. 태평양을 건너온 한인교회에서 밥이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는 더욱 크다. 하와이에 처음 이민 온 한인들은 교회부터 세웠다. 한국 내 종교 공동체의 '한솥밥'을 불교 사찰이 선점했다면 미국에서는 한인 교회가 주도한 셈이다. 그 최초 기록은 9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5년 12월9일자 신한민보가 증언한다. 3면 '디방(지방) 통신'란에 샌프란시스코 상항한인교회의 추수감사절 소식이 실렸다. "물질적으로는 내놓을 것이 없지만 정신이 건강함은 감사할 일이라. 동포들은 예배당에 모여 각각 한 그릇 과실을 가져 축하했다"고 전했다.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살림살이는 나눔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92년 전 LA 교회서도 밥을 줬다. 신한민보 1918년 6월 6일자 '잡보(단신)'란에 따르면 5월 26일 '로선잴쓰(로스앤젤레스) 교회'는 공원에서 복음회 겸 친목회를 열었다. 신문은 이날 메뉴가 "우리 국민의 특이한 음식인 딤채(김치)"라고 적고 있다. 거의 100년 전 한인 교인들은 미국 한복판 공원의 파란 잔디 위에서 야유회를 즐기며 당당히 김치를 나눠먹었다. 이보다 한 달 앞선 같은 해 4월 6일 '으리벗사이드(리버사이드) 한인교회'는 타인종과도 한솥밥을 먹었다. "미국인 교우와 정답게 모이기 위해 애찬회를 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인과 미국인이 각각 20명씩 모인 조촐한 파티였다. 그 이유가 뜻깊다. 어학(영어)을 가르치던 미국인 '맨 여사' 등 3명을 대접하는 자리였다. 특히 맨 여사에 대해선 "나히 늘ㄱ어(나이 늙어) 우리 교회를 도읍난고로(도운고로)"라고 감사의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민족적 인심이 교회 밥을 넉넉하게 했다면 나누는 근본 이유는 성경 속에 있다. 미주장로회신학대학의 이상명 교수는 "교회에서 왜 밥을 주는가에 대한 답은 사도행전 2장과 6장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 쓰니라"는 구절이다. 이 교수는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자면 식사는 단순한 교제의 도구가 아니라 예배의 한 부분"이라며 "나눔과 구제는 예배를 통한 효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구현.이상배 기자

2010-12-07

[효 에세이 입상작] 효자효녀상, 뒤늦게 불러보는 사모곡

'5월' '엄마' '카네이션' 단어는 나의 온 몸의 세포가 하늘에 계신 당신을 향한 그리움과 사무침으로 몸부림치게 합니다. 23년전 막내인 제가 결혼해서 미국으로 왔을 때 엄마는 저랑 뒷모습이 비슷한 단발머리 여대생만 보면 넋을 잃고 뒤를 쫓아 갔다지요. 막내인 제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랑 저는 학교 다닐 때 장난처럼 결혼도 하지 말고 엄마랑 같이 끝까지 살겠노라고 약속까지 했었는데 엄마는 내가 대학 졸업하자 마자 혼기라도 놓칠까 봐 이리저리 분주히 사윗감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던 엄마는 항상 옆에 끼고 있고 싶어했던 딸이 결혼해서 미국으로 오게 되니까 눈에 밟혀서 틈만 나면 딸이 타고 간 하늘만 쳐다봤대요. 비행기만 날아도 비행기가 하늘 끝까지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고 뒷모습이 비슷한 여대생이라도 보시면 정신없이 쫓아가다 걸음을 되돌리곤 하신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전해 들었어요. 그런 엄마를 저 역시 이 미국 땅에서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 했는지 어느 날 모 회사 화장품에서 엄마의 체취를 맡고 밀려오는 그리움에 목 놓아 울었답니다. 엄마! 저 이 편지 쓰면서 갑자기 또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을 못 쓰게 합니다. 뜨거운 눈물요. 엄마는 저의 정신적 지주였고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노년에 낳으신 늦둥이인 저와 세대차가 없으실 정도로 저의 눈높이에서 저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이해해 주셨습니다. 이웃에게도요. 해질 무렵 과일을 다 못 팔고 리어카를 돌리시는 과일 장수 아저씨에겐 엄마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어려우면 온 집안 식구들이 힘들 거라고 못 다 판 과일을 마지막에 다 사주셨던 우리 엄마. 그러던 엄마를 미국에 사는 이유로 생활이 바쁜 핑계로 나에게 하나의 가정이 생겼다는 변명으로 엄마를 가까이서 모시지 못함에 이 모든 것이 한으로 맺혀옵니다. 미국으로 방문 오실 때 이민 가방 4개를 아버지 2개 엄마 2개 들고 오셨던 것. 그릇 세트를 이불이며 옷가지 수건 속옷에 차곡차곡 쌓고 쌓아서 하나도 깨어지지 않게 싸오셨던 것. 지금까지도 그 그릇 수건 속옷을 쓰고 입고 있습니다. 사실 새 그릇으로 바꿔쓰고 싶어도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묻어 있고 배어 있기에 감히 바꿀 생각조차 못하고 있지요. 어느 날 지병으로 인해 몸져 누우셨는데 달려가서 간호를 해야하는 데 제가 모시지도 못하고 간호도 못했어요. 미국에서 쉽게 나간다는 게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한국에 언니 오빠가 계셨지만 엄마와 제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저녁마다 전화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꿈 속에서 엄마를 뵙고 일어났는데 빨리 한국을 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오빠 언니들한테 전화를 했는데 괜찮다고 제가 너무 민감한 것 같다고 했지만 전 마지막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급하게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비행기에 탑승하자 마자 캡틴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바로 내릴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습니다. 1분 1초가 화급을 다투는 듯 했습니다. 마음의 초조함을 이루 말할 수 없고 나는 비행기 안에 저 또한 엄마를 향해 날고 있었습니다. 공항에 내려 부산으로 옮겨타야 되는데 비행기를 놓칠 것 같아 내 짐을 포기하고 바로 부산행 비행기로 갈아타서 공항에 내렸는데 나의 서둘렀던 그 마음과는 달리 마중나온 오빠 언니는 너무 태연했습니다. 엄마는 괜찮은데 왜 그렇게 허둥지둥 정신을 못차리느냐고…. 하지만 난 한사코 빨리 서둘러 집에 데려다 달라고 재촉했고 오빠는 절 내려 주고 오빠 집으로 갔는데 엄마는 제가 오길 기다리고 계셨나 봅니다. 제가 "엄마"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엄마는 그 때 이미 눈을 감고 계셨는데 저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눈을 뜨시려고 애쓰셨습니다. 눈을 깜박이던 하얗고 온화하신 엄마의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엄마는 영원하신 생명의 나라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모두가 괜찮다고 했던 순간에도 늦둥이 막내인 저에게는 빨리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5남매 중 막내인 제가 엄마의 임종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난 지금 엄마가 즐겨 부르시던 찬송은 눈물 없이는 못 부릅니다. 목이 메어 찬송 속에 묻어나는 엄마의 음성이 너무 그리워서. 엄마가 읽으시던 성경에 그은 빨간 줄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번 더 눈이 머무릅니다. 엄마의 삶과 정신이 머물러 있기에…. 엄마! 하늘에서 뵈올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빨간 카네이션 대신 흰 카네이션을 당신께 드립니다. 뭉게 뭉게 솟아나는 그리움과 함께. 막내 딸 진희가

2009-07-10

[효 에세이 입상작] 효자효녀상, 그게 잘 안되네요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보았다.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 요사이 참으로 날씨가 좋다. 이렇게 좋은…. 내색하지 않는 아빠 엄마는 지금 어두운 회색빛 하늘과 땔감 없는 아궁이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막막한 마음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올 해 초 형부가 폐 쪽에 이상이 발견돼 조사해본 결과 선암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는 가진 것 없어도 식구 모두 건강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줘서 고맙다고 하셨었는데 이 일은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우리 세 딸과 사위들 그리고 막내 아들은 아빠 엄마의 재산이자 자랑거리요 삶의 이유란 걸 너무도 잘 아는 나는 이 일로 세상에 태어나 아빠가 우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주 아주 어릴 적 친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엄마가 크게 우셨던 건 생각나지만 아빠는 그저 입을 굳게 다물고 담배만 피시던 생각만 날 뿐 이렇게 목까지 메여 끝까지 말씀도 다 못하시고 우시는건 처음이셨다. 특별히 딸들에게 더 다정다감하신 우리 아빠…. 남들은 40살도 넘은 내가 아빠라고 부르면 아버지라고 물러야 된다고 하지만 나는 '아빠'라는 단어가 훨씬 좋다. 내 어릴 적 아빠는 학교가는 세 딸의 머리를 직접 물 묻혀가며 이쁘게 빗겨 주시고 색 곱고 좋은 옷감을 직접 사와 엄마에게 아이들 원피스를 만들어 입히라고 하시고는 올망졸망한 그 어린 딸들을 데리고 어디든 다니셨다. 아이들이 넷이나 있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엄마는 또 이런 일을 만들어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손에는 이미 줄자가 들려 있었고 천천히 만들어 입혀도 되었을텐데 밤이 늦도록 옷을 만들어 금세 입히셨다. 똑같은 옷 똑같은 머리를 하고 그렇게 셋이서 거리를 걸어가면 사람들이 "어휴 이쁘네 귀엽네" 한 마디씩 했다. 그럴 땐 아빠는 "제 딸들이에요"라고 하시며 너무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리고 아빠는 항상 첫 마디를 "걱정하지 마"로 시작하셨는데 나는 그 말 그대로 별 걱정하지 않고 자랐고 공부를 못해도 주사맞기 무서워 집으로 도망쳐와도 남의 집 유리창 문을 깨뜨려도 아빠는 항상 "걱정하지마 어디 아픈 것보다 훨씬 낫다"라고 하셨다. 언니가 시집갈 때 오른팔이 잘라진 것처럼 아프고 허전하다 하셨고 막내딸 시집갈 땐 이젠 집이 텅비었네라고 하셨지만 아마 맘이 텅 비었다는 뜻이었을거다. 둘째인 내가 시집갔을 땐 뭐라셨을까…. 어쩌다 딸 셋이 놀러와 엄마와 거실에 앉아 조잘조잘거리며 무엇 때문인지 히히 호호 하하 떠들면 부엌 식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계셔서 우리들의 대화를 전혀 듣지 못하셨을 것 같은 아빠 얼굴에도 살며시 웃음이 번지는 걸 나는 매번 보곤 했었다. 시집간 딸들이 이틀 삼일 전화가 없으면 엄마에게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 한 게 있느냐 또는 아이들과 싸웠냐 하시며 괜한 엄마를 잡는다고 하신다. 그리곤 곧바로 내 회사로 오셔서 "그냥 지나다 왔다. 니 얼굴 좀 보자" 하신다. 아빠는 심장으로 인한 마비가 벌써 두 번이나 왔었고 작년엔 심장 수술을 하셔서 온 식구들이 난리도 아니었는데 여전히 금기인 담배를 피우신다. "아빠 제발 담배 끊어야 돼!" 하며 난 곱게 눈을 흘긴다. 그러면 아빠는 "난 담배가 니 엄마보다도 좋다"라고 조용히 말씀하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요사이 부쩍 여위고 진짜로 할아버지 얼굴이 되어버린 나의 아빠…. 손과 얼굴에 쭈글쭈글 주름살이 정말 요샛말로 장난 아니다 싶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전에 없었던 한숨을 자주 쉬시며 차라리 살 만큼 산 내가 상호(형부이름) 몸에서 암을 가져와 대신 죽어주고 싶다며 눈물을 삼키시는 나의 하나뿐인 아빠. 아빠… 가끔씩 아빠를 안아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아빠… 가끔씩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은게 그게 잘 안되네요. 아빠… 가끔씩 걱정 마시라고 위로해 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아빠… 가끔씩 우리 곁에 오래 오래 있어달라 말씀 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 아빠… 가끔씩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아빠… 아빠… 너.무.너.무.사.랑.해.요. 오늘도 여전히 아빠는 손자 손녀들에게 "걱정하지마 할아버지가 다 해줄게. 다치나 아프면 안 돼! 그게 제일 나쁜 거야" 하신다.

2009-07-10

[효 에세이 입상작] 효부상, 못다한 며느리 노릇 내년엔 꼭···

보고 싶은 어머니 아버지께 LA는 지금 막 여름 더위가 시작되었어요. 그렇지만 곳곳에 형형색색 아름다운 고운 빛깔의 꽃들이 무더위를 잊게 해줍니다. 대구도 지금쯤 많이 덥겠지요. "아이구 디다"하시면서 가게에서 장사하고 계시겠네요. 많이 더워서 고생이 많으시죠. 장사도 안 되서 힘드신데. 죄송해요. 저희가 미국에 있어서 도와 드리지도 못하고…. 제가 어머니 아버지의 며느리가 된 지도 벌써 7년이 흘렀네요. 정말 세월이 빠르네요. 제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진이가 6살 용선이가 4살이네요. 아이들 많이 보고 싶으시죠. 내년에 진이 아빠가 한국으로 꼭 발령이 나서 그동안 못한 며느리 노릇 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편지를 드리니까 제가 젤 첨 두 분께 원재씨랑 두려운 맘으로 인사 드리러 가던 날이 생각나네요. 미국에서 오래 자랐고 저희 집안 교육자 집안이라 장사하시며 오래 살아오신 두 분의 아들과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 반대하시려고 했는데 절 보시고 며느리 삼으면 정말 좋겠다고 좋게 보아주셔서 아버님이 절 보시고 대뜸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애를 낳냐고 원재 씨한테 절 데리고 단골 한약방 가서 약 한 재 먹이라고 하셨죠. 전 너무 당황하고 부담스러워서 솔직히 두 분이 그땐 좀 이상했어요. 제 의향은 무시하시고 그냥 며느리 취급을 하셔서…. 어쨌든 얼떨결에 결혼 날짜를 등 떠밀려 잡고 아버님은 대구 시내 아시는 분 모두에게 절 데리고 다니시면서 미국에서 우리 아들이랑 결혼하러 온 예쁜 며느리라고 자랑하시며 다니셨죠. 그런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죠. 결혼식 전날 아버님이 뇌졸증으로 쓰러지셔서 결혼을 연기할 수는 없어서 아버님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시던 외아들 결혼식에 참석 못 하셨죠. 결국 눈물의 결혼식을 올리고 식이 끝나자 마자 아버지 뵈러 응급실로 달려갔죠. 그런 우리 두 사람에게 어머니는 신혼 여행을 못 가서 어떡하냐고 걱정하시고 아버님이 빨리 의식을 되찾도록 우리 모두는 눈물로 기도했죠. 다행히 하나님이 아버지를 예전처럼 건강하게 해주셨죠. 전 아버지가 의식 찾으셔서 저의 손을 잡고 하신 그 말씀 평생 못 잊을 거에요. "아가 미안하다. 내가 주책없이 좋은 일 앞두고 맘 고생하게 해주었네. 너 결혼식 못 봤으니까 내년에 손주 하나 낳고 또 한 번 예식 올리자"하셨죠. 결국 예식은 다시 올리지 못하고 남편이 절 따라 미국에 왔지만 용선이 돌은 성대하게 했죠. 아버님이 그렇게 기다리시던 손자 손녀를 안겨드려서 조금이나마 며느리 역할 한 것 같아 위안 삼았어요. 어머니 아버지 내년에 꼭 한국에 가서 며느리 노릇 반에 반이라도 그동안 못한 것 해드리고 싶어요. 며느리가 아닌 딸로 늘 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저도 두 분 시부모님이 아닌 정말 저희 부모님처럼 평생 사랑하며 살게요. 내년에 뵐 때까지 건강 챙기시고요. 장사에 너무 힘쓰지 마세요. 어머니 아버지. 저의 시부모님이 되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평생토록…. 어머니 아버지의 딸 에스더 올림

2009-07-05

[효 에세이 입상작] 효부상, 제 자식 키워 보니 알 것 같아요

그리운 어머님께. 어머님 그동안 무고하신지요. 저는 미국에 있는 셋째에요. 며칠 전에 제가 꿈을 꾸었는데 어머님께서 배가 아시다며 누우셔서 배를 문지르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깨고 난 뒤 지금 어머님께서 아프신데 자식이 모르고 있는건가 싶어 얼른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님께서는 마침 아가씨 댁에 가셨다며 전에 넘어지신 다리가 아프셔서 그렇지 다른 곳은 괜찮으시다고 하셔서 조금 마음이 놓였답니다. 어머님 85세 생신 축하드려요.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세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사시는 우리 어머님. 그저 젊어서는 없는 집에 그 작은 체구로 시동생 두 분 결혼 안 하신 아주버님 남자들만 계신 집에 시집오셔서 자식 8남매를 낳으시고 고생만 하시며 사시던 어머님. 지금은 몸이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시면서 자손 마음 상할까 내색도 안하시는 어머님. 국민학교도 제대로 다니시지 않으셔도 혼자서 글을 깨우치셔서 성경을 읽으실 때는 한이 서린 듯 비슷하게 노래하듯이 읽으시면 듣고 있는 저희도 지루하지 않게 하시던 어머님. 저희가 일찍 이민 와 어머님하고 같이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데 어머님 전화 목소리만 들어도 목이 메여 오는지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 저희 집에 오셔서 1년을 사시던 그 시간이 저와 가장 긴 시간을 같이 하신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일한답시고 아침에 나와서 저녁에나 들어가는 며느리에게 행여 배가 고플까봐 어머님께서는 맛있는 된장찌개를 시골맛 그대로 조금이라도 힘든 며느리에게 오자마자 밥술이라도 뜨게 하시려고 준비해놓고 기다려 주시던 어머님. 그 맛이 어찌 그리 맛있었는지요. 지금도 어머님께서 해주시던 그 맛이 그립습니다. 제가 하면 그맛이 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자식을 사랑하시는 어머님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자식을 키워보니 어머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기간이 다 되어 가신 다음에는 좀 더 잘해 드릴 것을 후회가 많이 되었는데 어머님께서는 한국에 가셔서 저와 같이 사시고 싶으시다고 저와 같이 사시는 게 마음이 편하시다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들었을 때는 잘 해드리지도 못했는데 죄송하고 송구스러워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분도 좋았습니다. 지금은 너나 나나 때가 어려워 부부싸움도 잦다는데 저희 부부도 다투는 때가 전보다 많아졌습니다. 아범이 밉다가도 어머님 생각하면 조금 덜 미워진답니다. 어머님 저와 사시고 싶으시다고요. 저도 어머님과 같이 살고 싶어요. 제가 아이들 키워놓고 한국에 나가서 살 생각인데 그때 같이 살아요. 그래도 어머님께서 8남매 자식 중에 저를 지목해 주신거 감사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부모와 같이 사는 거 싫어한다지만 저는 어머님이랑 같이 사는 거 항상 어머님께서 저희 곁에 계시는게 아니잖아요. 연세도 있으시고 그래서 사사는 동안 저도 어머님과 함께 살고 추억도 역사도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어머님께서 저를 기다려주셔야 해요.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셔서 저와 같이 사는 날에 제가 어머님 모시고 여기 저기 같이 구경도 해요. 아무쪼록 어머님 사시는 날까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 드립니다. 어머님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세요. 어머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미국에서 셋째 올림

2009-07-05

[효 에세이 입상작] 효자효녀상, 태평양 건너 꿈 속에서라도

이 캠페인에서 입상한 작품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기침 가래로 힘겨워하는 막둥이를 보듬어 안고서 집 앞 화단에 우뚝 서있는 사철나무 앞에서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우리 지현이 아프지 말고 커그래이. 4계절 푸른 이 사철나무처럼 파릇파릇 건강하게 자라그래이…." 30여년전 내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 아버지 보셔요. 산 넘고 바다 건너 13시간을 날아온 이 곳 미국땅에도 고향집 사철나무가 버젓이 숨쉬고 있네요. 광기어린 더위를 이겨내고 생명줄 다한 나뭇잎이 옷을 갈아입는 가을을 비껴 눈보라 휘몰아치는 매서운 겨울도 거뜬히 맞서 사계절 한결같이 초록을 뿜어내는 튼튼한 사철나무를 보면서 내 부모님은 얼마나 가슴아파 하셨을까? 야위어가는 딸 자식을 가슴에 품고 마음 졸였을 부모님의 애절함을 어미가 된 지금에야 감히 헤아려 봅니다. 유난히도 몸이 허약했던 어린시절! 딸 자식의 생명줄을 조금이나마 연장시키기 위해 약초를 캐느라 아버지는 팔자에도 없는 산지기가 되셨습니다. 운이 좋은 날엔 거무튀튀한 빛깔의 손바닥 만한 영지 버섯을 보물처럼 안고 오시기도 하셨조. 읍내 시장에 내다팔면 우리 다섯 식구 한동안 양식걱정이라도 덜 것을. "우리 배 채우자고 이 어린 것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데이" 하시면서 엷은 햇살 골라 정성스레 말리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담배 한 개피 허락치 않으시고 말린 묵은 누런 종이에 둘둘 말아 버꿈버꿈 태우곤 하셨습니다. "에미야 니가 자식 낳고 사는 모습 보니까 이제 우린 죽어도 여한이 없데이." 안쓰럽던 여식이 출가해 무사히 자식을 낳았다는 소식에 그토록 좋아하셨는데…. 무릎팍에 오롯이 새끼들 둘러 앉혀 놓으시고 옛날 얘기 들려주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 하셨는데…. 그 소망 지켜드리지 못하고 태평양을 건너오고 말았습니다. 거듭되는 가뭄과 홍수에 흉작이 된 농작물 갈아 엎으시면서도 쓴 소주 몇 잔으로 괴로움 달래시더니 바다 건너 먼 길 떠나는 여식 앞에서는 끝내 돌아서서 눈물을 쏟고야 마셨죠. 뒤늦게 애기 기저귀 가방 깊숙한 곳에서 꼬깃꼬깃 접어 찔러주신 지폐를 보고 비행기 안에서 얼마나 흐느꼈는지 모릅니다. "성공해서 엄마 아버지 꼭 호강시켜 드릴께요." 하지만 이민 생활이 생각처럼 만만치가 않네요.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부모님 생각은 항상 뒷전으로 밀렸다가도 오늘처럼 이렇게 아이가 아프다던지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다시 간절하니 저는 어쩔 수 없는 불효자인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낸 편지 한 장을 수십번 보고 또 보고 가슴팍에 얹고 잠드신다는 동생의 얘기에 목구멍이 울컥해졌습니다. 나중에 큰 것 대단한 것 해드리기보다는 바로 지금 현재 위치에서 정성스레 쓴 편지 한 통 안부전화 한 통이 진정으로 내 부모님이 바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나중에 우리가 성공하면 꼭 호강시켜 드려야지" 마음은 늘 한결같지만 불효 여식의 성공이 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듯 세월 역시 두 분을 기다리지 않음을 이제사 터득했습니다. 호호백발 눈 앞에 둔 불쌍하신 우리 부모님! 오늘 밤엔 고운 날개 옷 입고 태평양 건너 꿈 속에라도 찾아뵙고 싶습니다. 부디 건강하고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2009-07-05

[사고] 가정의 달 '효' 캠페인…공경마음 담은 에세이 콘테스트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잊고 지냈던 ‘가족’의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우리를 키워주신 어머니, 아버지가 새삼 그립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중앙일보와 산하 미주한인봉사단(KAVC)이 가정의 달을 맞아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건강상품 기업인 ‘나노웰’과 함께 ‘2009 효 에세이 캠페인’을 실시합니다. 이번 행사는 미국땅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식들을 훌륭하게 교육시킨 부모님들에 대한 자녀들의 사랑과 공경의 마음을 에세이로 적어 널리 알리려는 취지로 열립니다. 이번 행사 참가자 전원에게는 중앙일보에서 가족사진 촬영권을 무료로 제공하며 에세이 심사를 통해 15작품을 뽑아 입상자들에게는 푸짐한 상품을 드립니다. 중앙일보와 ‘나노웰’이 펼치는 이번 행사를 통해 더욱 행복하고 사랑 가득한 가정의 달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에세이 접수 마감: 5월29일(금) ▷신청 방법: 레터지 2~3매 분량 사연 및 사진 자료 첨부 ▷입상자 발표: 6월15일(월)자 중앙일보 지면 ▷시상: 효부상 2명, 효자상 3명, 특별상 10명 (총 15명) ▷사연 접수처: 중앙일보 사업국 ‘효 에세이’ 담당자앞(주소 690 Wilshire Place. LA., CA 90005) ▷주최: 나노웰 ▷주관: 중앙일보 미주한인봉사단 ▷문의: (213)368-2562

200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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