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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에세이 입상작] 효자효녀상, 태평양 건너 꿈 속에서라도

제니 김

이 캠페인에서 입상한 작품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기침 가래로 힘겨워하는 막둥이를 보듬어 안고서 집 앞 화단에 우뚝 서있는 사철나무 앞에서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우리 지현이 아프지 말고 커그래이. 4계절 푸른 이 사철나무처럼 파릇파릇 건강하게 자라그래이…." 30여년전 내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 아버지 보셔요.

산 넘고 바다 건너 13시간을 날아온 이 곳 미국땅에도 고향집 사철나무가 버젓이 숨쉬고 있네요. 광기어린 더위를 이겨내고 생명줄 다한 나뭇잎이 옷을 갈아입는 가을을 비껴 눈보라 휘몰아치는 매서운 겨울도 거뜬히 맞서 사계절 한결같이 초록을 뿜어내는 튼튼한 사철나무를 보면서 내 부모님은 얼마나 가슴아파 하셨을까?

야위어가는 딸 자식을 가슴에 품고 마음 졸였을 부모님의 애절함을 어미가 된 지금에야 감히 헤아려 봅니다.

유난히도 몸이 허약했던 어린시절!

딸 자식의 생명줄을 조금이나마 연장시키기 위해 약초를 캐느라 아버지는 팔자에도 없는 산지기가 되셨습니다. 운이 좋은 날엔 거무튀튀한 빛깔의 손바닥 만한 영지 버섯을 보물처럼 안고 오시기도 하셨조.

읍내 시장에 내다팔면 우리 다섯 식구 한동안 양식걱정이라도 덜 것을.

"우리 배 채우자고 이 어린 것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데이" 하시면서 엷은 햇살 골라 정성스레 말리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담배 한 개피 허락치 않으시고 말린 묵은 누런 종이에 둘둘 말아 버꿈버꿈 태우곤 하셨습니다.

"에미야 니가 자식 낳고 사는 모습 보니까 이제 우린 죽어도 여한이 없데이."

안쓰럽던 여식이 출가해 무사히 자식을 낳았다는 소식에 그토록 좋아하셨는데….

무릎팍에 오롯이 새끼들 둘러 앉혀 놓으시고 옛날 얘기 들려주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 하셨는데…. 그 소망 지켜드리지 못하고 태평양을 건너오고 말았습니다.

거듭되는 가뭄과 홍수에 흉작이 된 농작물 갈아 엎으시면서도 쓴 소주 몇 잔으로 괴로움 달래시더니 바다 건너 먼 길 떠나는 여식 앞에서는 끝내 돌아서서 눈물을 쏟고야 마셨죠. 뒤늦게 애기 기저귀 가방 깊숙한 곳에서 꼬깃꼬깃 접어 찔러주신 지폐를 보고 비행기 안에서 얼마나 흐느꼈는지 모릅니다.

"성공해서 엄마 아버지 꼭 호강시켜 드릴께요." 하지만 이민 생활이 생각처럼 만만치가 않네요.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부모님 생각은 항상 뒷전으로 밀렸다가도 오늘처럼 이렇게 아이가 아프다던지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다시 간절하니 저는 어쩔 수 없는 불효자인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낸 편지 한 장을 수십번 보고 또 보고 가슴팍에 얹고 잠드신다는 동생의 얘기에 목구멍이 울컥해졌습니다.

나중에 큰 것 대단한 것 해드리기보다는 바로 지금 현재 위치에서 정성스레 쓴 편지 한 통 안부전화 한 통이 진정으로 내 부모님이 바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나중에 우리가 성공하면 꼭 호강시켜 드려야지"

마음은 늘 한결같지만 불효 여식의 성공이 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듯 세월 역시 두 분을 기다리지 않음을 이제사 터득했습니다.

호호백발 눈 앞에 둔 불쌍하신 우리 부모님! 오늘 밤엔 고운 날개 옷 입고 태평양 건너 꿈 속에라도 찾아뵙고 싶습니다. 부디 건강하고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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