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에세이 입상작] 효자효녀상, 뒤늦게 불러보는 사모곡
'5월' '엄마' '카네이션' 단어는 나의 온 몸의 세포가 하늘에 계신 당신을 향한 그리움과 사무침으로 몸부림치게 합니다.23년전 막내인 제가 결혼해서 미국으로 왔을 때 엄마는 저랑 뒷모습이 비슷한 단발머리 여대생만 보면 넋을 잃고 뒤를 쫓아 갔다지요. 막내인 제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랑 저는 학교 다닐 때 장난처럼 결혼도 하지 말고 엄마랑 같이 끝까지 살겠노라고 약속까지 했었는데 엄마는 내가 대학 졸업하자 마자 혼기라도 놓칠까 봐 이리저리 분주히 사윗감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던 엄마는 항상 옆에 끼고 있고 싶어했던 딸이 결혼해서 미국으로 오게 되니까 눈에 밟혀서 틈만 나면 딸이 타고 간 하늘만 쳐다봤대요. 비행기만 날아도 비행기가 하늘 끝까지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고 뒷모습이 비슷한 여대생이라도 보시면 정신없이 쫓아가다 걸음을 되돌리곤 하신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전해 들었어요.
그런 엄마를 저 역시 이 미국 땅에서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 했는지 어느 날 모 회사 화장품에서 엄마의 체취를 맡고 밀려오는 그리움에 목 놓아 울었답니다.
엄마! 저 이 편지 쓰면서 갑자기 또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을 못 쓰게 합니다. 뜨거운 눈물요. 엄마는 저의 정신적 지주였고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노년에 낳으신 늦둥이인 저와 세대차가 없으실 정도로 저의 눈높이에서 저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이해해 주셨습니다.
이웃에게도요. 해질 무렵 과일을 다 못 팔고 리어카를 돌리시는 과일 장수 아저씨에겐 엄마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어려우면 온 집안 식구들이 힘들 거라고 못 다 판 과일을 마지막에 다 사주셨던 우리 엄마.
그러던 엄마를 미국에 사는 이유로 생활이 바쁜 핑계로 나에게 하나의 가정이 생겼다는 변명으로 엄마를 가까이서 모시지 못함에 이 모든 것이 한으로 맺혀옵니다.
미국으로 방문 오실 때 이민 가방 4개를 아버지 2개 엄마 2개 들고 오셨던 것. 그릇 세트를 이불이며 옷가지 수건 속옷에 차곡차곡 쌓고 쌓아서 하나도 깨어지지 않게 싸오셨던 것. 지금까지도 그 그릇 수건 속옷을 쓰고 입고 있습니다. 사실 새 그릇으로 바꿔쓰고 싶어도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묻어 있고 배어 있기에 감히 바꿀 생각조차 못하고 있지요.
어느 날 지병으로 인해 몸져 누우셨는데 달려가서 간호를 해야하는 데 제가 모시지도 못하고 간호도 못했어요. 미국에서 쉽게 나간다는 게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한국에 언니 오빠가 계셨지만 엄마와 제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저녁마다 전화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꿈 속에서 엄마를 뵙고 일어났는데 빨리 한국을 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오빠 언니들한테 전화를 했는데 괜찮다고 제가 너무 민감한 것 같다고 했지만 전 마지막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급하게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비행기에 탑승하자 마자 캡틴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바로 내릴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습니다. 1분 1초가 화급을 다투는 듯 했습니다.
마음의 초조함을 이루 말할 수 없고 나는 비행기 안에 저 또한 엄마를 향해 날고 있었습니다. 공항에 내려 부산으로 옮겨타야 되는데 비행기를 놓칠 것 같아 내 짐을 포기하고 바로 부산행 비행기로 갈아타서 공항에 내렸는데 나의 서둘렀던 그 마음과는 달리 마중나온 오빠 언니는 너무 태연했습니다. 엄마는 괜찮은데 왜 그렇게 허둥지둥 정신을 못차리느냐고….
하지만 난 한사코 빨리 서둘러 집에 데려다 달라고 재촉했고 오빠는 절 내려 주고 오빠 집으로 갔는데 엄마는 제가 오길 기다리고 계셨나 봅니다. 제가 "엄마"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엄마는 그 때 이미 눈을 감고 계셨는데 저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눈을 뜨시려고 애쓰셨습니다. 눈을 깜박이던 하얗고 온화하신 엄마의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엄마는 영원하신 생명의 나라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모두가 괜찮다고 했던 순간에도 늦둥이 막내인 저에게는 빨리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5남매 중 막내인 제가 엄마의 임종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난 지금 엄마가 즐겨 부르시던 찬송은 눈물 없이는 못 부릅니다. 목이 메어 찬송 속에 묻어나는 엄마의 음성이 너무 그리워서. 엄마가 읽으시던 성경에 그은 빨간 줄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번 더 눈이 머무릅니다. 엄마의 삶과 정신이 머물러 있기에….
엄마! 하늘에서 뵈올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빨간 카네이션 대신 흰 카네이션을 당신께 드립니다. 뭉게 뭉게 솟아나는 그리움과 함께.
막내 딸 진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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