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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에세이 입상작] 효자효녀상, 그게 잘 안되네요

엔젤라 이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보았다.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 요사이 참으로 날씨가 좋다. 이렇게 좋은….

내색하지 않는 아빠 엄마는 지금 어두운 회색빛 하늘과 땔감 없는 아궁이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막막한 마음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올 해 초 형부가 폐 쪽에 이상이 발견돼 조사해본 결과 선암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는 가진 것 없어도 식구 모두 건강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줘서 고맙다고 하셨었는데 이 일은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우리 세 딸과 사위들 그리고 막내 아들은 아빠 엄마의 재산이자 자랑거리요 삶의 이유란 걸 너무도 잘 아는 나는 이 일로 세상에 태어나 아빠가 우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주 아주 어릴 적 친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엄마가 크게 우셨던 건 생각나지만 아빠는 그저 입을 굳게 다물고 담배만 피시던 생각만 날 뿐 이렇게 목까지 메여 끝까지 말씀도 다 못하시고 우시는건 처음이셨다.

특별히 딸들에게 더 다정다감하신 우리 아빠…. 남들은 40살도 넘은 내가 아빠라고 부르면 아버지라고 물러야 된다고 하지만 나는 '아빠'라는 단어가 훨씬 좋다.

내 어릴 적 아빠는 학교가는 세 딸의 머리를 직접 물 묻혀가며 이쁘게 빗겨 주시고 색 곱고 좋은 옷감을 직접 사와 엄마에게 아이들 원피스를 만들어 입히라고 하시고는 올망졸망한 그 어린 딸들을 데리고 어디든 다니셨다.

아이들이 넷이나 있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엄마는 또 이런 일을 만들어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손에는 이미 줄자가 들려 있었고 천천히 만들어 입혀도 되었을텐데 밤이 늦도록 옷을 만들어 금세 입히셨다.

똑같은 옷 똑같은 머리를 하고 그렇게 셋이서 거리를 걸어가면 사람들이 "어휴 이쁘네 귀엽네" 한 마디씩 했다. 그럴 땐 아빠는 "제 딸들이에요"라고 하시며 너무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리고 아빠는 항상 첫 마디를 "걱정하지 마"로 시작하셨는데 나는 그 말 그대로 별 걱정하지 않고 자랐고 공부를 못해도 주사맞기 무서워 집으로 도망쳐와도 남의 집 유리창 문을 깨뜨려도 아빠는 항상 "걱정하지마 어디 아픈 것보다 훨씬 낫다"라고 하셨다.

언니가 시집갈 때 오른팔이 잘라진 것처럼 아프고 허전하다 하셨고 막내딸 시집갈 땐 이젠 집이 텅비었네라고 하셨지만 아마 맘이 텅 비었다는 뜻이었을거다. 둘째인 내가 시집갔을 땐 뭐라셨을까….

어쩌다 딸 셋이 놀러와 엄마와 거실에 앉아 조잘조잘거리며 무엇 때문인지 히히 호호 하하 떠들면 부엌 식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계셔서 우리들의 대화를 전혀 듣지 못하셨을 것 같은 아빠 얼굴에도 살며시 웃음이 번지는 걸 나는 매번 보곤 했었다.

시집간 딸들이 이틀 삼일 전화가 없으면 엄마에게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 한 게 있느냐 또는 아이들과 싸웠냐 하시며 괜한 엄마를 잡는다고 하신다. 그리곤 곧바로 내 회사로 오셔서 "그냥 지나다 왔다. 니 얼굴 좀 보자" 하신다.

아빠는 심장으로 인한 마비가 벌써 두 번이나 왔었고 작년엔 심장 수술을 하셔서 온 식구들이 난리도 아니었는데 여전히 금기인 담배를 피우신다. "아빠 제발 담배 끊어야 돼!" 하며 난 곱게 눈을 흘긴다. 그러면 아빠는 "난 담배가 니 엄마보다도 좋다"라고 조용히 말씀하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요사이 부쩍 여위고 진짜로 할아버지 얼굴이 되어버린 나의 아빠…. 손과 얼굴에 쭈글쭈글 주름살이 정말 요샛말로 장난 아니다 싶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전에 없었던 한숨을 자주 쉬시며 차라리 살 만큼 산 내가 상호(형부이름) 몸에서 암을 가져와 대신 죽어주고 싶다며 눈물을 삼키시는 나의 하나뿐인 아빠.

아빠… 가끔씩 아빠를 안아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아빠… 가끔씩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은게 그게 잘 안되네요.
아빠… 가끔씩 걱정 마시라고 위로해 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아빠… 가끔씩 우리 곁에 오래 오래 있어달라 말씀 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
아빠… 가끔씩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아빠… 아빠… 너.무.너.무.사.랑.해.요.
오늘도 여전히 아빠는 손자 손녀들에게 "걱정하지마 할아버지가 다 해줄게. 다치나 아프면 안 돼! 그게 제일 나쁜 거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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