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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개국 여행기 렌즈에 담았다"…사진작가협회 김상동 회장

사진은 미학적 수단이다. 또한 기록의 도구이기도 하다.     LA한인사회에서 사진전과 커뮤니티 역사의 기록, 이 두가지 공통 영역에 김상동 남가주사진작가협회 회장이 있다. 그는 1989년부터 한인 커뮤니티의 일부분이 되어 해마다 작품전을 개최하고 한인사회를 기록해왔다.     김회장이 지난 30년 동안 30여개국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모아 첫 사진집 ‘리플렉션 오브 저니(Reflection of Jouney·사진)’를 출간했다. 작품 사진집이 아닌 여행 사진집이다. 수십 년 동안 사진 작업을 하며 편안하게 남기고 싶은 사진들을 선별해 수록했다.     그는 “포토샵하는 디지털 사진 시대지만 나는 아날로그적 사진을 추구한다”며 “사진집에서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집에는 총 120여점 이상 작품이 수록됐다. 30여개국을 출사다니며 김 회장의 철학이 담긴 작품들이다.     그는 “내 사진은 미국 사진에서 영향을 받았다”며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는 사진을 추구하게 되었고 렌즈를 통해 생각하고 보는 것을 다르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추구하는 사진학의 출발은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포토그래피에서 본격적으로 사진공부를 시작하면서다.     1988년 가족 초청으로 LA로 이주한 그는 일을 마치고 매일 샌타모니카에서 사진을 찍었다. 고등학교때부터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는 본격적으로 사진학을 공부하고 싶어 전문학교에서 사진공부를 했다.     2005년부터는 미주중앙일보 문화센터에서 ‘김상동의 사진 세상’ 클래스를 진행했다. 열기는 대단했다. 팬데믹 이전 15년 동안 배출한 사진작가는 500여명 이상. 디지털 카메라 붐이 일던 그 때 기초부터 올라가는 강의 방식, 경험으로 다져진 이론 교육, 새로운 교육 방식은 신선했다.     김 회장이 시작한 남가주사진작가협회는 한인사회 역사의 방점을 찍었다. 사진작가들의 모임이지만 목적은 커뮤니티 봉사다. 등록된 회원은 40~45명.     김 회장은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아닌 사진을 통한 커뮤니티 봉사와 참여 비중을 회원 선정 기준으로 뒀다. 출사지는 쿠바, 아이슬랜드, 중국 등 전세계 30여곳 이상. 그중 아프리카 사진에 애정이 깊다.     사진집 표지와 전반부에 아프리카 사진을 배치했다. 렌즈를 통해 아프리카의 실상을 알리고 싶었던 사진들이다.     소망소사이어티와 굿네이버스를 통해 찍은 사진을 모아 아프리카 사진전을 개최해 23개 우물을 팠다.   2006년부터는 LA한국문화원과 함께 사진전 ‘리치 오브 더 랜드(Riches of the Land)’를 개최하고 있다. 지금 한인타운 대표 사진전으로 자리잡았다.     수십 년 사진작가로 활동했지만 개인 사진전은 단 2번 뿐이다. 작가로서 전시회는 적지만 LA한인타운 올림픽경찰서 입구에 LA다운타운 야경을 담은 8피트X27피트의 김 회장 작품이 벽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오는 18일 오후 6시 ‘리플렉션 오브 저니’ 출판기념회가 LA한인타운 M플라자 내 ‘M카페’에서 열린다.     사진집은 한인타운 내 세종문고, 반디북스, 해피북스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은영 기자사진작가협회 여행기 김상동 남가주사진작가협회 작품 사진집 커뮤니티 역사

2024-10-15

"30여개국 여행기 렌즈에 담았다"

사진은 미학적 수단이다. 또한 기록의 도구이기도 하다.   LA한인사회에서 사진전과 커뮤니티 역사의 기록, 이 두가지 공통 영역에 김상동 남가주사진작가협회 회장이 있다.   그는 1989년부터 한인 커뮤니티의 일부분이 되어 해마다 작품전을 개최하고 한인사회를 기록해왔다.   김회장이 지난 30년동안 30여개국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모아 첫 사진집 ‘리플렉션 오브 저니’(Reflection of Jouneyㆍ사진)를 출간했다. 작품 사진집이 아닌 여행사진집이다. 수십 년 동안 사진 작업을 하며 편안하게 남기고 싶은 사진들을 선별해 수록했다.   그는 “포토샵하는 디지털 사진 시대지만 나는 아날로그적 사진을 추구한다”며 “사진집에서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집에는 총 120여점 이상 작품이 수록됐다. 30여개국을 출사다니며 김회장의 철학이 담긴 작품들이다.   그는 “내 사진은 미국 사진에서 영향을 받았다”며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는 사진을 추구하게 되었고 렌즈를 통해 생각하고 보는 것을 다르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회장식이 추구하는 사진학의 출발은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포토그래피에서 본격적으로 사진공부를 시작하면서다.   1988년 가족 초청으로 LA로 이주한 그는 일을 마치고 매일 산타모니카에서 사진을 찍었다.   고등학교때부터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는 본격적으로 사진학을 공부하고 싶어 전문학교에서 사진공부를 했다.   2005년부터는 미주중앙일보 문화센터에서 ‘김상동의 사진 세상’ 클래스를 진행했다. 열기는 대단했다.   팬데믹 이전 15년동안 배출한 사진작가수는 500여명이상. 디지털 카메라 붐이 일던 그 때 기초부터 올라가는 강의 방식, 경험으로 다져진 이론 교육, 새로운 교육 방식은 신선했다.   김회장이 시작한 남가주사진작가협회는 한인사회 역사의 방점을 찍었다.   사진작가들의 모임이지만 목적은 커뮤니티 봉사다. 등록된 회원은 40~45명.   김회장은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아닌 사진 통한 커뮤니티 봉사와 참여 비중을 회원 선정 기준으로 뒀다.   출사지는 쿠바, 아이슬랜드, 중국 등 전세계 30여곳 이상. 그중 아프리카 사진에 애정이 깊다.   사진집 표지와 전반부에 아프리카 사진을 배치했다. 렌즈를 통해 아프리카의 실상을 알리고 싶었던 사진들이다.   소망소사이어티와 굿네이버스를 통해 찍은 사진을 모아 아프리카 사진전을 개최해 23개 우물을 팠다.   2006년부터는 LA한국문화원과 함께 사진전 ’리치 오브 더 랜드(Riches of the Land)‘를 개최하고 있다. 지금 한인타운 대표 사진전으로 자리잡았다.   수십 년 사진작가로 활동했지만 개인 사진전은 단 2번 뿐이다.   작가로서 전시회는 적지만 LA한인타운 올림픽경찰서 입구에 LA다운타운 야경을 담은 8피트X27피트의 김회장 작품이 벽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오는 18일 오후 6시 ‘리플렉션 오브 저니’ 출판기념회가 LA한인타운 M플라자 내 ‘M카페’에서 열린다.   사진집은 한인타운 내 세종문고, 반디북스, 해피북스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은영 기자여행기 렌즈 김상동 남가주사진작가협회 작품 사진집 커뮤니티 봉사

2024-10-13

[삶의 뜨락에서] -아모르 파티(Amor Fati) -페루 여행기 2

여운 깊은 엘 콘도르 파사! 구슬픈 팬플룻 소리를 가슴에 담고 아름다운 한 폭의 예술품, 마추픽추를 뒤로하고 리마에 도착하여 황금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박물관 1층에는 수많은 칼과 총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많은 흉기를 바라보며, 인간의 잔인함과 야만성, 탐욕과 욕망의 숨은 뒷그림자가 눈에 어른거려 슬펐다. 2층의 황금 박물관에서 잉카의 역사를 더듬는 나의 눈길은 분주하였는데 유독,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말하는 매듭’이라고 불리는 키푸스(←Quipus)라는 전시품이었다. 글쓰기와 공식 서면 언어가 없었던 고대인들은 색색의 긴 섬유의 줄에 매듭을 이어, 매듭의 크기와 길이와 색깔로 글과 언어를 소통하였다니, 그 엄청난 지혜가 놀라울 뿐이었다. 매듭을 바라보며, 미(美), 그리고 시(詩)라는 글자의 매듭은 무슨 색이었을까? 길었을까? 짧았을까? 궁금해하는 나의 속내를 바라보며 웃었다.     시선을 돌리니 긴 머리카락에 투박한 직물에 옷을 입고 태아의 자세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미라가 유리관 안에 있다. 내세의 부활을 믿어 엄마의 자궁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으로 시체를 앉은 자세로 박제했다던 장례문화, 그들이 믿었다는 내생(來生)은 있을까? 마음속 파도처럼 일렁이는 죽음이라는 물음을 안고 유한한 삶의 시간의 궤적을 바라보았다. 눈길을 끈 또 다른 전시품, 잉카제국의 상징물 뚜미(Tumi), 제사장이 죽으면 바다의 신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다는데 나는 터코이스 보석이 박힌 반달 모양의 모자를 쓴 기념품을 사 들고 박물관을 나섰다.     모래사막을 달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버기트럭에 몸을 싣고 도착한 이카, 눈 앞에 펼쳐진 광활한 사막! 모래바람이 겹겹의 굴곡의 무늬를 만들어낸 풍광에 압도되어 숨이 멎었다, 샌드보드를 타고 내려간 모래언덕 아래, 오마이갓! 상상 만으로만 그려보다 처음 본 사막의 오아시스!! 그 벅찬 감동은 한정된 페이지에 글로 다 실을 수 없는 감격이었다.     흥분의 하루의 투어를 끝마치고 멋진 식당에 도착하여 아리랑 우리 팀의 웃음을 블랜딩하여 마신 와인과 식사는 일품이었고 호텔에서의 잠은 꿀맛이었다. 다음날, 보트를 타고 나간 작은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빠라스카 섬, 푸른 바다 위에 멀리 뵈는 바위 중간 큰 둥근 구멍은 나에게는 신비의 창(窓)으로 보였고 그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지르는 나의 탄성은 노랫가락이 되어 파도에 흩어졌다. 취하도록 아름다운 황홀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이동하여 나스카에 도착하였다. 경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나스카 지상화, 벌새, 원숭이, 고래를 바라보며 나는 흥분에 소리를 질렀다. 기원전 300년 전 어떻게 저 그림이 가능했을까? 외계인설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무엇으로 이 기분을 표현할까.     페루! 마추픽추와 모래사막과 오아시스, 바위창과 나스카! 내가 본 모든 벅찬 광경에 마음이 기울어져 넘어졌다. 그렇다. 나는 페루에 경도되었다. 페루는 신비였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이해에 대한 겹겹의 서사는 오래 갈 것이다. 살며, 문득, 이 경험이 나를 훈풍의 바람으로 흔들 것이다. 눈을 감으니, 죽음으로 가는 유한한 삶 앞에 너무도 미미한 존재임을 느끼며 침묵의 시선으로 오래 바라보았던 미라가 떠오른다. 그래, 중요한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내가 숨 쉬는 이 순간만이 영원한 생명일 것이다. 내가 있어야 당신도 세상도 존재할 뿐, 망울을 터트리며 올라오는 봄꽃도 바람 한 점도 내가 있어 존재한다. 지금 그리고 여기, 감사로 숨을 고른다. 페루 여행의 선물, 아모르파티!! 나의 삶을 절절히 사랑해야지…. 곽애리 / 시인삶의 뜨락에서 아모르 여행기 페루 여행기 선물 아모르파티 아모르 파티

2024-04-03

[삶의 뜨락에서] 키 큰 폴란드 여자 -발틱 3개국, 폴란드 여행기 4·끝

폴란드는 발틱 3개국에 비해 큰 나라다. 국토 면적은 리투아니아의 5배, 인구는 4000만 명이다.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체코와 국경을 같이 하는 이 나라는 독일, 러시아의 침략을 받았다. 문화적으로는 프랑스와 교류가 많았다. 파리는 런던과 더불어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다.     바르샤바 곳곳에 크고 작은 뮤지엄이 많아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인구 200만, 관광객이 많은 바르샤바에는 술집이 많다. 투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봤는데 67종류의 맥주를 판매한다는 선전문이 있었다. 대부분은 현지 맥주,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선지 질 좋은 보드카도 생산하고 있다. 술꾼들의 천국이다.     여행은 사람 만남이다. 만났다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가끔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여행을 일주일 정도 앞둔 어느 날 내가 하는 가게에 키 큰 남자가 들어왔다. 미국 영어, 서유럽 엑센트가 아니었다. 폴란드 사람이었다. 곧 발틱, 폴란드를 여행한다고 했더니 그는 전화번호를 주겠다며 바르샤바에 오면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투어 그룹을 따라가니 괜찮을 거라고 했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었다.     폴란드 여행 마지막 밤 쇼팽(Fryderyk Chopin) 음악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다. 올드 타운에 있는 타운홀, 1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었다. 중앙에 쇼팽 사진이 있고, 촛불이 펄럭거렸다. 흰 플라스틱 의자는 깨끗했다. 연주장 실내 장식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클래식했다. 연주자는 마치 폴리조스키(MaciejPoliszewski) 머리는 스타인웨이피아노 건반 같은 백발이었다.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멜로디를 따라가는 그의 손가락을 응시했다. 손이 음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멜로디가 손을 따라가는 것 같았다. 그는 평생을 연주하며 살아온 것 같았다.     쇼팽은 그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1810년 프랑스 아버지와 폴란드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19살까지 바르샤바에 살다가 아버지의 요청으로 파리로 가, 20년간 작곡을 하다 39세로 요절했다. 몇 여인과의 로맨스가 있었으나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죽기 전 유언을 남겼다. 내 심장은 바르샤바에 안치해 주세요. 쇼팽의 유해는 파리에, 그의 심장은 바르샤바 교회에 안치돼 있다.     연주가 끝나고 나왔더니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투어 버스가 주차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수년 전 하바나 여행 때에도 헤밍웨이 호텔에 들어가 메모하다가 잠시 미아가 된 적이 있었다) 길을 지나는 한 키 큰 젊은 여자에게 버스가 어디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확실치 않으나 같이 찾아보자고 했다. 나는 지갑, 휴대폰 안 갖고 나와 무일푼이라고 했더니 그녀는 우버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15분 정도 기다려 택시가 오고 그녀는 운전사에게 호텔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름은 물어봤으나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는 받지 않았다. 택시는 나를 같은 이름의 다른 호텔에 데려다주고 가 버렸다. 그 호텔 직원에게   물어 밤길 30분을 걸어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 가게를 찾아온 친절한 폴란드 남자, 길을 잃고 헤매다 만난 키 큰 폴란드 여자, 우연이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대부분은 무심하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드물다. 오래된 성당 앞에는 걸인이 많으나 적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이 시리즈 제목을 놓고 고민했다. Polish Heart로 하고 싶었다.   조국 폴란드를 사랑해심장(Heart)을 고향에 두기를 원했던 쇼팽, 아름다운 마음(Beautiful Heart)을 가진 폴란드 남녀, 그들을 잊을 수 없다. 앞으로 혹시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큰 폴란드 여자처럼 정성껏 도와주는 것이 신세를 갚는 길일 것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폴란드 여행기 폴란드 여행 폴란드 어머니 바르샤바 교회

2023-11-21

[삶의 뜨락에서] 땅은 주인을 잃고 울었다

발틱에는 산이 없다. 에스토니아를 지나 라트비아를 향해 달렸다. 남으로 내려갈수록 나무가 우거지고 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인구는 적은데 노는 땅이 많아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심히 보니 교회가 없고 그 흔한 십자가가 보이지 않았다. “발틱은 일찍 루터란 교를 받아들였으나 소련의 지배를 받으면서 사람들은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로   내려가면 오래된 성당을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리가는 ‘발틱의 파리’, 중세기 아름다운 건축양식이 즐비해 있었다. 우아한 바로크, 신 클래식, 넓은 창문, 갖가지 조각, 유네스코 문화유적으로 지정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5층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노인들이 살기에 불편하게 보였다. 가이드를 따라 웅장한 성당으로 들어갔다. 노인 몇 사람이 엎드려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젊은 교인은 없는가? “소련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교회 문을 닫았을 때는 사람들은 몰래 예배를 드렸습니다.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자 교회는 텅텅 비어 뮤지엄으로 변했습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요.”   리투아니아에는 허허벌판에 십자가를 쌓아 놓은 언덕(The Hill of Crosses)이 있다. 1831년, 리투아니아가 러시아 압정에 항거해 순례자들과 여행자들이 크고 작은 십자가를 바치고 기도를 드렸다. 너무 많아 셀 수 없었다. 수만을 넘어 수십만 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 태생 존 폴 2세 교황이 이곳에서 특별 미사를 올린 곳으로 유명하다. 일행 중 몇 명이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리투아니아 수도인 빌뉴스에서 본 성 베드로-성 바울 교회도 인상적이었다. 교회는 밖에서는 작아 보였으나 내부는 웅장하고 조각품이 많았다. 가이드의 익살, “교회를 유심히 보세요. 배 모양 같지 않아요? 천국으로 향하는 이 선박은 두 성인이 노를 젓고 가는데 악마도 동승하고 있어요. 아마 도중에 쫓겨날 겁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Saint Anne church가 있는데 교인들이 층계마다 엎드려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는 인구 70만, 발틱 최대의 도시이다. 올드 타운에 The  Museum of Occupation이 있다. 라트비아는 독일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박물관에는 스탈린과 히틀러 그림이 있고, 45년 러시아 폭정이라는 포스트가 있었다. 이 중 The Land Lost People이라는 글을 읽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를 생각했다. 뮤지엄에서 한 저항 시인의 시를 발견했다. “과거를 위한 눈물은 거두세요.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두려워하지 마세요. 눈을 똑바로 뜨고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헤쳐나가세요” (Knuts Skujenicks)     여행하면서 어느 나라를 가든지 국민의 존경받는 작가의 동상은 그 나라 수도 심장부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민족 시인은 나라의 혼이다. 외세의 지배를 많이 받은 나라일수록 문학의 힘은 강했다. 바르샤바 Freedom Road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동상이 있다. 레이건의 유명한 베를린 연설, “미스터 고르바초프, 저 장벽을 허무세요.” 레이건 덕분에 폴란드는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유 국가로 다시 태어났다.     빌뉴스 올드 타운 좁은 골목에 ‘셰익스피어 호텔’ 간판이 보였다. “이 호텔에는 방 번호가 없습니다. 셰익스피어 방, 킹 리어 방, 바이런 방, 로미오 줄리엣 방 등이 있습니다. 방 숫자는 30, 방값은 하루에 100유로 정도, 로미오 줄리엣은 신혼부부에게 특히 인기가 있습니다. 제일 방값이 싼 것은 도스토옙스키 룸, 아마 러시아 작가이기 때문에 푸대접을 받을 겁니다.”   리가 시내 한 건물 안에 스위스,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세 나라 대사관이 한 작은 건물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Three S Countries, 임대료를 절약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폴란드 여행기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나라 대사관 바울 교회

2023-11-15

[삶의 뜨락에서] 고요한 숲속에서 갑자기 총성이 -발틱 3개국, 폴란드 여행기 2

하마스 테러로 촉발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긴장이 고조됐던 시기, 뉴욕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에 유대인 가족이 타고 있었다. 아버지는 전통적인 랍비 복장,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아들도 같은 차림이었다. 아이는 일곱 명, 큰딸이 엄마를 대신해 우는 아기를 돌봐주고, 다른 아이들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뛰어다녔다. 승객들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독일, 오스트리아, 발칸 반도, 발틱 3개국, 폴란드를 여행하다 보면 슬픈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 현장을 피할 수 없이 만난다. 유대인 희생자들의 동상은 대개 이름이 없다. 체코 프라하 유대인 묘지 앞에 울고 있는 한 동상이 서 있었다. 가이드에게 “왜 이름이 없어요?” 하고 물었다. “It could be any Jew.” 오스트리아 빈 오페라 하우스 바로 건너편에 쇠사슬에 묶여 땅바닥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동상도 이름이 없었다.     이번 여행 중 유대인 집단촌과 뮤지엄, 홀로코스트 현장을 지났다. 발틱해 가장 북쪽에 있는 에스토니아에서도 희생자가 많았으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훨씬 더 많았다. “왜 그런가요?” 가이드의 대답 “라트비아는 1000년 전 독일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유대인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몰려와 리가와 교외에 집단촌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리투아니아는 오래전 다른 종교에 관대한 것으로 소문나 유대인이 대거 이주 ‘발틱의 예루살렘’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2차 대전이 터지고 나치는 유대인 학살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발틱에는 수용소가 없었습니다. 나치는 이들을 잡아다 아름다운 숲으로 끌고 갔습니다. 라트비아 여름 숲속에서 수십만 명이 총살당했습니다.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집단촌은 명문 국립대학 바로 위에 있었습니다. 나치와 나치에 협력한 리투아니아 경찰이 끌고 고요한 숲속으로 데려가 웅덩이를 파고 옷을 벗겼습니다. 갑자기 총성이 울리고 놀란 새들과 들짐승이 달아났습니다. 유대인들은 낙엽처럼하나둘 떨어져 웅덩이에 묻혔습니다. 처형을 기다리던 유대인 13명이 밤중에 땅굴을 파서 도주해 살아남았습니다. 나치는 80명을 동원해 증거를 지우려고 했습니다. 리투아니아 전국에서 70만 명이 죽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인구는 지금의 280만 명보다 훨씬 많았으나 거의 20%를 잃었고, 그들은 무고하고 재능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수도에서 남으로 11km 숲속에 Panerial Holocaust 기념비가 당시 비극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치는 폴란드에 수용소를 설치해 10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독살했다. 여행 중 아우슈비츠 학살 현장을 찾고 싶었으나 바르샤바에서 300km나 떨어져 일정상 가지 못했다.     폴란드에는 2차 대전 약 40만 명의 유대인이 살았으며, 집단촌에 10만 명이 있었다. 좁은 방 하나에 7~8명이 모여 살아 질병으로 죽은 이가 많았다고 한다. 참다못해 유대인들은 집단 반란을 일으켜 1만5000명이 피살되었고 이 사건은 가스 처형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바르샤바 올드 타운에 Polin Jewish Museum, 큰 빌딩이 있다. 여기서 폴란드 유대인의 1000년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수백 년 전 나무집시나고그가 인상적이었다. 뮤지엄 앞에 당시 폴란드 외교관이었던 Karski 동상이 있다. 그는 유대인들을 구출해 런던 등지로 보낸 영웅이었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폴란드 여행기 유대인 집단촌과 유대인 희생자들 유대인 학살

2023-11-07

[삶의 뜨락에서] 노래로 슬픔을 잊는다 -발틱 3개국, 폴란드 여행기 1

새벽에 일어나 이 글을 쓴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심각한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독자들에게 보고서를 작성해서 띄운다. 지난달 24일 밤늦게 도착해 몇 시간 잤다. 아침 4시, 폴란드와 6시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하고는 7시간 시차가 있다. 이번에 독일 비행기 루프트한자를 탔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크고, 청결하고, 능률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공항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유료 샤워장과 몇 시간 잘 수 있는 유료 취침실이 있다.   바르샤바에서 출발,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4시간을 기다렸다. 활주로에 독일 비행기와 유나이티드에어가 사이좋게 서 있었다. 2차 대전을 생각했다. 독일 전투기는 미군기에 격추당했고, 프랑크푸르트는 공습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비 내리는 공항, 거의 80년이 지났지만 그 하늘은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종전 후 베를린이 동서로 분할되고, 한때 소련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에 대한 보복으로 베를린을 군대로 포위하고 독일 사람들을 굶겨 죽이려고 했다. 이때 미국, 영국 등 우방 비행기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분 단위로 식량 등 생필품과 의약품을 싣고 가 베를린 하늘에서 떨어뜨렸다.   이번 발틱 3개국, 폴란드 여행기는 러시아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와 번영을 이룩하고 행복하게 사는 추운 나라 사람들을 보고, 만나고, 깊은 감동으로 느낀 스토리이다.   발틱해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세 작은 나라가 바다 건너 스칸디나비아 3개국(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와 마주 보고 있다. 발틱 세 나라를 합한 인구는 550만(에스토니아 120만, 라트비아 150만, 리투아니아 280만), 바이킹 후손 스칸디나비아 세 나라(스웨덴 1000만, 덴마크 550만, 노르웨이 530만) 보다 훨씬 적다. 발틱 3개국은 독일, 스웨덴, 러시아의 침략을 받아 왔고 2차 대전 후 소련 연방에 편입되어 고생하다 1991년 완전한 자유를 되찾았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압력으로 공산주의 체제를 도입했으나 소련 연방은 아니었다. 이번 여행 중 이 세 나라 사람들의 반러시아 감정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꼈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Riga), 러시아 대사관 바로 건너편에 라트비아 뮤지엄이 있는데 벽에 흉측한 푸틴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리가와 리투아니아 수도 빌듀스에는 옛 KGB 만행을 볼 수 있는 뮤지엄과 고문실이 보존돼 있다. (리가 사람들은 큰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고 해서 Corner House라고 부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발틱 3개국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으면서도 군사적, 정치적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EU, NATO 회원국이며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발틱 국가에서는 여름에 송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에스토니아 축제는 1869년에 시작, 150년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축제는 온종일 열리는데 인접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나라 인구의 거의 두 배인 200만 명 관중이 서로 어울려 노래하고, 껴안고 키스해 뉴욕의 타임스스퀘어 축제를 연상케 한다.   러시아, 독일 등 외세에 눌려 살아온 발틱인들이 한 데 모여 노래로 상처를 치유하고 우정을 돈독히 하는 한여름 밤의 축제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에서도 송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그 규모와 열기는 에스토니아 축제에 못 미치고 있다고 한다. 발틱 3개국 중 핀란드와 러시아에 가장 가까운 에스토니아는 헝가리, 핀란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몽골의 칭기즈칸 군대는 튀르키에, 헝가리까지 진출, 언어와 문화를 전파했다. 에스토니아는 몽골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작은 나라지만 IT 산업과 국제 금융 시스템이 잘 돼 있어 국민소득이 세 나라 중 제일 높다. 사람들은 키가 크고 잘생겼으면 젊은이들은 대개 영어를 잘한다. 모든 면에서 서유럽에 못지않은 선진국 대열에 속해 있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폴란드 여행기 폴란드 여행기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라트비아 뮤지엄

2023-11-01

[삶의 뜨락에서] 뭐든지 물어보세요 -베니스,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여행기 (5·끝)

코로나바이러스 바로 직전 두바이-아부다비를 여행했다. 현지 가이드는 우리를 전통적인 두바이 가정으로 데리고 갔다. 고유 의상을 입은 젊은 여인은 미국인들에게 “뭐든지 물어보세요” 했다. 그녀는 많은 미국인이 아랍인들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 이 기회에 조금이나마 해소했으면 하는 것 같았다. 뭐든지 질문하라고 해서 아무거나 물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왕족에 대한 비판은 허용되지 않고, 테러리즘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은 종교와 관련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지 않다. 고유 의상이다. 워낙 볕이 따가워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고 대답했다. “UAE는 현재도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느냐” “옛날이야기다. 당신은 과거를 말하고 있다. 요즘은 절대다수가 한 남편, 한 아내를 가지고 있다. 여기선 데이트하기가 어려워 일단 결혼부터 하는 경우가 많아 이혼율이 높다.”   이번 여행 중 두 번 현지 가정, 농장에 초대받았다. 크로아티아에서 400년 된 가족농장에서 재배한 채소, 직접 기른 돼지, 닭고기를 먹었고, 손수 빚은 와인을 마셨다. 주인은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아들, 딸이 춤을 추었다. 슬로베니아에서도 현지 유명 식당에 초대되었다. 그들은 전통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나이든 댄서가 관광객들과 어울려 한바탕 춤을 추었다.     내가 이용하는 미국 여행사는 어느 나라를 가든지 현지인과의 문화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오바마 시절, 쿠바는 잠깐 미국 여행자를 받아들였다. 여행 목적은 교육 및 문화교류, 그렇지 않으면 입국비자를 받을 수 없다. 하바나에서 현지 아티스트를 만나고 커뮤니티 센터를 방문했다. 루마니아, 베트남에서는 잘 사는 가정을 방문했는데 그들은 아메리칸이 찾은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남미의 에콰도르, 페루에서는 현지 와이너리, 흙담집을 찾아 고유 음식을 같이 했다.     나는 에세이를 쓰기 때문에 여행을 ‘심각하게’ 하는 편이다. 출발 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질문을 준비한다. 여행 중 나처럼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미국인은 책을 읽고 오지 않고 묻지도 않는다. 그저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 즐기고 와인을 마신다. 젊은 배낭족들은 캐슬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험한 트레일을 완주하며 싼 호텔에 머무른다. 골목 뮤지엄을 찾고, 현지인과도 쉽게 어울린다. 발칸 반도에는 인구 수백만의 작은 나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수 세기 동안 종교분쟁을 겪었고 크고 작은 전쟁에 휩쓸렸다.     여행을 떠나가 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돌아왔다고 반가워할 이가 있을까’ 생각했다. 또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모르겠다. 내 이야기를 들어준 독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최복림 / 시인오피니언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여행기 베니스 크로아티아 고유 의상

2023-04-12

[삶의 뜨락에서] 헤어진 사연들 -베니스,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여행기 (4)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리브, 인구 380만 명 중 100만 명이 모여 사는 대도시이다. 언덕 위에 구도시, 밑에 신도시가 있는데 정부기관, 오래된 교회는 올드타운에 있다. 의사당 앞에서는 배달원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며 데모를 하고 있었다. 그날부터 발효되는 새 법이 자전거 배달원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한 블록 거리에 아주 재미있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이 나라 현대 미술 박물관보다 방문객이 많은 자그리브의 명소다. 좁은 2층 박물관은 여행자들로 붐비었는데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뮤지엄을 설립한 사람은 올린카라는 여자와 드라론이라는 남자, 이들은 비즈니스 파트너이면서 애인 사이였는데 오래 동거하다가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워하지 않고 지금도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세계 각국 사람들의 이혼 및 결별 사연을 모아 전시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2010년 이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대박이 터졌다. 입장료는 비수기에 일 인당 5.5유로, 여행 성수기에는 이보다 비쌀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많았다가 소문이 나면서 각국에서 글이 답지하고 박물관 측은 수시로 사연을 바꾸어 전시하고 있다. 여기 실린 글 몇 개를 소개한다. “죽지 않는 사랑은 없다. 사랑은 결국 죽는다.” “여린 마음으로 헤어져라. Leave with a tender heart.” “고통스러운 순간일수록 감미롭게 대하라. Take the bitter with Sweet.” “모든 사랑은 외국 여행 중 생긴다. All love affairs happen in foreign cities.”   독일 남자가 아내와 이별하게 된 사연, “아내는 매일 거울 앞의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거울 앞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지요. 아내는 그 후 애 둘을 나에게 맡기고 파티에 가곤 했습니다. 이것이 이혼 사유가 되었습니다.” 캐나다 부부의 결별 사연, “우리는 4년간 사랑의 고통과 기쁨을 반복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어느 해 여름, 그는 두 개울이 바다로 합친 향상이 그려진 나무 지팡이를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전 아내가 준 것이었는데 지금 아내는 재수 없다며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프랑스 남자가 보내온 이야기, “여자 친구와 9년간 사랑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싫증이 났는지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나는 작은 섬으로 가 아무도 찾지 못하게 동굴 속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부부 3분의 1은 살다가 헤어진다고 한다. 박물관 측은 사람들이 남의 이야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행복한 부부 관계나 연인 사이를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슬로베니아 수도, 유비아나의 메인 스퀘어에 이 나라의 국보적 시인, 프래스랜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그는 이 나라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지배를 받고 있을 시대에도 모국어로 주옥같은 시를 썼다. 30대 변호사-시인인 그는 15살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동상에서 멀지 않은 빌딩에 소녀의 초상화가 있다. 그의 사랑은 로맨스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녀는 좋은 집안의 딸이고, 그는 서민 출신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다. 모든 사랑은 끝나게 되어 있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여행기 베니스 크로아티아 결별 사연

2023-04-05

[삶의 뜨락에서] 바다의 풍금 소리 -베니스,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여행기 (3)

‘물은 자연의 원동력이다(Water is the driving force of nature).’ -레오나르도 다 빈치   크로아티아는 경치가 아름다운 나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사진이나 그림엽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 관광객이 모여든다. 한국인들도 많이 와 코로나 전에는 특별 전세기까지 운항했다고 한다. 호텔에서 서울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을 여러 번 만났다. 자그레브의 낙서 벽에는 ‘삼척 박 씨, 며느리 파이팅’이라는 글이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 투어 그룹은 대부분 은퇴자인데 한국 단체들은 젊게 보이는 부인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크로아티아 오타피아 노점상에서 트럼풀이라는 비싸지 않은 약재를 샀는데 상인은 “싸다. 비싸다” 하는 것이 한국 관광객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라고 해 웃었다.     이번에 방문한 발칸 세 나라를 아름답게 한 것은 높은 산과 내해 깊숙이 들어 온 바닷물이다. 대부분의 관광은 베니스에서 크로아티아로 들어가 버스를 타고 해안을 도는 일정이다. 나는 눈을 즐겁게 하는 여행보다 역사와 문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발굴하는데 관심이 많은 편인데 이번에는 자연에 매료되었다. 그중에서도 몬테네그로(Montenegro-검은 산)의 경관은 잊을 수 없다. 수천 피트 높은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고 바닷물은 깊은 만까지 들어와 있었다.   사람들은 카페에 앉아 커피나 와인을 마시며 연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연안에는 홍합 양식장이 많았다. 이 도시에서는 고양이가 큰 대접을 받고 고양이 박물관이 있다. 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 공원 벤치에서 낮잠 자는 고양이도 많다. 유럽이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 갔을 때 아름다운 이 도시는 피해가 작았다. 고양이들이 병균을 옮기는 쥐를 잡아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로아티아의 스프릿, 드보로닛 항에는 넓은 보도가 있고, 사람들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와인이나 맥주를 마신다. 먹고 마시고, 담배 피우고, 한때 티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에 익숙한 그들이지만 낙천적으로 보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하다. 아이들이 아주 예쁘고 젊은 여자들은 날씬하다. 그러나 애를 몇 낳고 나이가 들면 몸집이 커져 귀여운 느낌은 없다. 남자 평균 신장은 180cm가 된다고 한다.     크로아티아의 자달(Zadar)이라는 항구에서 ‘바다의 풍금 소리(Sea Organ)’를 들었다. 아이디어가 매우 시적이다. 바닷물이 닿는 보도에 금, 은, 동으로 만든 가느다란 파이프를 심었다. 파도와 접촉하는 순간 오르간 소리가 생기고 이 소리는 작은 구멍(Holes)을 통해 전달된다. 멀리서는 은은하게 들리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제법 큰 풍금 소리가 된다. 크로아티아의 컬카(Krka ) 국립공원은 작으나 이색적이다. 산 중턱 곳곳에서 물이 쏟아져 온 계곡이 수백 개의 폭포가 된다. 1.2마일밖에 안 되는 나무 트레일이 있는데 걸을 만 했다.   슬로베니아는 유럽에서 두 번째 꼽히는 ‘푸른 나라(Green Country)’에 속한다. 인구 200만의 소국이지만 사람도 자연만큼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세 나라는 관광이 주 산업이고 호텔이 현대식이면서도 비싼 것 같지 않고 물가도 합리적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좋았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베니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여행기 풍금 소리

2023-03-2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나비처럼 살기로 한다. 가볍게 살기로 했다. 아무도 나를 이제 귀여운 곰인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복스럽고 오동통한 곰탱이로 살던 시간은 흘러갔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이웃들은 한국 이름 발음하기 힘들었는지 ‘Sweet Little thing(달콤한 작은 것)’이란 애칭으로 날 불렀다. 나는 그 당시 한국 여자로는 키가 큰 편이다. 콩나물 시루처럼 60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은 교실에서 늘 마지막 줄에 앉았다. 말을 잘 못 알아들으면 고분고분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눈이 한 개뿐인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가면 눈 두 개 있는 사람이 비정상이다. 눈 하나뿐인 사람들의 숫자가 불어나면 원주민(?)들의 차별을 받는다. 다행히 정착지가 중서부 소도시라서 동양인은 희귀동물(?)인 양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걸리버 여행기’는 1726년 영국계 아일랜드인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가 쓴 기행문 형식의 소설이다. 주인공인 의사 걸리버가 선의(船醫)로 취직해 세계를 돌아다니며 겪은 여행담이다.     줄거리는 4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제 1편 릴리퍼드(Lilliput)에서 걸리버가 탄 배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는 바람에 걸리버는 키가 6인치도 채 안 되는 소인들에게 포로로 잡힌다. 소인들은 국가의 제도나 별 거 아닌 이유로 다투는데, 계란을 뾰족한 쪽부터 깨느냐 덜 뾰족한 곳부터 깨느냐의 논쟁으로 전쟁을 벌이기도 하고, 높은 굽 신발을 신는 높은 굽파와 낮은 굽 신발을 신는 낮은 굽파가 대립하기도 한다. 걸리버는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국가나 사회제도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돌아가는가를 풍자한다.     제2편 브로브딩내그(Brobdignag)에서는 폭풍을 만나 거인 농부에게 붙잡히는데 농부는 걸리버를 끌고 다니며 식탁 위에서 쇼를 하게 해 돈을 번다. 거인국에서 소인으로 살면서 거대하게 확대된 인간들을 관찰하는데 개개의 인간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추악한 존재인가를 적나라하게 그린다. 거인이 사는 육지에서는 모든 것이 거인의 크기에 맞춰져 있다. 소인은 덩치 큰 고래를 움직일 수 없지만 거인들에겐 어깨에 짊어질 수 있는 크기에 불과하다.   걸리버 여행기의 주요 요점은 걸리버는 어느 사회에 가더라도 그 곳에 적응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그 댓가로 결국 신분 상승를 이루어낸다는 점이다.     간만에 한국 가게에 장보러 갔다. 한동안 한인들을 만나지 못했다. 아는 분 같아서 세 분께 묵례를 드렸는데 묵묵부답이다. 계산대 앞에서 “혹시 누구 누구 아니세요?”라고 묻는다. 모습이 너무 바뀌어서 몰라봤다는 것. 40년 쪽진 머리를 과감하게 자르고 애교머리로 이마 주름을 살짝 감췄다. 건강식과 소식, 간헐적 단식으로 살을 왕창 뺐다고 고백한다. “예뻐졌다. 젊어 보인다. 진작 헤어스타일 바꾸지”라고 야단들이다. 그럼, 생머리 묶었을 때 고전적이라던 칭찬은 빈말이였나? 간만에 듣는 칭찬에 고래 심줄 끊고 차가운 물속에서 빠져 나온다. 칭찬 몇 마디에 견딜 수 없는 이 가벼움! 보답으로 김밥 세 줄 사드렸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중력)… 날개야. 다시 돋아라, -‘이상의 날개’ 중에서.   산다는 것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처럼 슬퍼도 가벼우면 하늘 높이날 수 있다. 작은 칭찬에도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다시 날아오른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걸리버 여행기 의사 걸리버 거인 농부

2023-02-14

[여행기 특별기고]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나라, 아이슬란드

  우리가 뉴욕에서 치열하게 살면서, 힘들고 피곤할 때, 친구들끼리 가끔 "단순히 농사만 짓고 살던 옛날 사람들은 속이 얼마나 편했을까"라는 이야기를 한다. 아주 오랜 옛날에 마냥 걱정과 근심이 없이 단순한 삶을 살 수 있는 땅이 지금도 이 지구에 있다면 궁금해서 몇날 며칠이라도 한번 다녀오고 싶지 않을까?     아이슬란드는 그런 곳이라고 말하고 싶은 곳이다. 이곳은 여행을 간다고 하기 보다 그냥 쉬러 가는 땅이다. 물론 신비로운 곳이 무척 많지만, 보면서 즐기는 것뿐만이 아니고, 느끼는 게 훨씬 많은 땅이다.   아이슬란드 여행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표적인 건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하는 1주일 정도로 남부 지역의 몇 군데 명소와 온천 한 번하고 오는 방법. 둘째는 링로드(Ring Road: 828마일)를 타고 나라를 한 바퀴 도는 여행. 셋째는 링로드를 포함하여 북서부의 피오르드 해안가와 스나이펠스네스 반도까지 다녀오는 여행. 여기서 피오르드는 빙하가 산의 협곡 사이로 흘러 내리면서 U자 모양으로 만들어진 좁고 깊은 만을 말한다.     여행 다니면서 이민이란 단어가 생각난 곳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남부만 다녔는데도 감탄을 넘어서 충격이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다니…" 하면서. 시간을 내기 힘들면 광활한 빙하 지역 바트나요쿨(Vatnajokull)의 남부 지역만이라도 1주일 정도 다녀오면 정신 건강에도 좋고, 살아가는 데 활력소가 될 것이다. 그런데 1주일만 다녀 온 여행자가 시간이 나면 분명히 안 가 본 아이슬란드의 다른 곳도 가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매력적인 땅이다.         또 12일 정도 걸리는 나라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링로드 여행'은 아이슬란드의 절반쯤 느꼈다고 볼 수 있다. 화산의 나라이기 때문인지 모든 땅이 용암이 식어 굳은 까만 바위 땅이다. 그래서인지 도로 옆에 갓길이 없다. 일차선 도로도 차 한대 지나갈 폭뿐이다. 보이는 경치는 모두가 절경인데, 차를 맘대로 세울 수가 없으니 운전에 신경을 더 써야 된다. 물론 가끔 가다 차를 세울 수 있는 전망대 파킹장은 있다.   링로드는 828마일에 불과하지만 중간 중간에 간헐천(Geyser)을 구경하고 온천욕도 할 수 있다. 겨울에 갈 때마다 머무르는 북부 어느 집 마당에는 우리 어렸을 때 동네 목욕탕 욕조 사이즈만한 개인 야외 온천이 있어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밤 하늘에 피어 오르는 오로라를 보는 낭만도 즐길 수 있다. 화산 분화구에 올라 분화구 주위를 걷는 하이킹과 빙하 계곡에서 크레바스를 피해서 빙하 위를 걷는 빙하 하이킹(영화 인터스텔라 촬영지)도 한다.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끝없는 황금색 들판을 걷고, 계곡과 크고 작은 폭포(아이슬란드는 폭포가 1만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작은 것까지 합치면 그보다 훨씬 많을 것 같다)를 보고 다니려면 일정이 12일은 필요하다. 계절별로 다녀 본 링로드의 절경은 10~11월과 3~4월이 최고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물론 여름에는(뉴욕의 봄날 같다) 낮 시간이 길어져서 여행하기 편하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 10월초부터 3월 사이에 가는 게 좋은데, 밤 하늘에 구름이 없어야 하고, 초승달이 뜨면 볼 가능성이 훨씬 많다.   아이슬란드를 간다고 오로라를 다 보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12월과 1월, 2월은 낮 시간이 4~5시간 밖에 안되어 여행하기 불편하고, 6월과 7월은 20시간 가까이 백야이기 때문에 여행 시간이 길어진다.   링로드는 남부지역의 끝없는 평야와, 북부의 가파른 능선을 오르고 내리는 산길로 이어지는데, 날씨 변덕이 심한 이 나라에서 눈 속을 달리다가 뜨거운 수증기가 뿜어 나오는 설산의 화려하고, 신비로운 광경을 본다는 것은 놀랍고 황홀하다고 밖에 표현이 안 된다. 아무리 눈보라가 쳐도 잠깐 기다리면 신기하게도 파란 하늘로 바뀐다. 북대서양을 왼편으로 끼고 돌며 수평선과 지평선을 번갈아 보면서, 이 나라를 한 바퀴 도는 여행 내내 누구나 수도 없이 "OMG" 소리를 저절로 낸다. 가는 곳 마다 우리가 살면서 못 보던 자연을 보기 때문에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뭔가 새로운 역사나 문화를 배워오고, 지식을 얻어오는 땅도 아니다. 그저 때묻지 않은 순백의 땅에 가서 차분한 마음으로 쉬었다 오는 땅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하는 여행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다니면서 여행 경비의 본전은 뽑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갈 곳은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몸이 여행을 하는 게 아니고 마음이 여행하는 땅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펄펄 끓어 오르는 투명한 온천수와 간헐천, 그리고 이끼 낀 녹색 땅과 양떼들의 먹이인 누런 풀밭.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게 뭐 볼 것인가" 하는 사람과 "오염되지 않는 태고적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이 모든 아름다움은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고 믿는 그룹. 내 생각으로는 이곳을 찾는 여행객을 이 두 그룹으로 구분하고 싶다. 물론 나는 후자에 속하는 여행객이다. 그래서 이곳은 여행을 하러 오는 게 아니고, "그냥 쉬러 온다"고 하는 게 맞다.   이곳의 자연의 모습들을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눈부시게 화려하면서도 단순하고, 자극적이면서도 무료하고, 화끈하면서도 차분하고, 장엄한 풍경 속에서도 소박한 감정을 만들어 낸다. 나라 전체를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옅은 물감으로 그린 수채화나 파스텔화 같은 잔잔하고, 편안한 그림 같기에 이 나라를 다니면 다닐수록, 보면 볼수록 마음을 편하게 하는 나라다.     참조: 유튜브(지구 같지 않은 땅. 아이슬란드 관광과 바이크 투어링) youtube.com/watch?v=3R1ONg8g5b0&t=67s 글·사진=토마스 리 자유여행가아이슬랜드 토마스 리 아이슬랜드 여행 아이슬랜드 여행기 토마스 리 자유여행가

2023-01-29

"모든 것 쏟아낸 기분.. 내년에 또 여행 갑니다"

    “거실에 꽂혀 너덜너덜해진〈김찬삼의 세계 여행〉전집을 기억하고 있나요?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우리 세대 중에는 세계 여행의 선구자였던 김찬삼 교수의 〈세계 여행〉전집을 읽으며 여행가의 꿈을 꾼 자들이 많았죠. 저도 그 중 하나였어요.” 본보 여행 칼럼니스트로 지난 4년 10개월간 200여편 가까이 유럽 여행기를 연재했던 곽노은 작가에게 '대장정'의 막을 내린 소감을 물었다. 그는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지난 5년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쏟아냈다. 앞으로도 계속 여행을 다닐 생각이지만 올해만 쉬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곽노은 여행가는 지난 30년간 유럽의 유명한 도시는 물론 이름없는 시골 마을들을 방문하고 기록하는 ‘유럽전문’ 여행가로 살아왔다. 그는 “내년에 70세가 되는데, 앞으로 20년을 유럽을 다녀도 모두 둘러보지 못한다. 프랑스에는 아름다운 마을이 159개가 있다. 이탈리아에도 254개나 된다”며 “유럽을 주로 여행하는 이유는 미술, 음악, 건축의 본고장인 유럽만큼 내게 자극과 영감을 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곽 작가는 “가방 사업을 위해 미펠 더 백쇼(Mipel the Bag Show)라는 가방 박람회에 참석차 밀라노를 방문했을 때 밀라노에서 40분 떨어진 꼬모호수와 주위 마을들을 둘러보고 유럽에 매료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유럽은 어디를 가든, 골목길과 도시 곳곳에 역사와 낭만이 서려있다”고 소개한 곽 작가는 가장 아름다웠던 한 곳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지방에 있는 돌로미티(Dolomite)”라며 “여름에 방문해 산장에서 자고, 노을 질 때 사진을 찍으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여행이 된다”며 “한국의 금강산 10개를 풀어놓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설명했다.   또 작가가 추천하는 여행은 “헤르만 헤세의 발자취를 찾아 그가 태어난 곳인 독일의 칼브(Calw)와 그가 여생을 보낸 스위스의 몬테뇰라(Montagnola)를 둘러보는 것”이라 했다. 또다른 여행길은 “미켈란젤로의 발자취를 찾는 여정”인데 “로마에서 피에타 상을 보고 피렌체에서 다비드 상을 감상한 후 미켈란젤로가 말년에 시작해 미완성으로 남은 론다니니 피에타를 밀라노에서 보면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추천했다.   끝으로 곽 작가는 “미 동부는 유럽 여행을 하기에 최적의 곳”이니 “꼭 유럽의 매력에 빠져보라”고 전했다. 유럽여행을 가성비 있게 하는 방법은 “Gate1Travel, Tripmaster,1-800FlyEurope 에 이메일을 등록해 놓으면 항공권 세일 이메일을 일년에 몇 번씩 받을 수 있다. 이때 항공권과 호텔 패키지를 1000불 미만으로 구매 가능하다. 출발할 때는 이 날짜에 가되, 돌아오는 날짜를 늦추면 저렴한 항공권 가격에 장기여행이 가능하다”고도 설명했다. 또한 곽 작가는 “비싼 호텔에 묵지 말고 리뷰가 좋은 아파트먼트에 묵으면 한국음식도 해 먹을 수 있어 여행의 퀄리티가 올라간다”고 한인 여행자들을 위한 팁을 전했다. 이런 방법을 이용하면 부부가 유럽여행을 4~5000불에 즐길 수 있다며 “한번만 해보면 자꾸 여행을 가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곽노은 작가의 여행 대면 강의는 오는 28일 센터빌 소재 와싱톤중앙장로교회에서 예정돼 있다. 강의에서 곽 작가는 스위스 등 한인들에게 추천하는 유럽여행지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일시:28일 오전 10시 장소: 15451 Lee Hwy, Centreville, VA 20121(와싱톤 중앙장로교회 은혜채플) 김정원 기자 kimjungwon1114@gmail.com내년 여행 유럽 여행기 세계 여행 한인 여행자들

2022-10-21

서부영화로 유명세…나바호 성지 ‘모뉴먼트밸리’

대평원에 우뚝 솟은 벙어리장갑처럼 생긴 바위가 두 개 있는데 왼쪽에 있는 것을 웨스트 미튼 록(West Mitten Rock), 오른쪽에 있는 것을 이스트 미튼 록(East Mitten Rock)이라고 부른다. 개인차를 몰고 둘러볼 수 있는 뷰 포인트는 세 자매(Three sisters), 아티스트 포인트(Artist Point), 토템 폴(Totem Pole), 존 포드 포인트(John Ford Point) 등이 있다. 존 포드 감독이 존 웨인을 주연으로 역마차, 황색 리본, 무장 마차 등 여러 편의 서부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해 모뉴먼트밸리(Monument Valley)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밸리 안쪽에 위치한 뷰 포인트는 규정상 원주민 가이드를 동반해서 가야 볼 수 있다. 오픈카를 타고 나바호 원주민의 안내로 밸리 깊숙이 들어가면 맥캔나의 황금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촬영한 곳으로 유명한 선즈 아이(Suns Eye)라는 곳이 있다. 또 빅 호건(Big Hogan), 이어 오브 더 윈드(Ear of the wind)와 조그마한 강가에 하얗게 소금이 서려있는 샌드 스프링 워터(Sand Spring Water)를 볼 수 있다. 양, 염소, 말, 소 모두 여기 물을 마셔야 사막에서 생존 할 수가 있다.   모뉴먼트밸리는 163번 길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애리조나 주, 왼쪽은 유타주로 구분되는데 유타주 올자토(Oljato) 지역 붉은 바위(Red Sand Rock)안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우라늄이 묻혀 있다.     올자토 지역에 있는 굴딩스 랏지(Gouldings Lodge)에 숙박하면 보름달이 뜰 때 야간 탐방을 한다. 이때 바위벽에 길게 걸쳐 영롱한 물안개 같은 빛이 나타나는 화이트 스트라이프(White Stripe)를 볼 수 있다. 그 옛날 북쪽에서 살아갈 터전을 찾아올 때 이 흰빛을 따라와 자신들의 신이 점지해준 땅이라 믿고 정착하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그래서 나바호 아니, 디네 종족은 모뉴먼트밸리를 성지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모뉴먼트 밸리를 뒤로하고 페이지(Page)라는 도시로 향했다. 이 도시는 글렌캐년 댐 건설 때 노무자 캠프였고 원래는 나바호 원주민 자치구 땅 이었다. 댐 완공 후 풍부한 물 공급으로 그 주변이 개발되고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댐 근처 17 스퀘어마일을 인디언 자치구에서 뺏어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그러나 운 좋게 시 외곽 나바호 자치구 땅 안에 관광 명소인 호스슈(Horseshoe) 밴드와 앤텔롭캐년이 있어 나바호 원주민이 조금이나마 관광수입이 있다고 한다.     앤텔롭캐년은 성수기에는 하루에 5000명까지 관광객이 온다고 하고 가격은 거의 100달러 가까이 받는다고 한다. 예약 없이는 안 되고 예약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캐년은 두 파트(Upper, Lower)로 되어있고 가이드가 인솔해서 2시간 정도 걸린다. 전 세계 프로 사진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명소다. 나바호 자치구라 캐년이 야외인데도 마스크를 벗으면 곧 캐년에서 추방된다.   호스슈 밴드는 말발굽같이 콜로라도 강이 휘어져서 만든 절경이다. 캐년 깊이 강이 흐르고 강에서 카약과 패들보드도 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랜드캐년 노스림(North Rim)을 보기로 했다. 그랜드캐년을 수 없이 다녔는데 노스림은 처음 가 본다. 남쪽보다는 경치가 덜 하지만 나무가 많고 해서 마치 옐로스톤 기분이 나는 곳이다. 관광코스도 간단해 오른쪽 림으로 그랜캐년랏지까지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 볼 수가 있다.     라스베이거스 가는 중에 유타주 카나브(Kanab)란 도시에서 쉬고 다음 날 여유 있게 도착하기로 했다. 이 작은 마을은 아주 깨끗하고 그동안 방문했던 나바호 원주민 마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원주민 마을도 백인들이 사는 마을같이 앞으로 풍요롭게 잘살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여행을 주선해 준 백원일 목사님, 김경복 집사님이 원주민 선교에 많이 힘써 준 덕분에 편한 여행을 하게 돼 감사 할 뿐이다. 〈끝〉 정리=박낙희 기자레저 여행 Week& 여행기 모뉴먼트밸리 호스슈밴드 나바호 하기환 NAKI 박낙희

2022-06-23

지도에 없는 신비한 인디언 성지 ‘블루캐년’

애리조나 나바호 호피 인디언 보호구역을 중심으로 미 남서부 지역 명소를 7박 8일 일정으로 돌아봤다.   40여 년 전에 여행업을 하다 목사가 된 백원일 선교사가 애리조나 나바호 원주민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어 여행에 관해 조언을 구했다. 본인도 선교 일로 가야 한다면서 기꺼이 가이드도 해 주고 모든 예약도 다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단체 관광보다 개인적인 관광은 준비 과정이 쉽지 않다. 행선지도 정해야 하고 모든 숙소 및 관광 명소를 직접 예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날 아침 출발해 그랜드캐년 입구인 윌리엄스라는 동네에서 쉬기로 했다. 이 동네는 고속도로 공사 시작하기 전에 ‘루트 66’이라고 시카고에서 시작해 LA가 종점인 유명한 국도 선상의 소도시로 1800년대에 만들어진 역사가 깊은 도시다.   여기서 그랜드캐년까지 매일 관광 기차가 다닌다. 관광도시로 식당과 기념품 상점이 많고 관광객들이 붐비는 조그만 마을이다.   다음날 그랜드캐년 사우스림을 관광했다. 그동안 수없이 방문한 곳이지만 역시 웅장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랜드캐년 바닥 콜로라도 강까지 한번 내려가 본다고 늘 마음 먹었었는데 이번에도 위에서만 보고 다음 행선지인 나바호 네이션(Navajo Nation)의 중심 도시인 투바시티(Tuba City)로 향했다.     나바호 네이션은 그랜드캐년이 끝나는 동쪽부터 뉴멕시코주까지 북쪽으로 유타주 일부가 포함된 광활한 원주민 자치구다. 이 자치구 안에는 또 다른 원주민 호피족의 자치구가 있다. 크기가 약 3만 스퀘어 마일이다. 한국 땅 크기가 3만8000스퀘어 마일이니 나바호 자치구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투바시티는 전형적인 나바호 원주민이 사는 마을이고 길 하나를 건너면 호피 원주민 자치구가 있다.     여기 제일남부침례교회에서 백 선교사가 목회 활동을 한다. 제임스라는 나바호족 목사 부부가 반갑게 맞이하고 간단한 기도도 해 줬다.     다른 소도시와 비교해서 인디언 자치구 마을은 너무나 발전이 안 돼있고 황량하고 변변한 식당도 없다. 나바호족이 미국 개척시대에 농업을 시작한 평화로운 원주민이라 그나마 대학살을 면했다고 한다. 아메리칸 인디언 중에 인구가 가장 많은 부족이라지만 25만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물이 모자라는 쓸모없는 큰 땅만을 가지고 있다. 연방정부에서는 땅 사용권만 허가하고 소유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치구에 사는 인디언은 땅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되어있어 발전이 없다고 한다. 정부 보조금으로는 겨우 생계유지 할 정도라고 한다.   투바시티에서 1박하고 아침에 블루캐년(Blue Canyon)관광에 나섰다. 호피족 관할 자치구 안에 있는 블루캐년은 지도에도 표시가 없는 일종의 호피족 성지다. 캐년 안은 모두 비포장도로고 사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다니기 힘들다.     새로 장만한 벤츠 스프린터를 캠핑용으로 개조해서 이번 여행에 사용하니 블루캐년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블루캐년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가는 아주 외진 곳이다.   애리조나의 투바시티에서 264번 프리웨이 동쪽으로 33마일 지점서 왼쪽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사륜구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 포장이 안 돼 있어서 흡사 빨래판 같은 곳도 있다. 비가 많이 오면 길이 유실되기도 하니 현지 원주민의 안내가 꼭 필요하다.   올해 초부터는 호피 원주민 자치정부의 규정에 따라 호피족 원주민의 안내를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고 가이드 비용도 내야 한다.   붉은 돌(Red Sand Rock)들은 창조의 신이 진흙을 가지고 놀다가 지쳐서 그냥 막 뭉쳐서 던져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 신비한 것은 붉은 돌 위에 흰색 페인트로 마구 낙서를 해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해파리 화석들이 하얗게 박혀있는 것이다. 들쑥날쑥한 계곡을 둘러보면 디즈니랜드의 동화에 나오는 성 같기도 하고 주변에 일곱 난쟁이와 도널드 덕도 보인다.     〈계속〉 정리=박낙희 기자레저 여행 Week& 미서부 인디언 블루캐년 여행기 하기환 NAKI 박낙희

2022-06-09

[삶의 뜨락에서] 옛날이야기가 많은 나라 -아이슬란드 여행기(4·끝)

여행 전 책을 읽으며 인구 35만의 작은 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고 시인이 많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길다. 가족들은 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식사하고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현지인들은 이를 Saga(Tale, Story)라고 부른다. 우리도 어렸을 때 긴긴밤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학교에서도 옛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해주는 선생님이 인기가 있었다.     아이슬란드인의 조상은 바이킹, 해적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수도 레이캬비크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이 자기 나라에서 사람을 죽이고 노예 몇 명 데리고 도망온 범죄자였다. 아이슬란드에는 원주민이 없었다. 기록에 의하면 수 세기 전 Irish Monk들이 들어오고 이어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어부가 왔다고 한다. 그 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바이킹이 들어와 미리 온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다. 섬에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스토리들이 많고, 이를 책이나 영화로 후손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     호텔 근처에 있는 Saga Museum을 찾았다. 전설이나 설화가 많은 줄 알았는데 ‘역사박물관’이었다. Saga는 역사뿐 아니라 로맨스, 빙산에 나타났다는 귀신 이야기, 화산폭발, 지진 발생에 생긴 실화도 포함돼 있다. Saga는 시를 낳았다. 처음 시들은 교훈적인 것, “가축도 죽고, 친족도 죽는다. 그러나 선하게 살다 떠난 사람의 명예는 죽지 않는다.” 1807년 이 나라에 세워진 첫 동상이 시인이었다. 조나스 헬그림손이었는데 그는 자연 시를 주로 썼다. 아이슬란드를 Frost-white mother로 묘사한 국민시인이었다. 195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Laxness는 아이슬란드의 자랑, 그는 거리의 언어로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했다. 이어서 Jon Stefausson이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 노벨문학상 최종심까지 올랐다. 1996년 레이건-고르바초프 회담이 열린 Hofdi House는 유명한 시인의 집이었다. 시인이 떠난 후 집은 한동안 비어있었는데 사람들은 여기에 ‘유령’이 살았다고 수군댔다고 한다. 이 흰 집은 그 후 정부에 귀속돼 역사적인 미-소 정상회담장이 되었다. 이 집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큰 회담이 이렇게 작은 집에서 열리다니’ 생각했다. 그러다가 곧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인류가 부딪치고 있는 핵 군축을 논의하는데 왜 큰 장소가 필요했겠는가’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묵은 호텔은 크지는 않으나 편리했다. 호텔에는 예상외로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주로 이 나라 역사, Saga를 소개하는 책이었다. 옆에 있는 라운지에도 서가에 많은 책이 진열돼 있었다. 이런 문화가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이 나라의 연 관광객은 230만, 인구의 6배로 주민들을 먹여 살린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슬란드 사람들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았다. 북유럽 피를 받은 그들은 키가 크고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았다. 그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화산 이끼 하나라도 소중하게 취급했다. 그들은 특히 영어를 잘했다. 길거리에 누구를 붙들고 물어도 나보다 나은 영어로 대답해 주었다. 인구 35만 작은 나라지만 자랑스러운 고유언어를 보존해 오고 있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날, 공항 대합실에서 ‘들어오는 사람, 떠나는 사람’을 관찰했다. 휠체어에 몸을 던진 노인들, 엄마 품에 안긴 아이들, 노인은 마지막 여행이 될지 모르지만 아이는 넓은 세상을 누비고 다닐 것이다. 나는 다시 이 나라를 찾지 않을 것이다. 늦기 전에 아직 못 가본 곳을 가봐야 하니까.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북극 언 땅에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옛날이야기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여행기 아이슬란드 사람들 나라 역사

2022-06-06

사막의 정원서 체험하는'별 헤는 밤'

캘리포니아에 최남단에 위치한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은 조슈아 나무를 비롯한 많은 사막 식물들과 기묘한 바위산으로 유명하다. 낮에는 사막 선인장들과 돌무더기 사이에서 하이킹하고 밤에는 반짝이는 은하수를 보면서 친구나 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조슈아 트리 국립 공원에는 총 9개의 멋진 캠핑장들이 있다. 대부분 연중 오픈한다. 봄 가을 겨울에는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어서 웹사이트(recreation.gov)에서 예약을해야 한다.     그룹 캠핑장을 제외한 모든 캠핑장은 자리당 6명, 3개의 텐트, 2대의 자동차를 원칙으로 한다. RV는 캠핑장마다 다른 룰을 적용하고 있으므로 미리 알아보고 가도록 한다.     9개 캠핑장을 시설, 청결함, 분위기를 고려하여 개인적으로 순위를 정해봤다.     1. 점보 록스 캠핑장   점보 록스 캠핑장은 124개 자리에 텐트와 RV 주차가 가능하다. 시설로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으며 물은 없다. 자리마다 테이블과 화덕이 있으며 사용료는 20불이다. 점보 록스는 겨울철 성수기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6월 9일에서 8월 30일까지는 선착순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점보 바위들 사이에 아늑한 캠핑 자리와 아주 깨끗하고 정돈된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으로 어린 자녀들과 함께하는 가족 캠핑에 좋다. 작은 야외극장이 있어 소규모 집회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2. 블랙 록 캠핑장   블랙 록 캠핑장은 공원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99개의 캠핑 자리가 있으며 자리마다 사이즈가 달라 텐트와 RV 주차가 가능하다. 테이블과 화덕이 구비되어 있고 하루 사용료는 25불이다. 블랙 록은 수도 시설과 수세식 화장실이 준비되어 있다. 분위기가 아주 아름다운데 어느 곳보다 조슈아 트리가 많다. 그리고 물건 구입이 가능한 유카 밸리 마을이 5마일 거리에 있다.     3. 인디언 코브 캠핑장   인디언 코브 캠핑장은 13개의 그룹 캠핑장을 포함해 총 101개의 캠핑 자리가 있다. 물은 없고 재래식 화장실이 구비되어있다. 8월 말에서 6월 초까지 예약제로 운영된다. 자리당 25불이며 테이블과 화덕이 준비되어 있다. 인디언 코브 캠핑장은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밖의 62번 국도에서 들어간다. 바위산으로 둘려 있어 매우 한적하고 숨어있는 듯한 분위기이다. 몇몇 장소는 너무나 넓어서 거대한 바위산을 통째로 빌린듯한 기분이 든다.   4. 코튼우드 캠핑장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남쪽 입구에 위치한 코튼우드 캠핑장은 62개 자리가 있다. 하루 사용료는 25불이며 자리마다 테이블과 화덕이 준비되어 있다. 코튼우드는 조슈아 트리에서 수도와 수세식 화장실이 갖추어진 두 군데캠핑장 중 하나이다. 9월~5월 성수기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코튼우드 캠핑장이 있는 공원 남쪽에는 조슈아 트리가 전혀 없다. 공원 북쪽 입구에서 코튼우드까지 운전으로 거의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가장 가까운 타운인 인디오가 약 30마일 거리이다.   5. 라이언 캠핑장   라이언 캠핑장은 32개 자리에 테이블과 화덕이 준비되어 있으며 하루 사용료는 20불이다. 모든 자리는 예약을 해야 한다. 재래식 화장실이 있고 물은 없다. 자전거 여행자용 캠핑 자리가 3곳이 있는데 사용료는 5불이다. 거대한 화강암 바위 아래 캠핑 자리가 있으며 자리마다 사이즈가 아주 넉넉하다.   6. 히든 밸리 캠핑장   히든 밸리 캠핑장은 44개의 캠핑 자리에 테이블과 화덕이 준비되어 있다. 재래식 화장실이 있고 물은 없다. 히든 밸리 캠핑장은 선착순 사용이며 하루 15불이다. 캠핑장은 팍 블러바드 선상에 있으며 커다란 바위와 조슈아 트리들로 둘려 있다.   7. 쉽 패스 그룹 캠핑장   쉽 패스 캠핑장은 전체가 그룹 캠핑장소이다. 6개의 그룹 캠핑 자리가 있으며 자리마다 테이블과 화덕이 준비되어 있다. 한 자리당10~25명을수용할 수 있으며 캠핑료는 35~50불 사이다.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거대한 바위들과 조슈아 트리가 많은 장소다. 재래식 화장실이 있고 물은 없다.   8. 벨 캠핑장   벨은 아름답고 청순한 여성을 칭하는 단어이다. 화이트 탱크 캠핑장 옆에 자리한 벨 캠핑장은 18개 자리가 있으며 선착순으로 사용할 수 있다. 재래식 화장실이 있으며 물은 없다. 캠핑 비용은 15불이며 밤하늘의 별을 보기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9. 화이트 탱크 캠핑장   커다란 화강암 바위들 아래 15개의 캠핑 자리가 있으며 전부 선착순으로 사용한다. 시설로는 테이블과 화덕 재래식 화장실이 있으며 물은 없다. 하루 사용료는 15불이다. 화이트 탱크 캠핑장은 인근에 멋진 아치 록이 있으며 밤하늘 별 보기에 좋다.     ☞참고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을 트리를 방문하기 좋은 기간은 10월에서 5월 사이다.   -공원 안에는마켓이나 식당이 없다. 캠핑에 필요한 모든 음식과 물 그리고 장비를 미리 준비 해야 한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의 모든 캠핑장은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야외활동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겨울철에는 청량한 공기와 맑은 날씨로 남가주 최고의 캠핑 장소로 손꼽히는 곳이다.   *지난 20년간 미주 중앙일보에 산행 및 여행 칼럼을 기고했으며 유튜브 채널 '김인호 여행작가'를 운영하고 있다.레저 여행 Week& 김인호 여행기 조슈아트리 NAKI 박낙희

2022-04-21

상쾌한 해풍에 해안 절경 ‘힐링 휴양지’

840마일에 달하는 캘리포니아의 해안가는 수려한 절경이 많아 캘리포니아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해변들은 예로부터 소문난 휴양지로 개발돼 해안을 따라 비싼 호텔과 식당이 즐비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그렇다면 중부 캘리포니아는 어떨까? 캘리포니아 1번 국도를 따라 아빌라 비치, 모로베이, 그리고 몬터레이까지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하는 곳들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 LA에서 북쪽으로 약 4시간 운전 거리에 있는 캠브리아(Cambria)는 봄여름에 싱그러운 바람과 해안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힐링의 마을이다.   끝없는 수평선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흰 파도가 암초에 부서지는 해안가는 고운 모래가 깔려있다. 아침저녁 간조를 맞추어 다양한 해양 동식물들이 얼굴을 내비치고 바위 위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물개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캠브리아는 제법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지만 넓은 해안은 모두에게 넉넉한 공간을 허락한다. 어린아이들은 모래사장을 뛰어다니고 연인들은 파도에 발을 담그고 함께 걸어보기도 한다.     레핑웰 랜딩(Leffingwell Landing) 주립공원에서부터 문스톤비치(Moonstone Beach)까지 해안을 따라 잘 만든 산책로는 모든 방문객이 푸근한 시골 마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해변가로 수많은 비치 프런트 호텔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철 따라 피어오르는 각종 꽃이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함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은퇴촌으로 잘 알려진 캠브리아는 해안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멋진 집들이 많다. 주민들은 나름 집 단장과 조경에 많은 신경을 쓴 모습이다. 해안가 야생화만큼 풍성하게 자란 꽃들이 집 주위로 피어있다.     문스톤 비치(Moonstone Beach)는 민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오는 곳이다. 이곳 해변은 모래와 함께 아주 작은 조약돌이 깔려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준다. 조금만 살펴보면 보석처럼 빛나는 옥이나 문스톤을 찾을 수 있다. 문스톤은 음양의 이치에 따라 달의 가운을 받은 돌로 마음의 안정을 주는 장신구로 많이 쓰인다.   조그마한 주차장이 마련된 피스칼리니 랜치 보호지역(Fiscalini Ranch Preserve)은 캠브리아의 보물과 같은 장소이다. 오래전 피스칼리니 집안의 랜치였으며 고급 주택지가 예정된 곳이었지만 자연보호 단체들과 정부에서 힘을 모아 구입한 후 일반에게 개방된 공유지이다.     이곳의 블러프 트레일(Bluff Trail)은 왕복 1.5마일 길이로 초장과 야생화로 덮인 언덕에서 태평양 해안을 바라보는 감동이 일품이다. 해안을 따라 휠체어도 다닐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길이 준비되어 있으며 각양각색의 야생화들과 해안의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파도가 암초에 부딪히며 포말로 부서지고 각종 야생화가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해안은 참으로 한 폭의 풍경화 같다. 바닷물이 넘실대는 암초 위에는 물개와 바다사자 가족이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스페인어로 고래(Wales)라는 뜻의 캠브리아는 오래전부터 츄매쉬(Chumash) 원주민들이 살았던 곳이다. 1800년대 초 유럽 이민자들은 아름다운 해안과 울창한 숲, 그리고 비옥한 땅에 매료되어 이곳으로 이주했고 한때 머큐리 광석을 채굴하는 광산 타운이기도 하였다.     캠브리아 북쪽 샌 시메온(San Simeon)에 유명한 관광 명소 허스트 캐슬이 있다. 1900년대 초 경제 대공황 당시 이곳에 공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캠브리아사람들이 취직하였고 타운 전체가 큰 혜택을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캠브리아 20마일 북쪽 해안가에  바다코끼리 서식지가 나온다. 수백 마리의 바다코끼리가 누워있거나 물속에서 먹이를 찾아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래전에 마구 사냥을 해서 멸종이 되었는데 다른 곳에서 소수의 바다코끼리를 입양해와서 보호한 덕분에 지금은 많은 개체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캠브리아에는 해안 관광지답게 많은 식당과 호텔 그리고 캠핑장이 있다. 1번 국도 건너편으로 형성된 타운에는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들도 많이 있다.   캠브리아서 46번 국도를 따라 로스 로블스로 가는 길목에는 온통 포도농원이다. 좌우로 잘 지은 와이너리들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밝은 햇살을 받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캠브리아는 힐링을 위한 휴양지로 안성맞춤이고 LA에서 빅서로 가는 도중 하루 쉬어 가는 중간 기착지로도 아주 좋은 곳이다.     *지난 20년간 미주 중앙일보에 산행 및 여행 칼럼을 기고했으며 유튜브 채널 ‘김인호 여행작가’를 운영하고 있다.레저 여행 Week& 여행기 김인호 NAKI

2022-04-14

콜럼버스·단테·다빈치의 흔적 곳곳에…

피렌체 가는 길에 제노바에 잠시 들리기로 했다. 제노바는 우리가 먼저 들렸던 베네치아와 지중해의 무역 패권을 놓고 경쟁했던 강력한 도시 국가였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고향이기도 했다. 중앙역 앞에는 콜럼버스 동상도 있고 콜럼버스의 생가는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영근 회장의 일념으로 우린 콜럼버스가 태어난 집을 찾아서 사진 촬영을 끝내고 계획에 없었던 피사에 들리기로 했다.     피사 대성당에 딸린 180피트 높이의 이 종탑이 멀쩡했다면 아마도 이렇게 유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피렌체로 향했다.     베네치아에 비해 피렌체는 팬데믹을 느끼지 못할만큼 분주했다. 건축물들이 즐비한 시가지를 보니 ‘르네상스의 중심지’라는 말이 실감난다. 중세의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된 도심지를 걸었다.     피렌체는 티 본(T Bone) 스테이크가 유명하다. 티 본 스테이크는 피렌체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고 모두 입을 모은다. 이번에도 닥터 김이 미리 예약 해 놓은 최고의 스테이크 식당으로 향했다. 가격도 2.2파운드에 54달러 정도니 미국보다 저렴했다. 피렌체는 유명 가죽 명품의 생산지로 가죽공장이 많다. 페라가모 본점도 피렌체에 있다.   다음날 아침에 아느로강으로 산책나갈 사람들이 모이기로 했다. 겨울 이른 시간 피렌체의 쌀쌀한 공기에 손끝이 시려졌어도 우리는 새벽길을 걸어 강가로 나갔다. 일출 사진을 찍기위함도 있었지만 신곡을 쓴 단테의 흔적을 찾아 나선 것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대문호 단테는 1265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아느르강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는 단테가 짝사랑했던 베아트리체를 만난 곳이다.     아침 산책 후 이번 여행의 마지막 지점인 친꿰떼러로 향했다. 시에나(Siena)에 들리고 싶었지만 거리상 다음 기회로 돌리고 대신 1시간 거리에 있는 빈치(Vinci) 마을을 찾기로 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니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 곳을 찾은 이유는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다빈치 박물관에는 그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그려진 공책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는 모나리자를 그린 위대한 화가일 뿐만 아니라 해부학, 약학을 통달한 의사였으며 천문학, 음향학, 건축 등에도 박식한 과학자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라는 말도 있다. 이 위대한 영웅은 1452년 4월 15일 이곳 빈치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고 한다.     이어 친꿰떼레로 한참을 가는데 바다가 보인다. 우리가 묶을 호텔을 향해 해안을 끼고 오르고 또 오르니 작은 마을이 보인다. 자동차로 호텔 앞까지 갈 수 있는 리오마조레(Riomaggiore)라는 곳에 도착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텔인데 가는 길은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었지만 내려다 보이는 경치는 과연 일품이었다.     오랫동안 철도와 도보용 도로로 연결된 지중해의 해안 5개 마을은 보존이 잘돼 마을 모두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도착해서 우리는 좁은 비탈길, 깍아지른 벼랑이 쉽지 않은 길을 내려가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척박했던 환경에서 살아왔을 이곳 사람들의 여유롭지 않았을 생활이 느껴졌다.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집들은 고기 잡으러 출항한 남편들이 그들의 집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바다 멀리서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기차로 베르나차(Vernazza)라는 마을로 향했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우리의 하루 마감은 숙소가 있는 리오미조레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5명이 같이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기는 팬데믹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피자를 주문해 호텔에서 쏟아지는 비를 노래삼아 저녁으로 대신했다.     다음날 밀라노에 도착해 출국에 앞서 미국 입국을 위한 PCR 검사를 받아야했다. 만약 일행 중 한명이라도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온다면 큰 일이다. 말도 안 통하는 객지에서 호텔에 격리해야 된다. 결과를 기다린 끝에 다행히도 15명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이번 여행 기간동안 호텔, 항공편, 자동차, 식당 예약을 해준 닥터 김을 비롯해 글을 도와준 테미 김씨, 사진을 준비해 준 이영근 회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무엇보다 15명 대원이 큰 사고없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모두 스키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것이 고마울 뿐이다. 정리=박낙희 기자레저 여행 Week& 하기환 여행기 NAKI 박낙희

2022-04-07

스키 타고 이탈리아 - 스위스 국경 넘나들어

베네치아로 가는 길에 1956년에 이어 2026년에 동계올림픽이 다시 열릴 예정인 아름다운 도시 코르티나(Cortina)에 들렸다. 팬데믹으로 거리는 한산하고 아직 다수의 식당이 영업을 재개하지 않은 상태였다.     베네치아에 도착한 일행은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어둠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산마르코 대성당 광장을 향해 걸어나갔다. 해지는 시간에 좀 더 좋은 정경을 감상하며 카메라에 담아야한다는 사진 동호인들의 열정을 누가 말리겠는가.   언제나 관광객이 붐볐던 것과 다르게 베네치아는 한가했다. 한가한 이유는 물론 팬데믹 때문이겠으나 특히 중국 관광객들이 안 보이는 것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이곳에서는 자동차는 물론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벌금을 문다고 한다.   베네치아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를 작곡한 비발디의 고향이다. 베네치아는 전쟁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바닷가에 세운 도시 국가로 500년 동안 지중해를 지배했던 강자였다.     뜻밖의 재미있는 사실은 곤돌라 뱃사공에 대한 이야기였다. 뱃사공은 베네치아 내 최고의 인기 직업 중 하나라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나 할 수 있는 3D 업종 같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관련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시험을 봐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4개 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단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에 주소를 둔 사람만 가능하단다. 그런 만큼 상당한 고소득 직종이다. 실제로 몇 년만 일하면 시 외곽의 고급 별장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잘 버는 직업이란다. 그래서 곤돌라 뱃사공이 되기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고 했다.     베네치아에서 하루 휴식을 취한 후 다시 3일을 체류할 체르비니아(Cervinia) 스키장으로 이동했다. 이탈리아와 스위스에 걸쳐 자리 잡고 있는 스키장으로 이곳에서는 스위스 쪽 젤마트(Zermatt)까지 스키로 이동할 수 있다.     스키를 탈 때 언제나 보이는 삼각뿔 모양의 마터호른(1만4692피트)은 산악인들에게 유명한 봉우리다. 스위스 랜드마크이기도 하지만 파라마운트 영화사 로고에 나오는 뾰족한 삼각 봉우리가 바로 이곳이다.     스키 첫날 날씨가 좋아 우리 팀은 이탈리아 체르비니아에서 스위스 젤마트까지 스키로 횡단했다. 당연히 여권을 소지하고 두 나라를 다녀야 한다.   날씨가 좋을 때 서둘러 넘어갔다 빨리 돌아와야 한다. 만약 날씨가 나빠져서 스키 리프트가 문을 닫으면 수백 유로를 지불하고 택시로 이탈리아에 돌아와야 한다.     다음날 눈을 뜨니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안 좋아 스키를 타지 않기로 하고 프랑스 샤모니 몽블랑으로 가기로 했다. 차로 두 시간 거리다. 프랑스의 겨울 스포츠 메카로 알려졌듯이 이곳도 스키장이 유명하다. 1942년 동계 올림픽과 1960년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이곳에서 열렸다. 샤모니에 도착했지만 안타깝게도 기상이 좋지 않아 몽블랑이 보이지 않았다.     샤모니는 산악인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알피니즘'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알피니즘'이란 얼음과 만년설에 덮인 해발 1만3123피트가 넘는 험준한 산을 오르는 행위를 말한다.     샤모니의 최고 명소인 케이블카 에귀 뒤 미디(Aiguille du Midi) 전망대(1만2605피트)에 오르기로 했다. 몽블랑을 비롯한 알프스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케이블카는 샤모니 중심에서 탈 수 있다.  그러나 케이블카 운행이 3시에 끝나서 타지 못했다. 예전에 탄 적이 있었기에 아쉬움은 덜 했다. ‘정오의 바늘’이라는 뜻의 ‘에귀 뒤 미디’는 바늘 끝처럼 솟은 단 하나의 바위봉이다. 이곳 전망대는 알프스 3대 봉우리 융프라우(1만3642피트) 마터호른 (1만4692피트) 몽블랑(1만5771피트)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전망대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샤모니 최고의 스키장 그랑 몬테츠(Grands Montets) 앞에서 기념 사진 촬영으로 대신했다.     많이 고단했지만, 행복했던 스키 트립이 이제 끝났다. 모두가 심하게 다친 곳 없이 잘 끝낸 우리팀은 피렌체로 향했다.     〈계속〉 정리=박낙희 기자레저 여행 Week& 하기환 유럽 스키 여행기 투어 NAKI 박낙희

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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