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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고요한 숲속에서 갑자기 총성이 -발틱 3개국, 폴란드 여행기 2

하마스 테러로 촉발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긴장이 고조됐던 시기, 뉴욕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에 유대인 가족이 타고 있었다. 아버지는 전통적인 랍비 복장,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아들도 같은 차림이었다. 아이는 일곱 명, 큰딸이 엄마를 대신해 우는 아기를 돌봐주고, 다른 아이들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뛰어다녔다. 승객들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독일, 오스트리아, 발칸 반도, 발틱 3개국, 폴란드를 여행하다 보면 슬픈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 현장을 피할 수 없이 만난다. 유대인 희생자들의 동상은 대개 이름이 없다. 체코 프라하 유대인 묘지 앞에 울고 있는 한 동상이 서 있었다. 가이드에게 “왜 이름이 없어요?” 하고 물었다. “It could be any Jew.” 오스트리아 빈 오페라 하우스 바로 건너편에 쇠사슬에 묶여 땅바닥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동상도 이름이 없었다.  
 
이번 여행 중 유대인 집단촌과 뮤지엄, 홀로코스트 현장을 지났다. 발틱해 가장 북쪽에 있는 에스토니아에서도 희생자가 많았으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훨씬 더 많았다. “왜 그런가요?” 가이드의 대답 “라트비아는 1000년 전 독일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유대인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몰려와 리가와 교외에 집단촌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리투아니아는 오래전 다른 종교에 관대한 것으로 소문나 유대인이 대거 이주 ‘발틱의 예루살렘’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2차 대전이 터지고 나치는 유대인 학살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발틱에는 수용소가 없었습니다. 나치는 이들을 잡아다 아름다운 숲으로 끌고 갔습니다. 라트비아 여름 숲속에서 수십만 명이 총살당했습니다.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집단촌은 명문 국립대학 바로 위에 있었습니다. 나치와 나치에 협력한 리투아니아 경찰이 끌고 고요한 숲속으로 데려가 웅덩이를 파고 옷을 벗겼습니다. 갑자기 총성이 울리고 놀란 새들과 들짐승이 달아났습니다. 유대인들은 낙엽처럼하나둘 떨어져 웅덩이에 묻혔습니다. 처형을 기다리던 유대인 13명이 밤중에 땅굴을 파서 도주해 살아남았습니다. 나치는 80명을 동원해 증거를 지우려고 했습니다. 리투아니아 전국에서 70만 명이 죽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인구는 지금의 280만 명보다 훨씬 많았으나 거의 20%를 잃었고, 그들은 무고하고 재능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수도에서 남으로 11km 숲속에 Panerial Holocaust 기념비가 당시 비극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치는 폴란드에 수용소를 설치해 10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독살했다. 여행 중 아우슈비츠 학살 현장을 찾고 싶었으나 바르샤바에서 300km나 떨어져 일정상 가지 못했다.  
 
폴란드에는 2차 대전 약 40만 명의 유대인이 살았으며, 집단촌에 10만 명이 있었다. 좁은 방 하나에 7~8명이 모여 살아 질병으로 죽은 이가 많았다고 한다. 참다못해 유대인들은 집단 반란을 일으켜 1만5000명이 피살되었고 이 사건은 가스 처형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바르샤바 올드 타운에 Polin Jewish Museum, 큰 빌딩이 있다. 여기서 폴란드 유대인의 1000년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수백 년 전 나무집시나고그가 인상적이었다. 뮤지엄 앞에 당시 폴란드 외교관이었던 Karski 동상이 있다. 그는 유대인들을 구출해 런던 등지로 보낸 영웅이었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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