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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웅전] 쇼팽의 무덤

1830년 11월 2일 폴란드 바르샤바역에서 한 소년이 기차에 올랐다. 이름은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이었다. 그 무렵 이미 세계적인 피아노 연주자의 명성을 얻어 연주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오스트리아 빈이었다. 그에게 고향에서 작은 소포가 배달됐다. 한 줌의 흙이 들어 있었는데, ‘이것은 조국 폴란드의 흙’이라 적혀 있었다.   쇼팽은 빈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행복했다. 프랑스 여류 소설가이자 사교계의 별인 조르주 상드(1804~1876)를 만나 모정과 애정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객지 생활의 고독과 우울에다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쇼팽은 폐결핵으로 쿨룩거리고 있었다. 연상의 상드는 어머니처럼, 아내처럼, 간호사처럼 쇼팽을 보살폈다.   이들의 행복한 세월은 9년이 지나 끝났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영국 런던에 도착한 쇼팽은 스코틀랜드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 그해는 유난히도 추웠다. 찬바람과 눅눅한 기후는 폐결핵을 앓던 쇼팽에게 극약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파리로 돌아와 1849년 10월 17일 끝내 눈을 감았다. 39세였다. 임종 무렵 머리맡에는 19년 동안 들고 다닌 조국의 흙이 있었다. 마들렌 교회에서 거행된 장례식에 쇼팽이 존경했던 모차르트의 진혼곡(Requiem)이 울려 퍼졌다. 유해는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됐다. 쇼팽의 친구가 관 위에 한 줌의 폴란드 흙을 뿌려줬다.   며칠이 지나 바르샤바의 한 교회에서 쇼팽의 또 다른 장례식이 거행됐다. 관도 없이 자그마한 상자 하나만 매장됐다. 그 안에 쇼팽의 심장이 들어 있었다. 친지들은 쇼팽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심장만이라도 고국에 묻어줬다. 오늘이 쇼팽의 175주기다. 이런저런 행사가 이어지겠지만, 음악을 모르는 나에게는 그가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누가 말했던가. 예술에는 조국이 없다고….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쇼팽 무덤 프레데리크 쇼팽 폴란드 바르샤바역 조국 폴란드

2024-10-20

[문장으로 읽는 책] 어금니 깨물기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 입으로도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눈에 띄지 않은 어른들을 둘러보면, 거기서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어딘가에서, 우리가 눈길을 자주 줄 리 없는 어떤 일을 평생을 바쳐- 바친다는 마음도 품지 않은 채로 그저 스스럼없이 묵묵하게- 하고 있는 이들. 그들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고 느낀다는 것은, 내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를- 누구를 안 보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고작 그 정도의 말일 뿐이다. 보는 태도 때문에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쉽고 어리석다.     김소연 『어금니 깨물기』   결국은 태도가, 시선이 문제다. 김소연 시인의 에세이집이다. “치장 없는 시의 진가”를 보여주는 폴란드 시인 비스와봐 쉼보르스카에 대해서도 이렇게 쓴다. “태도와 시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 쉼보르스카가 시를 위해 우선 노력한 것은 이것들일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무관심하게 지나친 것은 없는지, 놓친 것은 없는지.”  쉼보르스카를 읽으면 “우리가 인간이라는 점을 다행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인간됨을 회복하는 순간을 겪는다.” “시의 언어가 일상 언어와 따로 있다고… 주장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시인의 위대함이 아니라 사람의 위대함을 완성해갔다.”   책 제목처럼 어금니 깨물고 버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던 시절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어금니 김소연 시인 폴란드 시인 태도 때문

2024-03-13

[삶의 뜨락에서] 키 큰 폴란드 여자 -발틱 3개국, 폴란드 여행기 4·끝

폴란드는 발틱 3개국에 비해 큰 나라다. 국토 면적은 리투아니아의 5배, 인구는 4000만 명이다.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체코와 국경을 같이 하는 이 나라는 독일, 러시아의 침략을 받았다. 문화적으로는 프랑스와 교류가 많았다. 파리는 런던과 더불어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다.     바르샤바 곳곳에 크고 작은 뮤지엄이 많아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인구 200만, 관광객이 많은 바르샤바에는 술집이 많다. 투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봤는데 67종류의 맥주를 판매한다는 선전문이 있었다. 대부분은 현지 맥주,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선지 질 좋은 보드카도 생산하고 있다. 술꾼들의 천국이다.     여행은 사람 만남이다. 만났다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가끔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여행을 일주일 정도 앞둔 어느 날 내가 하는 가게에 키 큰 남자가 들어왔다. 미국 영어, 서유럽 엑센트가 아니었다. 폴란드 사람이었다. 곧 발틱, 폴란드를 여행한다고 했더니 그는 전화번호를 주겠다며 바르샤바에 오면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투어 그룹을 따라가니 괜찮을 거라고 했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었다.     폴란드 여행 마지막 밤 쇼팽(Fryderyk Chopin) 음악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다. 올드 타운에 있는 타운홀, 100명 정도 들어갈 수 있었다. 중앙에 쇼팽 사진이 있고, 촛불이 펄럭거렸다. 흰 플라스틱 의자는 깨끗했다. 연주장 실내 장식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클래식했다. 연주자는 마치 폴리조스키(MaciejPoliszewski) 머리는 스타인웨이피아노 건반 같은 백발이었다.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멜로디를 따라가는 그의 손가락을 응시했다. 손이 음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멜로디가 손을 따라가는 것 같았다. 그는 평생을 연주하며 살아온 것 같았다.     쇼팽은 그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1810년 프랑스 아버지와 폴란드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19살까지 바르샤바에 살다가 아버지의 요청으로 파리로 가, 20년간 작곡을 하다 39세로 요절했다. 몇 여인과의 로맨스가 있었으나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죽기 전 유언을 남겼다. 내 심장은 바르샤바에 안치해 주세요. 쇼팽의 유해는 파리에, 그의 심장은 바르샤바 교회에 안치돼 있다.     연주가 끝나고 나왔더니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투어 버스가 주차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수년 전 하바나 여행 때에도 헤밍웨이 호텔에 들어가 메모하다가 잠시 미아가 된 적이 있었다) 길을 지나는 한 키 큰 젊은 여자에게 버스가 어디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확실치 않으나 같이 찾아보자고 했다. 나는 지갑, 휴대폰 안 갖고 나와 무일푼이라고 했더니 그녀는 우버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15분 정도 기다려 택시가 오고 그녀는 운전사에게 호텔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름은 물어봤으나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는 받지 않았다. 택시는 나를 같은 이름의 다른 호텔에 데려다주고 가 버렸다. 그 호텔 직원에게   물어 밤길 30분을 걸어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 가게를 찾아온 친절한 폴란드 남자, 길을 잃고 헤매다 만난 키 큰 폴란드 여자, 우연이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대부분은 무심하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드물다. 오래된 성당 앞에는 걸인이 많으나 적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이 시리즈 제목을 놓고 고민했다. Polish Heart로 하고 싶었다.   조국 폴란드를 사랑해심장(Heart)을 고향에 두기를 원했던 쇼팽, 아름다운 마음(Beautiful Heart)을 가진 폴란드 남녀, 그들을 잊을 수 없다. 앞으로 혹시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큰 폴란드 여자처럼 정성껏 도와주는 것이 신세를 갚는 길일 것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폴란드 여행기 폴란드 여행 폴란드 어머니 바르샤바 교회

2023-11-21

[삶의 뜨락에서] 땅은 주인을 잃고 울었다

발틱에는 산이 없다. 에스토니아를 지나 라트비아를 향해 달렸다. 남으로 내려갈수록 나무가 우거지고 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인구는 적은데 노는 땅이 많아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심히 보니 교회가 없고 그 흔한 십자가가 보이지 않았다. “발틱은 일찍 루터란 교를 받아들였으나 소련의 지배를 받으면서 사람들은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로   내려가면 오래된 성당을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리가는 ‘발틱의 파리’, 중세기 아름다운 건축양식이 즐비해 있었다. 우아한 바로크, 신 클래식, 넓은 창문, 갖가지 조각, 유네스코 문화유적으로 지정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5층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노인들이 살기에 불편하게 보였다. 가이드를 따라 웅장한 성당으로 들어갔다. 노인 몇 사람이 엎드려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젊은 교인은 없는가? “소련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교회 문을 닫았을 때는 사람들은 몰래 예배를 드렸습니다.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자 교회는 텅텅 비어 뮤지엄으로 변했습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요.”   리투아니아에는 허허벌판에 십자가를 쌓아 놓은 언덕(The Hill of Crosses)이 있다. 1831년, 리투아니아가 러시아 압정에 항거해 순례자들과 여행자들이 크고 작은 십자가를 바치고 기도를 드렸다. 너무 많아 셀 수 없었다. 수만을 넘어 수십만 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 태생 존 폴 2세 교황이 이곳에서 특별 미사를 올린 곳으로 유명하다. 일행 중 몇 명이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리투아니아 수도인 빌뉴스에서 본 성 베드로-성 바울 교회도 인상적이었다. 교회는 밖에서는 작아 보였으나 내부는 웅장하고 조각품이 많았다. 가이드의 익살, “교회를 유심히 보세요. 배 모양 같지 않아요? 천국으로 향하는 이 선박은 두 성인이 노를 젓고 가는데 악마도 동승하고 있어요. 아마 도중에 쫓겨날 겁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Saint Anne church가 있는데 교인들이 층계마다 엎드려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는 인구 70만, 발틱 최대의 도시이다. 올드 타운에 The  Museum of Occupation이 있다. 라트비아는 독일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박물관에는 스탈린과 히틀러 그림이 있고, 45년 러시아 폭정이라는 포스트가 있었다. 이 중 The Land Lost People이라는 글을 읽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를 생각했다. 뮤지엄에서 한 저항 시인의 시를 발견했다. “과거를 위한 눈물은 거두세요.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두려워하지 마세요. 눈을 똑바로 뜨고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헤쳐나가세요” (Knuts Skujenicks)     여행하면서 어느 나라를 가든지 국민의 존경받는 작가의 동상은 그 나라 수도 심장부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민족 시인은 나라의 혼이다. 외세의 지배를 많이 받은 나라일수록 문학의 힘은 강했다. 바르샤바 Freedom Road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동상이 있다. 레이건의 유명한 베를린 연설, “미스터 고르바초프, 저 장벽을 허무세요.” 레이건 덕분에 폴란드는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유 국가로 다시 태어났다.     빌뉴스 올드 타운 좁은 골목에 ‘셰익스피어 호텔’ 간판이 보였다. “이 호텔에는 방 번호가 없습니다. 셰익스피어 방, 킹 리어 방, 바이런 방, 로미오 줄리엣 방 등이 있습니다. 방 숫자는 30, 방값은 하루에 100유로 정도, 로미오 줄리엣은 신혼부부에게 특히 인기가 있습니다. 제일 방값이 싼 것은 도스토옙스키 룸, 아마 러시아 작가이기 때문에 푸대접을 받을 겁니다.”   리가 시내 한 건물 안에 스위스,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세 나라 대사관이 한 작은 건물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Three S Countries, 임대료를 절약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폴란드 여행기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나라 대사관 바울 교회

2023-11-15

[삶의 뜨락에서] 고요한 숲속에서 갑자기 총성이 -발틱 3개국, 폴란드 여행기 2

하마스 테러로 촉발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긴장이 고조됐던 시기, 뉴욕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에 유대인 가족이 타고 있었다. 아버지는 전통적인 랍비 복장,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아들도 같은 차림이었다. 아이는 일곱 명, 큰딸이 엄마를 대신해 우는 아기를 돌봐주고, 다른 아이들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뛰어다녔다. 승객들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독일, 오스트리아, 발칸 반도, 발틱 3개국, 폴란드를 여행하다 보면 슬픈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 현장을 피할 수 없이 만난다. 유대인 희생자들의 동상은 대개 이름이 없다. 체코 프라하 유대인 묘지 앞에 울고 있는 한 동상이 서 있었다. 가이드에게 “왜 이름이 없어요?” 하고 물었다. “It could be any Jew.” 오스트리아 빈 오페라 하우스 바로 건너편에 쇠사슬에 묶여 땅바닥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동상도 이름이 없었다.     이번 여행 중 유대인 집단촌과 뮤지엄, 홀로코스트 현장을 지났다. 발틱해 가장 북쪽에 있는 에스토니아에서도 희생자가 많았으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훨씬 더 많았다. “왜 그런가요?” 가이드의 대답 “라트비아는 1000년 전 독일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유대인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몰려와 리가와 교외에 집단촌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리투아니아는 오래전 다른 종교에 관대한 것으로 소문나 유대인이 대거 이주 ‘발틱의 예루살렘’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2차 대전이 터지고 나치는 유대인 학살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발틱에는 수용소가 없었습니다. 나치는 이들을 잡아다 아름다운 숲으로 끌고 갔습니다. 라트비아 여름 숲속에서 수십만 명이 총살당했습니다.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집단촌은 명문 국립대학 바로 위에 있었습니다. 나치와 나치에 협력한 리투아니아 경찰이 끌고 고요한 숲속으로 데려가 웅덩이를 파고 옷을 벗겼습니다. 갑자기 총성이 울리고 놀란 새들과 들짐승이 달아났습니다. 유대인들은 낙엽처럼하나둘 떨어져 웅덩이에 묻혔습니다. 처형을 기다리던 유대인 13명이 밤중에 땅굴을 파서 도주해 살아남았습니다. 나치는 80명을 동원해 증거를 지우려고 했습니다. 리투아니아 전국에서 70만 명이 죽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인구는 지금의 280만 명보다 훨씬 많았으나 거의 20%를 잃었고, 그들은 무고하고 재능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수도에서 남으로 11km 숲속에 Panerial Holocaust 기념비가 당시 비극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치는 폴란드에 수용소를 설치해 10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독살했다. 여행 중 아우슈비츠 학살 현장을 찾고 싶었으나 바르샤바에서 300km나 떨어져 일정상 가지 못했다.     폴란드에는 2차 대전 약 40만 명의 유대인이 살았으며, 집단촌에 10만 명이 있었다. 좁은 방 하나에 7~8명이 모여 살아 질병으로 죽은 이가 많았다고 한다. 참다못해 유대인들은 집단 반란을 일으켜 1만5000명이 피살되었고 이 사건은 가스 처형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바르샤바 올드 타운에 Polin Jewish Museum, 큰 빌딩이 있다. 여기서 폴란드 유대인의 1000년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수백 년 전 나무집시나고그가 인상적이었다. 뮤지엄 앞에 당시 폴란드 외교관이었던 Karski 동상이 있다. 그는 유대인들을 구출해 런던 등지로 보낸 영웅이었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폴란드 여행기 유대인 집단촌과 유대인 희생자들 유대인 학살

2023-11-07

[삶의 뜨락에서] 노래로 슬픔을 잊는다 -발틱 3개국, 폴란드 여행기 1

새벽에 일어나 이 글을 쓴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심각한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독자들에게 보고서를 작성해서 띄운다. 지난달 24일 밤늦게 도착해 몇 시간 잤다. 아침 4시, 폴란드와 6시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하고는 7시간 시차가 있다. 이번에 독일 비행기 루프트한자를 탔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크고, 청결하고, 능률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공항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유료 샤워장과 몇 시간 잘 수 있는 유료 취침실이 있다.   바르샤바에서 출발,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4시간을 기다렸다. 활주로에 독일 비행기와 유나이티드에어가 사이좋게 서 있었다. 2차 대전을 생각했다. 독일 전투기는 미군기에 격추당했고, 프랑크푸르트는 공습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비 내리는 공항, 거의 80년이 지났지만 그 하늘은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종전 후 베를린이 동서로 분할되고, 한때 소련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에 대한 보복으로 베를린을 군대로 포위하고 독일 사람들을 굶겨 죽이려고 했다. 이때 미국, 영국 등 우방 비행기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분 단위로 식량 등 생필품과 의약품을 싣고 가 베를린 하늘에서 떨어뜨렸다.   이번 발틱 3개국, 폴란드 여행기는 러시아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와 번영을 이룩하고 행복하게 사는 추운 나라 사람들을 보고, 만나고, 깊은 감동으로 느낀 스토리이다.   발틱해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세 작은 나라가 바다 건너 스칸디나비아 3개국(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와 마주 보고 있다. 발틱 세 나라를 합한 인구는 550만(에스토니아 120만, 라트비아 150만, 리투아니아 280만), 바이킹 후손 스칸디나비아 세 나라(스웨덴 1000만, 덴마크 550만, 노르웨이 530만) 보다 훨씬 적다. 발틱 3개국은 독일, 스웨덴, 러시아의 침략을 받아 왔고 2차 대전 후 소련 연방에 편입되어 고생하다 1991년 완전한 자유를 되찾았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압력으로 공산주의 체제를 도입했으나 소련 연방은 아니었다. 이번 여행 중 이 세 나라 사람들의 반러시아 감정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꼈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Riga), 러시아 대사관 바로 건너편에 라트비아 뮤지엄이 있는데 벽에 흉측한 푸틴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리가와 리투아니아 수도 빌듀스에는 옛 KGB 만행을 볼 수 있는 뮤지엄과 고문실이 보존돼 있다. (리가 사람들은 큰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고 해서 Corner House라고 부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발틱 3개국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으면서도 군사적, 정치적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EU, NATO 회원국이며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발틱 국가에서는 여름에 송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에스토니아 축제는 1869년에 시작, 150년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축제는 온종일 열리는데 인접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나라 인구의 거의 두 배인 200만 명 관중이 서로 어울려 노래하고, 껴안고 키스해 뉴욕의 타임스스퀘어 축제를 연상케 한다.   러시아, 독일 등 외세에 눌려 살아온 발틱인들이 한 데 모여 노래로 상처를 치유하고 우정을 돈독히 하는 한여름 밤의 축제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에서도 송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그 규모와 열기는 에스토니아 축제에 못 미치고 있다고 한다. 발틱 3개국 중 핀란드와 러시아에 가장 가까운 에스토니아는 헝가리, 핀란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몽골의 칭기즈칸 군대는 튀르키에, 헝가리까지 진출, 언어와 문화를 전파했다. 에스토니아는 몽골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작은 나라지만 IT 산업과 국제 금융 시스템이 잘 돼 있어 국민소득이 세 나라 중 제일 높다. 사람들은 키가 크고 잘생겼으면 젊은이들은 대개 영어를 잘한다. 모든 면에서 서유럽에 못지않은 선진국 대열에 속해 있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폴란드 여행기 폴란드 여행기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라트비아 뮤지엄

2023-11-01

[역지사지(歷知思志)] 온난화의 역설

“강원도 간성의 바닷물이 6월에 얼음이 얼어 종이처럼 두꺼웠다.”(‘숙종실록’ 35년 1월 10일)   17세기는 소빙기의 절정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바다가 얼어붙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소빙기는 밥상도 바꿔놓았다. 추위와 함께 수온이 내려가면서 대구·청어 같은 한류성 어종이 크게 늘어났고 서식 범위도 확장됐다. 이전엔 동해안 북쪽에서나 발견되던 명태가 전국 모든 바다에서 나타나 해마다 수천석씩 잡혔다. ‘땔나무처럼 많아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다. ‘소빙기의 축복’이라고 할 만한 역설이다.   올겨울도 어김없이 이상 기후가 이슈다. 북미는 강추위로 얼어붙었다.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두고 있던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한다. 반면 유럽은 연일 따뜻한 겨울이 화제다. 얼마 전 영국 런던은 13~14도, 폴란드 바르샤바는 19도를 기록했다. 유럽의 온난화는 각종 발전소가 파괴되어 전력 공급이 어려운 우크라이나엔 큰 위안거리다. 당초 가스관을 잠가 유럽을 굴복시키려던 푸틴의 구상도 좌절됐다.   ‘동장군(冬將軍)’은 19세기 초 러시아에 쳐들어갔던 나폴레옹이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후퇴했던 데서 유래된 단어다. 동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히틀러로부터 러시아를 구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동장군이 전선에서 이탈했다. ‘소빙기의 축복’처럼 ‘지구 온난화의 축복’이라고 회자할 듯싶다. 유성운 / 한국 문화부 기자역지사지(歷知思志) 온난화 역설 지구 온난화 폴란드 바르샤바 한류성 어종

2023-01-11

[독자 마당] 조국의 통일

최근 한국 정부나 북한이나 통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해 조국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대해 북한 쪽에서는 남한이 쓸데없는 군사행동을 보일 경우 가차 없이 공격을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북한은 한 사람의 권력 유지를 위해, 한국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분단을 이용하고 있다.     폴란드를 여행한 적이 있다. 폴란드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러시아를 잇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한반도가 아시아 대륙 세력과 태평양 해양 세력이 만나는 요충지인 것과 비슷하다.     폴란드에서 만났던 분의 말에 따르면 폴란드는 한때 국가가 4개로 쪼개졌었다고 한다. 주변의 강대국들이 자기들의 입맛대로 폴란드를 4등분 한 것이다.     이때 폴란드 국민은 4개의 국가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스스로 노력해서 통일국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폴란드가 한없이 부러웠고 폴란드 국민이 존경스러웠다.     대한민국은 2차 대전 후 강대국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둘로 쪼개버렸다. 이때 일부 지식인들은 하나의 조국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허사가 됐다.     남한과 북한에 각각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후 북한이나 남한의 권력자와 정치인들은 통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권력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통일을 위한 일에는 별 관심도 없는 듯 하다.     세계인들이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참으로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혹시라도 한국은 미국의 꼭두각시로, 북한은 중국의 꼭두각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분단 80년이 다 되어 간다.  이제는 우리 힘으로 통일할 때가 되었다. 서효원·LA독자 마당 조국 통일 폴란드 국민 이때 폴란드 꼭두각시로 생각

2022-08-07

폴란드 추락사고 사망자 신원확인 시일 걸릴 듯…카친스키 대통령 등 24명만 확인

폴란드 대통령 전용기 추락 사고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 작업이 마무리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12일 러시아 언론매체들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현재 사망자 96명 가운데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 등 2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또 다른 20명의 신원도 유류품 대조 작업 등을 통해 조만간 파악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습된 시신 가운데 일부는 얼굴과 지문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해 유전자 감식과 치아 대조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최종 신원 확인까지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사고 현장인 스몰렌스크에 DNA 검사 장비 등이 없어 희생자 시신을 모스크바로 모두 옮겨온 상태며 폴란드에서 도착한 가족들로 하여금 신원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희생자 가족을 태운 두 번째 비행기는 이날 오후 모스크바에 도착할 예정이다.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의 유해는 국가원수 예우 차원에서 쌍둥이 형제인 야로슬라브 카친스키 전 총리가 사고 현장을 방문해 직접 시신을 확인한 만큼 바로 폴란드로 운구되도록 조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연방 대검찰청 수사위원회 관계자는 "신원 확인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45명의 법의학 전문가를 포함해 1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와 폴란드 수사관들은 사고 현장에서 미처 거둬들이지 못한 희생자들의 신체 일부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현지 수사 관계자는 "사고 충격이 커 비행기가 산산조각 났다"면서 "주변에 흩어져 있거나 풀숲에 묻힌 희생자들의 신체 일부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12일 하루를 국가 애도의 날로 정해 자국 영토에서 불의의 사고로 숨진 카친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폴란드 정부 대표단의 사망을 러시아 국민들과 함께 애도했다. 폴란드 정부 대표단은 10일 러시아제 Tu(투폴레프)-154 비행기를 타고 지난 1940년 옛 소련 비밀경찰이 폴란드인 2만2000명을 처형한 '카틴 숲 학살 사건' 추모 행사에 참석하려고 러시아를 찾았다가 비행기가 스몰렌스크 공항 활주로 부근에서 추락 탑승자 96명 전원이 사망했다.

201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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