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인물-밭에 감춘 보화를 발견한 사람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관한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그 중에 첫 번째 비유는 ‘밭에 감춘 보화를 발견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이 비유에 대한 말씀을 들은 것이 기억에 납니다. 주인의 밭에서 소작농으로 일하던 종이 어느 날 밭을 갈던 중에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합니다. 종은 그 보화를 가만히 묻어 두고,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가 ’천국‘에 관한 말씀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잦은 전쟁 등으로 인해서 값비싼 소유를 땅에 묻어 두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말씀은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보화를 묻어 둔 원래 주인과 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극명하게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먼저 보화를 묻어 둔 원래 주인입니다. 그 사람이 보화를 땅에 묻었다는 것은 그 보화가 값비싼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둑이나, 약탈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땅에 묻어 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입니다. 묻어 둔 다음에 주인은 그 보화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 버린 겁니다. 왜 그 존재를 잊어 버렸을까요? 묻어둔 보화가 없어도 충분한 재물이 손에 쥐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보화의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로 더 좋고, 귀한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돌아가서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처분합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태복음 13장44절. 이 사람은 보화를 발견한 후 도로 그것을 ‘숨겨두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감추인 보화’에서 ‘감추다’와 ‘숨겨두다’는 같은 의미이지만 헬라어 원어로는 조금 다릅니다. 먼저 ‘감추다’는 ‘케크륌메노’로 원형은 ‘크륍토’입니다. ‘숨기다, 감추다, 덮다’의 뜻입니다. 그런데 ‘케크륌메노’가 수동태로 사용이 되어 있습니다. ‘보화가 숨겨졌다.’는 의미입니다. 즉, ‘보화’가 주체입니다. 반면 ‘숨겨두다’는 ‘에크뤱센’으로 되어 있는데, 원형인 ‘크륍토’의 능동태입니다. ‘사람이 숨겼다.’로 사람이 주체가 되어 있습니다. 보화는 숨겨졌고, 그리고 한 사람이 보화를 발견한 후에 숨겼다는 겁니다. 보화를 다시 숨긴 사람은 그 보화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다시 숨긴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서 이 밭을 삽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전 재산보다 보화가 더 값어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보화를 밭에 숨긴 사람은 그 보화보다도 자신의 소유가 더 크기 때문에 잊어버립니다. 그렇지만 뒤에 이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보다 이 보화를 더 크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천국이다.’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죽으면 가는 하늘나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도 포함이 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 장소 등을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라고 말합니다. 천국이 이와 같다는 것은 어떤 사람은 ‘천국’,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그 보다 더 좋고, 귀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 명예, 성공과 같이 이 땅에서 더 값어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천국을 그저 삶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천국을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살 값어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질보다, 명예보다, 이 땅에서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천국’,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값어치 있고,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것은 ‘천국’,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보화가 묻혀진 상태에서 다른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에 보화의 존재를 망각하는 삶일까요? 아니면 보화의 가치를 알고 모든 소유를 팔아서 보화가 묻힌 밭을 사려고 하는 삶입니까?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내 자존심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때론 눈앞에 보이는 돈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명예, 세상의 즐거움에 더 집착하고 살지 않습니까? 보화의 가치를 알고 모든 소유를 팔아서 밭을 산 사람처럼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바라며, 갈망하며,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는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칼럼신약 인물 감추인 보화 하나님 나라 물질 명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