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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인물-죄를 지은 한 여자

목회칼럼 윤우식 예닮장로교회 담임목사

 누가복음 7장36절에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에서는 이 여자를 ‘죄를 지은 한 여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누가복음7장37절. 여기에 ‘죄 있는’에 해당하는 단어가 ‘하마르톨로스’로‘죄인’, ‘죄 많은’, ‘죄가 더 있는’의 의미로 신약 성경에 사용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사용하시는 표현이 아닙니다. ‘죄 많은’이라고 한다면 ‘죄가 적은’이라는 표현도 있다는 것이고, ‘죄가 더 있는’이라는 것은 ‘죄가 더 적은’이라는 표현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우리는 모두가 같은‘죄인’이며, 또한‘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들일 뿐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이 여인에 대해서‘죄를 지은 한 여자’라는 것은 이 여인을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누가복음7장39절.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신 곳에 여인이 들어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누구인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다 압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여자입니다. 죄인이라고 정죄를 받는 여자였습니다. 그런 여인이 예수님께로 옵니다. 그 여인의 손에는 향유 담은 옥합이 들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옥합’은 ‘뮤론’으로 향유, 고약’으로 해석이 됩니다. 즉, 단순한 미용 목적의 기름이라기보다는 치료 목적의 기름으로 아주 귀한 것이었습니다. 
 
     여인이 깨뜨려서 예수님의 발에 쏟은 귀한 향유의 가격은 얼마였을까? 혹시 이것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여인이 큰 금액의 향유를 부을 정도의 행동을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진 소중한 것을 예수님의 발에 부은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더 많이 드렸느냐? 누가 더 많이 봉사했느냐? 누가 더 수고 많이 했느냐?”를 따집니다. 왜 이것을 따집니까? 이것이 소위 기득권의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에서는 ‘많이’, ‘얼마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어떤 것’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적게 한 것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되어서 실족했습니까? 누군가 많이 한 사람이 무시해서 시험에 들었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지금 드리는 우리 각자의 마음을 받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와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붓습니다.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누가복음 7장38절. 당시 관습으로 여인이 머리를 풀고 우는 행위는 장례식 때에만 허용된 행동이었습니다. 장례식 때에만 허용된 행동이라는 것은 정말 절실한 슬픔의 상황에서만 하는 행동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있겠지만 여인의 삶을 짓누르고 있던 ‘죄’, ‘죄를 지은 여자’라는 것에 대한 슬픔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위 ‘죄를 지은 한 여자’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7장48절,50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 여인뿐 아니라 주변에 모여 있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죄지은 여자’, ‘어떠한 자’,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여인에게서 더 이상 정죄할, 비판할 죄가 없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여인을 향해서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죄인’, ‘지를 지은 사람’이라고 말하면 실족하고, 시험에 듭니다. 그래서 교회도 나가지 않겠다고 아주 대단한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은연중에 나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누가 어떤 잘못, 실수에 대해서 ‘죄인’, ‘몹쓸 사람’, ‘구제불능’이라고 매도하고,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마치 이 시대의 의식 있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이 죄인의 죄가 사하여졌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누구를 죄인’이라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또한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죄인으로 정죄하며 위축되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앞에 나와서 회개하는 자의 죄를 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정죄 때문에 시험에 들었습니까? 나보다 더 죄인인 것 같은 사람이 잘난 체해서 실족했습니까? 그래서 교회 나가지 않기를 결단하셨습니까? 오늘 이 여인처럼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실족하고, 시험에 든 그때가 예수님께 나와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평안히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은혜가 있길 소원합니다.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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