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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인물-헤로디아와 딸

목회칼럼 / 윤우식 더비전교회 공동담임

 마태복음 14장과 마가복음 6장에는 세례요한의 순교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동생 빌립의 처를 아내로 맞이한 헤롯의 죄를 강력하게 책망했습니다. 여기에서 죄를 지적하고 책망한 세례요한을 헤롯이 미워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헤롯의 아내가 된 ‘헤로디아’가 더 미워했습니다. 그녀는 권력에 대한 야욕으로 가득 찬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남편의 형의 아내가 되는 것에 대해서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행동을 책망하는 세례요한을 달갑지 않게 여긴 것입니다. 한편 헤롯 또한 세례요한을 제거하고 싶지만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기에 그를 죽일 경우에 큰 소요가 일어날 것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저 감옥에 가두는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헤롯의 생일에 헤로디아는 딸을 이용해서 세례요한을 제거할 명분을 얻습니다. 그녀는 딸을 헤롯 앞에 춤을 추게 합니다. 그리고 그 춤을 기쁘게 여긴 헤롯으로부터 세례요한의 목을 약속 받습니다.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마태복음 14장6절,7절. 의붓아버지 앞에서 춤을 추는 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본 헤롯은 기뻐합니다. 여기에 ‘기쁘다’에 해당하는 단어를 보면, ‘아레스코(ἀρέσκω)’라는 단어로 ‘기쁘게 하려고 애를 쓰다’의 의미입니다. 의붓아버지 앞에서 관능적인 춤을 추는 딸과 그런 춤을 보고 여느 남자들이 가지는 마음으로 그 춤을 바라보는 헤롯의 모습입니다. 헤롯은 이로 인해서 세례요한의 목을 줄 것을 약속하고 그것을 이행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헤로디아와 그녀의 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문화가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딸을 헤롯 앞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관능적인 춤을 추게 하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헤로디아에게 우선순위는 무엇이었을까요? 자신이 비록 분봉왕이지만 헤롯의 아내가 됨으로 왕과 같은 위치에 있는 남자의 아내가 됨으로 그녀에게 오는 권력이 그녀의 삶에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대한 불합리함과 잘못됨을 책망하는 세례요한은 대단한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한 사람, 그것도 선지자로 여기는 사람을 정당한 죄목이 없음에도 죽이고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우리에게 목적이 무엇인가가 삶에 중요합니다. 분명 그 목적은 내가 갈망하고,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개인의 욕심과 야망이고, 이기적인 것이 되어서 분명 옳지 못한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목적에 사로잡힌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가 전하는 복음이 어떤 내용인지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오직 죽이고자 하는 마음에 사로잡혀서 끝내 죽이려고 한 것과 같습니다. 권력의 자리가 목적이 된 헤로디아는 세례요한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딸마저 마치 음탕한 여자들이 남자를 유혹하는 몸짓을 의붓아버지 앞에서 하도록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중독이라는 말을 합니다. ‘게임 중독’, ‘성 중독’,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 등과 같이 사회적인 문제로 거론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도 농담처럼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드라마에 중독되었다’, ‘나는 쇼핑 중독이다’. 그런데, 중독은 곧 마비입니다. 중독되게 하는 요인으로 인해서 일상적인 생활이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독 시키는 요인의 지배를 강력하게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이성적이지도, 정상적이지 못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다면 내가 하는 생각과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생각’은 단순하게 조금 잘못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잘못된 것이 되어 버리게 된다는 겁니다. 내가 하는 목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짓밟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게 되어 버립니다. 혹시 지금 내가 목표로 삼고,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18절 말씀을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술 취하다’는 ‘메뒤스코(μεθύσκω)’라는 단어입니다. ‘술 취함’은 방탕하게 만듭니다. 주인이 올 때를 대비하지 않고 술에 취해서 방탕한 종과 같은 상태처럼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반면에 ‘성령 충만’은 ‘플레로(πληρόω)’라는 단어로 ‘가득하게 하다, 충만하게 하다’의 의미와 ‘완성하다’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를 완성하게 합니다. 마비가 되어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의로운 판단을 하게 하고, 바른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합니다. 무엇에 ‘취한 삶’인지,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완성된 삶을 살 것인지를 고민합시다. 나를 바른길을 걷게 하며, 의로운 결정을 하게 하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 땅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칼럼 / 더비전교회 윤우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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