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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사막에서, 튜바 소리

모래 산은 잘 갈아놓은 칼날처럼 날이 서 있다     한나절 그득한 하늘이 에워싸고 있는   꼭대기를 향해 걷는 힘든 걸음은   거친 숨을 잠시 멈추기 위해   불쑥불쑥 사방을 두리번거리게 한다     견고하리라 싶어 모서리를 밟고 서면   허망하게 푹 꺼져버린다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라는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인 것 같이     왜 이곳이, 죽음의 계곡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되었을까,   인생은 한 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외길인데   왜 살인적 더위의 이곳을 지름길이라 선택했을까,     바람 부는 날   가쌍까상 메마른 모래 위에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면     *튜바는 아.파.라, 아.파.라, 무명의 탈을 쓰고 소리를 지른다   제 아픔 서러움의 진물인지 아직도 아.파.라, 불어댈까,     한 움큼 모래알갱이를 쥐었다가 손을 편다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모래는, 바람 따라   미라의 긴 머리채처럼 황금색 낙타 쌍봉을 향해   수시로 무늬와 형태를 바꾸며   이사 오고 이사 가고 흩어졌다가   시골 장터 무동을 어깨 위에 세우곤   덩더꿍 덩더꿍 풍물놀이 장단 맞추는   너, 나 그런 개념 없이 어울려 땅따먹기한다   그 속에 무슨 정이 있다고…아직까지 정이 있다며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가는지     무한 허공   목이 마르다,     천근만근 무거운 두 다리   함부로 신발 속과 온몸에 박혀 있는 모래를   툭툭 털어내면서   자동차 안에 있는 페트병 생수를 찾아   꿀꺽꿀꺽 마신다       서녘 하늘에서 가슴 더운 노을이 하강하여   먼 산은 눈시울 붉어지도록 내려앉는다   너덜거리는,   기억 속의 잔여울이 여울지어   붉은 황금빛 모래 산은   어느새   검은 긴 천을 두르고 하나씩 잠자리에 든다   *금관악기 중 최저음역을 내는 악기 강양욱 / 시인시 사막 소리 서녘 하늘 풍물놀이 장단 황금색 낙타

2024-02-08

[시] ‘앗차’ 하지 말자

우리가 잠깐 머물던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간다.       지난 시간은 참으로 아름다운 날들이었네   그것은     살아있었다는 그 한 가지 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아름답고   한번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었노라고...       그 한해에 속에는     미움도, 시기도, 질투도, 분노도 있었고   즐거움도, 행복도,보람도, 사랑도 있었네   그런 모습 속에서도   우린 서로 인연의 고리를 가지고 있지.       한 개의 고리가 끊어지면   다른 고리도 저절로 끊어지는 법,   고귀하고 귀중한 인연의 고리를   다시 한번 동여매어 보자.       2023년이 가고 2024년이 오면   새해에는 ‘앗차’ 하지 말자       보통 때에는 모르고 있는     공기나 물처럼   그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고마운 것을 모르는 것처럼   우린 타인의 인격과 생각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한 사람이 ‘앗차’ 실수를 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사이에   다른 한 사람이 불행해진다.       창밖을 바라보자   현란하게 색색으로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리다   이젠 차가운 눈 속에 잠들고     내일을 꿈꾼다.       우리 새해에는   많은 생각을 하자.   지난해의 모든 슬픔과 고통의 멍에를     그냥 내려놓고   새로운 바다의 삶 속으로   훌훌 떠나보자.       새로운 해에는 사랑 안에서   ‘앗차’하는 실수를 하지 말자   그리고 못 본 척도 하지 말자! 석 송 / 시인시 질투도 분노 우리 새해 지난 시간

2023-12-28

[시 선] ‘환경미화원’ 오타니

“반 고흐의 그림을 본 적 있는가.(Did you see Van Gogh paint?)”   1995년 8월 14일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커버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야구담당 기자 톰 버두치는 ‘역사상 최고의 투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흐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이 투수의 피칭을 보는 것이 값진 일이라고 소개했다. 주인공은 바로 컨트롤의 마법사로 불렸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투수 그렉 매덕스였다. 그로부터 28년이 흐른 2023년. 버두치는 ‘역사상 최고의 투수’가 아니라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 선수야말로 (치고, 던지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야구선수’다.”   버두치가 말한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는 최근 메이저리그 LA다저스와 초대형 계약을 맺은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다.   오타니의 캐릭터를 잘 설명해주는 일화가 있다. 길을 가는데 쓰레기가 떨어져 있다. 대부분의 경우 쓰레기를 못 본 척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내가 버린 쓰레기도 아닌데 이걸 왜 주워야 하지.’   그런데 오타니는 다르다. 운동장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꼬박꼬박 주워서 휴지통에 버린다. 오타니는 말한다. “나는 쓰레기를 줍는 게 아니다. 남이 무심코 버린 ‘운(運)’을 줍는 것이다.”   오타니는 최고의 투수인 동시에 최고의 타자다. (오른손) 투수와 (왼손) 타자를 겸업한다는 뜻에서 일본에선 ‘이도류(二刀流)’, 미국에선 ‘투웨이(two-way)’로 불린다. 기량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현실적이다. 마운드에 오르면 시속 161㎞의 강속구를 던진다. 타석에선 4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낸다. 키가 1m93㎝인데 발도 빠르다. 도루도 20개를 넘는다. 이걸 한 시즌에 동시에 해내는 선수가 바로 그다. 그래서 오타니야말로 역대 최고의 선수를 뜻하는 ‘고트(GOAT·Greatest Of All Time)’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타니가 29세 나이에 ‘역사상 최고’라는 찬사를 듣는 비결은 뭘까. 당연히 이전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걸출한 실력 덕분이다. 그런데 가장 큰 비결은 따로 있다. 그의 기량이 초현실적이라면 그의 캐릭터는 비현실적이다. 야구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 수도승 같은 극도의 절제가 오타니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겸손하면서도 성실한 자세, 불굴의 의지가 그의 무기다. 이걸 다 갖췄다니, 한마디로 그는 완벽에 가까운 인간이다.   오타니가 15세 때 ‘만다라트(만다라+아트)’ 계획표를 만들었단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 계획표를 만들면서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 실천 과제까지 빼곡히 적어 넣었다.(만다라트란 1970년대 일본의 경영연구소가 고안한 습관 관리표다. 이 계획표가 불교의 만다라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만다라트라고 불린다.)   오타니는 체력·정신력과 함께 ‘인간성’과 ‘운(運)’도 목표 달성을 위한 8가지 항목 중 하나로 봤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행운이 따라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타니는 열다섯 살 때 이미 깨우쳤다. 보통 소년이라면 중2병이 절정에 달할 나이에 성공을 목표로 이런 작은 일까지 챙겼다. 즉, 오타니는 사람의 ‘운’까지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었다.   행운을 불러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타니가 내린 결론은 교실 청소에 앞장서고, 어딜 가든 쓰레기를 줍는 것이었다. 인사를 잘하고, 긍정적 사고를 하는 것도 운을 불러들이기 위한 그의 전략이었다. 이런 구도자 같은 생활이 몸에 밴 사람에게 마약이나 음주·흡연이 끼어들 공간은 없다.     그런데 천하의 오타니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팀의 우승이다. 최근 나온 책 『포르쉐를 타다, 오타니처럼』(이재익 지음, 도도서가)의 문구가 눈에 띈다.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 마이크 트라웃과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인 오타니는 2018년부터 같은 팀에서 뛰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선수 두 명을 데리고도 소속팀 LA 에인절스는 가을야구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야구는 선수 개개인보다 팀 의존도가 높은 스포츠다. 이 점에서 야구와 인생은 무척 닮았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적다. 그 흔한 사랑도, 싸움도, 치킨집도 혼자서는 못한다.” 정제원 / 한국 문화스포츠디렉터시 선 환경미화원 오타 커버 스토리 야구 역사상 선수 개개인

2023-12-27

[시] 재만이를 떠나보내고

누나, 내가 못 갈 것 같아     어깨 수술도 해야 하고 임플란트도…     옥천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온몸에서 피가 쭈르르 빠져나가듯 현기증이 났다     상한 마음에 웃음기를 잃었다 동생이 아프다는데     그건 묻지도 않고 내 생각만 했다         누나, 누나 내가 가야겠어 누나랑 통화하고   마음을 바꿨어 병원은 다녀와서 가려고     그때부터 남편은 화장실 리모델링 시작하고     난 괜히 집 앞을 쓸고 다녔다     떨어진 낙엽들을 마구마구 공중에 뿌리며 실실 웃었다         재만이가 나타났다 고향 공기를 흠뻑 싣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돌아가신 엄마를 꼭 껴안고 오듯     큰 체격에 엄마 눈 코 입을 꼭꼭 심고 나타났다     그 옆에 예쁘고 착한 올케와 함께         어릴 적 다락방에 올라가 꿀 퍼먹다 잠든 재만이     천둥 번개 치는 날엔 재봉틀 발판 위로     기어들어간 재만이가   이순의 나이로 백발이 되어 나타났다     우리 부부는 동생 부부와 한 달 동안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웃고 떠들고 설레었다   한 달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나         십일월 마지막 월요일 엘에이 공항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끌어안고 윽윽 울음을 삼켰다   한 남자는 민망해 두 발짝 뒤로 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큭큭 삼켰던 울음이 쏟아졌다     채울 수 없는 공허함     버려지지 않는 이 그리움         재만아~   홍유리 / 시인시 동생 부부 누나 누나 화장실 리모델링

202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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