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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길

첫눈은 아직 오지 않고
 
비만 내린다
 
춤추듯 잎이 떨어지고
 
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별
 


나도 네 주위를 맴돌았다
 
내 눈물로 난 길은 적도(赤道)
 
그 사이 계절은 스물네 절기로 나뉘어
 
젊은 날 나이 숫자같이 빛났다
 
과거형 언어보다
 
현재 화법 구사를 좋아했던
 
나는 견고한 성(城)이고 싶었을까
 
연인을 쫓아가는
 
저 렌슬렛 기사를 사랑한 여인 샬롯
 
갈대 엮은 배는 그녀와 함께 부서졌지만
 
나는 훼손되지 않는 데드마스크
 
어쩔 수 없는 너는
 
멸(滅)하지 않는 내 아득한 풍경
 
우리 서로 포개져 누워
 
성벽을 에워싸는 들풀로
 
아예 길도 없어지고 잊혔으면.

박정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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