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시선] 한인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갈라 시즌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뉴욕도 매주 여러 한인 비영리 단체들의 연말 갈라 행사로 분주하다. 이들 단체는 갈라에서 모인 후원금으로 각자 목표하는 사회적 대의 실천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한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아시아계 미국인의 권익 향상, 한인 청소년 장학금 마련, 저소득층 가정 지원, 서류 미비 청년 추방유예 운동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대부분의 갈라에서는 오랜 기간 한인 사회와 지역 공동체를 봉사와 헌신으로 섬긴 이들에게 공로상을 수여한다. 또 한인 정치인부터, TV나 영화에서 보던 한인 배우, 혹은 대기업 임원으로 성공한 한인 등 유명 인사를 초청해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들은 주류사회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활동하며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이지만 갈라에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어쩌면 초라하기까지 했던 이민자 혹은 이민자 자녀로서의 추억들을 회고한다. 한인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에피소드들이다. 필자는 4년 전 한 행사에 참석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2019년 10월 애틀랜타에서 열렸던 KAC (Korean American Coalition) 전국대회다. KAC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인 풀뿌리 단체 중 하나다. 당시 주최 측의 초대로 한국에서 온 분이 사흘 동안 대회를 참관했다. 그는 마지막 날 갈라가 진행되던 중 옆에 앉았던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재미 한인들은 왜 그렇게 서로를 도와주려 하고 공동체를 위해 합심하는 모습을 보이지요? 참 신기하네요.” 그의 말에는 당혹감과 함께 경외로움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평소 자신이 아닌 타인, 더 나아가 공동체의 발전과 역량 강화라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필자에 대한 책망같이 들리기도 했다. 어쩌면 그가 한국에서 소속감을 느꼈던 범주는 학연, 지연, 혹은 경제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이념 등에 한정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런 범주를 벗어나 자발적으로 타인과 긍정적 상생 관계를 모색하는 한인들의 모습이 그에게는 특별하게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한인 사회와 한인 비영리 단체들이 모두 이상적이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한인 교회에서 벌어지는 갈등, 한인회장 등 단체장 선거 때 등장하는 각종 비방, 1세와 2세 간의 소통 단절, 정치적 이념 차이로 인한 논란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기본적으로 이민자로, 이민자의 자녀로, 그리고 소수계로서 공유하는 기억들이 있다. 그것은 경제적 어려움일 수도, 유색 인종으로 겪은 차별일 수도, 이민자로서의 서러움일 수도 있다. 이런 기억의 공유가 과거에 기반을 둔 유대감이라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운명의 배를 함께 타고 있다는 자각과 연대 의식은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함께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의 희망을 공유하는 공동체로서 더욱 주목할 점은 젊은 한인 2세, 3세들이 생각하는 한인이라는 범주의 확장성이다. 그들이 주축이 된 갈라에서는 한인 입양인, 혼혈인, 성 소수자는 물론 타 아시아계와 소수민족들도 함께 어울리는 광경이 연출된다. 어쩌면 한국에서 온 참관자가 놀랐던 이유는 그것이었을 수 있다. 단순히 ‘코리안’이라는 민족적 한계를 넘어 다른 사람도 인지할 수 있는 시선, 그 공동체성의 본질 말이다. 이런 한인 사회의 특별함이 더욱 확장되고 오랫동안 지속하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전후석 / 다큐멘터리 감독디아스포라 시선 한인 한인 정치인 한인 비영리 한인 풀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