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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로 돌아온 거장 “완전에 이르면 세상은 없다”

빔 벤더스는 관습으로부터의 자유, 상업주의 탈피를 외쳤던 60, 70년대 독일의 영화사조 ‘뉴저먼 시네마’를 주도했던 감독이다. 1984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파리, 텍사스’, 천사의 눈을 통해 바라본 베를린을 그린 1987년작 ‘베를린의 천사’(Wings of Desire)가 그의 대표작이다.     벤더스의 영화들은 대체로 전후 독일의 회의적 운명론과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 그리고 동시에 타문화를 침식하는 미국 문화에 대한 비판을 특징으로 한다. 80년대의 전성기 이후, 침체기를 가졌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는 극영화보다는 ‘피나’(2012),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2014), ‘안셀름’(2023)과 같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주로 활동해왔다.     빔 벤더스의 6년 만의 장편 컴백작으로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에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줬으며 오스카 국제장편영화의 일본 출품작이었던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의 ‘화장실 프로젝트’ 홍보영상 기획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둡고 더럽고 냄새나고 무서운 인식이 지배적인 공중화장실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도쿄시는 2022년 초 벤더스 감독에게 단편 4편 중 1편을 의뢰한다.     “예술적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과 함께 단편 제작을 의뢰받았을 때, 도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나를 화장실의 비중이 높은 일본 문화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줘서 그 제안이 고마웠다.”     그와 일본, 특히 도쿄와의 인연은 70년대 초로 돌아간다. 그가 50년대 일본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에 매료되어 일본에 빠져들어 가던 시기였다.   “처음 도쿄를 돌아다니다 길을 잃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지하철을 타고 매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 거대한 공간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돌아다닌 그 몇 시간 동안 나는 도쿄와 사랑에 빠졌다. 옛것들과 현대적인 것들, 고층빌딩과 지하 2층, 3층 고속도로 등 혼란스러움 가운데 보이는 심플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가 둘러본 시부야의 공중 화장실들은 ‘위생의 사원’처럼 보였다. 도시의 복잡함, 그러면서도 평화로워 보이는 생활 공간, 그 안에 보이는 미로가 그를 유혹했다. 공중화장실을 소재로 한 빔 벤더스 버전의 도쿄 ‘퍼펙트 데이즈’의 제작 동기다.     “화장실 그 자체보다 그 안에서 사람과 예술을 찾아내고 싶었다. 일본에서 화장실은 작은 성역이다. 평화와 존엄이 존재하는 곳이다. 단편은 나의 언어가 아니다. 화장실을 소재로 한 장편영화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일본의 ‘공동선’ 의식, 도시와 서로에 대한 상호 존중은 그에게 영화로서 접근하기에는 버겁고 너무나도 새로운 영역이었다. 각본을 함께 작업한 타카사키 타쿠마와 많은 토론을 하며 벤더스 감독은 마침내 ‘우리의 남자’ 히라야마의 캐릭터를 찾아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그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히라야마를 연기한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다. 야쿠쇼는 이 역으로 칸영화제를 비롯, 일본 아카데미상, 토론토영화제, 아시안영화제, 시애틀평론가협회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최우수남우연기상을 수상했다.     “야쿠쇼는 평소 존경하던 배우였다. 그는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지닌 히라야마의 삶을 연기할 수 있는 최고의 배우였다.”     ‘퍼펙트 데이즈’는 공중화장실 청소부가 직업인 한 남자의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행복의 디테일’을 찾아가는 내용을 다룬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늘 겸허하며 겉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는 도심 한구석의 외로운 영혼이었음을, 벤더스 감독 특유의 시적인 터치로 묘사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건, 가장 낮은 지점에서 깨달음을 얻은 히라야마의 내면이다. 그는 과거를 가진 남자이다. 그가 어떻게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지옥을 경험했을지도 모르는 히라야마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보게 된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태양 빛에 반사되는 실루엣을 히라야마가 촬영하는 장면이 있다. 벤더스 감독은 히라야마의 일상 안에 숨어있는 상징성을 ‘코모레비’라는 말로 설명한다.     “코모레비라는 햇빛에 의해 벽에 춤추는 나뭇잎의 그림자 이미지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서 히라야마는 단순함과 겸손함을 배운다. 그리고 청소부로 헌신적인 삶을 살아간다.”   히라야마는 자신이 가진 몇 안 되는 것들에 만족한다. 그는 구식 필름 카메라로 나무 곁에 앉아 코모레비의 순간을 포착하고 문고판 책만을 읽으며 어렸을 때부터 모아둔 카세트테이프로 록음악을 듣는다.   “공중 화장실 청소부는 ‘열등한’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영적인 행위이다. 평등과 겸손, 공동선의 몸짓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감기에 걸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것이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태도라는 걸 알고 공동선의 개념을 이해하게 됐다.”   ‘퍼펙트 데이즈’는 벤더스 감독이 그의 스승 오즈 야스지로에게 헌정하는 영화다. 1982년, 오즈 감독의 마지막 영화 ‘꽁치의 맛’(1962) 이후 20년 만에 다큐멘터리 ‘Tokyo-Ga’를 제작했었다. 그리고 60년이 지나 다시 도쿄에 입성, ‘퍼펙트 데이즈’를 제작했다. 두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 히라야마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즈 감독의 어떠한 점들이 그의 영화에 그토록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궁극적으로 그를 일본 문화에 심취하게 했을까.       “그의 영화에 스며든 모든 느낌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 그의 영화의 모든 것이 독특하다. 단 한 번 일어나는 사건들이지만, 그가 펼치는 이야기들에는 영원성이 담겨 있다.”     ‘퍼펙트 데이즈’는 ‘Always’라는 규칙적인 리듬으로 살아가는 한 남자를 통해, 우리의 삶이란 독특한 이벤트, 독특한 만남, 독특한 순간이 사슬처럼 끝없이 이어지고 있을 뿐, ‘완전(Perfect)’에 이르면 그 이상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분히 동양적인, 그리고 극히 단순한 진리를 탐구하는 영화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화장실 완전 공중화장실 청소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2024-03-13

[이 아침에] 완전히 개판

월요일이 휴일이면 사흘 연이어 쉴 수 있다. 이런 연휴가 되면 관광회사들은 스키어들에게 손짓한다. 여섯 시간 정도 운전해야 갈 수 있는 유명한 매머드 스키장으로 모시겠단다. 겨울이라야 하얀 눈을 기대할 수 없는 도시 LA에 사는 주민들에겐 아주 매력적인 손짓이 된다. 그것도 눈이 흠뻑 내려 질 좋은 눈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는 조건은 충분히 충동적이다. 두 시간만 운전하면 눈 덮인 산을 만날 수도 있지만 이곳 스키장들은 인공 눈을 뿌려 놓은 경우도 많다. 어쩌다 눈이 내려 쌓였다 해도 고온으로 인해 곧 질척이는 상태로 변하곤 한다.발밑에서 전달되는 눈의 질을 느낄 수 있게 된 이후로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스키장엔 갈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정월 중반 황금연휴에 매머드로 줄행랑을 쳤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생일이 그렇게 잘 알려진 휴일이 아닌 탓에 약국을 경영하는 남편에겐 휴일이 아니다. 그러니 잽싸게 눈치 봐서 줄행랑을 치기가 제격이다. 제법 처신 잘하던 Y가 남편 두고 합세했다. 나와는 띠동갑이다. 친구를 데려온다더니 동갑내기란다.     이렇게 개띠 세 명이 관광회사 버스에 올랐고, 남편이 개띠라며 한 여성이 합세했다. 남편은 한국에 있지만 어쨌든 개띠와 관련이 있어 인정해 줬다.     스키강습을 받으며 또 다른 개띠가 발견됐다. 스키 실력이 뛰어난 테드 리로 그는 1958년생, 유일한 남성 개띠였다. 첫날 강습에 다섯 명이 참가해서 네 명이 개띠라면 이건 완전 개판이 된 거다.     강사님이 기가 죽을 판이다. 한 사람은 남편이 개띠이니 반은 개에 속한다고 해 모두 깔깔댔다. 결국 강사만 양띠로 개들이 지켜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이야기가 버스 안에 퍼지자 운전기사가 합류한다. 자기도 음력으로는 개띠라나. 어차피 띠 따지는 것은 음력이니 개판에 끼워 주겠다고 마음 좋은 Y가 허락했다. 이렇게 해서 설원을 장악한 개들이 완전히 개판을 이루어 신명 나게 시간을 보냈다.     정말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었고 모든 사람이 박장대소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중 테드 리의 한 마디는 또다시 모두를 웃게 했다. 58년생 개가 아닌 개가 펄펄 나는 것은 망령이라고 볼멘소리를 한 것이다. 모두 까르르 웃었지만, 유난히 난 행복했다. 그 정도 망령이라면 얼마든지 나고 싶다. 앞으로 12년을 계속 나처럼 스키를 타다 보면 12년 후에는 58년생 개띠들도 모두 망령 난 개띠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운동은 건강 유지에 필수과목 아닌가. 비록 남편과 함께하지 못한 여행이지만 재미있었다. 마음이 맞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58년 개띠들에 고마운 마음이다.     곁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로 놀라는 반응이다.  “12년 차이인데도 그렇게 같이 놀 수 있어요? 저 쇼크 먹었어요.”  그러니 망령 난 개띠란 말이지. 앞으로도 개판엔 꼭 참여해서 계속 자리매김을 할 것이다. 당시 다음 연휴까지 제발 눈보라가 다시 쳐주길 기대했었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연휴였는데 다음 연휴까지 우리 강아지들 집 지키는 임무에 충실하길 바란다.  노기제 / 수필가이 아침에 개판 완전 개판 매머드 스키장 이곳 스키장들

2023-08-28

[문장으로 읽는 책]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미나리를 다듬으며 거머리를 대담하게 떼어버리던 어머니의 야무졌던 손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다듬고 난 미나리 뿌리를 버리지 않고 예쁜 항아리에 물을 받아 담가두셨지. 그게 다시 잎이 올라와 겨울의 방 안을 연두색으로 생기 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끊어서 먹기도 했다. 알뜰했던 어머니, 아니 그 시절 엄마들은 다 그러셨지. 뿌리의 생명력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웠던 마음이 읽힌다.   호원숙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박완서 작가 10주기를 맞아 그의 딸 호원숙 작가가 쓴 ‘엄마 박완서의 부엌’이다. 음식 만드는 일에 정성스러웠던 박완서의 부엌은 문학의 산실이었다. 딸은 미나리를 다듬던 어머니를 기억하며 그 생명력을 닮은 박완서 소설 ‘창밖은 봄’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자고 깨면 춥고, 자고 깨면 여전히 춥건만 설마 내일은 풀리겠지, 설마 겨울 다음엔 봄 안 올까, 하는 끈질긴 낙천성만이 그들의 것이었다.”   딸은 오늘도 어머니를 쫓아 부엌에서 음식을 만든다. 경건한 의례처럼 쌀을 씻는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부엌의 물을 내리면서 전원을 켜듯이 하루를 시작했다. 아무리 곤고한 날에도, 몸이 찌뿌드드한 날에도, 눈이 게슴츠레 떠지지 않을 때도, 부엌 싱크대 앞에만 서면 살아났다. 쌀을 꺼내어 물에 씻으면 그 감촉과 빛깔이 질리지 않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어도 지루하지 않은, 그것이 무슨 힘인지는 나도 모른다. 밥심으로 산다고들 하지만 나는 쌀 씻는 힘으로 사는 것도 같다.” 매일 반복되는 뻔한 일, 쌀 씻는 일, 그게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얘기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완전 사랑 엄마 박완서 박완서 소설 미나리 뿌리

2023-05-24

자율주행 시대 코앞인데…관련 인증관리체계 속도는 ‘답보’

글로벌 추세에 맞춰 모빌리티 시대를 앞당기겠다는 방향성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는 가운데, 실제 추진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어 관련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주행 상용화 첫 관문인 ‘자율협력주행 인증관리체계 정보시스템 사업’ 조차 예산타당성 평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까지 ‘자율협력주행 인증관리체계 정보시스템 사업(이하 자율협력주행 인증관리체계)’의 예산 타당성 평가가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해당 사업은 지난 2022년 4월 예비타당성 조사대상 사업에 선정된 이후, 심사가 계속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반면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4월 미연방통신위원회가 차세대 지능형 교통인프라를 위한 주파수 상용화를 허용하는 등 본격화 되는 추세다. 이외에 유럽, 중국 등에서도 ‘완전 자율주행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자율주행 도로 인프라 구축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2027년까지 국내 주요 도로에 자율주행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한 발표 이후 모빌리티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모빌리티혁신포럼’ 등이 조직되기도 했지만 정작 업계가 체감할 수 있는 절차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사업 추진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우선 예비타당성 통과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협력주행 보안인증솔루션 ‘새솔테크’ 한준혁 대표이사는 “이런 식으로 속도가 늦어진다면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며 “세계적인 흐름을 감안하면 예비타당성 과정을 면제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재 다수의 관련 기업이 예비타당성 평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당사만 해도 사업 본격화를 앞두고 인력 확보와 함께 솔루션 개발까지 마친 상태인데 진전이 없어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박원중 기자 (park.wonjun.ja@gmail.com)인증관리체계 자율주행 자율협력주행 인증관리체계 자율주행 상용화 완전 자율주행

2023-05-14

[수필] 인생은 아는 만큼 보인다

한국 시인협회 회장을 지낸  신달자 시인의 이야기다. 언젠가 그분이 라디오 대담 프로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9년간 시부모 병시중하다가 24년 동안 남편 병시중했고, 끝내 남편은 그렇게 죽었습니다. 일생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 창을 통해 우연히 밖을 내다보며 ‘어머! 비가 오네요’ 하고 뒤돌아보니 그 일상적인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존재가 무엇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함,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대상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동안엔 깨닫지 못하지만, 떠나고 나면 그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진솔한 삶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생이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행복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과정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지난해 다녀온 17박 18일간의 북미주 대륙횡단여행 역시, 나에게는 그런 의미를 지녔다.   2022년은 우리 부부가 미국에 와 산지 만 50년이 되는 해였다. 마침 한 관광사의 북미주 대륙횡단 특별 여행 상품 광고를 보고 무작정 신청했다. 55인승 관광버스를 32인승으로 개조한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18일간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본래 여행이란 것이 이런저런 상황 따지다 보면 웬만해선 떠나기가 쉽지 않다. 며칠 정도가 아닌, 18일간의 긴 여행일정이다 보니 큰맘 먹지 않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거기다가 내일모레 80을 바라보는 나이 탓인지 무엇보다 건강부터 걱정된다. 과연 아프지 않고 미전역을 잘 다닐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어 엄두가 안 났다. 그저 눈 질끈 감고 떠난 여행이 다행히도 많은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LA에서 출발한 여행단은 12명의 소그룹이다. 더욱이 모두가 부부여서 완전 가족여행 분위기였다. 여행사 측에서는 손님이 적어 수익이 많지 않았겠지만 VVIP 32인승 최고급 대형 관광버스에 12명만 타다 보니 눕다시피 하며 18일간을 대륙을 누비고 다녔다. 이건 정말 달리는 궁전이었다. 거기다 가이드까지 최고여서 정말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누가 지난번 북미 대륙횡단 여행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런 답을 해주고 싶다. 미국이란 나라는 엄청나게 넓고, 크고 아름다운 축복의 땅이어서, 이곳에 사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사실을 보았노라고.   주마다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는 황홀한 특성들을 지녔다. 도시는 도시대로, 산과 강과 호수, 그리고 중서부의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에서 느낀 거대한 자연의 ‘기’를 받다 보면,하느님과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된 느낌이다. 부족함도 없고, 경쟁심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함이 가득찬  잔잔한 평화가 행복감으로 밀려들곤 했다. 그래서 여행은 축복인가 보다.   알고 보면,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까지도 소중함을 느낄 때 비로소 나의 기쁨이 되어 준다. 사람의 탐욕 때문에 작은 것과 큰 것, 많은 것과 적은 것, 못남과 잘남, 성공과 실패의 구별이 보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여행 동안 시인 김춘수의 ‘꽃’이 자주 떠올랐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너는 단지 하나의 몸짓이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자 너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어 주었다.”  과연, 그 누가 존재의 의미를 이처럼 쉽게 일깨워줄 수 있을까!   이번 여행 내내 나는 아이다호와 사우스다코타 주의 경계 어느 시골 마을에서 6달러를 주고 산 인디언 후예가 색실로 짠 조그만 목걸이를 걸고 다녔다. 그 안에 수 놓인 십자가 모양 때문일까?  부제인 나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와 이번 여행의 소중한 기념품이 되어 주었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부부나 가족, 친구마저도 의미를 갖고 대하면 대할수록 그 소중함이 커간다. 40년 전 우연히 참가했던 부부사랑 운동(Marriage Encounter)피정 세미나에서 처음 듣고 알게 된 “부부는 작은 교회다”란 사실 앞에서 우리 부부는 결혼한 삶의 소중함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지난번 대륙횡단 여행길에서 부부들이 서로 손을 잡고 무언가 저마다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며 인생의 순례길을 묵묵히 걷고 있던 모습들이 아직도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다가온다.   본래, 인생이란게 아는 만큼 보여서 그런 것일까.  한번 와서 한세상 ‘함께’ 살다가는 내 이웃들에 대한 소중함이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 깊은 곳에서 기지개를 핀다. 뒷마당의 목련나무 가지마다 꽃망울을 틔우는 것을 보니, 어느새 봄이 소리 없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김재동 / 수필가수필 인생 북미주 대륙횡단여행 완전 가족여행 부부사랑 운동

2023-03-02

[우리말 바루기] ‘완전 좋아요’의 함정

구매 후기도 물품 구입의 잣대 중 하나가 됐다. “완전 예뻐요” “완전 좋아요”라는 말을 참고한다는 이가 많다.   눈에 익을 정도로 후기나 댓글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완전+용언’의 형태는 문법적으로는 틀린 표현이다. 한 연예인이 “완전 사랑합니다”고 쓴 이후 따라 하는 이가 늘면서 확산됐다.   ‘완전’은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춰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을 뜻하는 명사다. 명사는 기본적으로 용언(동사·형용사)을 수식할 수 없다. ‘완전’은 “법률시장 완전 개방” “임금협상 완전 타결” “불순물 완전 제거” 등처럼 일부 명사 앞에 쓰인다. 명사가 형용사와 동사를 각각 수식하는 구조인 “완전 예뻐요” “완전 좋아요”와 “완전 사랑합니다” 형태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다.   용언을 꾸미는 품사는 부사다. “정말 예뻐요” “진짜 좋아요” “많이 사랑합니다”와 같이 고쳐야 자연스럽다. 아주·몹시·매우·무척·엄청·너무 등 문맥에 맞게 부사를 적절히 선택하면 된다.   부사를 만드는 접사나 부사어 자격을 갖게 하는 부사격 조사 등이 붙으면 명사도 용언을 꾸밀 수 있다. ‘완전’에서 파생된 부사 ‘완전히’는 용언을 수식하는 말로 사용할 수 있으나 주로 변화를 나타내는 동사와 어울린다. ‘예쁘다’ ‘좋다’ ‘사랑하다’와는 의미상 어울리지 않는다. “맡은 일을 완전히 끝냈다” “둘은 완전히 갈라섰다” 등과 같이 써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완전 함정 임금협상 완전 법률시장 완전 불순물 완전

2023-01-22

[수필] 남편의 깊은 마음

딱 20년 전이다. 갱년기 장애로 우울증에 온갖 불편한 증세에 시달리면서 죽어 버릴까 여러 번 생각도 했던 시기가 내게 덮쳤던 것은. 그 당시 내가 속해있던 교회의 연로하신 장로님 둘째 아드님이 신문에 광고를 냈다. 최면 강의가 있겠다고. 혹여 사단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최면이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장로님의 아들인데 설마 과학이라잖아. 최면은 과학이라며 의사들도 최면을 공부하고 환자 치료에 사용한다 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다. 호르몬 약도 복용을 시작했다. 6년가량 복용하다 겁이 덜컥 나서 중단했더니 도로아미타불. 다시 화끈거림, 우울증, 남편 꼴 보기 싫은 증상이 심해진다. 약으로 내 인생 망칠 것 같아 식생활과 기도로 버텨보려 했지만 속수무책이던 때, 신문 광고에 나타난 최면 강의로 방향을 틀고 등록하고 열심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신기하다. 최면으로 유도하고 읊어대는 모든 말들은 마치 하늘에 올려드리는 기도와 똑같다. 나쁜 주문은 손톱만큼도 없다. 내가 나를 최면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짝을 지어 서로가 서로를 최면으로 이끈다. 당연히 좋은 소망으로 주문을 채운다. 먼 훗날까지 성공을 빌어준다. 건강도 확실하게 부탁한다. 따지고 보면 교회에서 배운 기도하는 생활의 재현이다. 맨 마지막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대신에 하나, 둘 셋! 숫자로 최면에서 깨어나도록 리드하면 끝난다. 확실하게 사단의 주문은 아닐 거라고 나에게 확신을 주면서 한 달, 두 달, 강의를 이어 등록한다.   기도로 해결 못 했던 갱년기 장애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다. 마음이 편해지고 밝아진다. 누군가의 어려운 사정을 듣게 되면 앞에 앉혀 놓고 최면으로 빠뜨린다. 간절한 기도가 시작된다. 역시 내게는 하늘로 올리는 기도라고 확신하면서 과학이라는 최면술사들의 정의를 부담 없이 믿어버렸다. 어느 것 하나 내게 불이익을 주는 일이 전혀 없다. 뻔한 이론에 쉽게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강의를 듣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난 완전 푹 빠졌다. 단순하게 모두 믿어 버린다.     배운 것은 그대로 장롱 속 면허로 저장되고 실천과 실습 없는 세월이 20년이 흘렀다. 느닷없이 당한 보이스 피싱을 생각해 보니 완전 최면에 걸려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다. 내가 내 데빗카드로 내 은행에 가서 현금으로 내 돈을 인출한다. 아니지. 엄격히 얘기하면 남편 돈이다. 부부계좌이긴 해도 남편의 월급이 쌓여진 걸 전화기를 통해 주문을 외우는 사단의 목소리에 꼼짝없이 순종하면서 여섯시간 끌려다녔다.   인출해 낸 현금을 어느 곳 어느 주소에 위치한 비트코인 투자하는 작은 기계에다 넣어줬다. 여전히 내 전화기는 주문을 외우는 녀석의 목소리로 바쁘게 일한다. 해 떨어지고 은행 문 닫는 시간이 되니 내일 계속하자는 소리에 집으로 향하면서 밀려오는 피로감에 떠올린 남편의 얼굴. 나 어떡하지? 남편에게 뭐라고 보고하나? 내가 오늘 무슨 짓을 하며 끌려다닌 건가? 고작 전화로 들리는 음성에 따라서.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 산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규정짓기에 앞서, 한 마디로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다. 따라서 누구의 삶의 형태를 나의 잣대로 판단할 수가 없다.  다만, 적용할 법이 있고 대충 모두에게 적용할 가이드라인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이는 그 따라야 할 법조차도 무시하며 살기도 한다.   가끔 우리는 지각 없이 멋대로 사는 이들에게 불이익을 당할 때가 있다. 혼자 살다 혼자 당했다면 자신의 방법대로 처신하며 슬그머니 극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한 사람의 주위엔 함께 불이익을 감당하는 가족이 있을 땐 난처한 상황을 피할 수가 없다. 자식이 당했다면 부모님의 엄한 질책을 피해가긴 힘들다. 부부의 경우엔 역시 상대방의 현명하지 못함이나 당한 손해에 비례해서 비난과 분노를 감당해야 할 경우도 있다.   막상 드라마 같은 상황을 내가 주인공이 되어 연출했으니, 배우자의 힐난과 지혜롭지 못했음의 비난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다. 그러나 정말 피하고 싶었다. 경제적 손실보다는 똑똑지 못하게 당했다는 힐책이 나의 목을 조여왔다. 그러다 생각난 사건. 16년 전, 대학 동기 동창에게 남편이 당했던 재산 손실은 나보다 몇 배 바보 같고 큰 금액이다. 그때 남편이, 실망과 억울함과 체면 상실로 인해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그를 전적으로 응원했던 기억이다. 돈? 우정? 배반? 까짓거 모두 잃어도 부부간의 사랑이 있고 이해와 배려를 기본으로 의연하게 극복했던 기록이 있다.   역시 이번엔 남편의 부족함 없는 아내 사랑 표현이다. “얼마나 놀랐겠어? 많이 놀랐지?” 뜯긴 돈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그냥 마음 편하게 잊고 살자는 무언의 다독임뿐이다.   앞으로도 이런 최면에 걸릴 기회는 많다. 보이스 피싱이네 뭐네 사기당할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 경우를 당했다 해도 내 사랑하는 가족에게 화살을 돌리지 않을, 사랑과 배려를 장착하고 대비해야겠다. 박기순 / 시인수필 남편 마음 우울증 남편 최면 강의 완전 최면

2023-01-12

[중앙 칼럼] 성큼 다가온 ‘초연결 사회’

#세계 최대 가전 행사인 2023 CES가 막을 내렸다. 올해 행사의 특징은 ‘연결’이었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기술의 공통분모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평가는 너무나 당연하다. 테크놀로지의 핵심은 결국 인간의 편리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편리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접목되어야 하고 더 많은 기술이 융합할수록 편리함과 더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지금 존재하는 기술이나 제품보다 조금이라도 더 인간이 편리하게 집이나 일터에서 지내게 할 수 있을까가 신기술 개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편리성과 효용성은 지극히 당연하다. 게다가 여러 기술의 공통분모가 사람이라는 것은 사족이다. 오히려 연결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을 어떻게 한 단계 더 발전시키거나 다른 기술과 결합했는지를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쨌든 모빌리티 부문은 점점 인간과 교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메타버스는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 디지털 헬스는 건강한 삶에 대한 접근성을 키우는 혁신을 이뤘다. (이런 평가는 제이미 캐플런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 이벤트 커뮤니케이션 부문 부사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모빌리티 부문은 캐플런의 지적처럼 올해 행사에 300개가 넘는 자동차 브랜드가 참여할 정도로 확대됐다. 그만큼 자동차는 이제 단순한 이동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다. 모든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의 삶이 녹아드는 공간, 인간과 자동차가 하나로 섞이며 변신하는 느낌이다. 완전한 자율주행이 언제 실현돼 상용화될런지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모든 관련 기술은 그쪽을 향해 끊임없는 개발에 나서고 있다. 결국 얼마나 빨리 현실화할 수 있느냐, 즉 시간문제일 뿐이다.     자동차의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초연결’ 사회의 신인류가 탄생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변혁이 될 것이다.     #‘초연결’이라는 용어는 10여년 전부터 심심찮게 등장했다. 2019년에는 다보스포럼, MWC(세계모바일전회), CES(세계가전박람회)에서 이 시대 최대 화두로 ‘초연결’을 지목하기도 했다.     초연결은 사람과 사람은 물론이고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물리적 연결 외에도 모든 서비스의 연결도 의미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인간의 편리함과 효용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초연결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인간이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시간을 많이 절약하고 육체적으로 편한 대신 초연결 네트워크 중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모든 일상이 한순간에 정지될 수 있다.     편리하다는 것은 양면성을 항상 내포한다. 내가 다 조정하고 이용하는 것 같지만 그만큼 의존성이 강해진다는 의미도 담는다. 어떤 이는 “초연결 사회에서 인간은 자율주행 차나 집안의 냉장고처럼 단말에 불과하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작동하지만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단말은 거의 무용지물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건전지가 다 소모돼 전원이 꺼진 휴대전화기나 태블릿처럼 말이다.     초연결 사회는 또 다른 부익부 빈익빈을 예상할 수 있다. 초연결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력이 있어야 하고 기술력은 결국 돈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기술력 있는 제품을 구입해 초연결 생활을 누리겠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기술과 멀어지는 것이다. 이는 기회의 박탈과도 연결된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르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개념도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 초연결시대에는 “모든 것은 생각한다.(Internet of Things)”라고. 김병일 / 뉴스랩 에디터중앙 칼럼 사회 신기술 개발 관련 기술 완전 자율주행

2023-01-10

[잠망경] 정신병동의 파시즘

한 주에 한 번씩 병동환자들을 아래층 몰(mall)로 내려보낸다. 그들을 몇 명씩 다른 방에 나누어서 직원들이 그룹테러피를 하기 위해서다. 그럴 때마다 내려가지 않겠다는 환자들이 몇몇 있다. 단체 생활을 싫어하는 마음가짐. 그중 반항기 많은 젊은이가 책임 간호사에게 “This is fascism!”이라고 소리친다. - 이건 파시즘이야!   어릴 적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농담 비슷하게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건 ‘파쇼’에요!” 파쇼? 맞다, ‘fascio’! 이탈리아어로 ‘한 뭉치’라는 뜻. 1919년에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창시한 정치적 결속단체 이름이었다.   파쇼는 전체주의 또는 독재주의라는 의미로도 폭넓게 쓰이는 말. 주로 상대방을 농담 혹은 진심으로 비방할 때 사용된다. ‘그런 법’은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화법으로 보면 대체로 상식에 어긋나는 불법적인 여건을 지적할 때 좋은 표현이다. 한 정당이 말도 안 되는 수법으로 상대 정당에게 억지를 부리며 떼를 쓰는 장면이 떠오른다.   떼를 쓴다고 할 때의 ‘떼’를 사전은 ‘목적이나 행동을 같이하는 무리’라 풀이한다. 떼거리, 생(生)떼 하는 바로 그 ‘떼’. 영어의 ‘group’. 한 개인이 그룹이나 단체처럼 강력하게 떼를 쓴다는 어법이 흥미롭다. 암, 개인보다 단체의 힘이 강하고말고. 그래서 당신은 협회에 가입하거나 당원(黨員)이 되지 않았던가. 한 개인의 미약한 면목보다 소위 ‘fascio, 파쇼, 한 뭉치’로 뭉치는 힘이 언필칭 더 강하지 않은가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인간은 천성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이다”라 지적했다 - “Man is by nature social animal.” 당신과 나는 조석으로 페이스북을 열어 보고, 연말연시에 ‘Social Networking System (SNS)’를 분주하게 드나드는 삶을 영위한다.   ‘social’은 14세기 불어와 라틴어에서 가정생활(home life)을 한다는 의미, 배우자와 같이 산다는 뜻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독신자는 사회적인 사람이라 할 수 없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온다. ‘social’은 워낙 전인도유럽어로 누구를 따른다는(follow) 의미였다. 타인과 공존하는 일상을 위하여 상대의 의향을 따르는 우리가 아니던가.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전체주의를 분별해서 생각한다. 우리는 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시대를 사는 만큼 전체주의는 21세기에 발을 들여놓기가 힘이 든다. 그건 완전 파시즘! 파쇼다. 무분별한 단체주의 대신에 분별력 있는 개인 취향이 앞서가는 세상이다.   ‘individual’이 하나의 사물 또는 물건이라는 뜻에서 개인(個人)이라는 의미로 변한 시기는 1640년경. 그 이전 서구인들에게는 ‘개인’이라는 말, 하물며 ‘개인주의’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는 추론이 성립된다. 그들은 군주 또는 기독교적 교리를 따르며 추종했고 개인적인 성향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individual’은 ‘분리할 수 없는’이라는 뜻.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原子)에 해당하는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이렇게 설파한다. - 사회는 개인을 앞장서는 그 어떤 것이다.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거나 자급자족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어서 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짐승이거나 신(神)이다. - 그래서 나는 2022년 끝자락에서 당신에게 소리친다. Happy Holidays to You!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정신병동 파시즘 완전 파시즘 social networking 정치적 결속단체

2022-12-27

[브리프] '애플카 ‘완전 자율주행차’ 포기' 외

애플카 ‘완전 자율주행차’ 포기   애플이 야심 차게 진행해 온 자율주행 전기차(애플카) 개발 목표를 ‘완전 자율주행’에서 ‘고속도로 완전 자율주행’으로 수정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6일 보도했다. 출시 목표 시기도 애초 계획보다 1년 늦은 2026년으로 연기했다. ‘프로젝트 타이탄’으로 불리는 애플카 개발 계획은 최근 몇 달간 경영진이 완전한 자율주행차를 현재 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다는 현실을 놓고 고심하면서 표류해왔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애플은 애초 애플카에 현재까지 자동차업체들이 구현하지 못한 최고 수준의 자율주행인 ‘레벨 5’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애플은 결국 운전대와 페달을 제공하고 고속도로에서만 완전 자율주행을 지원하는 수준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애플카는 현재 디자인이 확정되지 않은 ‘시제품 이전’ 단계로 알려졌다. 애플은 내년까지 애플카 디자인을 확정하고 2024년 말까지 각종 기능을 장착한 후 2025년 광범위한 테스트를 할 계획이다. 2025년 완전 자율주행차로 출시될 예정이었던 애플카 내부 디자인은 당초 승객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는 리무진 스타일이었으나, 이번 전략 수정으로 운전석이 있는 전통적인 형태로 바뀌게 됐다.     중국산 첫 여객기 인도·취항   중국산 첫 여객기인 C919가 9일 상하이 훙차오공항에서 제조사인 국영 중국상용항공기(COMAC)로부터 중국동방항공에 인도된다고 중국 신랑망(시나닷컴)이 7일 보도했다. COMAC이 2006년 연구 개발에 착수해 16년 만에 완성한 C919는 기내 통로가 하나인 중형 여객기로 158∼168개 좌석을 갖춘 중형 여객기다. 지난 5월 시험 비행을 마쳤고, 지난 9월 상용 비행을 위한 최종 절차인 감항 인증(항공기의 안전 비행 성능 인증)식을 거쳤다. COMAC은 지난달 민항국 화둥지구관리국으로부터 대형 여객기 대량 제조 능력을 갖췄음을 의미하는 C919 생산 허가증도 받았다. COMAC은 대당 가격이 약 1억 달러에 달하는 C919의 1000 대 이상 주문받은 상태로 알려졌으며, 중국동방항공이 처음으로 공급받게 됐다. 중국동방항공은 조만간 C919의 노선 투입을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다.브리프 애플 자율주행차 완전 자율주행차 고속도로 완전 자율주행 전기차

2022-12-07

[살며 생각하며] 한국, 너란 나라!

9월 초부터 40여 일을 한국에서 지냈다. 3년 만에 찾은 한국은 일단 참 편리했다. 지하철, 기차, 버스 어디든 인터넷이 연결됨은 물론, 다음 버스는 몇 분 후에 도착하며 사람이 많은지, 이 전철 어느 문에서 타면 사람이 덜 많은지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간혹 건널목 바닥에까지 설치된 신호등과 편하게 기다리라고 세워놓은 파라솔, 지하철역 내의 깨끗한 화장실은 감탄스러웠다. 친구와 산책하다 앉았던 한 공원 벤치 옆에는 책이 가득 꽂힌 책꽂이가 있었다. 지하철 문에도, 시골 담장에도 가슴을 흔들어주는 시들이 쓰여 있는 이 감성의 나라, 산속이며 물가 곳곳의 널찍한 카페들은 왜 그렇게 예쁘고 운치가 있는지!   디지털 최강국답게 작은 호두과자 가게든, 큰 음식점이든 키오스크 화면으로 주문하고, 식당에는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서빙을 돕는다. 전기차도 미국보다 훨씬 많고 생활화되어 있다. 하루는 은행에 갔더니, 도수 별로 돋보기안경들이 준비되어 있다. 나같이 40년 외국에서 산 사람, 이런 배려 완전 감동이다. ‘Trying Too Hard’라는 이모지(식은땀 흘리면서도 웃고 있는 얼굴)를 생각게 하는, 편리와 안전을 엄청 배려하는, 흠, 한국, 너란 나라!     힘들었던 것으로 말씀드리자면, 쓰레기와의 사투였다. 특히, 과일도 껍질까지 먹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음식물 분리수거! 사과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고, 파인애플 껍데기는 수분을 말려 잘게 잘라 일반 쓰레기에 버려야 함을 아시는지. 옥수수 알은 음식물 쓰레기고 껍질과 대는 일반 쓰레기라는 사실은 아시는지. 심지어 아이디로 무게를 자동 감식하는 전자 쓰레기통이 설치된 동네도 있다니! 이동식 감시 카메라가 감시하고, 규정을 어길 시 100만원 이하 과태료 사인이 붙어 있다. 오피스텔을 떠날 즈음에는 쓰레기 완전 정복이 이루어졌는데, 나도 모르게 쓰레기양을 줄이려고 애쓰게 되는 걸 보면서, 미국도 이런 점은 많이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한국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수많은 지시 사항과 안내 사인이다. 이번에 가보니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댈 때마다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 한다. 한국에 마스크 안 쓰는 사람 1도 없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면, “손잡이를 잡아 주세요. 걷지 말아 주세요” 등, 너무도 당연한 것에 대해 안내를 하는 것이 늘 신기했다. (하긴 그런데도 에스컬레이터 한쪽으로는 늘 사람들이 걷는다!) 때로는 어린 애들도 아닌데 구태여 이런 기본적 안내까지 해야 하나 하면서도, 역시 한국은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우선하는 나라라고 좋게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돌아온 지 약 보름 만에 발생한 이태원의 어이없는 사고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작은 일에도 안전과 편의에 신경을 쓰는 나라가 한국이던데 안타깝다 못해 멘붕에 빠져 며칠을 보냈다. 피부에 느껴지는 환경은 분명 좋아졌는데, 소득이나 생활 수준 격차에서 오는 좌절감은 더 심해진 듯했고, 그래서 그런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던 지하철이나 길거리 사람들 표정 또한 떠올랐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한국, 너란 나라! 이제는 사회 구조적으로도 깨어, 안전하고 더 책임 있게 국민의 행복을 향해 가는 그 길만 걷게 되길 기도한다.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한국 나라 하나 한국 전자 쓰레기통 쓰레기 완전

2022-11-15

[살며 생각하며] 한국, 너란 나라!

9월 초부터 사십여 일을 한국에서 지냈다. 삼 년 만에 찾은 한국은 일단 참 편리했다. 지하철, 기차, 버스 어디든 인터넷이 연결됨은 물론, 다음 버스는 몇 분 후에 도착하며 사람이 많은지, 이 전철 어느 문에서 타면 주로 사람이 덜 많은지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간혹 건널목 바닥에까지 설치된 신호등과 기다리는 동안 안락하라고 세워놓은 파라솔, 지하철 역내의 깨끗한 화장실들은 감탄스러웠다. 친구와 산책하다 앉았던 한 공원 벤치 옆에는 책이 가득 꽂힌 책꽂이가 있었다. 지하철 문에도, 시골 담장에도 가슴을 흔들어주는 시들이 쓰여 있는 이 감성의 나라, 산속이며 물가 곳곳의 널찍한 카페들은 왜 그렇게 예쁘고 운치가 있는지!   디지털 최강국답게 작은 호두과자 가게든, 큰 음식점이든 키오스크 화면으로 주문하고, 식당에는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서빙을 돕는다. 전기차도 미국보다 훨씬 많고 생활화되어 있다. 하루는 은행에 갔더니, 도수 별로돋보기 안경들이 준비되어 있다. 나같이 40년 외국에서 산 사람, 이런 배려 완전 감동이다. ‘Trying Too Hard’라는 이모지(식은땀 흘리면서도 웃고 있는 얼굴)를 생각게 하는, 세심한 편리와 안전을 엄청 배려하는, 흠, 한국, 너란 나라!     힘들었던 것으로 말씀드리자면, 쓰레기와의 사투였다. 특히, 과일도 껍질까지 먹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음식물 분리수거! 사과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고, 파인애플 껍데기는 수분을 말려 잘게 잘라 일반 쓰레기에 버려야 함을 아시는지. 옥수수 알은 음식물 쓰레기고 껍질과 대는 일반 쓰레기라는 사실은 아시는지. 심지어 아이디로 무게를 자동 감식하는 전자 쓰레기통이 설치된 동네도 있다니! 이동식 감시 카메라가 감시하고, 규정을 어길 시 100만원 이하 과태료 사인이 붙어 있다. 오피스텔을 떠날 즈음에는 쓰레기 완전 정복이 이루어졌는데, 나도 모르게 쓰레기양을 줄이려고 애쓰게 되는 걸 보면서, 미국도 이런 점은 많이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한국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수많은 지시 사항과 안내 사인이다. 이번에 가보니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댈 때마다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 한다. 한국에 마스크 안 쓰는 사람 1도 없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면, “손잡이를 잡아 주세요. 걷지 말아 주세요” 등, 너무도 당연한 것에 대해 안내를 하는 것이 늘 신기했다. (하긴 그런데도 에스컬레이터 한쪽으로는 늘 사람들이 걷는다!) 때로는 어린 애들도 아닌데 구태여 이런 기본적 안내까지 해야 하나 하면서도, 역시 한국은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Trying Hard 하는 나라라고 좋게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돌아온 지 약 보름 만에 발생한 이태원의 어이없는 사고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경찰이 CCTV로 감시하며 쓰레기 불법 투기범(!)을 잡아낸다는 정보의 나라, 이렇게 세심하게 작은 일에도 안전과 편의에 신경을 쓰는 나라가 한국이던데!!!! 안타깝다 못해 멘붕에 빠져 며칠을 보냈다. 피부에 느껴지는 환경은 분명 좋아졌는데, 소득이나 생활 수준 격차에서 오는 좌절감은 더 심해진 듯했고, 그래서 그런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던 지하철이나 길거리 사람들 표정 또한 떠올랐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한국, 너란 나라! 이제는 사회 구조적으로도 깨어, 안전하고 더 책임 있게 국민의 행복을 향해 가는 그 길만 걷게 되길 기도하면서, 뉴욕의 가을이 깊어 간다.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한국 나라 전자 쓰레기통 하나 한국 쓰레기 완전

2022-11-09

“OMNY 메트로카드 완전 대체, 2025년 6월에나”

뉴욕시 전철·버스의 터치형 요금 지불시스템인 '옴니'(OMNY)가 기존 메트로카드를 대체하기까지 당초 예상보다 약 1년 더 늦어진 2025년 6월까지 걸릴 전망이다.   25일 블룸버그통신은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의 독립엔지니어컨설턴트(IEC)를 인용해 뉴욕시 대중교통 모든 시설에 OMNY 결제 시스템 설치, OMNY 카드 자판기 배치 및 수익 시스템 준비가 지연을 겪으면서 기존에 목표했던 2024년 9월보다 늦어진 2025년 6월에나 OMNY가 완전히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MTA에 따르면 총 7억7200만 달러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메트로카드를 완전히 대체할 계획인 OMNY는 도입 이후 이용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9월 기준 뉴욕시 대중교통 이용객 중 3분의 1이 OMNY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MTA는 2020년 말 472개 전철역, 5800대 버스 등 시전역 전철 및 버스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확대했다.   또 MTA는 OMNY 시스템을 메트로노스·롱아일랜드레일로드(LIRR)에도 확장할 계획이다.   블룸버그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MTA 관계자는 해당 작업도 당초 계획했던 2024년 3분기보다 지연돼 2025년 2분기에나 모든 열차역에 제공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24일 MTA는 대중교통 반값 요금 적용 대상자들이 OMNY를 통해 할인된 가격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반값 요금 적용 대상자들은 웹사이트(OMNY.info)에서 무료 계정을 생성하고, 웹사이트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온라인상담을 통해 정보를 기입하고 자신이 활용할 카드에 반값 요금 적용 혜택을 등록할 수 있다.   인터넷 활용이 어려운 이용객은 콜센터(877-789-6669)를 통해 등록할 수 있다.   OMNY는 메트로카드를 대체해 크레딧카드나 스마트폰으로 자동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개찰구에 설치된 리더에 내장칩이 들어 있는 비접촉식 크레딧카드나, 디지털월렛에 카드를 등록한 스마트폰을 갖다대기만 하면 요금이 자동으로 결제된다.   현재 비자, 마스터카드,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디스커버 등 크레딧카드와 애플페이, 구글페이, 삼성페이 등의 결제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다. 심종민 기자 shim.jongmin@koreadailyny.com메트로카드 완전 메트로카드 완전 기존 메트로카드 비접촉식 크레딧카드

2022-10-25

반자율 주행 이용자 절반 주행중 딴짓

#원거리 통근을 하고 있는 회사원 최모씨는 새벽 6시에 집을 나선다. 프리웨이에 들어서면 바로 자동차의 반자율 주행 모드인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유지 기능을 켠다. 운전대를 다시 잡으라는 경고 메시지가 뜰 때마다 잠시 잡아주기만 하면 다시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베이글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시작한다.   #라스베이거스로 출장이 잦은 자영업자 장모씨에게 반자율 주행 모드는 옵션이 아닌 필수다. 차가 알아서 전방 차량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속도를 조절하고 차선 이탈을 방지해 주니 운전 피로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구매한 보조 장치로 운전대에서 손을 뗄 때 나는 경고음도 피할 수 있게 되자 너무 편한 나머지 깜빡깜빡 졸기까지 한다. 한두 차례 사고가 날뻔했지만 편리함 때문에 계속 사용하고 있다.   첨단운전자 보조시스템(ADAS)이 장착된 차량이 증가하는 가운데 운전자들이 이를 완전 자율주행차량처럼 오용하고 있어 안전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속도로안전보험연구소(IIHS)가 평소 ADAS 기능을 사용하는 운전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ADAS가 장착된 차량 운전자들이 미장착 차량 운전자들보다 식사, 문자 메시지 등 운전 중 ‘딴짓’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특히 반자율 주행 모드를 완전자율주행으로 과신해 오용하는 운전자들이 캐딜락의 슈퍼크루즈 사용자의 53%,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42%, 닛산의 프로파일럿 어시스트 12%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슈퍼크루즈 사용자의 약 절반과 오토파일럿 사용자의 42%가 반자율 주행 모드 중 ‘딴짓’을 하는 것을 괜찮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이들 가운데 40%는 안전 경고를 계속 무시해 강제로 반자율 주행모드가 해제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IIHS의 데이비드 하키 대표는 “이번 조사를 통해 반자율 주행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이 기술적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스템 설계와 업체들의 마케팅이 이 같은 오해를 가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메이커별 ADSA 시스템의 기능과 구성이 다를 뿐만 아니라 광고, 명칭 등이 소비자에게 오해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슈퍼크루즈의 TV 광고는 운전자가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며 무릎을 두드리는 모습을 묘사해 핸즈프리 기능을 강조하고 있으며 항공기에서 사용될 듯한 단어인 오토파일럿은 실제 제공하는 기능보다 더 많은 기능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반면 프로파일럿 어시스트는 운전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 기능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IIHS의 알렉산드라 뮬러는 “반자율 주행 시스템과 관련해 보다 강력하고 다각적인 보호 장치의 필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된다. 주의 경고 및 주행 모드 해제 기능이 보다 광범위하게 장착돼야 운전자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운전대에 장착된 센서가 마치 손이 잡고 있는 것으로 감지하도록 하는 보조 기구까지 출시돼 인기를 끌자 지난 2018년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안전성을 이유로 제조 및 판매 중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해 8월까지도 아마존을 통해 계속 판매돼 논란이 된 바 있다.   NHTSA는 지난 2016년 이래 발생한 테슬라 오토파일럿과 관련된 사고 26건(최소 11명 사망)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글·사진=박낙희 기자주행 반자율 반자율 주행 완전 자율주행차량 첨단운전자 보조시스템

2022-10-12

[이 아침에] 마음이 담긴 소식

특별하게 이름 지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사방팔방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어쩌다 몇 번쯤 만났던 사람들이 있다. 기억할 수 있는 얼굴도 있고 전혀 기억에 없는 이름도 있다. 서로 호감 가는 경우라면 이어지는 만남에서 이름과 얼굴이 짝을 맞춰 아는 사람 대열에 자리 잡고 가끔 아주 가끔은 안부를 주고받게 된다.   취미 동아리에서 만났던 사람, 지금은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 잊혀진 사람, 우연히 다시 만나서 처음 만난 듯 어색하게 짧은 인사를 나눈 사람들에게서 느닷없이 카톡이 오픈 되고 소식이 뜬다. 좋은 글귀가, 유명 시인의 시 한 편이, 예쁜 사진을 배경으로 혹은 듣기 좋은 음악을 곁들여 순식간에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럴 땐 우선 고마운 마음이다. 어설프게 기억나는 사람이지만 특별한 관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탄이다. 내 방식대로 정성껏 답장을 보낸다. 내 느낌대로 고마움을 전한다. 건강 안부도 묻는다. 코로나와 동행하는 아슬아슬한 환경 멘트도 한몫을 한다.     그리곤 끝이다. 잊으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다. 어느 날 갑자기 또 한 장의 카드 같은, 전문가의 솜씨로 꾸며진 좋은 글에 예쁜 사진이 도착한다. 카톡을 만들어 낸 창시자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자칫 뻘쭘한 관계에서도 따스한 인간의 감정을 끌어내어 주고받게 만들지 않는가. 시작은 그런대로 수긍한다.   한가한 시간을 틈타 전화기 청소 작업을 한다. 카톡 아이콘을 열고 찬찬히 점검에 돌입하니 셀 수도 없이 많은 계정이 이어진다. 계정마다 채워진 내용들을 살펴보니 슬그머니 짜증 모드로 바뀐다. 완전 시간 낭비성 불필요한 내용들이다. 필요하다면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용량도 만만치 않은 잡동사니들.     뜨악하니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관계지만 아는 척하고 싶은 사람에게 땜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오만 가지 종류의 글귀들, 사진들, 음악들이 천지에 깔려 있다. 받아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시간 들이고 노동해서 지워야 할 쓰레기들로 변해 있다. 초창기엔 잠깐 고마운 관심으로 받아들여지던 것이, 차고 넘치게 된 현재에는 멈추지 않고 계속 보내는 이들이 뻔뻔한 사람으로 생각돼 버렸다.   처음부터 내 생각은, 마음이 담긴 짧은 안부를 친필로 쓰자 했다. 글쓰기가 안 된다는 핑계로 일관하는 불평들을 이해는 하지만, 단순하게 전화로 말하듯이 그런 인사말을 써 보내면 된다. 애정하는 마음은 있는데 표현을 못 하는 심정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렇다면 퍼다 나르는 그 좋은 글을 친필로 써서 올려보면 어떨까 싶다.     진짜 마음을 받고 싶은 생각에 ‘썰’을 푼다. 옛날 양주동 박사는 연서를 보낼 때, 성경 말씀에서 온갖 사랑 표현을 복사해서 보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친필로 써주면 숨겨진 사랑은 내가 찾을 것이다. 영혼이 실종된 내용을 계속 보내는 계정들은 모두 차단하며 쉼을 만끽한다. 노기제 / 통관사이 아침에 마음 소식 진짜 마음 건강 안부도 완전 시간

2022-04-13

[이 아침에] 마음이 담긴 소식

특별하게 이름 지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사방팔방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어쩌다 몇 번쯤 만났던 사람들이 있다. 기억할 수 있는 얼굴도 있고 전혀 기억에 없는 이름도 있다. 서로 호감 가는 경우라면 이어지는 만남에서 이름과 얼굴이 짝을 맞춰 아는 사람 대열에 자리 잡고 가끔 아주 가끔은 안부를 주고받게 된다.   취미 동아리에서 만났던 사람, 지금은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 잊혀진 사람, 우연히 다시 만나서 처음 만난 듯 어색하게 짧은 인사를 나눈 사람들에게서 느닷없이 카톡이 오픈 되고 소식이 뜬다. 좋은 글귀가, 유명 시인의 시 한 편이, 예쁜 사진을 배경으로 혹은 듣기 좋은 음악을 곁들여 순식간에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럴 땐 우선 고마운 마음이다. 어설프게 기억나는 사람이지만 특별한 관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탄이다. 내 방식대로 정성껏 답장을 보낸다. 내 느낌대로 고마움을 전한다. 건강 안부도 묻는다. 코로나와 동행하는 아슬아슬한 환경 멘트도 한몫을 한다.     그리곤 끝이다. 잊으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다. 어느 날 갑자기 또 한 장의 카드 같은, 전문가의 솜씨로 꾸며진 좋은 글에 예쁜 사진이 도착한다. 카톡을 만들어 낸 창시자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자칫 뻘쭘한 관계에서도 따스한 인간의 감정을 끌어내어 주고받게 만들지 않는가. 시작은 그런대로 수긍한다.   한가한 시간을 틈타 전화기 청소 작업을 한다. 카톡 아이콘을 열고 찬찬히 점검에 돌입하니 셀 수도 없이 많은 계정이 이어진다. 계정마다 채워진 내용들을 살펴보니 슬그머니 짜증 모드로 바뀐다. 완전 시간 낭비성 불필요한 내용들이다. 필요하다면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용량도 만만치 않은 잡동사니들.     뜨악하니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관계지만 아는 척하고 싶은 사람에게 땜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오만 가지 종류의 글귀들, 사진들, 음악들이 천지에 깔려 있다. 받아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시간 들이고 노동해서 지워야 할 쓰레기들로 변해 있다. 초창기엔 잠깐 고마운 관심으로 받아들여지던 것이, 차고 넘치게 된 현재에는 멈추지 않고 계속 보내는 이들이 뻔뻔한 사람으로 생각돼 버렸다.   처음부터 내 생각은, 마음이 담긴 짧은 안부를 친필로 쓰자 했다. 글쓰기가 안 된다는 핑계로 일관하는 불평들을 이해는 하지만, 단순하게 전화로 말하듯이 그런 인사말을 써 보내면 된다. 애정하는 마음은 있는데 표현을 못 하는 심정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렇다면 퍼다 나르는 그 좋은 글을 친필로 써서 올려보면 어떨까 싶다.     진짜 마음을 받고 싶은 생각에 ‘썰’을 푼다. 옛날 양주동 박사는 연서를 보낼 때, 성경 말씀에서 온갖 사랑 표현을 복사해서 보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친필로 써주면 숨겨진 사랑은 내가 찾을 것이다. 영혼이 실종된 내용을 계속 보내는 계정들은 모두 차단하며 쉼을 만끽한다.  노기제 / 통관사이 아침에 마음 소식 진짜 마음 건강 안부도 완전 시간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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