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완전히 개판
이렇게 해서 정월 중반 황금연휴에 매머드로 줄행랑을 쳤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생일이 그렇게 잘 알려진 휴일이 아닌 탓에 약국을 경영하는 남편에겐 휴일이 아니다. 그러니 잽싸게 눈치 봐서 줄행랑을 치기가 제격이다. 제법 처신 잘하던 Y가 남편 두고 합세했다. 나와는 띠동갑이다. 친구를 데려온다더니 동갑내기란다.
이렇게 개띠 세 명이 관광회사 버스에 올랐고, 남편이 개띠라며 한 여성이 합세했다. 남편은 한국에 있지만 어쨌든 개띠와 관련이 있어 인정해 줬다.
스키강습을 받으며 또 다른 개띠가 발견됐다. 스키 실력이 뛰어난 테드 리로 그는 1958년생, 유일한 남성 개띠였다. 첫날 강습에 다섯 명이 참가해서 네 명이 개띠라면 이건 완전 개판이 된 거다.
강사님이 기가 죽을 판이다. 한 사람은 남편이 개띠이니 반은 개에 속한다고 해 모두 깔깔댔다. 결국 강사만 양띠로 개들이 지켜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이야기가 버스 안에 퍼지자 운전기사가 합류한다. 자기도 음력으로는 개띠라나. 어차피 띠 따지는 것은 음력이니 개판에 끼워 주겠다고 마음 좋은 Y가 허락했다. 이렇게 해서 설원을 장악한 개들이 완전히 개판을 이루어 신명 나게 시간을 보냈다.
정말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었고 모든 사람이 박장대소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중 테드 리의 한 마디는 또다시 모두를 웃게 했다. 58년생 개가 아닌 개가 펄펄 나는 것은 망령이라고 볼멘소리를 한 것이다. 모두 까르르 웃었지만, 유난히 난 행복했다. 그 정도 망령이라면 얼마든지 나고 싶다. 앞으로 12년을 계속 나처럼 스키를 타다 보면 12년 후에는 58년생 개띠들도 모두 망령 난 개띠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운동은 건강 유지에 필수과목 아닌가. 비록 남편과 함께하지 못한 여행이지만 재미있었다. 마음이 맞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58년 개띠들에 고마운 마음이다.
곁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로 놀라는 반응이다. “12년 차이인데도 그렇게 같이 놀 수 있어요? 저 쇼크 먹었어요.” 그러니 망령 난 개띠란 말이지. 앞으로도 개판엔 꼭 참여해서 계속 자리매김을 할 것이다. 당시 다음 연휴까지 제발 눈보라가 다시 쳐주길 기대했었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연휴였는데 다음 연휴까지 우리 강아지들 집 지키는 임무에 충실하길 바란다.
노기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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