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로 돌아온 거장 “완전에 이르면 세상은 없다”
‘퍼펙트 데이즈’의 빔 벤더스 감독
도쿄시 화장실 이미지 개선 홍보에서 시작
6년 만의 컴백작서 사람·예술의 궁극 탐구
영화의 길 이끈 오즈 감독에 바치는 헌정
벤더스의 영화들은 대체로 전후 독일의 회의적 운명론과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 그리고 동시에 타문화를 침식하는 미국 문화에 대한 비판을 특징으로 한다. 80년대의 전성기 이후, 침체기를 가졌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는 극영화보다는 ‘피나’(2012),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2014), ‘안셀름’(2023)과 같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주로 활동해왔다.
“예술적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과 함께 단편 제작을 의뢰받았을 때, 도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나를 화장실의 비중이 높은 일본 문화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줘서 그 제안이 고마웠다.”
그와 일본, 특히 도쿄와의 인연은 70년대 초로 돌아간다. 그가 50년대 일본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에 매료되어 일본에 빠져들어 가던 시기였다.
“처음 도쿄를 돌아다니다 길을 잃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지하철을 타고 매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 거대한 공간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돌아다닌 그 몇 시간 동안 나는 도쿄와 사랑에 빠졌다. 옛것들과 현대적인 것들, 고층빌딩과 지하 2층, 3층 고속도로 등 혼란스러움 가운데 보이는 심플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가 둘러본 시부야의 공중 화장실들은 ‘위생의 사원’처럼 보였다. 도시의 복잡함, 그러면서도 평화로워 보이는 생활 공간, 그 안에 보이는 미로가 그를 유혹했다. 공중화장실을 소재로 한 빔 벤더스 버전의 도쿄 ‘퍼펙트 데이즈’의 제작 동기다.
“화장실 그 자체보다 그 안에서 사람과 예술을 찾아내고 싶었다. 일본에서 화장실은 작은 성역이다. 평화와 존엄이 존재하는 곳이다. 단편은 나의 언어가 아니다. 화장실을 소재로 한 장편영화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일본의 ‘공동선’ 의식, 도시와 서로에 대한 상호 존중은 그에게 영화로서 접근하기에는 버겁고 너무나도 새로운 영역이었다. 각본을 함께 작업한 타카사키 타쿠마와 많은 토론을 하며 벤더스 감독은 마침내 ‘우리의 남자’ 히라야마의 캐릭터를 찾아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그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히라야마를 연기한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다. 야쿠쇼는 이 역으로 칸영화제를 비롯, 일본 아카데미상, 토론토영화제, 아시안영화제, 시애틀평론가협회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최우수남우연기상을 수상했다.
“야쿠쇼는 평소 존경하던 배우였다. 그는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지닌 히라야마의 삶을 연기할 수 있는 최고의 배우였다.”
‘퍼펙트 데이즈’는 공중화장실 청소부가 직업인 한 남자의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행복의 디테일’을 찾아가는 내용을 다룬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늘 겸허하며 겉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는 도심 한구석의 외로운 영혼이었음을, 벤더스 감독 특유의 시적인 터치로 묘사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건, 가장 낮은 지점에서 깨달음을 얻은 히라야마의 내면이다. 그는 과거를 가진 남자이다. 그가 어떻게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지옥을 경험했을지도 모르는 히라야마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보게 된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태양 빛에 반사되는 실루엣을 히라야마가 촬영하는 장면이 있다. 벤더스 감독은 히라야마의 일상 안에 숨어있는 상징성을 ‘코모레비’라는 말로 설명한다.
“코모레비라는 햇빛에 의해 벽에 춤추는 나뭇잎의 그림자 이미지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서 히라야마는 단순함과 겸손함을 배운다. 그리고 청소부로 헌신적인 삶을 살아간다.”
히라야마는 자신이 가진 몇 안 되는 것들에 만족한다. 그는 구식 필름 카메라로 나무 곁에 앉아 코모레비의 순간을 포착하고 문고판 책만을 읽으며 어렸을 때부터 모아둔 카세트테이프로 록음악을 듣는다.
“공중 화장실 청소부는 ‘열등한’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영적인 행위이다. 평등과 겸손, 공동선의 몸짓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감기에 걸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것이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태도라는 걸 알고 공동선의 개념을 이해하게 됐다.”
‘퍼펙트 데이즈’는 벤더스 감독이 그의 스승 오즈 야스지로에게 헌정하는 영화다. 1982년, 오즈 감독의 마지막 영화 ‘꽁치의 맛’(1962) 이후 20년 만에 다큐멘터리 ‘Tokyo-Ga’를 제작했었다. 그리고 60년이 지나 다시 도쿄에 입성, ‘퍼펙트 데이즈’를 제작했다. 두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 히라야마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즈 감독의 어떠한 점들이 그의 영화에 그토록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궁극적으로 그를 일본 문화에 심취하게 했을까.
“그의 영화에 스며든 모든 느낌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 그의 영화의 모든 것이 독특하다. 단 한 번 일어나는 사건들이지만, 그가 펼치는 이야기들에는 영원성이 담겨 있다.”
‘퍼펙트 데이즈’는 ‘Always’라는 규칙적인 리듬으로 살아가는 한 남자를 통해, 우리의 삶이란 독특한 이벤트, 독특한 만남, 독특한 순간이 사슬처럼 끝없이 이어지고 있을 뿐, ‘완전(Perfect)’에 이르면 그 이상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분히 동양적인, 그리고 극히 단순한 진리를 탐구하는 영화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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